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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에서 약사들은 수많은 약들의 개수만큼 의약품 첨부문서를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전문의약품을 조제하고 환자에게 투약하는 과정에서 포장마다 붙어 있는 두꺼운 첨부문서는 누구에게도 전달되지 않고 버려지는 경우가 다수다. 어떤 약국에서는 약을 배송 받으면 약의 용기나 포장에 붙어 있는 첨부문서를 떼서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 첫 일과이기도 하다. 일반의약품 포장 속에 있는 첨부문서는 대부분 환자에게 전달되지만, 어려운 내용이 가득한 첨부문서를 환자들이 정말 볼지 의문스러울 때가 있다.
의약품 첨부문서에 약에 대한 정보가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핸드폰이나 컴퓨터로 누구나 약에 대한 정보를 손쉽게 검색할 수 있는 시대에 이런 첨부문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매번 버리기 번거롭고 환경 오염만 일으키는 것 같은데, 그냥 없애면 안될까?
사진은 기사의 특정사실과 관련없음. 약사공론DB.
물론 의약품에 관한 정보는 다양한 출처를 통해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약사법에서 규정하는 의약품 정보를 전달하는 공식 수단은 두 가지, 의약품 용기·포장과 첨부문서다. 특히 의약품 첨부문서는 의약품의 허가 및 신고 절차를 통해 규제기관인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제약회사 간 합의된 제품의 허가사항 정보를 담고 있는 공신력을 갖춘 문서다. 의약품 첨부문서가 약에 대한 정보 전달 수단으로서 가지고 있는 지위와 중요성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약품 첨부문서가 약사와 환자 모두에게 약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수단으로 잘 사용되고 있지 않다는 점도 분명한 사실이다. 환자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글자가 빽빽하게 쓰여 있고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 용어가 가득한 의약품 첨부문서를 외면해왔다. 의약정보 제공의 중요성을 익히 알고 있는 약사들도 의약품 첨부문서의 유용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의약품 첨부문서는 ‘당연히’ 중요하다는 원론적 의견과 실질적인 활용도가 낮은 문서로서 가치가 떨어진다는 의견이 공존한다.
이러한 인식은 국가에서 의약품 정보제공에 관한 정책을 펼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친다. 2024년 1월 2일 개정된 약사법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정하는 일부 전문의약품에 대해 종이 첨부문서를 없애고 전자적으로만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의약품 정보를 온라인으로 제공함으로써 보건의료전문가 및 환자 등에게 최신의 정보를 즉각 전달한다는 목적에 따라 이뤄졌으나, 그동안 꾸준히 지적돼 온 첨부문서의 무용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의약품 첨부문서의 유용성을 따지기 앞서 생각해봐야 할 점이 한 가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의약품 첨부문서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왔을까? 의약품 첨부문서의 활용도가 낮은 원인으로 흔히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자주 지적된다.
가독성이란 출판된 인쇄물 등의 읽기 쉬운 정도를 의미한다. 가독성은 크게 2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 번째로 개별 글자 형태를 식별하고 인지하는 과정을 높여주는 시각적 가독성, 즉 레지빌리티(legibility)이며, 두 번째는 정보를 보고 지각하는 과정의 성공도를 높여 이해도를 높이는 리더빌리티(readability)이다. 의약품 첨부문서의 가독성 저하 문제를 해결하려면 위 2가지 관점에서 어떻게 개선할지 검토하고, 가독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의약품 첨부문서의 가독성을 확보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 왔을까? 의약품 첨부문서의 낮은 활용도에 관한 문제는 오랜 기간 꾸준히 지적돼 온 만큼 이를 개선하기 위한 여러 노력들이 있었다.
우선 약사법에는 기본적으로 의약품 용기·포장과 첨부문서의 내용을 적을 때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정확히 적어야 한다는 대원칙을 제시한다. 하위 규정인 ‘의약품 등의 안전에 관한 규칙’ 및 ‘의약품 표시 등에 관한 규정’에서도 의약품 용기·포장과 첨부문서의 내용을 작성할 때 주의할 사항을 제시하고, 글자 크기, 줄 간격, 세부 기재 방법 등을 정한다. 하지만 의약품 첨부문서의 낮은 활용도가 여전히 문제로 지적된다는 것은 이러한 노력이 충분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해외에서는 어떨까? 의약품 첨부문서의 낮은 활용도에 관한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지만, 해외에서는 의약품 첨부문서의 가독성과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제도를 갖추고 있다. 미국, 유럽, 호주, 캐나다 등 해외 주요국과 우리나라 간 가장 큰 차이는 의약품 첨부문서의 대상을 의사, 약사 등 보건의료 전문가와 환자로 구분하고, 각 대상에게 맞는 내용과 형식으로 첨부문서를 제작하도록 요구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는 의약품 정보를 의사, 약사 등 전문가를 위한 제품특성요약서(Summary of Product Characteristics, SmPC)와 환자를 위한 패키지 리플렛(Package Leaflet)으로 구분하고, 각 문서에 기재해야 하는 내용을 대제목과 소제목, 세부 내용과 영역별 기재 방법까지 템플릿으로 상세히 제시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의사, 약사 등 전문가를 위한 첨부문서인 처방정보(Prescribing Information)와 환자용 첨부문서로 대상을 구분한다. 환자용 첨부문서는 의약품의 특징에 따라 의약품가이드(Medication Guide), 환자용 패키지 인서트(Patient Package Insert), 사용지시사항(Instructions for Use)으로 나뉜다. 호주와 캐나다 역시 전문가용 첨부문서와 환자용 첨부문서를 구분해 대상에 맞는 내용과 형식으로 제작하도록 요구한다.
이러한 노력은 단순히 대상에 따라 문서의 유형을 구분하고 내용과 형식에 관한 템플릿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유럽과 호주에서는 의약품 첨부문서 제작 시 사용자 시험(user testing)이라는 첨부문서 평가 방법을 활용하도록 강조하고 있다. 사용자 시험이란 환자 등 일반 소비자를 모집해 일대일 대면 인터뷰를 수행하고 첨부문서의 가독성을 직접 평가하는 방법이다. 평가자는 첨부문서에 있는 정보에 대해 약 12~15개의 질문을 제시하고, 참가자가 원하는 정보를 얼마나 신속하게 찾을 수 있는지, 찾은 정보를 얼마나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지 평가한다. 각 문항에 대해 참가자의 90% 이상이 정보를 성공적으로 찾고, 정보를 찾은 참가자 중 90% 이상이 그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면 해당 첨부문서는 가독성과 활용도가 충분하다고 인정된다. 유럽에서는 이러한 평가 결과를 의약품 허가 신청 시 제출해야 하는 자료 중 하나로 규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의약품 첨부문서는 환자들이 의약품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며, 가독성과 활용도가 높은 의약품 첨부문서가 환자의 복약 순응도를 높인다는 여러 연구결과들이 존재한다. 약의 전문가로서 환자의 약물치료성과를 달성하기 위한 약사의 역할에는 약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잘 전달하는 역할도 있다.
약국에서 환자와 마주하는 시점에서는 약사의 복약지도가 그 역할을 하지만, 환자가 집으로 돌아가 약을 꾸준히 복용하고, 혹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제대로 인식하고, 환자 본인이 복용하는 약의 특징을 잘 알고 먹을 수 있도록 하려면 공식적인 의약품 정보제공 수단으로서 의약품 첨부문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약사들이 가독성과 활용도가 높은 첨부문서가 개발되는 데 더욱 관심을 가지고 환자들의 알 권리와 약물치료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의약품 첨부문서 개선을 위한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다.
참고문헌
1) 양진욱, 권경희. 전문의약품 첨부문서의 국가별 규정 비교 분석. FDC 법제연구 2020;15(1):65-80.
2) 양진욱, 권경희. 한국, 미국, 유럽의 국제공통기술문서 Module 1 제출양식 중 의약품 표시에 관한 자료 비교 연구. 약학회지 2023;67(6):404-414.
3) 이재성, 양진욱, 권경희. 국가별 전자적 형태의 의약품 첨부문서(e-라벨) 제공 현황 분석: 한국, 미국, 유럽, 일본,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약학회지 2024;68(4):237-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