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갑자기 큰 소리로 나를 불렀다. 가서 화면을 보니 내 폴더 하나가 열려 있었다.
"언니, 이거 신혜인 아냐?"
"어, 맞아."
"언니, 얼짱 같은 거 싫다며."
나는 동생이 방에서 나갔을 때 슬그머니 그 폴더를 드래그해서 휴지통에 버렸다.
그 날은 개교기념일이었다. 놀러나간다고 말하면 허구헌 날 놀기만 한다고 혼날 것이 뻔하니, 학교에 가는 척 하고 교복을 입고 집을 나섰다. 꼭 땡땡이 치는 기분이었다. 그 날은 친구와 장충체육관에서 고교 농구를 보기로 약속했던 날이었다. 사실 본 목적은 농구계의 명문이라는 휘문고의 경기를 보기 위해서였다. 할 일이 없어서 일찌감치 중학교 경기부터 다 보는데, 내 뒤쪽으로 여자 고교 농구에서는 강팀이라는 숙명여고 농구팀이 들어왔다. 선수들이 나를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보는 것처럼 느껴져서 고개를 들 수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간에 장충체육관에 있을만한 사람은 할 일없는 노인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교복을 입고 앉아 있으니 어떻게 보였겠는가.
다음 경기는 숙명여고와 온양여고의 여자 농구 결승전이었다. 아까 그 선수들이 우르르 코트 위로 몰려나왔다. 숙명여고의 8번은 유난히 눈에 띄었다. 사실 예쁘기도 했지만 굉장한 속도와 돌파력이었다. 온양여고 애들이 전체적으로 낮기도 했지만 185cm의 키로 맹렬히 달려 나가 10초 안에 득점으로 연결시키는 모습에 굉장히 감동했다. 하지만 3쿼터가 지나자 그 선수는 조금씩 처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역시 다른 선수들 보다 빨랐다.
집에 와서 인터넷으로 한참 검색해서 나는 그 선수의 이름과 프로필을 찾아냈다. 유명한 여자 농구선수와 배구 감독의 딸이라는 것도 알았다. 자주 보는 농구잡지에 그 선수가 나온 기사를 스크랩 해두고, 팬카페도 가입했다. 팬카페 인원은 102명이었다. 그 선수는 드래프트 1순위 예정자였다. 돌파력과 득점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농구 팬으로서 그 선수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다. 지구력과 체급에서 밀린다는 걸 분석하고 좀 더 지구력을 키우는 훈련이 필요할 거라는 팬레터를 카페 게시판에 올리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최고의 남자 얼짱과 여자 얼짱' 투표 다음으로 '최고의 스포츠 얼짱' 이라는 투표를 한 메이저 포털 사이트에서 시작했다. 좋아하는, 잘생긴 농구선수들을 몇 떠올리면서 클릭했는데 1위에 떡하니 붙어 있는 것은 숙명여고 에이스, 그 선수였다. 프로도 아니고 아마, 그것도 고교 아마인 그 선수가 말이다. 팬카페 인원은 순식간에 만 명을 훌쩍 넘었다.
얼마 전 농구 잡지에 <얼짱 신혜인 화보집>이라는 문구가 붙었다. 나는 정말 울고 싶어졌다. 그 선수는 얼짱이 되고 드래프트 4순위로 밀려났다. "예쁘다는 것 보다는 농구 잘하는 선수로 인정 받고 싶어요" 라는 문구 위에 붙은 사진은 곱게 화장하고 예쁜 웃음을 지은 사진이었다. 그 손에는 농구공이 없었다.
나는 S.혜인 폴더를 휴지통에 버렸다가 한참 후에 복원했다.
뭐, 예쁘면 좋을 것이다. 기왕이면 다홍치마, 예쁜 것이 좋고, 예쁘면 받는 이익도 많다. 그렇지만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받는 주목은 어느 정도 지속될 것이며, 또 얼마나 의미를 가질 것인가. 드래프트 1순위였던 정미란은 '얼장' 신혜인의 스포트라이트 뒤에 완전히 가려져서 그 어떤 언론도 언급하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신혜인은 농구 선수다. 예쁜 옷을 입고 예쁜 웃음을 짓는 인형이나 마네킹이 아니었다.
얼짱 가수, 바이올렛이라는 그룹이 데뷔한다는 뉴스를 보았다. 인터뷰에 나온 한 명은 "예쁘니까, 솔직히 남자선생님들이 잘 해주세요. 실수해도 금방 봐주고요." 라고 말했다. 신혜인 선수가 앞으로 농구선수로 활약하는 모습을 기대해 보고 싶지만, 여전히 방송과 신문에서 떠들어대는 '얼짱 신혜인'에 대해 걱정스러운 마음이다. 오늘 본 <I love 신혜인> 카페 인원수는 28465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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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은 오늘 쓴 수필입니다 ㅍ_ㅍ
아무래도 www.hoochoo.com에 올리면 어울렸을만한 칼럼(...)스럽군요;
그래도 저 스포츠 얼짱에 맺힌 한이 많아서…… (뷁)
사랑하는 언니는 농구계의 신데렐라, 미녀 샛별.
그 단어가 자랑스러웠던 때도 있었는데,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엉엉
가장 연애하고 싶은 농구선수 1위였는데 엉엉엉
다음 얼짱 투표따위 죽어버려어어어어어어
첫댓글 신혜인선수라면 히메쨩홈에 있는 혜인이언니♥ 란 글의 훤칠하고 호리한 그분?
왠지 얼짱이니하며 외모만 중시되어가는 것만같은 요새는 겉이 아닌 내면.. , 실력..등의 ..처음엔 보이지 않는 부분을 알기란 어려워지는것같아요~ 알려고하는사람도 있는가싶고.. 외모만 중시되어가는 요즘이 왠지 다가올 미래를 두렵게 하네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