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답사 : <예미역>, 운탄고도를 걷다
1. 6월 초순이지만 기온이 30도가 넘는 한여름이다. 지난 번 방문 때 남겨두었던 ‘운탄고도’를 걷기로 했다. <예미역>은 정선의 운탄고도 4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운탄고도는 과거 석탄을 채굴하여 운반하던 길을 복원한 코스이다. 그런 이유로 운탄고도 곳곳에는 과거 탄광의 흔적과 탄광과 같이 생활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남아있다. 화려했지만 고난스러웠던 과거를 찾아가는 ‘운탄고도’의 답사는 강원도의 진면목을 확인하는 발걸음이다.
2. 예미역에서 약 1시간 조금 넘게 걸으면 ‘안경다리마을’이 나온다. 바로 함백광산이 있던 지역이다. 함백광산은 강원도의 대표적인 광산이었다. 하지만 1979년 다이너마이트 폭발 사고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던 아픈 기억도 담고 있는 장소이다. 주변에 있는 <함백역>은 탄광의 석탄을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한동안 이 지역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고 이후 ‘함백탄광’은 점점 위상을 잃었고 결국 폐광하게 되었는데, 그 이후 <함백역> 또한 마을 사람들에게 아무런 통보없이 철거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함백 사람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행위였다. 마을 사람들은 분노했고 함백역 복원을 위해 투쟁했으며 그 결과 <함백역>은 건물이 다시 지어지며 <기록사랑마을 1호>로 지정되었다. 비록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도 마을주민들은 <안경다리 카페>를 운영하며 마을의 역사와 문화전통을 유지하고 있었다.
3. <안경다리마을>에서 본격적인 ‘운탄고도’가 시작된다. 완만한 경사를 따라 숲과 나무가 적당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길을 따라 걷는다. 산으로 둘러 쌓인 정선의 고원이 조금씩 나타난다. 길은 편안한 느낌과 함께 조금씩 고도를 높이고 있었다. 약 5km를 가면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 나온 ‘엽기소나무’가 있는 <타임캡슐공원>이 나타난다. 공원 중앙에 소나무가 있고 그 주위를 원형의 캡슐보관소가 둘러싸고 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어 시간이 흐른 후에 개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공원과 관련된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이 곳의 볼거리는 고개를 가득 채우고 있는 ‘고랭지 채소’들이었다. 길 옆 산들을 뒤덮은 각가지 채소들은 이제 태양빛을 받으며 성장하고 있었다. 채소들과 산들의 조화는 특별하면서도 개성적인 디자인의 탄생이었다.
4. 운탄고도는 계속 정선의 고원을 향해 이어지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걷고 다시 돌아와야 했다. 출발지인 예미역에서 기차를 타고 귀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을로 와서 카페에 들러 시원한 에이드를 마셨다. 동네 할머니들이 돌아가며 당번을 맡고 있는 듯하다. 길은 힘들지 않지만 날씨가 더워서인지 몸이 제법 피곤했다. 운탄고도는 말 그대로 매력적인 길이다. 하지만 그 끝에서 돌아오는 방법이 조금 애매한 경우가 많다. 운탄고도 4길 또한 코스길이가 30km가 가까운 데 그 끝은 ‘화절령꽃꺼끼재’라는 점에서 무작정 시도하기에는 위험하다. 모든 길은 돌아올 방법이 마련되지 않으면 주의해야 한다. 가끔 해외뉴스에서 험한 자연을 향해 걷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의 용기와 모험심에 감탄하기도 하지만, 그 다음에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이 실종되거나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는 멘트를 듣고는 준비 안 된 모험은 무모한 행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차피 선택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특별한 모험에 대한 열망으로 위험을 자초하는 것보다는, ‘걷기’ 그 자체의 매력을 느끼면서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코스를 찾는 지혜도 중요하다고 생각해본다. 그런 점에서 전국 곳곳에 만들어진 ‘둘레길’은 어느 정도 안전성을 확보할 길들이다. 다만 그 중에는 무리해서는 안 되는 코스들도 많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첫댓글 - 어차피 선택은 각자의 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