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뜻 안에서 우리를 훈육하시는 친아빠 하느님
"내 아들아, 주님의 훈육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을 받아도 낙심하지 마라. 주님께서는 사랑을 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뎌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 아버지에게서 훈육을 받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모든 자녀가 다 받는 훈육을 받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사생아이지 자녀가 아닙니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우리를 훈육하시는 육신의 아버지가 계셨고 우리는 그러한 아버지를 공경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영적 아버지께는 더욱 순종하여 그 결과로 생명을 얻어야하지 않겠습니까? 육신의 아버지들은 자기들의 생각대로 우리를 잠깐 흔육하였지만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유익하도록 훈육하시어 우리가 당신의 거룩함에 동참할 수 있게 해주십니다.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히브 12, 5~11)"
어느 아버지에게 너무도 귀엽고 아름다운 스물 세살 먹은 무남독녀가 있었다. 아버지는 이 딸을 보는 재미로 회사일이 끝나면 바로 들어오고 딸이 너무 귀여워서 어쩔 줄을 모를만큼 외동딸을 사랑하였다. 그런데 일이 터졌다. 그렇게 믿었던 딸이 새벽 1시에 집에 들어온 것이다. 걱정이 되어서 잠을 자지 않고 기다렸던 아버지는 외동딸에게 소리를 치며 훈육하였다.
"너 이년! 한 번만 더 늦게 들어오면 다리 몽둥이를 끊어버리겠다!"
너무도 사랑하는 딸이지만 딸의 앞날을 생각하며 아버지는 화를 내고 분노했던 것이다. 이 아버지의 분노는 큰 사랑인 것이다.
하늘의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염둥이 (공동번역 이사 43, 4),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내 아들이다 (마르 1, 11)"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구원의 길을 벗어나 멸망으로 가는 것을 보시면 분노하시고 훈육하시는 분이 우리 천상의 친아빠이시다.
육신의 아버지의 외동딸은 한동안 잘지내며 한동안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을 받고 잘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그 딸은 또 유혹에 빠져 새벽 2시에 들어왔다. 육신의 아버지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딸을 위해 회초리를 들었다. 딸에게 장딴지를 드러내라고 하고 피가 날 때까지 때렸다. 딸은 서운하고 슬펐지만 어찌할 수가 없었다. 육신의 아버지는 외동딸을 품에 안고 일곱 배의 사랑으로 감싸주며 말하였다.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매를 든 것이다. 네가 잘못된 길을 가면 이 아버지가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느냐."
딸은 회개하고 참사랑을 주신 아버지께 감사하며 잘 지내다가 좋은 곳에 시집을 가서 잘 살았다고 합니다.
하느님 친아빠께서도 여러 번 잘못된 길을 가게 되면 훈육 차원에서 고통의 도가니에서 정화, 성화시키십니다. 우리도 하느님 친아빠께서 채찍질하시고 훈육을 시키실 때 슬픔이 있지만 잘 극복하고 하느님 친아빠께 신뢰, 의탁하고 참회개를 통해 정화, 성화되고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맺으며 영원한 생명의 길로 가도록 합시다.
하느님 친아빠께 이렇게 기도합시다.
하느님 뜻 안에서 친아빠 하느님, 뜨겁게 사랑합니다.
하느님 뜻 안에서 사랑해요 하느님 아빠, 저희를 보호하시고 구원하소서.
하느님 뜻 안에서 사랑해요 하느님아빠, 저희 마음에 사랑의 불을 놓으소서.
하느님 뜻 안에서 사랑해요 하는님아빠, 저희를 회개, 치유, 정화, 성화, 구원시켜 주소서.
첫댓글 임자라는 말 뜻을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요?
하느님의 뜻 안에서, 임자라는 뜻에 대해 먼저 올리신 글의 링크를 드립니다.
하느님 뜻 안에서 복되신 어머니의 특별한 축복을 건네어 드립니다.
https://cafe.daum.net/DivineVolition/A3fr/254
하느님 뜻 안에서 성삼위 하느님은
우리 모두의 임자(남편)이시며 아빠이시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날에는 네가 더 이상 나를 “내 바알!”이라 부르지 않고
“내 남편!“이라 부르리라』 (호세 2, 18)
『너를 만드신 분이 “너의 남편” 그 이름 만군의 주님이시다』 (이사 54, 5)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는 하느님을 「임자」라고 불렀습니다.
- 성 아오스딩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연인관계라고 하였습니다.
「님」 위해 우리를 내시었기에 「님」안에 쉬기까지는 우리 마음이 찹찹하지 않습니다.
@코스모스 잘 설명해 주셔서 이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의뜻안에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