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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6,51-58
+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오늘 미사같이 하는 방은 서울 방이죠? 26분 오셨습니다.
지금 이번 달 안에 마무리하려고 정원 공사를 부지런히 하고 있는데, 야외 미사 하면 100여 명까지는 늘어날 수 있을 겁니다.
오시는 분에게 늘 물어보는 말이지만 ‘어떻게 오셨습니까?’
아마 답은 다 아시겠지만, 그리고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서 왔다 하더라도 제일 핵심은
‘저 위에 계신 분이 나를 오늘 이 자리에 끌어냈다.’라는 믿음으로 출발해야 합니다.
오늘은 아프신 분이 많이 오셨습니다.
괜히 부르지 않을 셨을 거고, 하실 말이 있을 거고, 주실 것이 있기에 부르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실 말은 사제 입을 통해서 하실 거고, 주실 것은 치유와 구마입니다.
그리고 돌아갈 때는 여기 오기 전보다는 조금 신앙이 더 굳어지고 커서, 또 얼굴도 올 때와 달라야 합니다.
그래서 세 가지의 열매 ‘치유의 열매, 구마의 열매, 믿음의 열매’ 주시려고 부른 거고,
그 열매를 받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사제의 입을 통해 준비를 시키실 거라는 얘기죠.
그런 마음으로 여러분들이 시편 81장 10절(참고: 구약성서, 구약성경엔 81장 11절)에 나오는 대로 ‘다만 너희들은 입을 크게 벌려라. 내가 채워주리라’
여러분 쪽에서 적어도 입은 벌리고 있어야 하죠.
즉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는 거죠.
아무리 주고 싶어도 닫혀 있으면 못 줘요.
그 유명한 묵시록 3장 20절 ‘내가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으니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 너희와 같이 만찬을 함께하리라.’
이 말씀으로 그림이 있죠? 예수님이 문밖에서 두드리고 계신 그림.
그 그림은 화가가 십몇 년 동안 기도하고 그린 그림인데,
유명한 이유는 문밖에서는 문을 열 수가 없어요. 안에서 열어줘야만 해요.
이제껏 여러분들이 살아가면서 여러분 마음 밖에서 예수님이 아마 수백 번 여러분 문을 두드렸을 겁니다.
‘바오로야, 루시아야, 제발 문 좀 열어다오.’
그런데 내가 안 연 거죠.
예수님은 문밖에서 비를 맞으면서도 엄동설한에도 여러분 살리려 문을 두드립니다.
그러니 시편 81장 10절의 말씀처럼 ‘다만 입을 크게 벌려라. 내가 채워줄 것이다.’
오늘 무슨 대축일입니까? 성체 성혈 대축일.
가톨릭에 성체 성사가 없다면 개신교죠.
가톨릭과 개신교, 구교와 신교의 차이점은 많이 있어요.
일단 교리가 다른 것이 많고, 구원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고, 또 개신교에는 성체 성사가 없죠.
일 년에 몇 번 빵과 포도주를 사서 나누어 먹으면서 재현하는 거죠.
정말 그 안에 예수님이 계신다는 것을 못 믿잖아요.
지금은 이것은 그냥 밀가루죠. 그죠?
하지만 사제의 축성으로 인해 모양은 똑같이 밀가루이지만 그 안에 예수님이 들어가 계시고 포도주도 예수님의 피로 바뀐다고 했어요.
이 성체 성사에 대한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바로 오늘 복음, 요한복음 6장 51절에서 58절입니다.
요한복음 6장 전체는 다 생명의 빵에 관한 얘기예요.
그러다 마지막, 51절에서 58절에 압축돼 있죠.
여기에는 ‘내 살과 내 피를 먹고 마셔라’ 하는 말이 7번이나 반복돼요.
예수님의 유언 가운데 똑같은 이야기를 이렇게 일곱 번 반복한 곳은 성서 전체 여기밖에 없어요.
그만큼 중요한 거예요.
예수님의 유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내 살과 내 피를 먹고 마셔야 한다.’
가톨릭은 그것을 2천 년 동안 지켜오고 있죠.
개신교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마틴 루터도 수사 신부이자 성서학자였죠.
그러니까 마틴 루터가 아무리 교회와 등지고 나가 살다가 한 마지막 유언 중의 하나가 가톨릭 쪽 다른 것은 다 없앤다 해도
절대 성체 성사와 고해 성사는 없애지 말라고 했죠.
왜? 자기도 사제로 살았기 때문에, 이것은 인간이 만든 제도가 아니라 예수님이 직접 세우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죠.
하지만 그 후에 칼빈 등 여러 후계자들이 유일하게 세례만 남겨두었죠.
감리교 쪽에는 견진성사까지는 있어요. 나머지는 다 없애버렸어요.
내가 어느 본당 신부 시절에 장로님 한 분이 천주교로 개종을 했어요.
세례받고 난 뒤부터 열심히 하셨죠. 보면 개신교에서 온 사람들이 다 열심히 해요.
그런데 너무 열심히 하다 보니 또 돌을 맞아요.
미지근한 신자들이 보면 샘이 나고 왜 저렇게 극성이야 해요.
그걸 따라가야 하는데.
그러니까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거예요.
개신교에서 개종한 사람 가운데 뜨겁게 사는 사람 많아요.
레지오도 들어가고 예전에 장로였다는 것 티도 안 내시고, 그래서 참 인격이 좋으시다고 생각했는데,
1년 지났는데 면담을 청하셨어요.
차 한잔 마시며 ‘어때요, 천주교 오니까 좋으세요?’ 물으니 너무 좋대요,
그러면서 그때 천주교로 개종하게 된 동기를 처음 들었어요.
자기는 구약을 한 6번 썼고 신약은 10번 썼대요.
그런데 구약 성서를 쓸 때마다 오늘 예수님이 얘기하신 ‘네 조상들은 그 빵을 먹고도 죽었지만’ 이 빵이 만나 이야기하는 거거든요.
아무튼 구약에서는 그 만나라고 하는 것이 신약에 무엇을 뜻하는 걸까? 궁금했대요.
그리고 신약 성서를 쭉 써오다 요한복음 6장 51절에서 58절에 다다르면은 너무너무 분심이 들었대요.
‘이거 분명히 예수님이 일곱 번이나 내 살과 내 피를 먹고 마시라고 그랬는데
왜 내가 몸담고 있는 장로교에서는 일 년에 두 번 빵 사다가 그걸로 끝내지?’
그래서 목사들한테도 물어보고 개신교 학장한테 편지를 해도 시원한 답이 안 나왔죠.
그거 그냥 재현하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하고.
하지만 본인은 아닌 거예요.
주님이 부탁하신 말 가운데 이렇게 똑같은 것을 반복해서 하신 것은 여기밖에 없는데,
이것은 그냥 옛날에 이천 년 전의 최후 만찬을 다시 한번 기억하는 의미가 아닌데, 분명히 살과 피라고 했는데.
그러던 어느 날 친한 친구 딸이 성당에서 결혼식 한다고 해서 난생처음 성당이라는 곳에 발을 디뎠죠.
맨 뒷자리에 앉아 도대체 천주교에서는 어떻게 예배를 보는지 궁금했겠죠.
신부님이 강론하는데, 암만 좋게 들어도 자기네 목사만큼 못 하더래요.
우리 목사님이랑은 분위기가 다르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강론 후 혼인성사 예식을 하지 않습니까?
반지 주고 난 다음에 이제 신부님이 성체를 축성하는데 충격을 받은 거예요.
신부님이 딱 들어 올리더니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내 피다. 몸이다.’
이거 어디서 내가 들었던 거지? 맞아, 요한복음.
그렇게 해결하고 싶어서 힘들었던 문제를 내가 이제껏 이단이라고 믿고 얼씬도 안 했던 천주교에서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라는 예수님의 유언을 행하고 있더래요.
너무 충격을 받았대.
그래서 천주교 밖에서만 빙빙 돌 것이 아니라 교리를 배워보자, 개종하려고 교리를 배운 게 아니라 알고 싶어서 들어갔대요.
그래서 예비자 교리반에 등록도 안 하고, 교리 시작 후 십 분 후에 들어가고 종료 십 분 전에 나갔대요. 수녀님이 잡을까 봐.
그런데 교리를 하루하루 배워 나갈수록 내가 얼마나 천주교에 대해 무식했던가 내가 어릴 때부터 배웠던 그게 아니구나.
그리고 사도행전에 나오는 대로 ‘하나이고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로부터 이어 내려온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가 맞는구나.
특별히 성체 성사에 대한 교리를 배울 때는 눈물이 앞을 가리더래.
60 넘은 나이에 이제 내가 드디어 주님이 세우신 것을 찾았구나.
자기는 어릴 때부터 사람이 어떻게 사람에게 죄를 고백하냐, 사제가 무슨 신이냐 그렇게 배웠는데,
교리를 배워보니 고백소 안에 신부님 옆에 예수님이 서 계시다 이겁니다.
예수님이 사제의 입을 빌려서 ‘네 죄를 사하노라’하는 것이지 사제가 사해주는 게 아니에요.
예수님이 사제의 입을 통해서 감각적으로 나의 귀에 들려주시는 거예요.
하나하나 궁금하고 잘 몰랐던 것을 해결해 나가니 세례를 받아야겠다 하고 세례를 받은 거래요.
지금은 연세가 거의 90이 다 되셨을 거예요. 20 몇 년 전 이야기니까요.
레지오 가서도 손에 늘 묵주, 그리고 성모님이 그렇게 좋은 분인 줄 알았다고.
‘천주교는 마리아교다. 우상 숭배한다.’ 맨 그런 소리만 듣고 살았는데,
어떻게 우리 개신교회에서 천주교에 대해서 이렇게 알려고 하지 않았을까,
뿌리를 보면 천주교가 뿌리인데 어떻게 큰 집을 이렇게 욕을 하고 살았을까 너무 후회되더라.
그래서 늦게나마 이렇게 예수님 계신 교회에 찾아온 것을 자기는 늘 감사하면서 산다고 말씀하셨어요.
천주교로 개종하게 된 분들을 보면 성체, 특히 오늘 들은 요한복음 6장 52절에서 58절 이걸 읽으면 궁금증이 안 생길 수가 없거든.
‘뭐야, 우리 교회는 왜 한 번도 이런 걸 안 해, 식빵 사다가 나눠 먹고.’
그게 이게 그렇게 하려는 거야 아닌 것 같단 말이에요.
이렇게 8번이나 예수님께서 그렇게 강조 또 강조, ‘살과 피를 먹어야 영생을 얻는다’라고 이렇게 강조하셨는데 말이에요.
그래서 개신교 신자들이 들으면 서운할지 모르지만, 우리 가톨릭 교리 입장에서 보면 그거죠.
개신교나 천주교는 다 같이 구원의 문 안으로는 들어가 있어요,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는 성체 성사가 있기에 개런티, 보증돼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개신교에는 성체 성사가 없으므로 구원의 문 안으로 들어와 있어도 보증을 할 수가 없네.
그분들은 그렇게 얘기 안 하겠죠.
‘아니, 성체 없으면 천국 못 가?’ 하시겠죠.
그냥 우리 천주교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는 거예요.
하지만 여러분들은 알고 계셔야 해요. 성체 성사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성체 성사는 가톨릭의 생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1264년에 이태리의 란치아노의 성 크리스티나 성당에서 사제 서품받은 지 이틀 된 새 신부님이 미사를 드리고 계셨어요.
첫 미사에요.
그런데 이 새 신부님은 신학생 때부터 어떤 의심을 품었느냐?
이렇게 내가 들어 올려서 ‘내 몸이다’라고 한다고 예수님의 살로 바뀐다고?
첫 미사에도 경문을 외면서도 의심을 했어요.
그런데 그 순간에 어떻게 되는 줄 아세요?
하얀 제병이 사람의 살로 바뀌면서 피가 젊은 신부님의 제의를 타고 성체 보위로 뚝뚝 떨어진 거야.
얼마나 놀랐겠어요?
그래서 그냥 예수님의 그 살을 내려놓고 미사를 못 드렸죠.
그 후 주교님이 오시어 기적이다 뭐다 이야기하시는데, 그 신부님은 정말 눈물로 통회하며 성사를 봤겠죠.
지금도 란치아노 크리스티나 성당을 가면 그때 살로 변한 성체가 유리 성광 속에 모셔져 있어요,
1200년 전에 일어난 일이에요. 얼마나 오래된 일이에요.
성체의 기적은 이것만이 아니라 많아요.
아마 내 피정 강론을 들으신 분은 그런 이야기 들으셨을 거예요.
폐병 환자 봉성체 때 그분들이 토하면 신부님이 그냥 같이 먹었다는 것.
저도 신학생 때는 이미 들어가 소화된 상태에서 토한 것은 먹을 필요 없다고 배웠죠.
나한테는 절대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군종신부 때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긴 거 아닙니까?
지금 생각하면 그 자매가 폐결핵이 아니라 폐암 환자였던 것 같아요.
할머니 수녀님과 봉성체하러 갔죠.
가서 보니 기도가 많이 부어서 숟가락에 성체를 흐물흐물하게 녹여서 모셔드렸죠.
마침 기도하고 돌아서 나오려는데, 이분이 침대 위에 핏덩어리와 같이 쏟은 거야,
그리고 그 위에는 성체 허연 것이 그대로 있네.
모신지 몇 시간이 지났다면 그냥 버릴 수도 있지만, 이것은 일 분도 안 되었는데 성체잖아요.
아이고, 그 입장을 생각해 보세요.
왜 이런 일이 나한테 벌어졌냐, 저 뒤에 신심 깊은 박 신부에게 벌어져야지~
그런데 그때만 해도 내 별명이 순진, 김순진이었거든.
그래서 침대 앞에 가 무릎을 꿇고 그걸 먹을 태세를 하니, 수녀님이 뒤에서 수단 자락을 잡고 드시지 말래요.
그럼 수녀님이 먹으실래요, 물으니 자기도 안 먹겠대.
누군가는 먹어야 하잖아.
그런데 이게 성체만 핀셋으로 끄집어낼 수 없는 상황이야, 같이 뭉쳐져 있으니.
제가 먹었겠어요, 안 먹었겠어요? 먹었어요.
하지만 만일 다시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고 하면 못 먹을 것 같아요.
그때는 신부 된 지 몇 년 안 되고 열심히 버텼던 시절로, 성체가 이 안에 계시는데 핏덩어리를 먹고 내가 설마 죽겠는가
그런 배짱이 있었죠.
그 후에도 건강 검사해 보면 제일 건강한 것이 폐야.
사제들은 성당에 불이 나면 제일 먼저 감실 가지러 들어가잖아요.
그래서 실제로 역사적으로 감실 구하러 갔다가 불에 타죽은 신부님들이 많아.
그만큼 성체는 가톨릭의 생명이란 말이에요.
그리고 또 그런 일도 여러분 들어보셨죠?
성당에 불이 나서 아주 그냥 재가 됐어.
그런데 뒤지다 보니 감실이 있는데, 열어보니 그 안의 성체가 하나도 안 탄 거야.
7~800도의 온도에 성당 천장은 다 녹아내렸는데도, 감실 안의 성체가 그 빛을 발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참 많죠.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는 하느님이 아니면 채울 수 없는 갈증과 굶주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분명히 있죠.
이런 것은 육신의 배고픔과는 전혀 차원이 달라요.
육신은 아무리 잘 먹어도 건강하게 살아도 언젠가는 병들고 언젠가는 세상과 작별해야 해요.
지금부터 오십 년 후까지 살아남을 자신 있는 사람 한번 손들어봐요.
손을 들기만 해봐라.
오십 년까지 갈 필요도 없어요. 그렇죠?
유한한 인생이에요.
늘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우리는 갈증을 느끼고 살아요.
늘 원치 않는 상처 때문에 병들어 있어요.
그래서 반드시 영적인 약이 필요하다 이겁니다.
영적인 약.
어느 효자 아버지가 중병에 들었는데 백약이 무효라.
효자가 오만 약초 구해 다려드려도 낫지를 않아.
그런데 어느 날 지나가던 스님이 한마디 툭 던지고 가네, 뭐라고 던졌을까요?
사람 살을 베어 약이랑 같이 섞여 먹이면 날 수 있어.
이 아들은 그걸 그대로 믿었어요.
그래서 칼을 갈아서 자기 허벅지를 도려냈어요.
얼마나 아플까요, 생살을.
피 흘리는 살을 약과 함께 약탕제에 넣고 끓여서 짜서 아버지 입술에 한 방울 똑! 그러니까 아버지가 살아나셨다.
이런 이야기 들어보셨죠?
이렇게 자식이 아버지를 살리기 위한 이야기도 있지만, 우리는 성서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어요?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하느님 아버지가 당신의 살을 베어주는 이야기를 우리 조금 전에 들었어요.
병들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미사 때마다 우리 아버지가 당신의 살을 찢어서 우리 입에다 집어 넣어줘요.
이것이 천상의 약, 바로 성체에요.
저는 사제 생활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성체를 드립니다.
이 세상에서 성체를 가장 정성껏 영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어디일 것 같아요?
교도소에 있는 사형수들이에요.
지금은 사형이 없어졌지만, 내가 수인 사목할 때 만해도 사형 집행이 많았어요.
형장에 입회하러 많이 불려 다녔죠.
사형 선고를 받으면 사형수들은 따로 수감되고 미사에 못 나와요.
그래서 미사 끝나고 성체를 모시고 내가 가야 해요.
기서 보면 사형수 신자들은 미사가 시작되는 시간부터 무릎을 꿇고 한 시간 내내 기다려요.
성체 모실 준비를 하는 거죠.
내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면 그때부터 울기 시작해.
성체를 못 먹을 정도로 울어요. 왜?
오늘 이 성체를 영하고 한 달 후에나 신부님을 또 볼 텐데 그때까지 살아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어.
오늘 이 성체가 내 생애의 마지막 성체일 수도 있고, 오늘 보는 신부님 얼굴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얘기지.
달래서 성체 영해줍니다.
그 양반들은 밥풀을 가지고서는 십자가를 만들어 벽에 붙이고 기도해요.
수인 사목하면서 제일 힘든 게 아까 얘기했듯이 형장에 입회하는 거예요.
한밤중에 법무부로부터 전화가 오죠.
‘수인번호 몇 번 형 집행이 떨어졌습니다. 종교를 보니 천주교 신자인데 신부님이 와서 종교 예식을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새벽같이 가면 간수들이 사형수들이 갈아입을 옷을 들고 기다려요.
간수랑 같이 긴 복도를 따라갑니다.
사람은 자기 죽을 때를 알아요.
자기도 뭔가 밤새 느낌이 이상했는지 밥풀로 만든 십자가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고 있어요.
예수님이 피땀을 흘리셨다 했죠? 저는 그 피땀을 보았어요.
정말 땀에서 벌건 물이 흘러내려.
내가 의사들한테 문의해봤더니 가능하대요.
사람이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히면 모세 혈관이 터진대요.
그래서 그것이 땀이랑 같이 섞여 나오는 것이 혈한증이래요.
그렇게 기도하다 새벽에 내가 철장 앞에 서 있으면 그냥 기절해버려.
설마 설마 했는데 오늘이 내 마지막 날이구나.
들어가서 물 먹여서 정신 차리게 하면 또 기절하고, 온몸이 그냥 낙지처럼 몸을 못 가누어요.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요.
성체를 잘게 쪼개 입에다 집어넣으면서 ‘예수님 당신 들어가셔야 이 아이 일어납니다. 안 그러면 개 끌려가듯 끌려갑니다.
제 발로 걸어가게 해주세요.’
그런데 성체를 영하면 어디서 그런 힘이 생기는지 일어나요.
형장 둘이서 팔을 서로 끼고 가요.
내가 사실은 그 사람 팔을 끼고 가야 하는데 내 다리가 더 떨리거든.
오히려 ‘신부님 저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성체 영했으니 저 하나도 안 두려워요.’
문 열고 들어가면 밧줄이 내려와 있고 저쪽 유리창에는 입회인들이 있죠.
이제 뒤도 묶이고 다리도 묶이고 마지막 할 말 없냐 하면 우리 신자들은 머리를 안 가리려 해요.
대개가 교수형은 머리를 가리지만 우리 신자들은 신부님 강복 보면서 죽겠다 해요.
마지막 강복을 하면 강복이 끝남과 동시에 밑으로 팍 떨어지고 덜커덩하면서 문이 열리죠.
그러면 요동을 쳐요. 턱이 쪼여오니까.
그런데 아무리 강한 사람도 3분 이상을 못 넘겨요. 일단 목뼈가 부러져 버리거든.
그래도 교도소 측에서는 15분을 더 매달아 놓은 후 칠성판에다 눕히죠.
그러면 제일 먼저 의사가 가서 사망 선고를 해요.
그다음에 내가 가서 임종경 등을 해주죠.
그런데 우리 신자들은 하나같이 잠자는 것 같아요.
대개 일반 죄수들 사형 입회 때 내려가 보면 혀는 다 빠져나왔고 창자도 항문으로 다 빠져나와 있고 사람의 얼굴이 아니에요.
죽기 직전의 괴로움의 얼굴.
그런데 우리 신자들은 혀 빠져나온 사람 하나 못 봤어요.
잠자는 것보다 오히려 혈색이 더 발그스름해요.
그 힘이 뭔지 아세요? 한 달에 한번 영했던 성체.
그 성체의 힘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아름답게 죽을 수 있는 거예요.
우리는 잘 죽기 위해서도 잘 살아야 해요.
잘 살게 하는 가장 큰 천상의 약이 뭐라고요? 성체예요.
그렇기에 성모님께서는 발현하실 때마다 일주일에 한 번 영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하시죠.
우리 혈압약 매일 먹잖아요. 그렇죠?
어떻게 혈압약은 매일같이 먹고 한번 빠지면 안달복달하면서 왜 천상의 약을 왜 일주일에?
지금은 시대가 혼란의 시대이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천상의 약을 먹는 것으로 우리가 버틸 수가 없으니,
가능한 매일 영해라. 평일 미사 매일 하라 하십니다.
지금 얼마나 시대가 좋아요.
새벽 미사, 아침미사, 저녁 미사에 엎어지면 코 닿는 곳에 성당 있지.
옛날에 최양업 신부님 시절에는 최 신부님이 얼마나 힘들게 전국을 다니셨는지 아시잖아요.
최양업 신부님이 경상도에 있다고 그러면 전라도에 있는 신자들이 찾아가요.
아버지 소원이 죽기 전에 신부님한테 성사 보는 거라면,
효자 아들이 구루마에 지게에다 아버지를 업고 보름 이상을 걸어 신부님 계신 곳을 찾아가는 거예요.
그렇게 마지막 성체 영하고 신부님 품 안에서 임종한다는 말이에요.
지금 엎어지면 코 닿는데 성당이 있죠,
유튜브만 들으면 얼마든지 좋은 신부님들의 강론이 있죠.
얼마든지 유익한 영적인 약들이 얼마나 많아요.
지금은 시대가 환난의 시대이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먹는 약으로 되질 않아요.
성체 성사는 바로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세우신 참다운 교회는 성체 성사를 간직하고 있어야 해요.
그래서 우리 교회는 2천 년 동안 이 예식을 일주일에 한 번만이나 한 달에 한 번이 아니라
매일같이 전 세계 모든 가톨릭교회는 이 예식을 행했고,
그 안에 예수님의 성체가 현존한다는 것을 믿었고, 또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기적이 일어났겠습니까?
성체만 영하면서 몇십 년 동안 살았던 성인 성녀들도 많은 거 아시죠?
말가리다성녀는 음식 하나도 안 먹고 하루 한 번 신부님이 영해주는 성체만 영하고 20년을 살았어요.
오상의 비오신부님 ‘햇빛이 없이는 살아도 성체 없이는 못 삽니다.’라고 했죠.
우리 가톨릭의 생명은 성체예요.
여기 모셔져 있는 성인 성녀들 가운데는 순교자들도 많아요.
이분들 가운데는 예비자 때 죽은 분도 많아.
그 얘기 뭐냐, 성체를 한 번도 못 영해보고 그리워만 하다가 죽었다.
거기에 비해 여러분들은 얼마나 행복하신 분들이에요, 그렇죠? 너무 행복하신 분들이죠.
그래서 저는 교우들한테 그래요.
성체 영하러 나오면서부터는 성가 안 해도 된다.
그리고 성체 영하고 난 다음, 자리에 가면 성가 부를 때가 아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시는 그 순간부터 이 손은 예수님의 손으로 바뀌는 거다.
그 바뀐 예수님의 손을 가지고 치유 시작해라.
내가 영적으로 상처가 많으면 가슴에 손을 대고, ‘주님 제 역사 아시죠? 저 상처 많은 사람인 거 아시죠?
저 아직도 아버지 용서 못 하고 있는 거 아시죠? 이젠 제 역사 안에 들어오셔서 저 좀 자유롭게 해주세요.’
몸이 아픈 사람은 아픈 곳에 대고 ‘주님, 제가 간암이래요. 간경화래요. 치유시켜 주세요.’
믿는 대로 되는 거예요.
바울은 사도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그랬죠.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뭐라고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십니다.
그리스도와의 동일화.
그래서 성체를 영하는 천주교 신자들은 예수님처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되어 기도하는 거예요.
성체를 영하는 천주교 신자들은 예수님처럼 순명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되어 순명하는 거예요.
삼인칭이 아니라 일인칭으로 바뀌어요.
이것은 다른 교회에서는 꿈도 못 꾸잖아요.
성체를 영하는 그 순간에 내가 예수님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손 가지고 집에 가서 아이들한테 안수하세요.
집에 아픈 사람 있으면 머리에 손 얹고 ‘예수님 치유시켜주세요.’
그때까지도 예수님의 손이에요. 맞죠?
성체 얘기는 한도 끝도 없죠.
아시겠지만 나는 정말 사제가 어렵게 됐어요.
서품받는 날 아침에 네 시간 남겨두고 보류가 되어 병원에 누워서 했던 그 기도가 뭔 줄 알아요?
내 손과 내 입술로 단 한 번만이라도 성체 성사를 이룰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그 기도가 하늘에 닿았는지 김대건 신부님 유해 앞에서 3일간 철야기도하고 빠져나왔던 디스크가 들어가서
5월 14일, 마티아 축일에 서품을 받았죠.
그리고 사십 년이 흐르면서 이제 은퇴했는데, 그간 얼마나 많은 미사를 했겠습니까?
그렇지만 뒤돌아보건데 주님 앞에 내가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은
미사 때마다 내 생애의 마지막 미사를 드리는 마음으로 드렸다는 것입니다.
정말 감사하게도 미사 드릴 때 분심이 든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러나 많은 신부님과 얘기해 보면 별의별 마귀가 장난을 쳐요.
어느 신부님이 나한테 너무 괴롭대요.
왜? 미사를 드리다가 갑자기 신자들이 벌거벗은 모습으로 보인대요.
눈을 가린대요. 신부님 안수기도 좀 해주세요.
제대까지도 마귀가 달려들어요.
안수 한 번 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 신부님의 기도 생활을 한번 되돌아보라고 그랬어요.
신부님이 신부는 직업이 아닌데 직업처럼 살려고 하면은 마귀가 달려들 수밖에 없다.
그 문제 해결은 신부님이 하셔야지 내가 한 번 안수한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라고 했어요.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미사 때 얼마나 마귀가 많이 달려드는 거 아시죠?
성체 영하러 나가면서도 20년 전에 돈 떼먹은 놈 얼굴이 앞에 있는 사람이랑 똑같이 생겼어.
성체가 들어오는지 뭔지 그냥 분노가 확 일어나는 거야.
마귀는 얼마나 공격하는지 몰라요.
이렇게 마귀들이 많은 장난을 치지만 우리는 주님의 은총으로 그것을 능히 이겨낼 수가 있어요.
성체를 영한 후에 아까 치유기도 하라 했죠? 그러면서 동시에 감사 기도를 드리셔야 해요.
마리아의 방문을 받은 엘리사벳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주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하면서 감사의 기도를 드렸듯이,
‘주님께서 오늘 저를 찾아주시다니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이 죄 덩어리 인간을 찾아오시다니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감사 기도드려야죠.
이렇게 큰 행복 얻게 해주신 거 감사드려야죠.
여러분들 성체를 영할 때마다 내 몸이 축성됨을 잊지 맙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주 정성을 다하여 정직하게 고해 성사를 잘 보셔야 합니다.
고해 성사를 잘 보시는 분들은 성체를 잘 영할 수 있어요.
그러나 내가 그냥 죄가 새까만데도 불구하고 그냥 나가서 먹는 거 아니죠.
대죄가 있을 때 성체를 영하면 이미 다리가 끊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연결이 안 된다고 교리때 배웠잖아요.
여러분들 어려울 때, 앞으로 힘들 때, 삶이 고달플 때 성체 앞으로 찾아가 예수님과 대화하세요.
성체 조배 하시라는 얘깁니다.
시간 나면 외롭고 고통스러울 때 성체 앞으로 찾아가세요.
오늘 분명히 성체를 영한 여러분들의 입을 축복해 주실 겁니다.
그리고 성체 성혈 대축일을 맞이하면서 오늘 성체를 영하고 수많은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많은 환자가 치유되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