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고 있던 숙소 파티마의 집을 통해 1박 2일의 사막투어를 떠나기로 했다. 메르주가는 사막을 유목하던 베르베르인들이 정착한 마을인 듯, 마을 주민들은 (모로코 어가 아닌) 베르베르어를 쓰고 베르베르 음식을 먹고 베르베르인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외부인들의 관광에 기대 시늉만 하는 껍데기 유목생활에 대한 비판이 있지만 어쨌든 그렇게라도 사막에서 유목민 텐트와 낙타가 사라지지 않는 것이 다행이랄까. (메르주가에서 만난 베르베르인들의 자식들은 정착지에서 학교 다니며 유목민 텐트는 관광을 위해서 유지하는 듯했다.) 정착한 베르베르인들은 사막의 시작이자 끝인 메르주가에 담을 쌓고 땅을 파고 물을 대서 안간힘을 써 가며 나무와 풀을 기른다. 생명 줄처럼 간절한 텃밭과 가든이 사막의 한쪽에 펼쳐져 있다. 간절함으로 만들어낸 인공 오아시스처럼 여겨진다. 여름을 제외하면 상추와 고추, 토마토 등을 수확해서 먹는다고 한다. 우리 숙소(파티마)의 주인장은 '오아시스 숲'에서 민트를 따서 우리에게 안겨주었는데, 사막에서 자란 허브의 향취는 간절하리만큼 강렬하다. 숙소로 오자마자 컵에 식수를 부어 민트 가지를 꽂아두었다. 이 마을에 오면 영화 ‘매드맥스’에서 이모탄이 물을 독점한 채 사람들을 지배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만큼 물이 ‘중허다’. 하지만 메르주가에 2~3일 머물 뿐인 관광객들에게는 사막투어가 ‘중허다’. 실로 모든 관광객들은 사막투어 때문에 이 마을에 온 거니까.
1박 2일 사막투어는 대개 저녁 6시에 출발해 사막에 있는 베르베르인의 유목인 텐트에서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에 숙소로 돌아온다. 마라케시에서 2박 3일로 사막투어를 떠나는 투어상품도 많다. 메르주가에서 직접 사막투어를 신청한다고 더 싸지는 않지만, 다양한 사막투어 코스가 있고 (일몰, 일출 등의 시간대 선택) 그룹이 아닌 개인으로 투어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우리는 일인당 30유로(약 300디르함)에 낙타, 저녁식사, 텐트 숙소, 아침식사를 제공받기로 했다. (2016년 여름)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숙소로 삼는 ‘알리네’의 경우 45유로라고 전해들었다. 직접 사막 숙소에 도착해 모래언덕에서 내려다 보면 검정색 베르베르인 텐트가 멀지 않은 곳에 흩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식사 후 북치고 노래하는 근처 텐트의 소리가 고요한 사막을 타고 우리 텐트까지 흘러 들었는데 내가 직접 알리네 투어를 경험해보지는 않았지만, 이로 미루어볼 때 투어의 내용과 질이 그렇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사막투어는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흐름에 맡겨야 한다. 모래폭풍이 있는 4~9월에는 오후 5시가 되어야 상태를 보고 갈지 말지가 결정된다. 파티마 주인장께서는 전갈이 물 수 있으니 운동화를 신으라 했지만, 정작 베르베르인 가이드께서는 샌들을 신고 유유히 사막을 건너신다. 나도 맨발로 걸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당연지사라는 긍정의 답. 사막의 모래언덕을 걸을 때는 신발을 신는 것보다 맨발로 걷는 것이 훨씬 편하고 느낌이 좋다. (단, 한낮에 모래가 뜨거울 때는 빼고요.) 머리가 뜨거우니 모자나 스카프로 가리고 모래바람이 불 때에 대비해 휴대폰 같은 전자기계를 비닐에 넣어가면 좋다. 얼린 물도 한 통 챙겨가고. 그밖에는 최대한 짐을 가볍게.
나는 동물을 타거나 동물 쇼를 보는 관광이 싫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더욱 싫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하기도 하고, 다들 잘 생겼다는 ‘원빈’이 내 눈에는 부리부리한 '아저씨'로만 보이는 것처럼 취향이 아니다. 암튼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을 한들한들 폼 나게 걷는 사륜마차의 말과 꼬챙이에 정수리를 찍히며 사람을 태우는 동남아 코끼리의 처지는 딱 봐도 다르다. 인간이 동물을 착취해온 역사야 피도 눈물도 없이 잔인하지만 (그리고 공장식 축산업으로 더 잔인하게 이어지고 있지만), 관광이라는 ‘사치재’를 위해 동물을 착취하다니. 얼마든지 즐겁게 놀고 맛있게 먹고 이색적인 경험을 할 거리가 넘치는 여행에서 동물까지 부려먹어야 쓰겄냐고잉.
하지만 사막투어에는 단 두 가지 길이 존재한다. 낙타를 타고 갈 것이냐, 아니면 사륜구동 차를 몰고 갈 것이냐. 언젠가 사륜구동 차는 사막 환경에 좋지 않다는 글을 보기도 했고 기름을 빵빵 써가며 사륜구동으로 사막을 돌아다니는 것이 꺼름칙해서 그쪽은 진작 패스. (가는 곳마다 ‘자전거’를 모는 판에 갑자기 뭔 놈의 사륜구동이랑가?) 게다가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거니는 것은 사막투어를 하는 사람들의 로망 아니겄남.
사막을 방울방울 거름(?)지게 하는 낙타 똥
어김없이 40도의 사막에서도 뜨거운 민트차로 시작
사막 한복판에서 베르베르인의 음식 '타진'을 준비하시는 가이드
우리를 태우고 온 낙타도 한쪽에서 휴식
우리는 낙타 두 마리에 각각 올라타고서 한 시간 반 정도 사막을 걸어 유목민 텐트에 도착했다. 낙타를 타면 뱃멀미처럼 흔들흔들 하다는데 별로 그렇지 않았다. 타닥타닥, 느린 걸음에 몸을 맡기면 되고 오래 가지 않으니까. 다만 이렇게 높은 곳에서 떨어져 다치면 사막에 구급차도 못 들어오는데 어쩔, 같은 걱정이나 하며 낙타의 긴 속눈썹을 내려다봤다. 긴장을 해서 허벅지에 힘이 들어갔는지 다음날 허벅지 안쪽에 퍼런 멍이 들었다.
사막의 모래는 진라면 스프 가루만 같다. 색깔도 촉감도 라면 스프와 비슷해 찍어먹으면 MSG의 감칠맛이 날 것만 같다. 그리고 사막투어는 이국적인 것을 찾아나선 ‘스놉스놉’한 욕망에도 불구하고 여행에 MSG의 감칠맛을 선사했다. 텐트에 도착해 베르베르인 가이드가 차려주는 타진으로 저녁 식사를 끝내면 이미 하늘이 어둑어둑해진다. 그리고는 사막투어의 절정은 낙타가 아니라 야외 침대에 누워 올려다보는 새까맣게 반짝이는 밤하늘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언젠가 몽골인들의 시력이 7.0 정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한량없이 드넓은 고원을 한 점 가림 없이 저 멀리까지 내다보는 그들의 시선과 시력. 서사하라 사막에 누워 밤하늘을 보며 몽골인의 시력을 생각했다. 스노우볼의 동그란 천장처럼 사막 위의 하늘이 동그랗게 구를 이루고 있었다. 이렇게 끝없이 까맣고 이렇게 끝없이 완만하게 둥근 하늘을 쳐다보고 있자니 7.0이라는 시력이 가늠이 됐다. 판타지가 펼쳐질 것 같은 하늘의 별들과 운하, 그 사이를 움직이는 비행기의 깜박대는 불빛들. 모래에 전자 책 리더기가 망가질까 봐 걱정돼 숙소에 놓고 오는 길, 마음에 금단증세가 일었다. 평소 나는 읽을 거리가 없으면 지갑에 한 푼도 없고 카드도 없는 것처럼 불안하다. 그런데 저녁 9시부터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데도 책 생각이 일절 나지 않았다. 그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상태로, 깜깜하고 고요한 채로, 황홀했다. 텐트의 안쪽은 낮의 열기로 텁텁했지만 야외에 깔아놓은 침대에는 부드러운 사막의 바람만이 간질간질 불어왔다. (나중에 다른 여행자에게서 들으니 텐트 안에서 자면 더워서 잠을 잘 못 잘 지경이라고 한다.)
사막의 세면대
사막 위에 놓인 야외 침대와 테이블 (여기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잠을 잡니다.)
밤에 쪄 죽는다는 텐트 내부 침대
외부에서 본 유목민 텐트
블로거들은 사막 한가운데서도 통신망이 잡힌다고 했지만 나는 애당초 휴대폰을 꺼놓았다. '잠시 휴대폰을 꺼 놓으셔도 좋습니다'의 상황이랄까. 인터넷의 접속 망에서 벗어나, 수많은 불빛의 눈부심에서 벗어나, 무중력 상태가 된 마음이 밤하늘과 교신을 하는 듯한 기분이 찾아왔다. 이 정적과 이 고요 속, 우리는 다른 차원의 세상에 와 버렸다. 이렇게 밤이 지나간다.
아침 6시 정도 동이 텄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낙타를 매어둔 곳으로 갔다. 낙타는 어제 타진에 들어간 양파, 토마토, 감자, 가지 등의 껍질을 아구아구 씹어먹는다. 이 기특한 동물은 내 자두를 우적우적 씹어먹고는 씨앗만 툭 뱉어낸다. 그런데 두 마리의 낙타 중 한 마리의 심사가 좋지 않았다. 낙타가 그 큰 몸을 움직이지도 않은 채 실룩거리는 입술과 싫다는 목소리 만으로도 격하게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을 본다. 침이 흘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낙타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침을 뱉어낸다나 뭐라나. 걸어가도 좋다는 내게 손사래를 치며 가이드는 낙타에 안장을 올리고, 불안하지만 베르베르인의 말을 거슬리고 싶지 않았던 나는 낙타를 타기로 한다. 그리고 내가 타자마자 낙타는 요동치고! 어찌어찌 낙하했는데 정말 신이 도우사 가이드가 잘 받아줘서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식은 땀 줄줄) 사막투어 가서 낙타에서 나자빠졌다는 글은 본 적 없지만 우라지게 박복한 팔자 가운데서도 신이 보우하셨다능. 가이드가 떨어지는 나를 잡은 어깨 한쪽은 까맣게 멍이 들었다. 투어비를 받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가이드를 달래고 달래(그런 일은, 컴플레인은 절대 없으무이다!!) 나는 낙타와 나란히 사막을 걸어서 돌아왔다. 맨발에 닿는, 햇빛에 달구어지지 않은 서늘하고 고운 사막의 모래가 발가락 사이사이에 머물렀다가 다시 흘러나갔다. 정말이지 새벽에 사막을 걷는 맨발의 느낌은 사막의 밤하늘만큼이나 감동적이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사막 워킹 투어나 사막올레 길은 안 생기려나?
낙타는 어제 타진에 들어간 양파, 토마토, 감자, 가지 등의 껍질을 아구아구 씹어먹는다.
숙소에 돌아왔더니 베르베르인 스타일의 아침식사가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무사히 속세로 돌아와서 다행이야, 이 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한국에 돌아갈 수만 있다면, 이렇게 건전한 생각을 하고 말았다. 역시 사막은 지구에 속한 세계가 아니었던가 보다,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철이 들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