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27일 주일 묵상
<1:1>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1: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1:3>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1: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1:5>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1:6>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1:7>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1:8>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1: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1:10>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1:11>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
(본문 해석)
11월 27일 주일 전도서 1:1~11
1절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의 왕 코헬렛의 말들이라는 표제어로 시작한다. 전도서는 코헬렛의 말들이다. 또 전도서는 하나의 연설이다. 코헬렛이란 우리 말로 도를 전하는 자로 번역되는데, ‘불러 모으다’라는 어원에서 파생된 단어로, 사람들의 회합을 주도하고 그 모임에서 발언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2~4절
2절 헛되다라는 말은 헤벨이라는 단어인데, 숨, 입김, 안개, 이슬 등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헛되다, 무의미하다. 쓸모없다 등은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부차적인 파생 의미다. 전도서에서 이 헤벨이라는 단어는 일차적이고 구체적인 의미(잠깐 있다 사라지는 것)와 부차적이며 추상적인 의미(헛되다, 무의미하다)가 복합적으로 혹은 중의적으로 쓰인다. 전도서의 독자는 각각의 경우에 헤벨의 어떤 의미가 강조되고 있는지를 문맥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 모든 것들은 헤벨, 잠시 보이다 사라지는 안개이고, 무의미하며 허탄한 것이고, 순간적인 것이며 이해하기 힘든 것일 뿐 아니라 모순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다 포괄하는 단어는 헤벨이다. 3절 해 아래서 하는 모든 수고 가운데 사람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인가? 라고 번역할 수 있다. 해 아래는 인간이 살고 있는 세상 속에서 인간의 수고를 통하여서 인간의 살아 있음의 근원적인 유익인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여기서 유익은 아주 긴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 정하신 패턴에 변화를 줄 수 있을 만한 ‘남기는 것’을 뜻한다. 4절 전도자는 인간 세대의 죽음과 탄생이 반복된다고 하더라도 땅은 그대로 있다고 한다. ‘가다, 오다’, 라는 표현은 반복되고 지속되는 상태를 표현한다. 간다는 것은 죽음이고, 오다라는 것은 출생을 의미한다. 가면 다시 오지 않는 인간의 삶을 말함으로써 인간의 무상성을 드러낸다. 이와는 달리 땅은 영원히 지속된다.
5~8절
5절 태양의 움직임은 마치 아침에 떠올라서 해가 지면 다시 그 본래의 위치로 급히 되돌아가는 모습이다. 일차적으로 태양의 반복성과 순환성을 강조한다. 이것은 쉼 없이 움직여야 하는 태양의 모습과 인간의 수고하는 모습이 서로 유사하다는 암시가 깔려 있다. 6절 바람이 남쪽으로 불다가 북쪽으로 돌아가고 이리 돌며 저리 돌아서 궁극적으로 그 불던 위치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바람이 부는 데에도 어떤 순환성이 있다는 말이다. 바람은 끊임없이 불고 있을 뿐 새로운 것은 찾을 수 없다. 7절 강물은 바다를 향해 흘러 들어간다. 그런데 바다는 강물로 인해 넘치는 적이 없다. 채워지지 않는 바다의 심상을 부각시켜 강물이 흘러감의 무상함을 표현하고자 의도한 것이다. 바다가 다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강물의 입장에서는 얻은 것이 없다는 논리가 된다. 8절 만물이 지치고 피곤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패턴이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음을 가리킨다. 다르게 말하면 쉼 없이 움직이는 우주의 사건들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는 뜻도 된다. 눈은 보아도 만족하지 않으며 귀는 들어도 차지 않는다는 것은 사물을 인지하는 시각과 청각이 인간의 욕망을 만족시킬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9~11절
9절 해 아래 새것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 때부터 정하신 패턴이 어떠한 변화도 없이 계속 반복된다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즉 과거는 정확하게 미래에도 재현되고 현재에도 발생하고 있는 일이다. 10절 혹자는 ‘봐 새로운 것이 있잖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지만 전도자의 관점에서는 새것이란 없고, 이미 오래전에 있었던 것이다. 실질적으로 새로운 것이란 이 세상에 없다. 역사는 단순히 반복될 뿐이다. 11절 전도자는 ‘기억됨이 없으니’라는 표현으로 구약의 주류적인 지혜와는 결이 다른 지혜를 말한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의 패턴은 변하지 않기에, 이 오래된 패턴에 잠시 머물다 가는 인간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다스림에 영향을 끼칠 만한 새로운 것이나 기억될만한 것을 남기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