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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을 키우는 교회, 인물이 떠나는 교회
필자가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리더십 강의를 할 때 아주 곤혹스러운 경우 중 하나가 팀 사역에 대한 강의를 할 때다. 상당수의 교회는 여러 명의 사역자를 가지고 있지 않고 담임목사 혼자 (적어도 장년 사역에 대해서는) 섬기고 있는데, 팀사역은 무슨 팀사역이냐고 말하기 때문이다. 부교역자가 있어야만 팀사역이 되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 지도자와 동역을 하는 것도 팀사역이라고 지적을 해 주면 조금은 이해를 하게 된다.
그래도 팀사역 얘기를 하게되면 아무래도 함께 일할 사역자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교회의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다른 부교역자를 쓰기도 어렵지만, 사정이 되어 같이 일할 만한 일군을 찾아보려고 해도 인물이 없다는 점이다. 사실 교회의 규모가 조금만 커져도 효과적인 사역을 위해서는 동역자를 필요로 하는데, 내부에서 사람을 길러내지 못하는 풍토이다보니 거의 대부분의 일꾼을 외부에서 영입해야만 한다.
그러나 가능하면 외부 영입보다는 자신이 길러낸 제자나 일군과 함께 사역할 수 있는 축복을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 때 자신의 사역의 방향과 비전은 물론, 세부적인 것까지 잘 알기에 진정한 팀웍을 이루기가 좋기 때문이다.
물론 일정 규모가 되면, 내부에서 길러낸 지도자 외에도 우리와 다른 전문성을 가진 일꾼들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대기업들은 현재 인재 확보에 기업의 사활을 걸고 애쓰고 있다. 그래도 핵심인물은 반드시 내부에서 키워서 쓰지, 밖에서 구해 낙하산으로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다. 제임스 콜린스도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 변화된 조직들을 연구해 본 결과 11개의 위대한 기업 중 10개의 최고 경영자가 모두 그 기업의 문화 속에서 자라온 사람이었다고 보고한다. 반면 평범함은 넘어섰지만 그저 좋은 기업으로 남은 수많은 조직들을 연구해 보니 위대한 기업보다 6배나 많이 최고지도자를 외부에서 영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회도 연구해 보면 거의 같은 현상을 보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안타까운 점은, 전통적으로 교회는 사업을 위해 리더십과 경영을 연구해 온 일반 기업보다 훨씬 더 지도자를 외부에 의존하고 있지, 자체에서 길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리더십 측면에서 볼 때 오늘날의 교회는 과거에 세상을 리드해 가던 시대와 달리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02년 9월 10일 삼성 이건희 회장은 인재 확보에 관한 사장단의 추진 현황을 보고 받기 위해 전자계열사 사장단 회의를 본관에서 열기로 발표했고, 9월18일 전자계열사 사장단 회의를 소집한 자리에서 "핵심인재 확보만큼은 내 손으로 직접 챙기겠다."며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삼성 그룹의 사업 성패와 미래가 어떤 기술이나 재력이 아니라 사람에 달렸음을 처절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10일 대한 축구 협회(이하 축협)에서는 아주 대조적인 회의가 열렸다. 축협 기술위원회와 상임이사회를 열어 월드컵 4강 신화의 숨은 주역 박항서 감독 문제에 대한 논의를 했다. 이유는 그 전날 박감독이 파주 대표팀 훈련장에서 기자회견 중에 축구협회와 연봉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해 아시안게임까지 무보수로 일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축협 사무총장은 감독이 협회에 대한 불만을 성명서라는 형식으로 발표한 것은 초유의 일이며 이는 협회에 대한 명백한 항명이라고 규정했고, 전무이사는 항명을 한 박감독의 경우 그만둘 각오를 했어야 한다고 했다. 또한 협회가 직무정지를 결정할 수도 있다는 반응을 보이며 박감독의 자진사퇴 또는 협회차원의 경질 가능성을 시사했다.
사실 일부 기술위원들이 "박감독은 히딩크 감독의 벤치 착석 문제 등을 겪으면서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을 뿐"이라고 말한 것처럼, 이 사건은 표면적으로는 박감독이 월급문제로 불만을 표명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 있었다.
지도자의 리더십은 표면에 나타난 현상 이면에 감춰져 있는 내면의 진실을 읽는 능력에 달려 있다.
표면적으로 나타난 돈 문제부터 보자. 협회는 월1500만원에 해당하는 연봉 1억8천만원을 제시했으나 박감독의 입장에서는 월드컵 4강 신화를 일궈내기까지 고생을 했고, 국내 프로축구팀 감독들이 보통 월 2천5백만원을 받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자신의 가치를 그에 걸맞게 인정해 달라는 '자존심'이 문제의 본질이었다. 그래서 그는 월 2천만원을 제안했다고 알려져 있다. 사실 한국 축구는 히딩크가 월드컵팀의 사령탑이란 직무를 잘 해내도록 100 억원이라는 천문학적 비용을 급여 훈련비 포상비의 명목으로 제공했으며, 그가 편히 그리고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원하는 지원 스탭을 다 가질 수 있도록 도와 주었었다.
그것은 차범근 전 감독처럼 자신이 맡을 대표팀 선수 선발 회의장 밖에서 서성거려야만 했고, 지원해줄 기술인력들이 없어 혼자서 자료수집하고, 정리하고, 작전 짜고, 선수 훈련까지 혼자서 다 할 수밖에 없던 것에 비하면 전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한 일간신문 논설위원의 말처럼 이처럼 과거에는 상상도 못한 지원을 받고도 히딩크 감독이 좋지 않은 성적을 냈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했을 것이다.
결국 그 다음날, 국내 최대 부수를 자랑하는 주요 일간지의 사설에까지 이 사건은 “박항서 감독의 "이유있는 반발”이란 제목으로 보도되었다. 그의 돌출발언 시기나 방법은 신중하지 못했음을 지적하면서도, 신문의 사설은 협회측의 책임 부분도 함께 다뤘다.
그 신문의 인터넷 게시판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참 좋은 지적이었다는 글도 올라왔지만, 축구협회와 관련된 대통령 후보 정몽준과 이회창측과의 보이지 않는 정치적 대립으로 보는 이들의 욕설까지 실로 기가 막힐 정도의 논쟁(인터넷에서의 논쟁은 항상 비이성적이라, 실은 논쟁이 아니라 각목 없는 격투전이다)이 벌어졌다.
어떤 교회에 인재가 남고 어떤 교회에서 인재가 떠나는가?
나는 이 번 박감독 사건 자체에 대해 언급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이유는 끊임없이 히딩크에 집착하고 히딩크를 이용하려는 것은 축구협회에 관련된 대통령 후보와 관련이 있다는 음모론 주장자나, 또 다시 옛 근성을 드러낸 축협의 조전무를 먼저 퇴출시켜야 한다며 축협은 말 그대로 소나 돼지나 키우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에 의해 공격을 당할까 염려되는 바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 쪽은 내 전문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목사로서 이 문제를 통해 지도자를 세우는 교회가 되려면 어떠해야 하는 가를 독자와 함께 생각해 보고 싶다.
언급한 신문의 사설이 지적한 것은 첫 째로, 한국축구가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후 국가대표팀 감독 선정을 놓고 협회의 태도가 불투명했으며 미래의 리더십에 대한 청사진 제시도 없었다는 점이다. 필자도 한국축구가 승승장구하여 16강에 진입하고 8강에 들 때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다들 히딩크 히딩크 하며 대통령 후보로 보내자, 희동구란 이름을 주고 주민증을 만들어 귀화시키자는 소리까지 하지만, 그는 갈 사람이다. 그가 떠난 후도 생각해야 한다. 그가 떠나고 나면 누구를 세울지, 차기 지도자에 대한 생각은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또 다른 사람을 사오면 되냐? 왜 우리를 책임질 지도자를 우리 가운데서 세우지 못하는가?”
모두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목회에만 관심이 있다. 그래서 ‘사람이 모이는 교회, 사람이 떠나는 교회’란 제목으로 얘기하면 다들 더 큰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인물을 키우는 교회, 지도자가 떠나는 교회’라는 주제로 얘기한다면 별로 관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의 교회에 사람이 아무리 많이 몰려와도, 오늘 불시에 주께서 내 영혼을 찾겠다고 하시면 우리의 교회는 어떻게 되겠는가? 그리고 차기 지도자를, 인물을 세우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런 사람을 온전한 지도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다 책임지시고, 지도자는 하나님이 세우신다는 소리는 매우 무책임한 말일 뿐 아니라, 지도자로서 할 말이 아니다. 지도자는 사람을 세우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들게 수십년 간 기도와 눈물로 세운 교회가 퇴임 후 몇 년 지나지 않아 후임목사와 전임 지도자를 모시던 장로들 간의 갈등, 후임목사와 위임목사의 갈등, 신임목사와 성도간의 비전의 차이로 인해 갈등을 겪고 찢어지는 아픔을 타산지석으로 삼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박감독의 경우, 히딩크 감독과 2년 뒤 대표팀 감독 우선 협상권 계약을 체결한 상황에서 국내파 감독이기에 과도체제에 임시대우를 하는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히딩크 감독 등과 계약할 때는 국제 관례에 따라 모든 조건들에 합의를 본 뒤 발표해 놓고, 국내 감독을 선임할 때는 "일단 뽑아 놓은 뒤 연봉 등을 결정한다"는 발상, 게다가 대표팀 감독은 명예직인데 어디 신성한 스포츠계에서 연봉과 돈을 운운하느냐는 생각은 당사자에게는 이중적 잣대로 비취고 자괴감 마저 들게 했을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교회에서도 "너는 내가 키웠고 길러줘서 여기까지 왔으니 앞으로도 충성하며 보은해야 된다, 목회는 감사함으로 섬기면 되지 사역자가 웬 사례비 얘기냐", 교회에서 계속 일해온 사람은 박봉이고 외부에서 데려온 사람만 특별 대접을 한다면- 어느 날 갑자기 “목사님,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새로운 사역의 비전이 있어서요... (그만 둬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교회에 불만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닙니다.”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게다가 가뜩이나 인물난에 허덕이는 교계에서 유능한 사람을 내버려 둘 리도 없다.
목사는 돈 때문에 일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 한가지는 박감독의 ‘연봉은 내 마지막 자존심이었다’는 말처럼, 대우는 자신의 헌신과 희생과 능력에 대한 평가로 여겨진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사역자라도 하나님에 대한 섬김과 교회에 대한 봉사와 복음에 대한 열정만으로 일하는 것은, 생각보다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아무리 뜨거운 가슴을 가진 선교사라도 몇 년간 먹고사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면 그 사역이 장기적으로 제대로 되기를 기대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 목회자를 신앙이 없고 돈 냄새를 풍기는 속물로 여기는 사람이 오히려 리더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지도자이다. 뒷굼치를 들고 까치발을 서는 것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요즘 젊은 것들은 왜 그 모냥이냐?”고 혀를 차겠지만, 내가 들어본 당사자들의 대답은 생각보다 참으로 간단했다. 그것은 “여기만 아니라, 다른 교회 가서 섬겨도 하나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지혜로운 지도자는 이런 부분을 돈 문제가 아니라, 인재의 사기와 가치 인정의 문제로 본다.
그리고 또 한가지 분명한 것은, 돈 몇 푼 올려준다고 위대한 일군은 교회에 붙어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 사람은 보람과 일에 대한 가치로 일하기 때문이다. 기여할 일을 줘야 능력 있는 자는 일한다. 특히 복음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은 더 높고 고귀한 가치가 있는, 헌신을 해도 보람이 있는 일을 할수만 있다면 (오래는 못 간다해도) 물불을 가리지 않을 사람들이란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지도자는 일꾼들에게 보람있게 기여할만한 일을 찾아 주는 사람이란 얘기다.
또한 박감독 사건을 통해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 중에 주목해 봐야할 사항은, ‘히딩크 감독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의존과 함께, 전근대적인 행정과 비민주주의적 의사결정 구조’이다.
놓친 대어, 떠나버린 사람에 대한 미련을 계속 보이는 경우 현재 손 안의 고기는 다 피라미로 보여 값어치 없고 쓰잘데기 없게 느껴진다. 문제는 그런 마음은 드러나기 마련이라, 현재 나와 함께 일해야 할 일군들은 지도자가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느껴 더 이상 충성스럽게 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일꾼들로 하여금 “어차피 나간 히딩크만 찾는다면, 나는 무엇인가? 그럼 나를 인정해 주는 곳으로 가지 뭐”라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것도 지도자다.
인재를 데려오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인재를 유지하는 일
인재는 영입하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이 훨씬 어려운 법이다. 남의 사람 귀히 여기는 것의 반만 해도, 내 손안의 사람을 잃는 일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인재를 보유하고 있는 것은 뽑는 것보다 더 중요한 지도자의 몫이다. 교회는 능력으로 일하는 데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핵심 인력 한 사람이 평범한 사역자 10명의 몫을 한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조만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런 유능한 사람들을 내 곁에 남겨 놓을 수 있다면 당신은 훌륭한 지도자이다. 내가 아는 목사님 한 사람은 그 사역이 매우 효과적이고 그 사역의 열매가 날이 갈수록 가속이 붙어가고 있다. 물론 그 분도 뛰어나지만, 중요한 점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그는 매우 좋은 동역자 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 뛰어난 일군들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들의 능력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붉은 악마들이 히딩크에게 했던 말을 하면 된다.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능력있는 지도자일수록 전근대적 행정, 비효율적 행동 유형, 비민주적 의사결정 구조 등을 차마 보지 못한다. 관리자는 조직에 익숙한 사람이지만, 지도자들은 원래 조직에 적응하기 보다는 혁신을 꿈꾸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불합리하거나 비효율적 사역 방식을 개혁하고자 하는 성향이 강하다. 이 때 그들을 부정적이라고 몰아대면 그들은 두 가지 반응 중 하나를 보일 것이다. 입을 다물고 조직에 순응하며 관리자로 남든지, 아니면 그 곳을 떠나 지도자로서 창조적이고 보람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땅을 찾아 떠나든지... 지도자는 그런 떠나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전에 간파하여, 적절히 컨트롤하여 다듬기도 하고 키워주기도 한다. 내치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그냥 품고 있기에는 너무 뜨거운 화로불로 만들지 말라. 그들을 적절히 쓰지 못한다면, 터져 버리든지 불이 꺼지든지 사건이 일어난다. 그래서 리더의 자리가 어려운 것이리라...
그리고 이번에 히딩크를 남북축구 때 박감독과 사전 협의도 없이 위에서 벤치 상석에 앉힌 것은 현장과 관계없는 윗자리 분들만이 할 수 있는 전형적인 비민주적 의사결정 구조의 산물이었다. 나는 박감독이 얼마나 뛰어난 감독인지는 잘 모른다. 지금 그것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국민 대다수가 히딩크를 연호한다고 세상의 요구를 따르거나, 현재 임명해 놓은 팀 감독이 두 눈을 뜨고 멀쩡히 있는데 그를 무시하고 다른 사람을 (게다가 이전 사람을!) 데려다가 벤치에 앉히는 것은 지혜로운 결정일 수가 없다.
지도자의 자리가 어려운 것은, 온 국민이 혹은 전 교인이좋아한다고 그들이 원하는대로 다 따를 수 없다는 데에 있다. 국민의 성원을 바라며 그렇게 행동하는 지도자는 조만간 포퓰리즘에 빠진 자라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특히 목사는 교인들의 필요에 민감해야 하나, 교인들이 원한다고 사탕과 초콜렛만 줄 것이 아니라 때로는 딱딱한 음식도 줘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요구다. 그것이 자녀를 건강하게 성숙시키려는 참 부모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 때 백성들로부터 잠시 원망을 듣기도 하지만 앞서 가는 자로서, 미래를 내다보고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할 도리를 다하는 것이 지도자이다. 따라서 성도들 앞에 목회 지도자를 세울 때는, 온 교인이 다 원하는 팝콘 장사를 세울 것인지 옥수수를 내놓을 수 있는 농부를 세울 것인지 결정해야 할 것이다.
자고로, 인재 손실을 새 사람으로 메꾸려면 훨씬 많은 것을 지불해야 한다. 현재 인물을 동일한 조건의 사람을 새로 영입해 대치하려면 직접 비용이 20% 이상 올라간다는 통계가 있다. 그 사람이 제대로 일할 때까지 시간을 들이고 주변에서 협조해 주며 들어가는 간접 비용까지 따지면 엄청난 손실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도 대부분의 의사 결정권자들은 비용 문제에 대해 둔감하므로, 인력문제가 생기면 새 사람을 쓰면 되지 않냐며 간단히 생각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최고의 사람 하나가 보통 사람 열 사람보다 낫다
사실 새로운 일꾼을 뽑을 때는 적합한 인물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열명의 평범한 사람을 갖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이 때 적합한 사람이란, 교회의 비전과 맞고 교회의 사역 문화와 어울리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것은 조직 적응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도 필요하고 관리자들이 중시하는 경력과 경험도 필요하며 사역자로서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교회 사역 방향과 맞아야 한다. 또한 관리자보다는 지도자들이 가지고 있는 독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눈여겨봐야 한다. 일단 교회와 사역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적합한 인물,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면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잡아야 한다. 짐 콜린스가 주장하듯이 위대한 지도자는 적합하지 않은 인물을 내려주고 적합한 사람을 태운다. 비록 그것이 힘들어도 버스의 좌석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단 사람을 세우면 그를 신뢰해야 한다.
여자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하지만, 남자는 자신을 믿어주는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말이 있다.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지도자를 위해 일할 사람은 없다. 본심은 자신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파한 바로 그 때부터는 사람들은 다만 월급을 위해 일한다. 신뢰한다는 말은 그를 진실하게 대하고, 그를 이해하려고 애쓰며 관심을 보이고 맡겨진 일을 할 수 있도록 권한을 위임하고 재량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지도자 자신이 때로 손해 보는 것 같고, 자신의 위치가 흔들려 보이기도 하지만, 교인들과 아랫사람은 그렇게 행동하는 지도자를 결국 더 존경한다.
그럼, 언제 밖에서 인재 수입을 할 것인가?
수입품 인재가 필요할 때는 위기 상황에서 긴급한 조치가 필요할 때이다. 죽어가는 기업을 정리하고 쇄신이 필요할 때라면 잠시 외부 영입이 가능하나, 그렇게 해서 현 상태를 오래 유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면 어리석을 뿐 아니라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의심받게 될 것이다. 전시라면 용병을 사오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만, 평상시에는 안에서 장군을 길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용병은 전문가나 외인부대 사병으로는 쓸수 있지만, 국방부 장관이나 대통령을 다른 나라에서 데려다 쓸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인재를 키우는 교회를 만들라. 그것이 지도자의 가장 큰 소명이요 보람이다. 건축을 하고, 각종 굵직굵직한 사역을 하면서도 동시에 대가도 조건도 없이 사람을 키우는 교회를 보았다. 국내외 똑똑한 신학생들은 물론, 신학 전공이 아니더라도 한국 사회를 빛낼 수 있는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박사과정 학생들을 지원하는 교회도 보았다. 거기서 인물이 나온다. 한국 교회의 미래와 이 사회의 미래가 그들에 달려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일군을 키우는 고귀한 인큐베이터가 되어야 한다.
목회리더십연구소장
기독신학대학원 실천신학 교수
김덕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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