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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법(二分法)의 극복(克復) |
주어(主語) |
술어(述語) |
사용(用) |
대약(大若) |
대성(大成) |
약결(若缺) |
불폐(不弊) |
대영(大盈) |
약충(若沖) |
불궁(不窮) | |
대직(大直) |
약굴(若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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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교(大巧) |
약졸(若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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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大辨) |
약눌(若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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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복(克復) |
조(躁) |
승한(勝寒) |
추위를 막음 |
정(靜) |
승열(勝熱) |
더위를 막음 | |
청정(淸靜) |
위천하정(爲天下正) |
전쟁을 막음 |
도덕경 중에서 이(45) 장은 이분법의 극복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노자는 이번 장에서 다섯 가지 반대의 개념들(완성과 미완성, 채움과 빔, 곧음과 굽음, 솜씨 좋음과 좋지 않음, 말 잘함과 말 못함)을 크게 보면 같다고 말한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우리는 일상에서 이분법에 사로잡혀 생활하고 있다. 우리는 ‘앞면’의 반대는 ‘뒷면’이라고 알고 있다. 그래서 누가 앞면이 뒷면이라고 주장하면 틀린 주장이라고 말한다. 즉 앞면은 앞면이고 뒷면은 뒷면이지, 앞면이 곧 뒷면이라고 말하면 논리적으로 모순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뫼비우스의 띠(Meobius Strip)’를 보면 앞면과 뒷면의 구분이 되지 않는다. 좁고 긴 직사각형 종이를 한 번 꼬아서 앞면의 끝을 뒷면의 끝과 잇는다면 뫼비우스 띠가 된다. 뫼비우스 띠의 경우 앞면이 곧 뒷면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뫼비우스 띠는 위상학과 관련된다. 위상학은 같음의 범위를 넓힌 학문이다. 위상학은 노자가 이 장에서 말한 것처럼 반대의 입장에서 있는 것도 ‘크게 보면 같다’는 관점을 취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삼각형과 원은 다르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위상학적 관점에서는 같다고 한다. 이것은 변형을 고려한 사고방식이다. 강철로 된 삼각형을 원으로 변형시키기는 쉽지 않지만, 고무줄로 된 삼각형을 원으로 변형시키기는 쉽다. 이러한 삼각형은 원으로뿐만 아니라 사각형이나 오각형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쉽게 변형시킬 수 있다. 생각이 강철처럼 굳은 사람은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고무줄처럼 유연한 사람은 위상학적 사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위상학은 ‘같다’는 개념을 좁은 고정된 시각이 아니라 유연하고 큰 시각에서 본 것이다.
노자도 큰 완성, 큰 채움, 큰 곧음, 큰 솜씨 좋음, 큰 말 잘함은 그 반대인 미완성, 빔, 굽음, 좋지 않음, 말 못함과 같다고 말한다.(大成若缺, 大盈若沖, 大直若屈, 大巧若拙, 大辯若訥.) 그런데 노자는 크게 완성한 것과 크게 찬 것은 그것을 사용해도 낡지 않(不弊)고 다 함이 없다(不窮)고 했다. 이룸이 완전하면 그 다음에는 폐(弊)하는 일만 남은 것이 아닌가. 완전히 가득차면 더 이상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없지 않는가. 낡지 않으려면 결함이 있어 계속 완성을 향해 나아가야 하고, 다 하지 않으려면 빈 곳이 있어 끊임없이 채워가야 한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은 우주이고, 우주는 결함이 있어 항상 낡지 않고 새롭다. 그리고 끊임없이 비어 있기 때문에 다 하지 않고 항상 새로움으로 채워간다.
우주에서 가장 큰 직선은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직선은 무한히 뻗어가야 한다. 그리고 우주의 공간은 무한해야 한다. 그런데 상대성 이론에서는 휜 공간이 제시된다.(大直若屈) 가장 큰 기교는 우주와 자연의 창조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창조는 기계처럼 훌륭하지는 않고 졸렬하게 제멋대로 인 것 같다.(大巧若拙) 말은 아무리 잘해도 실재를 담아낼 수 없다. 말은 한정형식이 들어가야만 되는데, 한정형식이 들어가면 제한되어 있는 그대로를 제대로 담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大辯若訥) 큰 세계(우주)에 대한 연구는 우주론이라 한다. 우주론은 이분법이 분명한 일반지식(형이하학)과는 다른 존재론(형이상학)으로 이분법을 극복하고 있다.
따라서 노자를 이분법적 사고를 극복한 존재론자로 보아야 한다. 추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움직여서 열을 내야 한다. 반대로 더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움직이지 않고 열을 식혀야 한다. 추위와 더위는 반대이다. 추위와 더위는 이분법으로 보면 양립불가능이다. 그런데 노자의 지혜로 보면 함께 공존한다. 특히 추위를 극복하려고 움직여 열을 내면서 더위와 공존시킨다. 반대로 더위를 극복하려고 움직이지 않아 열을 식히면서 추위와 공존시킨다.
노자는 이 장의 마지막에 청정(맑고 고요함)은 천하를 바르게 한다고 했다. 이 말은 이 장의 결론에 해당하는 구절일 것이다. 그렇다면 앞뒤 문맥으로 보았을 때, 천하를 바르게 하는 것은 추위와 더위 등의 이야기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 고요함이 들어가는 것으로 보아 열을 식히는 것과 관계가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 천하를 바르게 하는 것과 열을 식히는 것과의 관계는 있는가? 노자 당시는 춘추시대로 전쟁 중이다. 당연히 천하가 바르게 되면 전쟁이라는 불이 꺼지게 되면서 열을 식힐 수 있다. 노자가 고요함만 말한 것이 아니고 맑고 고요함이라고 한 것은, 전쟁이 탁함에서 나오며 탁함을 정화시켜 맑게 해갈 수 있음도 나타낸 것이다. 물론 이때도 반대되는 다른 것을 완전히 없앤다는 의미는 아니다. 줄여간다는 의미이다. 그래야 ‘크게 완전한 것은 결함(불완전함)이 있는 것 같다’(大成若缺)는 말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4) 문제 제기
1. 대부분의 학문이나 생활에서 이분법을 사용하는데, 이분법이 잘못이라면 모두가 잘못이라는 말인가?
2. 이분법을 극복하면 과연 전쟁을 막을 수 있는가?
< 다음 주 강의 예고 >
통청아카데미 通 靑 Academy |
238회 |
주제: |
도덕경 읽기 (28강) (도덕경 46장) |
이태호(통청아카데미 원장, 철학박사) | |||||
일시: |
2014. 10. 1. (수) pm 7:00 ~ 9:00 |
장소: 대구시립수성도서관 제1 강좌실 |
문의 |
010-3928-2866 | |||||
h.p. |
cafe.daum.net/tongchungdg |
※ 240회는 화가이며 미술치료학 박사인 김미향 교수의 ‘그림으로 마음읽기’가 있습니다.
238회(2014.9.24) : 도덕경 45장, 이태호(통청아카데미 원장 / 철학박사) 239회(2014.10.1) : 도덕경 46장, 이태호(통청아카데미 원장 / 철학박사) 240회(2014.10.8) : 그림으로 마음읽기, 김미향(화가 / 미술치료학 박사 / 미술치료전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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