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밥을 먹는 듯 곡식도 밥이 필요하다. 곡식에게 밥은 곧 거름, 퇴비다. 곡식에 따라 거름을 많이 필요하는 게 있고, 적게 필요하는 경우도 있다. 고추, 가지, 토마토 같은 가지과 곡식이나 수박과 같은 특용작물은 거름을 많이 필요한다.
거름이 넉넉하다면 농사는 절반이 된 거나 다름이 없다. 대신에 거름에도 질이 다양하다. 재료를 무얼 넣고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발효시켰는지에 따라 차이가 많다.
퇴비는 발효가 기본이다. 오래 전에 농사꾼들은 퇴비 발효법을 몰랐다. 그냥 썩혀서 썼다. 이는 내가 자랄 때 우리 부모님 세대가 하던 걸 돌아보아도 그렇다. 봄이 되면 뒷간 똥을 퍼, 다른 농사 부산물과 겹겹이 두엄더미에 쌓는 일을 했다. 이렇게 해서는 발효가 안 되고 그냥 썩는다. 옛 사전을 찾아보아도 두엄이라면 ‘썩힌 거름’으로 나온다. 썩은 거름은 퀘퀘한 냄새가 난다. 그러니 오래 묵혀 사용해야했고, 거름 효과가 그리 좋지 않았다.
발효에는 호기성 발효와 혐기성 발효가 있다. 예전에 하던 방식은 혐기성 발효. 공기를 싫어하는 발효다. 반면에 오늘날에는 퇴비를 띄울 때 공기를 좋아하는 호기성 발효를 시킨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이 발효법을 적용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띄운 퇴비는 냄새가 좋다. 거름 효과는 물론 아주 좋다. 사람이 먹어도 좋을 정도. 퇴비 띄우는 과정 하나하나를 알면 쉽게 수긍이 간다.
그럼, 언제 어떻게 띄우는가? 퇴비는 곡식에게 이로운 미생물을 활발하게 만드는 게 핵심이다.
*시기 : 봄 가을. 날이 따뜻할 때
지금은 봄이니까 산수유 필 무렵. 경칩과 입춘 사이. 올해 퇴비를 띄우던 날인 3월 15일을 기준으로 보자. 봄기운이 완연하게 일어서는 걸 느끼게 된다. 까치와 참새가 집을 짓고 알을 낳기 시작한다. 닭 역시 알을 품고자 둥지에 알을 정성껏 모우거나 품는다. 멧비둘기 울음 왕성하고, 새벽이면 호랑지빠귀 울음도 이따금 정적을 깬다.
땅이 녹자, 옆으로 누워 있던 밀 보리는 하루가 다르게 일어선다. 푸른빛이 완연하다. 냉이 달래도 푸른빛을 보이고, 양지 바른 곳에는 봄비를 맞고 쑥이 파릇파릇 점점이 돋아난다. 원추리도 묵은 하얀 잎에 이어서 푸른 잎을 내밀고, 수선화는 꽃몽우리를 밀어 올린다. 광대나물은 벌써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생강나무에는 노란 꽃이 피었고, 산유수는 꽃망울을 막 터트린다. 매화는 꽃망울을 봉긋봉긋 만들고 있다.
새와 풀 그리고 나무만 그런 게 아니다. 퇴비 띄우기와 가장 관련이 많은 건 벌레. 집안 구석 어딘가에서 겨울잠을 자던 무당벌레는 고물고물 기어 나온다. 벌레 가운데 가장 반가운 건 초파리. 음식 찌꺼기를 밖에 두면 따스한 날, 작은 날파리들이 모여든다. 구정물에는 초파리가 시큼한 물을 빨아먹기 위해 모여든다. 미생물들이 활동을 시작한다는 조짐이 아닌가. 이게 바로 퇴비를 띄워도 좋다는 신호다. 파리도 한두 마리 눈에 뛴다. 노란 나비, 흰나비, 부전나비도 한두 마리 보인다. 이 모두가 봄기운이 일어서면서 생명들이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다. 이런저런 기운에 휩싸이다 보면 농사꾼도 저절로 퇴비를 띄우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
*준비물
-미생물의 먹잇감 : 여러 가지 농업 부산물(왕겨, 볏짚, 쌀겨, 밭농사 부산물). 음식 쓰레기. 깻묵, 닭똥, 사람 똥과 오줌, 산에 부엽토, 흙. 하수도 도랑에 냄새나는 흙(하수도 청소도하고 거름도 만들고).
-발효 촉진제 : 구정물, EM, 쌀겨.
올해 퇴비 띄우기는 지난해와 두 가지가 다르다. 하나는 구정물. 올해는 구정물을 모으기 시작했다. 밥 할 때마다 나오는 쌀뜨물이랑 설거지물을 버리지 않고 날마다 큰 통에 모았다. 구정물을 모아두면 자체 발효를 한다. 초산 발효인지 시큼한 냄새가 난다. 날이 따뜻하고 발효가 진행되면 물속에서 공기 방울이 보글보글 올라온다. 미생물이 살아나니 물도 살아나는 셈이다. 옛날에 양잿물을 먹고 자살하려는 사람에게 구정물을 먹였다는 말도 있다. 발효된 구정물에는 독을 중화시키는 힘이 있다는 소리.
또 하나는 EM(Effective Microorganism). 유용한 미생물 용액이다. 요즘은 EM을 쌀뜨물과 석어, 천연세제로 쓰이니 도시에서도 인기다. 설거지는 물론 빨래나 바닥 청소에도 쓸 만큼. 인터넷에 EM을 치면 사례가 줄줄이 뜬다.
우리가 쓰는 EM은 지난해 농업기술센터에서 환경농업 농가에 지원을 해준 것이다. 냄새는 구정물과 달리 단내가 살짝 난다. 지난해까지는 발효제로 쌀겨만 썼는데 올해는 이렇게 발효제가 다양하다.
*만드는 법
위에 준비물을 시루떡 앉히듯 켜켜이 쌓으면서 고루 뒤섞어주면 된다. 이 때 주의할 점은 수분이 알맞아야한다. 겨우내 마른 농업 부산물이나 부엽토라면 쉽사리 물기를 먹지 않는다. 봄비에 오랜 시간 촉촉이 적시는 게 가장 좋지만 그게 아니라면 틈틈이 물기를 주어 푹 베게 하는 게 좋다. 요령은 손으로 꽉 쥐었을 때 물기가 스며 나오는 정도.
만일 이런 정도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퇴비를 띄울 경우 재료들을 퇴비 더미 위에 한 칸씩 쌓을 때마다 물을 뿌려준다. 나중에 뒤집을 때도 마찬가지. 눈으로 보아 물기가 부족하면 그때그때 보충하면 된다.
얼마나 높이 쌓는가. 보통 1미터 50에서 2미터 정도. 너무 낮으면 적정 온도를 유지하기 가 어렵다. 너무 높으면 호기성 발효가 잘 안 일어난다. 또한 높이 쌓으면 위에서 누르는 압력이 크게 작용하니 이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퇴비를 만들 때 위에서 인위적으로도 누르지 않아야 한다. 공기가 잘 통해야하기 때문이다. 퇴비가 뜨면서 자연스럽게 조금 가라앉는다.
또 하나 주의할 점은 햇살과 비. 퇴비 더미를 쌓은 다음, 검은 갑바로 덥는다. 햇살을 정면으로 받으면 적지 않은 미생물이 죽는다. 눈에 안 보이는 거름 성분도 휘발되어 날아간다. 그리고 퇴비가 뜨는 동안 비를 맞춰서는 안 된다. 한창 발효가 진행될 때는 열이 난다. 비를 맞히면 이 열이 식어버린다.
자. 이렇게 해 두고 나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하루만 지나면 벌써 냄새부터 달라진다. 소죽 끓이는 냄새 비슷하다. 쿠쿰하면서도 조금 구수한 듯 묘한 냄새. 퇴비 속에서는 열이 나고 있다. 낮 동안은 뜨겁게 올라가고, 밤에는 열이 내려간다. 열이 나는 이유는 미생물들이 활동하기 때문이다. 먹이를 먹고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번식을 한다. 거름성분이 좋은 흙 1그람에는 미생물이 수억 마리나 된단다. 그러니 퇴비 더미 속에는 수조마리가 넘는 미생물들이 빠르게 번식을 하는 셈이다. 또한 먹고 먹히는 관계들도 있다. 그러니 이 모든 생명에너지가 모여 열을 내는 것이다. 사람도 좁은 곳에 오그리복작 모이거나 붐비는 지하철 속에 있으면 열이 나는 것과 같은 이치.
이렇게 한 지 3일 째 되어 온도계를 꼽아 보니 68도다. 예전에 기록에 따르면 두 번째 퇴비를 뒤집은 다음 퇴비 속 온도가 76도까지 오른 적이 있다. 퇴비 속 온도가 오르면 크게 두 가지 효과가 있다. 하나는 풀씨가 다 죽는다. 단순히 열로 죽는 게 아니라 그 과정이 있다. 먼저 퇴비 속에 적당한 수분과 온도가 있으니 처음에는 퇴비더미 속에 있던 무수한 풀씨가 환경이 좋다고 여겨 싹이 튼다. 온도가 오를수록 빠르게 자란다. 그러다가 점차 온도가 더 높게 올라가면 견디지 못하고 녹아내린다. 씨앗 자체는 웬만한 온도에서는 절대 죽지 않는다. 옛날에 띄우기 않고 썩힌 거름에 있던 풀씨들은 대부분 죽지 않고 그대로 살아있다. 온도가 오르지 않으면 싹을 내지 않고 휴면상태로 머무는 것이다. 반면에 싹이 튼 생명은 60도 정도 뜨거운 온도를 견디기 어렵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최소한 일주일 정도 높은 온도를 이겨낼 작물은 이 지구상에 많지 않다.
풀씨를 없애는 효과 이외에 또 한 가지 중요한 효과는 미생물이다. 이 부분은 조금 전문적인 내용이다. <흙살림>에서 낸 신문 자료에 따르면 웬만한 잡균은 65도 내외에서 죽는단다. 또한 발효 후 퇴비가 후숙되는 동안 방선균이 많이 번식한단다. 이 균은 병충해를 막아주는 천연 항생 물질. 환경농업에서 아주 중요한 균이 된다. 그렇다고 이런 온도를 인위적으로 어찌 하기는 어렵다. 내 경험으로는 퇴비 더미를 그냥 잘 쌓으면 자연스럽게 온도가 70도를 넘어 오르는 걸로 만족을 한다. 그러면서 아주 질 좋은 퇴비가 되었다고 자축을 한다.
이렇게 온도가 오르다가 최고 온도를 치고 나면 서서히 온도가 내려간다. 열흘에서 보름 정도. 그 이후에는 미생물 사이에서 그 어떤 평화가 찾아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먹을 게 풍부해지니, 퇴비 둘레에는 못 보던 온갖 벌레들이 먹이를 찾아 고물고물 모여든다. 그 어떤 도감이나 생물학 책에서도 보지 못했던 수많은 벌레들. 이를 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천치창조를 한 거 마냥 기분이 달뜬다. 수조 마리의 미생물과 수많은 작은 벌레들.
온도가 웬만큼 내려가면 이제 퇴비를 다시 뒤집는다. 겉에 있던 퇴비는 제대로 뜨지를 않는다. 겉에 것은 속으로 넣고, 속에 잘 뜬 퇴비를 위로 올리는 뒤집기. 이 때 부족한 수분이 있거나 발효가 덜 된 곳이 보이면 수분과 발효제를 더 보탠다. 이 과정을 세 번 정도 하면 퇴비가 다 된 것이다. 비 맞지 않게, 햇살 받지 않게 잘 보관하여 필요할 때 이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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