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들 참...」
나는 지금 쫓기고 있는 중이다. 뭐 동네 촌장 님의 부탁으로 지금 이렇게 마을 외곽까지 나왔지만 마을 밖은 위험하다는 말이 맞긴 맞는 거 같다. 눈이 불을 켜고 달려드는 저 괴물을 보고있자니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 녀석들의 비위를 건드리고 돌을 던졌거나 소리를 질렀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녀 저 녀석들은 내 가방에서 나는 달콤한 꿀 향기에 반해서 나를 쫓아오는 거 같다. 지금 나는 말할 운도 없다. 그녀 헉헉거리며 달릴 뿐이다. 마을로 달려가 도움을 요청한다는 게 마을에서 점점 멀어질 뿐 이였다. 다리가 점점 후들거려왔다. 지금 간단하게 하고 온다고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았다. 에잇 식칼이라도 하나 들고 오는 건데...
「끼이이익」
내가 이상한 괴음을 듣고 뒤를 돌아보았을 땐 내가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은 지 이미 늦은 후였다. 그 녀석들이 내가 자신들보다 빠르니깐 잡다한 물건을 던지는 것 이였다. 방금 이상한 나무 조각을 다리에 맞았지만 나는 죽을힘을 다해 뛰어갈 뿐이다. 어디로 도망 치냐고? 내 어린 친구가 있는 곳으로 도망칠 뿐이다. 나는 다시 뒤를 힐끔 처다 보았다. 엄청나게 큰 쥐인간Ratman 4마리가 쫓아오고 있었다. 사실 랫맨은 우리 인간들을 잘 건들지 않았다. 건들어 봤자 자기들이 죽어나갈 뿐이니깐. 하지만 난 이제 18살인 나이 많은 애다. 뭐 검술을 연습 안 했다는 건 아니지만 지금처럼 무기가 주먹밖에 없을 때는 그저 도망가는 게 최고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안 그래도 몇 일전 마을 경비병 중 한 명인 대장간 샘이 놀러 갔다가 랫맨들에게 죽을 뻔 한일이 있은 뒤론 마을외곽 랫맨의 거주지를 지나는 이 숲의 통행을 막아버렸다. 하지만 이 길로 가지 않으면 내 목적지까진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 머 어짜피 다른 길로 가는거 보다 더 많이 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저런 랫맨만 없다면 이 숲도 꽤 안전하다. 윽. 저 녀석들이 내가 물건을 던져도 안 오니깐 이젠 조그마한 칼을 던지는 거 같았다. 칼? 그거야말로 지금의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지. 나는 그 녀석들이 던진 칼을 줍기 위해 되돌아서서 엎어져가며 그 칼을 손에 쥐었다. 칼은 우리 인간들에게 빼앗은 칼인 듯 했다. 단순한 부쳐 나이프 (역주: 고기 자르는 칼)였다. 하지만 이렇게 조그마한 칼이라면 가벼워서 칼 놀림이 쉽고 빠르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이런 칼이 더 좋았다.
「헥헥..흥! 이젠 도망 안간다」
힘들어 죽겠다. 진짜 힘들게 뛰다가 쉬지 않고 말하니 죽을거 같이 힘들다. 하지만 저 녀석들도 마찬가지로 힘든가 보다. 계속 입에선 뜨거운 입김이 나오고있었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녀석도 있었으니깐. 나는 가방을 옆에 놓았다. 털썩 소리를 내며 가방이 떨어지자 랫맨은 모두 이 가방을 바라보았다. 저놈들은 굶어도 단단히 굶은 모양이다.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여차하면 나까지 잡아먹힐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 녀석들은 무언가를 죽일 만큼 용감하지 못하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도망치다가도 멈춰서 맞붙으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몬스터는 몬스터. 나는 부처 나이프를 오른손에 꼬나 쥐고 공중에 휘둘러보았다. 휙휙 거리며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랫맨들은 던진 칼을 내가 쥐자 그 칼을 던진 놈에게 머라고 하는 거 같았다. 참 어이없다. 적을 앞에 두고 저렇다니... 하지만 나는 그 광경을 보고있을 수밖에 없다. 더 이상 도망쳤다간 숨이 막혀 죽을 거 같았다. 그래서 그냥 싸움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4:1은 아무래도 무리다. 하지만 지금 저 녀석들은 이미 한참을 굶은 상태고 나 또한 나에겐 칼도 있다.
「에잇 덤벼라 쥐새끼 놈아」
내 말을 저놈들이 알아들을 리 없다. 하지만 대충 무슨 의도인지는 안거 같다. 나는 괜히 쓸때 없는 말을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윽.. 저놈들 중 한 놈이 나한테 나가왔다. 그놈 손엔 클럽Club 이 쥐여져 있었다. 저 클럽에 맞긴 싫다. 하지만 나는 느낌이 별로 인 칼질보다는 나무 몽둥이나 쇠몽둥이 류를 더욱 즐겨 사용한다.
「끼이이익!」
「그래 오너라」
드디어 한 놈이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저놈들의 의도로 보아 한놈은 싸우고 나머지 놈들이 이 가방을 들고 튈 모양이다. 하지만 난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일단 달려오는 랫맨을 내 탁월한 싸움실력을 발휘해 발을 걸어버렸다.
「끼긱」
랫맨은 내 발에 걸려 그대로 앞으로 굴러버렸다. 나는 그 와중에 놈의 클럽에 부처나이프를 박아 빼앗아 버렸다. 커다란 칼자국이 나버린 클럽이 랫맨의 손에서 떨어져 나의 왼손에 쥐어졌다. 머 앞의 3놈은 뒤따라 달려오다가 앞에 나간 놈이 쓰러지자 많이 놀란 모양이다. 더 이상 달려오지 않았으니깐. 나는 내 뒤로 엎어져 있는 랫맨의 머리를 클럽으로 갈겼다.
퍽 소리가 나더니 랫맨은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랫맨이 이렇게 쉽게 쓰러지다니..퍽 이나 굶은 모양이다. 나는 갑자기 자신감이 생겼다. 두 놈 정도 잡고 도망가버릴 생각 이였는데 이렇게 약한 놈들이니 다 때려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음흉한 눈빛을 랫맨에게 보냈고, 랫맨들은 다시 자신의 무기를 꼬나 쥐며 나의 눈빛을 받아드렸다. 어쭈? 한놈은 꽤 좋아 보이는 롱 스워드를 들고있었다. 무기에 대해 별 지식이 없는 내가 보기에도 저 롱 스워드는 좋아 보였다. 칼날은 좀 무디게 보였는데 손잡이 부분이 은으로 도금이 된거 같았다. 보통 칼날에 은도금을 하는데 손잡이에 해놓다니..아니 칼날 부분의 도금이 벗겨졌나? 에구 나도 안 되는가 보다. 적을 앞에 두고 잡생각을 하다니..랫맨 3마리가 동시에 달려오고 있었다. 한 놈은 은으로 도금된 롱 스워드를, 다른 한 놈은 이상한 나무막대기를 다른 한 놈은 맨손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사실 랫맨들은 인간의 옷을 빼앗아 입기 때문에 갑옷 등을 얻을 수 없다. 갑옷을 얻기 위해선 병사에게 빼앗아야 하는데, 아무리 별 볼일 없는 병사라도 랫맨에게 당할게 아니다.
웃! 바로 앞에 달려오던 한 랫맨이 어이없는 칼질을 나에게 해댔다.
「끼이끼익」
이놈들은 끼익끼익 거리는 거 밖에 못하나?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놈들이지?
내가 별 잡생각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가만히 서있어도 저놈이 허공에 칼질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가볍게 허공에 칼질하고 중심을 못잡던 그 랫맨에게 왼손에 쥐여진 클럽을 오른손이 옮겨지고 그대로 팔을 처 버렸다. 너무 쌔게 쳤나보다. 저놈의 얼굴을 보니 내가 다 눈물이 날거 같다. 그놈은 전사의 기본수칙도 모르는지 칼을 놓쳐버렸고, 나는 다시 쥐지 못하게 칼을 밟아버렸다. 뒤에서 뒤따라오던 무기 없는 쥐돌이(랫맨)은 칼을 주으러고 슬라이딩을 하다가 내가 칼을 밟아버리자 멍청하게 도망가지 않고 칼을 빼내려고 칼 손잡이 부분을 잡으려고 땅바닥에 손가락을 넣었다. 당연히 나는 '날 죽여주십시오' 하는 이 랫맨의 머리를 클럽으로 처 버렸다.
「이녀석들..정말 바보 아냐? 보아하니 사냥도 제대로 못하는 거 같은데..」
나는 이제 남아있는 한 마리의 랫맨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렇게 멍청한 놈들일 줄이야..
나는 남아있는 한 마리의 랫맨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도 모르는지 그저 눈이 휘둥그래 해져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왠지 그녀석이 불쌍해졌다.
「너는 이 녀석들을 끌고 너희 동네로 가라. 내 오늘 특별히 선심 써서 너를 놔준다」
저 녀석들의 마을이 있던 없던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마을로 돌아갈 생각밖에 나지않았다. 아~ 나의 우상 지크프리드여! 지금 이 모습을 보고있나이까? 나는 이렇게 멋진 청년이 되었나이다. 나의 영웅 지크프리드여!
나는 피네리 전쟁의 영웅 지크프리드에게 마음속으로 외쳤다. 그는 나에게 있어서 정신적 지주였다.
「끼긱..찌..끼..끽」
내가 마음속으로 지크프리드에게 지금의 일을 자랑하고 있는데 옆에서 잡소리가 들리다니! 나는 화가 나서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처다 보았다. 으아아악! 남아있는 한 마리의 랫맨이 나를 향해 나무막대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저 랫맨은 나를 보고 바보멍청이라고 하는 거 같았다. 그리고 머리가 깨질 거 같은 아픔을 느꼈고, 나는 기절해버렸다. 아니 그런 거 같다.
「이봐요! 이봐요! 눈 좀 떠봐요!..」
아앙..싫다. 난 그저 잠을 자고 싶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계속 나를 흔드는 바람에 나는 잠에서 깼다. 와락 신경질이 났다. 나는 목청 것 소리를 질렀다.
「이씨..왜 깨워? 잠 좀 자자」
나는 신경질을 내며 평소 침대에서 자던 버릇처럼 바닥을 강하게 내리쳤다. 으윽! 손이 부러 진거 같았다. 나는 눈물이 날거 같았다. 손을 부여잡고 웅크리고는 낑낑 신음소리를 냈다. 아니 소리도 안나왔다. 눈물이 찔끔나면서 눈이 좀 맑아졌다. 아!그래. 난 아까 쥐돌이 한테 맞았지?
손의 아픔이 가시자 나는 내 주위에 나말고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 숨소리말고 다른 숨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람을 보기 위해 주위를 돌아보았다.
「으해핵! 왜왜? 옷을 안 입고 있어요?」
나는 질겁했다. 그곳에는 한 여성이 있었는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런 상태로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놀라서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나 역시 옷을 안 입고 있다는 것을 안 것은 3초 정도 뒤의 일 이였다.
난 놀라서 뒤돌아 섰다. 아이구.. 팽창한다. 이런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줘선 안 돼!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들었고, 나는 뒤돌아 선 채 그 여성을 안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이 어딘지도 몰랐다. 내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푸라기로 지붕을 만들었고, 감옥인 듯 나무막대기로 나를 감금 시켜놓았다. 아 나 혼자만 아니지..아무튼 조그마한 지푸라기 집안에 감옥을 만든 듯 했다. 이미 밤인 듯 주위는 어두웠지만 눈앞에 장작이 타고 있었다. 으윽 저 불이 이 나무와 지푸라기에 닿는 날이면..난 홀딱 벗은 체 불에 타죽겠군..
「끼긱..끼..」
「끼끼끼끼낑..」
집밖에서 쥐돌이 들의 소리가 들렸지만 그냥 지나갔다. 아..아까 쥐돌이 한놈 에게 맞아서 그대로 뻗었고..그 뒤는....모르겠군..
「저기요..」
뒤에서 그 여성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살살 가라앉은 그것이 또다시 불끈거릴 줄 몰랐지만 일단 대답은 해야한다.
「네..?」
「저기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참 쓸 때 없는 거 물어본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맞아서 들어왔다고 하면 쪽팔린다.
「클립스 마을을 지나던 중 30마리 정도의 랫맨에게 습격을 받았습니다. 반 이상은 해치웠지만 끝내 잡히고 말았죠.」
「네?...아예..그래도 대단하신 분이시군요..」
내가 생각해도 그런 인물은 확실히 대단한 인물이다. 누가 랫맨 30마리와 싸워서 반 이상을 해치우겠는가? 나는 갑자기 나의 거짓말이 흐뭇해 졌다. 그러고 보니 저 여성에 대해서도 아직 모른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쪽은 어떻게 잡혀오셨어요?」
「전 노예 에요. 한 귀족의 집에 팔려가던 중 습격을 받았는데..저를 제외한 나머지 상인과 남자 노예는 다 죽여 버리더군요. 그런데 저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구요..그리고 여기에 당신이 누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쥐인간들이 저의 옷을 모두 빼앗아 가버리더군요.. 」
사람을 죽여? 그거 참 이상한 일이네...랫맨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거의 없는데..그럴만한 힘도 없을 껀데..알 수 없는 노릇이군..궁금한데? 한번 물어봐야지..
「습격한 랫맨의 수는 몇이죠? 대충.」
「얼마 되지 않았어요..한 5마리 정도?..」
「그럼 그쪽 수 는요?」
그녀는 곰곰이 생각하는 듯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5마리 정도의 랫맨이 어떻게 사람을 죽일수 있었는지가 궁금했다. 분명 나를 습격한 놈들은 4마리였는데..
「우리들은 상인이 한 명, 호위부대가 10명 정도..노예가 6명 이였어요」
그말은 나에게 충격을 주기 충분했다.
2.
그럴 수가.. 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나는 분명히 4마리의 랫맨중 3마리를 쓰러트렸다. 그런데 들어보면 5마리 정도의 랫맨이 16명을 쓰러뜨렸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한 마리 당 5명이 달라붙어 싸웠다는 건데..혹시 내가 워낙 강해서 그 랫맨들을 해치운 것일까? 나의 이런 생각은 곧 지워졌다. 왜냐하면 난 우리 마을에서도 그다지 싸움을 못하는 쪽이기 때문이다. 선천적으로 먹어도 별로 살이 찌지 않고 힘든 일을 계속 해도 근력이 강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내가 강하지 않다는 게 입증되었다. 그리고 그 10명의 호위병들이 아무리 약하다고 해도 나보다는 강할 것이다. 정말 랫맨이 그렇게 강한 놈들 이였던가? 나는 혼란이 빠졌다.
「저기..왜 그러세요?」
「네? 아..아니에요」
잠시 딴 생각을 하느라고 깜빡했다. 지금 이 나무감옥 안에는 홀랑 벗은 여자와 더불어 자신도 홀랑 벗은 체 있다는 것을...
지금 나의 머릿속은 매우 복잡하다. 어쩌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허나 지금쯤이면 마을에서도 내가 사라진 것을 알아차리고 마을 병사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올지도 모른다.
-타닥 타닥-
「응? 윽..불이 꺼지고 있잖아..」
어느새 눈앞의 장작이 모두 타버렸다. 안 그래도 추운데 불까지 꺼져 버린다면 얼어죽을지도 모른다. 으..점점 어두워지고 있군..
나는 뒤에 있는 그 여자를 힐끔 처다 보았다. 분명 떨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녀만 떨고있는 게 아니다. 나도 떨고 있었다. 점점 추워졌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하지? 아, 그래! 어른들은 이런 상황이 오면 서로 안고 자라고 했지? 서로의 체온으로 몸을 따뜻하게 한다고.. 하지만 어떻게?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찌..끼..끽」
「무슨 소리지?」
내가 생각에 빠졌을 때 랫맨 한 마리가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놈은 바람을 막기 위해 설치해둔 바람막이를 치우고 우리의 창살 사이로 이불 비슷한 것을 던져 주었다. 만져보니 우리들이 쓰는 이불 이였다. 분명 인간에게 빼앗은 것이다. 하지만 이거라도 던져 주니 그거 얼마나 고마운가? 나는 잠시 미쳤는지 그 쥐돌이에게 구원자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 이불은 상당히 얇았고 또 크기도 작았다. 마치 7살짜리 꼬마의 여름용 이불인 거 같았다. 그 쥐돌이는 이상한 말을 지껄이더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미 불은 꺼져 있었다.
「저 이 이불 덮을까요?」
나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나는 여자에게 이불을 다 줘버릴 기사도 정신쯤은 있다. 하지만 워낙 추웠기에 그냥 같이 덮자고 했다. 그녀는 나의 제의를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수락했다.
「네! 정말 고마워요」
「아닙니다. 그럼 이 이불을 먼저 덮으시죠.」
나는 그녀에게 이불을 던져주었다. 그리고 그 쪽으로 기어갔다. 응? 바닥의 촉감이 달라졌다. 내가 방금 전까지 있던 곳은 돌로 된 곳 이여서 매우 차가웠는데 이 여자가 있던 곳은 바닥이 가죽으로 덮여 있었다. 나는 화가 났다. 가죽이 깔려있었다면 미리 말을 했어야지..
「...화가 나셨나요?」
「네? 아니요. 아니요. 화가 났긴요..」
귀도 밝다. 그냥 궁시렁 거린거 밖에 없는데.. 그녀는 내가 던진 이불로 자신의 하반신을 가린 체 앉아있었다. 이불이 워낙 작다본 그 정도만 가려도 이미 반 이상을 차지해 버렸다. 나는 꼼지락꼼지락 거리며 이불 주위에 있었다.
「여기 이불 속으로 오세요. 일단 발은 얼면 안 되니깐요. 자 여기로..」
이렇게 보니 참 친절하다. 그녀는 나의 팔을 잡고는 자신의 옆으로 끌었다. 그리고는 이불을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그 이불을 이용해 나의 하반신 쪽을 덮고 다리를 쭉 폈다. 등뒤에는 이상한 천으로 되어있었기에 나는 안심하고 기댈 수 있었다. 하지만 어둠 속이라도 그녀의 가슴이 안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부끄러워서 얼른 얼굴을 돌렸다. 도저히 그녀 쪽을 바라볼 수 없었다.
「저기..나이가 몇이시죠?」
그녀는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떨쳐 내기 위해 선지 나이게 마을 걸었다.
「전..18살이에요..아래 클립스 마을에 살고요...이름은 지크프리드라고 합니다. 취미는 쇼핑 하기 이구요..특기는 바느질이에요..」
이거 참..내가 미쳤나 보다. 너무 긴장해서 그런지 필요이상으로 쓸대 없는 말을 해버렸다. 지크프리드? 내가 갈때까지 갔나보다..이젠 이름이 생각이 안난다..대충 지크프리드 라고 해두지머. 아~ 나의 영웅 지크프리드시어 당신의 이름을 빌립니다. 허락해 주시옵서서..
「지크프리드요?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네요.. 유명하신가 봐요?..아..저는 18살이에요.」
그녀는 쪼금 얼떨떨한 투로 말했다. 나이가 나랑같구만..응? 나이만 말하네? 이름은 멀까?
「이름은 없나요?」
「네..저는 이름이 없어요..」
그녀는 그런 말을 하고는 그대로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쓸 때 없는 말을 한 거 같은 후회가 밀려왔다. 잘못 짚었어도 한참 잘못짚어버렸어.
「원래 노예는 이름이 없어요. 모두 저를 부를 때는 이년 저년 이렇게 부르니깐요.」
「그래요? 그럼 제가 이름하나 지어드릴까요? 블루벨 어때요?」
나는 아까의 말실수도 수습할 겸 농담 삼아 말했다. 다행히도 이 말은 성공 한 거 같았다. 그녀가 웃었기 때문이다.
「블루벨? 아하하하~ 재미있네~ 블루벨이라..」
「그럼 우리 나이 같으니깐 반말해도 되지? 응? 벨?」
나는 평소 친구를 사귀는 거처럼 그녀에게 대했다. 역시나 그녀도 나와 같은 나이또래의 친구일 뿐 이였다. 하지만 그녀는 말을 놓자는 나의 제안에 매우 놀란 거 같았다.
「하지만..난 반말을 사용해 본적이 없어요. 반말을 사용했다간 몇 일간 밥을 안 준다구요..」
나는 그 말에 굉장한 분노를 느꼈다. 밥을 안 주다니. 그게 얼만 큰 고통인데..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는 다시 그녀에게 말했다. 하지만 얼굴을 계속 돌려있었더니 목이 굉장히 아팠다.
「아무튼 지금은 우리 둘밖에 없으니깐 말놓자」
「...그래도 돼?」
「내가 부탁하는 거야! 네가 허락하는 입장 이구.」
난 이미 반말을 써버렸다. 머 이렇게 하다보면 자연히 상대방도 반말을 쓰기 마련이다. 역시나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난 이렇게 말솜씨가 좋은데도 왜 여자친구 하나 없지?
「그럼 반말 쓴다.」
그녀는 마치 무언가를 알리듯 말했다.
「으..근데 춥다. 그렇지?」
「응!」
그녀는 반말을 쓴다는 게 매우 기쁜 듯 말했다. 하지만 매우 추운 듯 달달 떠는 게 이불을 통해 느껴졌다. 사실 나도 떨고있었지만 그녀는 좀 심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떨고 있었다. 그녀는 매우 추운 듯 나에게 한가지 제안을 했다.
「저기..추울 때일수록 서로 붙어서 서로의 체온으로 버텨야 하거든? 그러니깐 좀 붙자」
「뭐,,머?」
블루 벨은 부끄러운지도 모르는 모양이다. 나는 그 말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런 대담한 말을 하다니...분명 붙어야 하는 건 맞지만..그건 너무 부끄러운 일이잖아..나는 아직 여자 손도 못 잡아본 그런 순 진 무구한 청년인데..
블루 벨은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나에게 착 붙었다. 으허헉 그녀의 다리가 나의 다리에 붙자 나는 대경 질색을 했다. 하지만 분명 그 붙은 부분은 따뜻했다. 하지만 서로 벌거벗은 상태에서 서로 밀착하자 나의 그것은 다시 팽창하기 시작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그것을 가라앉히려 했다. 그때 그녀가 갑자기 나에게 말했다.
「난..내 나이또래의 사람은 처음 봐..」
그녀는 떨면서 말했다. 그래서 목소리 또한 떨렸다.
「왜? 네가 사는 마을에는 같은 나이또래가 없어?」
나는 당황하지 않고 말하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아니. 난 노예야. 그것도 노예 중에서도 제일 천한 노예. 넌 머리카락 노예라고 들어봤니?」
「아니. 그게 먼데?」
그녀는 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 또한 그 한숨을 듣고있자니 한숨이 나왔다.
「머리카락 노예는 머리카락이 아름다운노예들이야. 귀족들은 그런 머리카락을 잘라서 자신의 머리에 붙이지...나 역시 이때까지 한 귀족집안에게 머리카락을 짤 릴 운명 이였어. 하지만 그곳으로 가는 도중 이렇게 잡힌 거지..」
「그런데..왜 우리 나이 또래의 아이들을 못 만난 거야?」
「그거야. 내가 5년 간 집안에서만 있었기 때문이야. 머리카락 노예는 집밖을 나가면 안 돼. 오직 집안에서나 한 집에 딸린 정원만을 다닐 수 있지. 항상 감시원들이 따라다녀.」
나는 그 말에 아까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다.
3.
「음..음...」
어느새 블루벨은 나의 어깨에 기댄 체 자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의 과거 일을 나에게 말해주었다. 그 와중에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과거가 매우 비참했기 때문 이였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주먹이 불끈 쥐여졌다. 지금 나의 어깨에 기대고 새근새근 자고있는 그녀를 보노라면 한없이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어렸을 적 어머니를 여위었고 아버지란 사람은 항상 왕궁에만 틀어박혀 몇 달에 한번씩 생활비만을 보내주었다. 하지만 난 아버지가 자랑스럽지 않았다. 그 아버지의 얼굴은 몇 년에 한번씩 보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나 자신의 삶이 매우 불행하다고 느끼며 살았다. 집이라는 곳도 아늑함이 느껴지지 않고 차가운 기운만 감도는 마치 남의 집 같은 느낌이 들었기에 나는 점점 사는 게 힘들어 졌다. 외로움과 고독감..그 모든 것이 나를 괴롭혔다..하지만 블루벨의 인생을 들어보니 나의 삶은 비교적 행복한 것 같았다. 그런 블루벨이 점점 더 불쌍하게 느껴졌고, 나 자신의 모습에 점점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큭...나는...바보인가..소심쟁이 인가..」
점점 추위가 가시는걸 느꼈다. 머 몸을 맞대고 있으니 따뜻해지는 건 당연한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점점 따뜻해져 왔다. 하지만 나는 얼른 그런 생각을 떨쳐버렸다. 그것보다도 더 시급한 문제. 이곳에서 탈출하는 방법 이였다. 정말 생각이 나지 않는다. 도저히..어떻게 이런 곳을 탈출할지.. 마을에서 나를 찾을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날 찾기는 힘들 것 같다. 머 우리마을 이라고 해봤자 기껏해야 높은 신분의 귀족에게 빌빌거리는 영주 때문에 살기가 쉽지가 않다. 덕분에 실종자가 나타나거나 하면 마을사람끼리 단합해서 찾기 마련인데..이런 산골짜기까지 찾아올까? 아니 이런 밤중에 찾아올까? 에이..모르겠다. 단지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은 이곳이 깊은 산 속만은 아니길 바라는 것이다..으..점점 졸음이 밀려온다..이렇게 자버리면..안 되는데..못 참겠다. 잠깐만 자고 다시 생각해야겠다.
「우하함..조금만 자야지」
「저기 지크프리드! 지크프리드! 빨리 일어나 봐. 큰일났어」
또 저런다. 죽겠다 죽겠어. 난 혼자 살아서 누가 깨우는 건 익숙하지 않단 말야!! 좀더 자고싶다고..
「잠시만 일어나 봐. 지금 난리가 났다구」
「에이..무슨 일인데?..응..? 왜이리 밝아..?」
「지금 이미 낮이라구.」
「뭐?」
미치겠다. 잠시만 잔다는 게 반나절은 잔 거 같다. 정신도 하나도 없다. 아우..계속 잠이 오는데..자고싶어 미치겠네..
「끼긱끼아끼」
「응? 무슨 소리야? 」
「지금 무언가가 이곳으로 처 들어 왔어! 그런데..사람인 거 같아. 아까 '죽여'라는 말을 여러번 들었거든」
「그래? 휴..다행이다. 살수도 있겠네」
휴...운명의 여신은 내편인가 보다. 그래도 18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하지 않는 것을 보니 말이다. 블루벨도 안심한 듯 긴장한 얼굴이 풀어졌다. 그런데 블루벨은 이곳에서 나가면 어디로 갈까?
「블루벨. 근데 말야 너 이곳에서 나가면 어디로 갈 거야?」
나의 이런 질문에 블루벨은 적잖이 당황한 듯 했다. 보아하니 이제야 앞으로 살일이 걱정되는가 보다.
「모르겠어..어쩌면 저번에 있던 곳으로 돌아갈지도 모르고..안되면..아무 곳이나 살아야지..」
그녀의 그말을 들으니 측은해졌다. 그래. 그녀를 내 집에서 살게 하는 거다!
「저기 블루벨. 너 내 집에서 안 살래? 내 집은 아무도 없어. 나 혼자 산다구」
「..정말? 그래도 돼?」
「응? 으응」
그녀의 태도를 보니 저번에 있던 곳은 어지간히 가기 싫었나 보다. 내가 그 말을 하기만을 바란거 같은데..그런데 그렇게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머 어짜피 우리집은 나 혼자살기에는 너무 커서 문제지만..
「고마워. 저번 그곳으로 돌아가면 어쩌나 하고 생각했는데..정말 고마워」
「아냐아냐! 나야말로 몇 년동안 혼자살아서 외로웠는데 오히려 잘됬지머」
「헤헤..」
아무래도 블루벨은 사람을 너무 잘 믿는 거 같다. 내가 밤에 덮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구 저러는지..원..응? 무슨 소리지?
「이봐요! 사람 있으면 대답해봐요!」
갑자기 저 멀리서 저런 소리가 들린다. 이야! 사람소리다. 나는 이때다 하고 고함을 질렀다. 덩달아 블루벨도 소리쳤다.
「여기 에요. 여기! 이상한 움집이에요.」
내가 소리치자 블루벨도 신이 나서 소리쳤다.
「여기 두 사람이에요. 빨리 좀 와주세요」
갑자기 발소리가 가까이 들렸다. 그 발자국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의 가슴속에는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런데 발자국 소리를 들어보니 한두사람이 아니였다.
「저기..지크프리드..그런데 발자국 소리가 너무 많은거 아냐?」
블루벨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눈치였다. 하긴 저 소리들은 내가 듣기도 이상했다. 마치 맨발로 흙바닥을 뛰는듯한 소리..맨발? 그럼..저건..
「지크프리드..머야? 왜 그래?」
갑자기 발소리가 우리들의 움집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는 시커먼 무언가가 문을 걷어 해치고 안으로 들어왔다
「끼이익」
역시나..내 예상과 같이 저 소리의 주인은 우리가 애타게 기다리던 사람이 아니라 랫맨들 이였다. 참 어이없다. 우리를 구해주러 온 사람들은 어디로 가버린 거지? 참으로 환장할 노릇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랫맨의 상태가 이상했다. 숨이 가쁜지 입에선 하얀 입김이 나오고 있었고, 털들은 시커멓게 타 있었다. 무엇보다도 오른쪽 팔이 하나가 잘려있었고, 그 부분에서 붉은 피가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왼팔에는 조그마한 손도끼가 들려있었다.
「끼아아악」
블루벨은 그 랫맨의 상태를 보고는 기절해 버렸다. 거참 이런 상황에서 기절해 버리면 난 어쩔수 없다구..
「끼이익..」
갑자기 랫맨은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더니 도끼로 감옥의 나무창살을 잘라버렸다. 단 한번에 5개의 창살을 자르자 그의 오른팔에선 붉은 피가 날라 와 이불을 붉게 적셨다. 나는 침착해지려고 나의 다리살을 강하게 꼬집었다. 아픔이 밀려왔지만 몸의 떨림은 낮아졌다. 하지만 내가 침착해지는 것과는 별개로 랫맨은 도끼를 들어 나에게 던지려고 왼팔을 높게 들었다. 이상황에서 침착만 해지면 어쩌 자는거야!!
「탕」
「으아아아아아」
나는 비명을 안지를수 없었다. 점점 의식이 흐려오는것도 참을수 없었다. 나의 왼쪽어깨를 타고 내려오는 그 뜨거운 무언가를 확인할 힘도 없었다. 단지 내가 마지막에 들은 것은 한 종이 찢어지는 소리와 한 남자의 굵은 외침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