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술막 막국수 그 맛처럼
글 德田 이응철(수필가)
-새술막이라, 왜 새술막이지요. 어디서 나온 말일까?
우중(우중)이라 제법 개울물이 흙탕물이다. 농삿꾼들에게 물어보니 아무 쓰잘데 없는 비라고 나무라지만
비가 겁나게 많이 온다고 방송에서 난리치니 왠지 마음은 푸근하기만 하다.
공로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착한 흥부 동겸시인에게 길따리 물따라 연실 지명을 설명하며 마치 문화해설가라도 된 듯 아낌없이 퍼주며 새고개로 달렸다.
-무린개, 솟발이, 무네미(물넘이), 신트랑, 한두루(大坪)와 산골나그네, 삼폿말(삼포) 새고개 마을
새고개 마을이다. 새(鳥)가 아니라 새(間)의 마을임을 앞뒤 지형을 거들먹거리며 설명한다.
도시에서 견디다가 퇴직을 하고 제일 먼저 서둘러 감행한 것이 시골로 옮기기를 실천한 지인의 집에 잠시 들려 개성없는 커피 한잔을 마신다. 집안과 바깥 뜰이 온통 크고 작은 화분들이다. 반색하는 꽃들, 어디 그뿐이랴, 요즘 부쩍 취미가 안마산 골짜기 경매점을 찾더니 징, 꽹가리, 북, 들이 벽에 걸려 분위기가 제법 자아낸다.
굵은 빗줄기가 내리는 새고개 마을은 삼포에서 2킬로 떨어진 곳이다. 드문드문 있던 집들이 우후죽순처럼 새로 들어찬 집들로 환하다.
왜 새술막일까? 바쁜 주인에게 물어보는 동겸시인의 어눌한 말에 주인 아주머니는 전설같은 연유를 꺼낸다.
40년 전통의 새술막 막국수집, 예전 춘천서 원주로 가던 지방관이 다 쓸어지는 주막에서 한잔 술을 들고 술맛이 좋아 새술막(新酒幕)이라고 하라고 일러주어 그 때부터 새술막이 되었단다.
원창고개를 넘어 자리한 새술막막국수집이다. 문막처럼 강가의 막으로 생각한 나의 단견은 크게 빗나갔다. .
모처럼 오랜만에 막국수를 들며 동겸시인의 요즘 행보를 듣는다. 함흥냉면을 좋아하는 나는 모처럼 막국수를 비빔으로 물을 넣지 않고 먹는다. 순메밀 100%- . 춘천 막국수 맛이 어디나 다 거기서 거기가 아니던가!
19세기말 의병들이 일제 강점기 때 벽촌으로 도망와 화전을 일구며 농사를 짓다가 눌러앉아 그 때부터 메밀국수가 성행하게 되었다는 설도 전한다.1935년 김유정 솟에 나오는 글에도 보면 막국수가 등장한다.
-저 건너 산 밑 국수집에서는 아직도 마당의 불이 훤하다.아마 노름꾼둘이 모여 국수를 눌러 먹는 모양이다.
다시 새술막에서 나온다. 동산면과 신동면 경계를 넘는다. 도로치고는 좁은 길로 애마를 몰고 돌아온다.
여름 장맛비처럼 하늘이 훤해지더니 다시 흐려지고 굵은 빗방울이 차창을 때린다. 진흙탕물이 계곡으로 흐르고
여기저기 신록이 우거져 속살을 감춘다.
-아미노산이 풍부하지, 비타민, 칼슘,인산등이 함유되어 소화가 잘 되고 변비에 좋대
-특히 지방간을 녹이는 작용을 하고 코린성분이 들어있어 다이어트로 최근 인기가 높대
동겸 시인과 먹는 막국수 맛은 오랜만이라서인지 참 맛있었다.개운하다. 쫄깃하기도 하다.
오늘은 막국수 맛을 느끼기 위해 다른 감자전, 녹두전, 두부, 돼지보쌈은 일체 외면했다. 뿌리쳤다.
면발이 우동처럼 굵다. 면 백프로라 들기름도 녛고 식초도 넣고 노란 겨자도 뿌린다. 비비는 면발은 붉지만 맵지 않다. 시내서 뚝 떨어진 곳인데 손님이 가득하다. 생전 처음 찾은 새술막 막국수는 그 신비한 이름 때문인지 더 맛이 좋았다. 다변가인 김시인은 주인과 계속되는 대화로 막국수가 우두커니 팔장을 끼고 바라본다. 맛이 실종될 위기이다.
-난 다 먹었네-. 어딘가 다른 집과 완연히 맛이 다르지?
-네? 네!
착한 흥부같은 동겸시인은 차 뒷좌석에서 계속 유년기 때 4형제 중 막내로 요즘과 다르게 동네 애들을 잘
괴롭혔다고 뜬금없이 자백한다. 맞은 애 엄마가 찾아와 동겸이는 이밥을 먹어서 힘이 세서 그런가봐 자꾸 애들을 때려요. 본인도 겸연쩍은지 말에 웃음을 섞는다.
비는 계속 한여름처럼 퍼붓는다. 희한한 날씨다.
대한 불교 조계종 원행 스님이 이미 통일은 시작되었다고 어제 신문지상에서 일갈하더니 기우였나 자꾸 불안해진다. 6천만 동포가 방금 먹은 막국수맛처럼 통일을 입맛다시는데, 일시적인지 훼방을 놓는 것은 누구 때문에 왜일까? 좋은 소식이 이팝나무 하얀 꽃술처럼 주렁주렁 열리길 바랄 뿐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