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관의 원로 사학자 박성수 교수,
고려 중기 이후 끊어졌던 단군의 맥을 700년만에 이은 홍암 나 철 평전
『독립운동의 아버지, 나 철』출간!
-선비에서 독립운동가로, 그리고 단군교를 중광한 홍암 나 철, 그는 왜 단군을 만났고 단군으로부터 무엇을 얻었을까?
-한국 독립운동사의 원조요 독립운동의 화신, 독립운동의 선각자, 독립운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홍암 나 철이 잊혀진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한국독립운동사의 석학, 박성수 교수가 꼽은 “근현대 1백년 역사에 끼친 영향력이 크면서 기억해야 할 인물 1위” 홍암 나 철 평전.
-독립운동 속에서 실패와 좌절을 거듭했던 나 철이 단군을 어떻게 만났고, 그가 희망했던 민족의 미래는 무엇이었던가 찾아 나서는 역사탐험
-국내 주요 단체에서 주목한 추천 필독서
■민족사연구원 ■대한상고사학회
■(사)한배달 ■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사)현정회 ■국학연구소
■대종교 총본사 ■(사)단군정신선양회
왜 이 시기에 나 철인가?
100여 년 전 일제의 식민전쟁에 맞서 우리에겐 40년 독립전쟁의 방향을 이끈 민족지도자요, 독립운동가가 있었다. 바로 그가 나 철이다.
그런데 우리가 익히 아는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맨 앞자리에 그가 서있음에도 역사가들은 외면하고 있다. 왜 그랬을까? '한국 독립운동사의 석학' 박성수 교수가 주목한 나 철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첫째, 그는 오로지 일제의 침략야욕을 분쇄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 독립운동의 아버지였다. 무릇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은 전쟁, 외교, 의열, 정신문화운동 그리고 자결 순국이라는 여러 방법으로 전개되었다. 나 철은 이 모든 방법을 다 써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니, 가히 독립운동의 화신이요, 선각자요, 아버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일제는 나 철이 대종교를 중광하자 철저한 탄압정책을 펴게 된다. 그 이유는 "국조 단군을 숭봉하는 교단으로 민족의식을 환기하고 일반 대중으로 하여금 일본에 저항하게 만드는 위험 단체"였기 때문이었다. 대종교의 지도자인 나 철이 역사에서 멀어지는 이유 중의 하나다.
셋째, 독립운동사에 등장하는 독립운동가들은 대부분이 대종교 신자였고 대종교를 통해 독립정신이 우러나올 수 있었다. 일제 암흑기에 대종교는 만주를 중심으로 항일 독립운동의 모체가 되어 10만여 명의 순교, 순국자를 냈다.
그렇다면 박성수 교수는 1백년 전 인물인 나 철을 끄집어내어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그것은 오늘날 우리의 처지가 1백년 전 역사와 동일선상에 있다는 역사인식 때문이다. 곧 구한말 러시아, 청, 미, 영, 일에 둘러싸여 결국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역사적 사실과 현재의 6자 회담 개최 등 한반도 위기에 관한 진단에서 비롯된다.
역사의 전과기록자 일본이 한반도 분단의 원초적 주범!
역사란 「과거사가 아니라 미래사」임을 다시 한번 증명하는 사례가 바로 일본에 의한 한반도 분할안이다.
일본의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 직전 명나라에 대동강을 경계로 한 한반도 분할 지배안을 제안한다. 이러한 일본의 한반도 분할안은 훗날 러일전쟁 때 러시아에 다시 제안되고, 그리고 오늘날 미국과 소련에 의한 한반도 분단이라는 현실을 만들어 내게 된다. 그렇다고 명나라나 러시아가 일본의 제안을 거부한 것은 우리를 어여삐 여겨서 그런 것일까? 오히려 그들은 한반도를 다 먹을 수 있었고, 그럴 자신이 있어서 일본의 제안을 거절했을 뿐이었다. 이렇듯 일본의 역사적 전과 기록은 결코 한 시대에 끝나는 것이 아니고 되풀이되고 있음을 우리에게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박교수는 "민족정신이 있고 없음의 차이가 나라와 민족을 역사의 주인공에서 변방으로 내몰리는 운명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오늘을 일깨우기 위해 역사적 평가가 미진하고, 오히려 묻혀버린 역사의 무명인, 나 철을 조명하는 훌륭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한국독립운동사는 나 철을 첫머리에 놓고 다시 쓰여져야 한다!
이시영이나 박은식, 신채호, 신규식, 김좌진, 주시경 하면 누구나 인정하는 항일 독립운동가이다. 그런데 그들이 대종교 신자였다는 사실을 역사가들이 고의적으로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 철은 물론 나 철과 관련된 모든 인물들의 중요한 정신세계를 빠뜨리고 역사를 기술하는 것은 분명 역사왜곡이다! 그러면 누가 이 같은 역사말살을 시도하였는가?
물론 일제가 첫 주범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다음은 바로 역사가들이다. 대종교를 창시하였다는 이유로 그들은 나 철에 대한 평가를 미루고,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광복 후 대종교가 만주에서 환국하자 이승만은 대종교를 탄압하기 시작한다. 친일 청산이 안된 역사적 과오에서 대종교도 피해자로 부각된 것이다.
나 철의 독립운동은 우리에겐 무엇이었나?
나 철은 항일 독립 외교의 선구자요, 을사오적의 처단을 단행했던 의사요, 단군교를 창시하여 목숨을 바친 종교인이었다. 나 철이 단순한 충신에서 벗어나 독립운동의 정신적 기반, 곧 나라와 겨레를 위해 귀중한 정신적 유산을 남긴 점에서 나라를 세운 공신이상으로, 그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박교수는 주장한다.
곧 나 철은 우리나라 최초로 미국과 일본에 대해 민간 독립외교활동을 펼쳤고, 을사오적을 처단하는 의열투쟁을 벌였다. 그리고 대종교를 창시한 지 3년 만에 30만 명에 이르는 교도를 모아 독립운동의 원동력을 구축했다. 그의 영향을 받은 대종교 신자들은 대한광복단과 조선국권회복단을 조직하여 지하운동을 펼쳤으며, 대동단결선언과 대한독립선언을 통해 3.1운동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또한 신규식 등은 임시정부의 기초를 닦았으며, 서 일, 김좌진, 홍범도, 이범석 등은 독립군을 양성하여 청산리대첩을 이끌었다.
식민사관의 폐해와 민족사관의 지향점도 기술
이 책은 속인 나인영과 단군교를 창시한 이후의 성인 나 철을 구분하여 기술하고 있다.
나인영 시대는 성장과정과 과거급제, 을사조약 체결 당시의 시대적 배경, 민간 독립외교 활동을 다룬다. 나 철 시대는 백봉 도사로부터 단군교 홍보의 뜻을 전달받고 이에 큰 깨달음을 얻어 대종교를 중광하고, 순국까지의 일생과 대종교를 통한 독립운동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일제의 식민사관과 민족사관을 대비하고 역사가들에게 역사해석과 기술에 대한 주의를 환기하고 있다.
생애 내내 일제 침략으로부터 어떻게 나라를 구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행동했던 나 철은 마침내 우리에게 민족 정신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런 인물을 우리가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이제 우리는 나 철에 대한 억울하고 부당한 역사적 평가를 다시 조명하여 재평가하여야 할 것이다.
저자 박성수(한국정신문화원 명예교수)
전북 무주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성균관대학교 문과대 부교수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 대학원 교수를 지냈으며,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실장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부장을 역임하였다. 한국독립운동사 및 상고사 분야에서 일관된 민족사관을 통한 연구, 저술활동으로 많은 후학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현재 민족사연구원 원장과 대한상고사학회 공동대표, 국제평화대학원대학교 총장으로 재임하고 있으며, 국학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주요 저서 및 논문>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1965)
역사학개론(삼영사, 1977)
문화사개론(법문사, 1978)
독립운동사연구(창작과 비평, 1980)
일본 역사 교과서와 한국사의 왜곡(민지사, 1982)
한국독립운동사-남북의 시각(삼광사, 1989)
새로운 한국사(삼광사, 1989)
저상일월(서울신문사, 1993)
한국독립운동사론(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6)
이야기독립운동사(교문사, 1996)
민족정기 선양과 국가발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조선의 부정부패 그 멸망에 이른 역사(규장각, 1999)
정인보의 조선사연구(서원, 2000)
단군문화기행(서원, 2000)
민족정기(보훈교육연구원, 2001)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