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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참빛동네(광주에스라성서원) 원문보기 글쓴이: 김명주
빌립보서를 두번째 대하설교 마치고서
주님 안에서 문안 드립니다.
광주 참빛교회 김명주목사입니다.
저는 현재 주일낮예배 때에 빌립보서를 두 번째 대하설교 하였습니다.
2015년 4월 12일 빌립보서 4장을 설교하였습니다.
이전에 보았던 빌립보서와 이번 두 번째 살피면서 설교할 때 전에 보지못했던 빌립보서의 내용이 있었고 고려하지 못했던 배경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대하고 빌립보서를 대하실 분들에게 바르게 이해하고 읽을 수 있는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씁니다.
1. 빌립보서의 저작 배경
빌립보서는 바울이 로마에 2년간 연금되어 있을 때 쓰여집니다.
특히 빌립보서에서는 바울이 연금되어 있는 장소를 짐작할 수 있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빌 1:13
이러므로 나의 메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났으니
여기서 모든 시위대 안이라는 표현에서 시위대라는 헬라어 단어는 사령부막사, 친위대의 병영 이런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연금되어 있는 곳은 당시 로마시에서 군 부대가 위치해 있는 곳으로 군용 막사 근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과 사도행전 28장의 내용을 연결해서 짐작해 보면 바울은 로마시에 있는 친위대(개역개정판에서는 시위대라 번역)의 병영 근처에 있는 어떤 집을 세를 내어 거주했고 밖으로 외출은 불가했지만 오는 손님은 다 만날 수 있었고 그곳에서 담대히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전했을 것입니다.
이 시위대 근처에서 바울이 2년간 있었다는 것은 빌립보서를 이해하는 데 한가지 이해의 배경을 제공합니다.
빌립보라는 도시는 로마에서 인정한 자유민의 도시로서 특히나 로마를 위해 평생 군인으로 일하다가 은퇴한 퇴역군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습니다.
그 퇴역군인들은 자주장사 루디아가 그곳에서 고급 의류를 판매했다는 것에서 짐작해 보기는 경제적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로마를 위해 평생 봉사한 것의 댓가로 로마시민권과 경제적 부를 누리는 로마로 보아서는 특권층이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로마의 소식을 가장 빠르게 접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고 특히나 로마의 군 부대 소식이나 정치 소식에 민감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의 시위대 안팎의 소식은 빠르게 빌립보에 알려졌을 것이고 그 가운데 바울의 소식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봅니다.
이런 빌립보 사람들 중에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나타났는데 그런 사람들의 가족 중에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맨 처음 빌립보 교회는 루디아와 감옥의 간수의 가족으로 출발하지만 시간이 지나서는 빌립보의 퇴역군인들이 주도하는 교회가 되었고 빌립보서를 쓸 당시에는 성도가 상당히 많이 모이는 교회가 되어서 감독들과 집사들이 섬기는 교회가 되었다고 봅니다.(빌1:1)
그리고 이러한 퇴역군인 가족이 빌립보 교회 성도인 까닭에 바울은 빌립보서 안에 군 부대와 관련된 소식(1:13)이나 로마의 황제 가문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소식을 빌립보서 안에 일부러 담았다고 보여집니다.(4:22)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이 때 빌립보교회가 결코 평안한 교회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다툼이 있어서 안식 후 첫날 모이고 에바브로디도의 지도를 받고 있지만 성도 간의 인간 관계는 회복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서로 만나도 기쁨이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교회 상황을 바울은 로마를 방문한 에바브로디도를 통해서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로마 연금되어 있는 동안 교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해서 쓴 편지가 빌립보서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빌립보서는 바울이 로마 연금 당시에 쓴 교정서신입니다.
빌립보서에는 바울이 교회의 상황을 개선시켜보고자 해서 반복적으로 사용한 단어가 보이고 화목한 교회가 되기를 바라며 한 권면이 일관되게 등장합니다.
우리가 믿기는 이러할 때 바울의 편지에 감동하신 분은 성령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빌립보서에는 혹 성도 간의 인간 관계가 불협화음이 나서 서먹서먹한 교회에게 하나님께서 바라시고 권하시는 음성이 담겨 있습니다.
이를 알아듣는 것이 빌립보서를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원목적을 우리가 감각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2. 빌립보서에서 교회의 화목을 깨뜨리는 이들
초기 기독교의 상황을 이야기할 때 특히 바울을 이야기할 때는 상대적 입장에 있는 할례파를 염두어 두여야 합니다.
바울서신에는 바울이 개척한 이방인 교회들에게 찾아가 바울을 비난하고 다른 복음 즉 할례파 복음을 전하고자 했던 할례파 유대인들이 등장합니다.
심지어 바울이 맨처음 개척할 당시에는 유대인들이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빌립보에도 바울이 로마에 연금되어 있을 당시에 할례파가 손을 뻗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빌립보서 1장에서 바울에게 해를 가할 목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나타납니다.(빌1:15-17) 그리고 2장의 자기의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않는 자들도 이들일 가능성이 있습니다.(빌2:21) 또한 3장에서 바울은 이들을 개 행악자 몸을 상해하는 자(손할례당 : 개역)로 비난하며, 바울 일행이야말로 진정한 할례파이고, 자기도 육체적으로 정통파 유대인이라는 말로 빌립보 교회 분란과 관련된 자들로 할례파를 언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빌3:2-6) 심지어 이들에 대해서 바울은 멸망 받을 자이고 섬기는 신이 다르며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이라고 공격합니다.(빌3:18-19)
이로 보아서 빌립보 교회의 다툼에 할례파 유대인들이 관여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입니다.
짐작해 보건대 할례파 유대인과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 간에는 공통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퇴역 군인들이 중심을 이루었을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로마시민권을 가진 자라는 자랑과 로마에 미칠 수 있는 정치적 영향력 등으로 특권의식이 있는 이들이 제법 있었을 것입니다.
퇴역 군인이다보니 그래도 나름 성공한 인생의 노년을 보내고 있고 또 그런 가문 출신 사람이기에 다른 로마인보다 더 성공한 사람이라는 자부심도 있었을 것입니다.
할례파 유대인들도 나름 특권 의식이 있는 자들입니다.
자기들은 이방 죄인이 아니라 혈통적으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민족이라는 의식이 분명했을 것이고 이방인들은 유대인이 되어야 즉 할례를 받고 유대인의 율법을 다 지켜야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믿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에 사로 잡혔던 이들이었습니다.
이런 빌립보 교회 성도들과 할례파 유대인들은 ‘나는 특별하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 이런 의식에 있어서 공감대를 이루고 협력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니면 그런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예수 믿기 전의 특권 의식을 할례파 유대인들이 부추겨서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다툼이 일어났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바울의 가장 오랜 후원 교회인 빌립보 교회를 다툼으로 몰고간 이들 가운데 할례파 유대인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다툼의 원인이 된 생각들은 허영심이었고 내가 남보다 낫다는 우월의식이었습니다.(빌 2:3-4)
3. 화목을 바라며 쓴 빌립보서
① 기쁨 혹은 기뻐하라
바울은 빌립보서를 쓰면서 기쁨 혹은 기뻐하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자주 사용합니다.(18회)
이는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기쁨이 가득하기를 바래서 쓴 것일 겁니다.
거꾸로 말하면 주님 안에서 함께 예배하고 몸을 이루어가는 기쁨을 잃어버린 교회가 빌립보교회였다는 말이 됩니다.
이런 반복되는 단어에서 교회에 기쁨이 회복되어 충만하기를 바란 글쓴이의 마음을 읽고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감동하신 성령님의 소원 또한 주님의 교회가 진정한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라고 우리는 빌립보서에서 읽어내야 합니다.
빌립보서는 교회가 본래 기쁨을 회복하라는 교정서신입니다.
그 처방은 무엇보다 교회의 화목입니다.
화목을 이룬 자리에서 솟아나는 생수가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를 읽는 우리는 그 화목을 위해 바울이 가르치고 있는 진정한 기쁨의 근원들과 소식들을 통해서 오늘 우리 교회에서 이러한 기쁨이 충만한지를 확인해 보아야할 것입니다.
② 1장 화목을 위한 공감대
교회의 화목을 깨뜨리는 공감대가 있고 화목하게 하는 공감대가 있습니다.
할례파와 통하는 이들은 나는 특별하고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공감대가 이루어진 이들입니다.
이런 잘못된 공감대가 교회 안에 존재하는 한 빌립보교회는 화목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와 자기 사이에 형성된 공감대를 기억하게 합니다.
그것은 복음을 위해 힘써 일한 동역자라는 것과 복음을 위해서 기꺼이 고난을 감수하며 이러한 일을 하다가 복음이 전파된다는 것 때문에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공감대가 다시 교회 안에 형성되어져서 복음을 위해 함께 일하고 사랑하는 화목한 사이가 되기를 바울은 기대한 것입니다.
③ 2장 화목을 위한 마음가짐과 기쁨 3종 세트
화목이라는 말은 서로 간에 형성되는 평안을 말합니다.
그러한 인간 관계에서 ‘내가 너보다 낫다’ ‘내가 너보다 잘해’ 하는 의식은 평안이 아닌 다툼과 분리를 가져옵니다.
바울은 이러한 마음가짐 때문에 함께 예배하고 주님 안에서 서로를 위한다고 하면서 다투고 있는 빌립보 교회에게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권합니다.
예수님은 높은 분이지만 동등이 아니라 기꺼이 낮아지셨습니다.
그리고 주인이 아닌 섬기는 종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이러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품었다면 교회는 다투지 않고 도리어 화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해하여 그 뜻에 합한 삶을 두렵고 떨림으로 살아가는 구원을 이루어가는 삶을 살라고 바울은 권합니다.
구원을 이루어가는 하루로서 주어진 나날을 다툼 등으로 허비하지 말고 세상에서 주님의 말씀을 밝히는 발광체들로 사는 그 삶을 위해서 바울은 자신이 전제처럼 다 부어진다고해도 기뻐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교회로 회복되기를 바라며 바울은 먼저 그 동안 병들어서 죽게되었다는 소식까지 들렸다가 건강을 회복한 에바브로디도를 빌립보서와 함께 보내고, 그 다음 재판의 일을 지켜보다가 디모데를 보내고, 로마의 재판이 완결되면 바울이 빌립보를 방문하겠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위해 반가운 만남 세 번을 준비해서 이것이 또한 빌립보교회의 화목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이 준비한 세 번의 반가운 만남을 저는 기쁨 3종 세트라고 말합니다.
④ 3장 화목을 위한 근원의 샘 부활의 소망
바울은 문제가 있는 교회에 교정하기 위하여 편지를 보낼 때 첫째 문제 파악 둘째 성경적 입장 셋째 해법 제안 등의 형식으로 편지를 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에서도 그러한 형식이 드러나는데 2장에서 제시한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는 권면과 3장의 교회의 진정한 기쁨은 부활의 소망이라는 주제가 그러합니다.
빌립보서 3장에서는 먼저 교회에 분란을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이들을 경계하는 것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들은 할례파인데 이들은 육체적 자랑이 충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이들의 끝은 멸망이고 그들의 영광(자랑)은 부끄러운 것에 불과하고 그들은 심지어 우상숭배자(배를 신으로 삼는 자들)이라고 바울은 맹비난합니다.(빌3:18-19)
그리고 바울은 자기도 정통파 유대인으로서 육체적 자랑거리가 있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까 그런 것은 해가 되고 똥에 불과하더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당시 퇴역군인들이 중심이었을 빌립보 사람들이 평생 추구했던 것과 부활을 비교합니다.
빌립보에 있는 퇴역군인들의 평생 목표인 푯대는 로마시민권이었을 것이고 그들은 그것을 드디어 잡았다 라고 하는 자부심이 있는 이들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의 이야기에 근거해서 추론해 보면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평생 추구한 것은 부활의 소망에 비하면 똥에 불과한 것입니다.
바울이 하고싶은 말을 직설로 표현한다면 로마시민권도 똥이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오늘 현재 그런 것에서 기쁨의 물을 길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소망에서 기쁨의 생수를 공급받아야한다고 바울은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부활을 바라보며 그 당시에도 열심히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고 그 부활이야말로 진정한 시민권이라고 확신하는 바울은 그런 자신과 바울과 같은 이들을 본받으라고 권합니다.(빌3:17)
⑤ 4장 화목을 위한 권면과 후원 감사
바울은 화목하여서 기쁨을 회복하여 하나님 앞에 예배하자고 마무리하여 권합니다.(빌4:1)
그리고 갈등의 당사자인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 주 안에서 예수님의 그 마음을 품어달라고 부탁합니다.
또한 이들이 그러할 수 있도록 빌립보 교회에 바울이 멍에를 같이 한 자로 여기는 이에게 클레멘드와 다른 동역자와 함께 도와달라고 부탁합니다.
그 멍에를 같이 한 자가 루디아가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화목이 곧 하나님의 평강인데 이 평강을 바탕으로 한 관용으로 표현되는 기쁨이 가득하기를 바울은 소원합니다.
이를 위하여 기도하고 삶의 자세를 바르게 하여서 하나님의 평강이 함께 하는 삶을 누리기를 기대합니다.
이렇게 화목하여서 기쁨이 된 교회를 위하여 권함을 마치고 바울은 자기를 후원한 빌립보 교회에게 감사의 인사를 합니다.
5. 빌립보서와 오늘 우리
빌립보서는 어떤 교리를 가르치기 위한 편지가 아니라 화목하지 못한 형편의 교회가 주의 평강이 함께하는 교회가 되도록 돕고 기쁨이 사그라진 교회에 기쁨이 회복된 예배공동체가 되며 주님의 말씀을 밝히는 발광체로서의 교회가 되기를 바라며 쓴 교정서신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빌립보서를 대할 때에도 화목과 참다운 기쁨 회복이 우리 교회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살피는 것이 글을 바르게 읽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빌립보 교회가 화목하기를 바랬던 소원에 공감하시고 그 소원 그대로 감화 감동하여서 글을 쓰게 하신 분이 성령님이심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이 말씀이 변치 않도록 보존하여 주시고 오늘 우리에게 읽게하고 감화 감동하시는 성령님이 빌립보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소원하시고 기대하시는 것은 전에 빌립보에 편지를 쓴 바울의 소원과 같지 않겠습니까?
저는 빌립보서를 이렇게 읽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께서는 어떻게 읽으셨는지요.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게 주님의 은혜와 진리와 평안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