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 대해 알고 싶은 일곱 가지 것들7 things I want to know about arts 2009_0608 ▶ 2009_0719 / 주말,공휴일 휴관
초대일시_2009_0608_월요일_03:00pm 참여작가 고명근_구만재_김영옥_김태근_김창훈_박홍기_송영화_신수용 이재삼_정동현_차기율_차종례_한원석_홍승표_홍지윤 주최_이천시_(사)한국공간환경디자인학회(SEDIK) 주관_(사)한국미술협회 이천지부 후원_mbn매일경제TV_CA Press 월간 MARU_월간 CONCEPTㆍCA 전시 디렉터_정형탁(전시/출판 기획자) 디자인 디렉터_김용삼(월간 MARU 편집국장)_안정원(MARU 기획이사) 기획 / 자문위원_신홍경((사)한국공간환경디자인학회 회장, 경원대학교 실내건축학과 교수) 문정묵(상명대학교 디자인대학 교수)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주말,공휴일 휴관 이천 아트홀_ICHEON ART HALL 경기도 이천시 부악로 10(중리동 432) Tel. +82.31.644.2100 www.artic.or.kr 따로 같이-commune과 utopia ● 그는 ‘중앙’과 가까운 사람 항상 그는 그것을 ‘중앙’에 보고하겠소. 그것을 ‘중앙’이 주시하고 있소. 그것은 ‘중앙’이 금지했소. 그것은 ‘중앙’이 좋아하지 않소. 그것은 ‘중앙’과 노선이 다르오. 라고 말한다 … / 우리가 사는 곳에서 아주 먼 곳에 ‘중앙’은 있다고, 명령은 우리가 근접할 수 없는 아주 높은 곳에서부터 온다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이번 근무가 끝나고, 나도 ‘중앙’으로 간다고, 그는 꿈꾼다. …(장정일의 『‘중앙’과 나』중) 이천은 쌀로 유명하다. 위로 서울과 아래로 충주로 이어지는 3번 국도 좌우에는 여기저기 이천쌀밥을 간판으로 내건 집이 많다. 그런데 도농복합형 도시라는 또다른 도시 아이덴티티를 내세운다. 도농복합형 도시? 도시와 농촌의 삶이 반반씩 뒤섞인? 아니면 도시적 삶을 농촌에서 영위하는? 아니면 농사나 과일을 짓지만 늘 도시적 삶을 지향하는? 분명 도시와 농촌이 공존(coexistence)하는 형태를 말함임에도 방점이 ‘도시’에 찍힘으로 이천(의 문화적 지향점)은 도시를 지향한다. 그리고 이 지향점은 지방의 모든 다른 도시들도 그렇듯 서울일터다. “신은 시골을 만들었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고 한 영국 시인의 말처럼 시골(농촌)은 건강함과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도시의 황폐함과 번잡함을 시골이 메워주는 건 일견 맞다. 그런데 여기서 말한 시골은 영어로 country쯤 될 터다. 소위 1차 산업이랄 수 있는 농업이나 임업 등에 기반을 둔 시골을 말한 것일 게다. 하지만 도농복합형에서 말하는 시골(농촌)은 country보다는 교외, 도시의 외곽에 해당되는 것처럼 보인다. 영어로 outskirt나 suburb정도의 뉘앙스를 풍긴다. 부와 독립을 부여받은 거대도시 사람들이 자기만의 배타적인 공간을 짓고 전원생활을 누리는 교외의 냄새가 난다는 말이다. 이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전원생활은 사실 공동체적 삶을 누리고자 하는 게 아니라 배제와 절연의 공간 속에서 자신만의 삶을 누려보고자 하는 셈이기도 하다. 도시인들이 돈을 모아 자기들만의 전원공동체를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서 이중의 절연과 배타적인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루이스 멈포드는 교외지역을 “사적인 삶을 영위하려는 집합적 노력”으로 표현했다.
거대도시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농촌에서 또다시 자발적 소외를 통해 유토피아라는 꿈을 꾼다. 이러한 자발적인 절연과 배제가 농촌의 공동체적인 삶과 어울릴 수 있을까? 자연이나 이웃과 조화를 이루면서 도시적 삶을 사는 삶의 방식은 어떤 것일까? 그게 가능하다면 말이다. 유토피아의 고결한 오지가 삶의 눅눅함이 베인 땅과 조화롭게 절합(articulation)할 수 있을까? 이 두 개의 이질적인 항목 가운데 예술이 위치한다며 또 어떨까? 개별 주체로서 당당히 창조적 삶을 살아가게 하는 무언가를 던져주는 예술, 공동체적 합의까지 아니더라도 세상과 올바른 관계 맺기의 단추를 꿰는 작은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예술을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공동체와 유토피아라는 어울리지 않는 동거가 예술을 통해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사용가능한 과거-regeneration ● 앞서 이야기한 도시와 농촌의 문제는 사실 중심과 주변, 중앙과 변두리, 서울과 지방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순수/응용예술, 하이/로우, 예술성/대중성의 간극과 차이만큼 비슷한 논리를 갖는다. 이를 좀 더 확장하면 행위와 구조, 개인의 실존적 차원과 계급의 사회적 차원까지 논리를 확장할 수도 있겠다. 모름지기 중심이란 주변이나 모서리 없이 성립불가능한 개념인 것처럼 위에서 나열한 모든 이분항들은 서로간 간섭하고 삼투한다. 20세기 초 모더니즘의 실험정신과 아방가르드의 혁신성은 형식 실험과 비판을 통해 미술내적으로 성공했을지라도 그 대가로 대중들을 잃었다. 대중을 잃은 순수는 미술관이라는 화이트큐브 안에서 세상을 스스로 배제시켰다. 대중들은 삶과 유리된 예술품을 보러 미술관에 가지만 그건 삶을 괄호한 후에 얻어지는 것들이었다. 삶을 괄호하는 건 이데올로기, 철학, 편견일 수 있지만 일상생활 자체와 동떨어진 관념의 부스러기 같은 것이기도 하다. 오히려 삶에서 너무 멀어진 예술은 오히려 삶을 더 물화시킨다.
이천아트홀 개막전인 『미술에 대해 알고 싶은 7가지 것들』은 과거에서 교훈을 얻고자 했다. 그건 아방가르디즘이라는 실험성(예술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다. ‘7가지 장르가 다른 파인아트의 작가와 7명의 다른 재료와 아이디어를 가진 공간디자이너들이 서로 만나서 이루어내는 예술이야기’정도로 이 전시는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7개의 새로운 무언가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건 순수한 예술이 아니고 예쁜 공간 디자인이 아니다. 파인아트의 시각성, 청각성이 구축된 공간 속에서 새로운 장르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새로운 장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re+gener+ation! 공간은 총 7개로 나뉜다. 퓨전동양화가로 알려진 홍지윤의 색채와 율동이 넘실대는 작품은 구만재의 책등이 펼쳐진 구조물 속에 삽입된다. 레이어가 있는 책장 속에 관객은 들어갈 수 있다. 목탄으로 흑백 풍경을 그리는 이재삼의 저 너머 공간에 대한 상상은 건축가 정동현의 두 공간으로 구획된 현실과 유토피아의 상징물로 표현된다. 생명과 순환을 화두로 하는 설치작가 차기율의 설치 작품엔 유약한 시각성과 촉각성이 도드라진 모호한 경계로 서있는 김영옥의 구조물이 씌워진다. 몸뚱어리를 통해 거세된 정체성이 드러나는 송영화의 도예 인물상은 익명과 소외의 구축물인 격자의 프레임를 제안한 홍승표의 설치물 속에서 유영한다. 공간의 습기를 머금고 있는 고명근의 건축적 입체 사진을 박홍기는 미로 형태의 투과되는 구조물로 제안함으로써 실제 작품 감상이 사실은 작품 속에 관람자가 참여하는 것임을 암시한다. 중첩과 반복적 이미지 구축을 해 온 한원석의 설치는 김태훈과 김창훈의 뛰어난 소리 생산자의 종이로 만든 대나무 관을 통해 공감각적 이미지를 보여준다. 생명의 호흡이 느껴지는 차종례의 나무 조각은 시각적으로 미니멀하고 차가운 공간이지만 생명의 속을 들여다보는 구조물로 제안한 신수용의 설치물 속에 숨겨있다. 일곱의 작품들은 애초에 음식, 똥, 몸, 영혼, 개인, 자유, 의식으로 제안했다. 그러나 실제 작품들이 이 개념에 온전히 맞진 않다. 제안한 이 7개의 물질성(음식, 똥, 몸)과 정신성(영혼, 개인, 자유, 의식)은 한 사람이 세상에 나서 온전한 주체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필수 성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후자의 정신성은 프랑스 철학자 미셀 옹프레가 근대 서구의 지혜를 완성시킨 네 기둥이라고 평가한 것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옹프레는 이 네 가지 요소가 서구의 주체적 개인주의를 완성했다고 보는 것이다. ‘주체적 개인주의’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이룩되어야 할 개념이라고 필자는 본다. 좀더 깊은 논의는 여기선 생략함.) 개인주의의 완성이 천재 예술가라는 아우라도 덧씌웠다. 오늘날 주체적 개인은 천의무봉의 개인이 아니라 삶 속에서 지지고 볶는 개인이다. ● 7개의 방(공간)을 거닐면서 잠시 침묵하게 될 것이고, 소리를 듣게 될 것이고, 보게 될 것이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당신의 이웃이었던, 오랜, 현대미술이 건네는 말에 여러분도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자신을 포함하여 세상의 모든 존재의 의미를 묻는 것이다. 세계와의 연관을 묻는 일, 그게 종교와 철학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예술의 영역이기도 하다. ■ 정형탁
■ 전시구성 색채 mono spectrum 구만재(르씨지엠 대표)+홍지윤(한국화, 설치, 영상) 허약한 경계 inner scape 김영옥(로담건축 대표)+차기율(설치) 소통공간 MessageㆍPassage 홍승표(디자인인퍼 대표)+송영화(도예) 숨 psyche 신수용(온리포닥 실장)+차종례(조각) 개인 individual 박홍기(영조주택 상무)+고명근(사진) 여기 topos 정동현(건축가)+이재삼(회화) 숭고 sublime 한원석(건축가)+김태근/김창훈(사운드 아티스트) Vol.20090608g | 미술에 대해 알고 싶은 일곱 가지 것들展 |
출처: 차기율 작업일지 원문보기 글쓴이: 차기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