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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史記 卷 第一
삼국사기 권 제1
輸忠定難靖國贊化同德功臣, 開府儀同三司, 檢校太師. 守太保, 門下侍中, 判尙書吏禮部事
集賢殿太學士, 監修國史. 上柱國致仕臣金富軾奉 宣撰
수충정난정국찬화동덕공신, 개부의동삼사, 검교태사, 수태보, 문하시중, 판상사이례부사
집현전태학사, 감수국사. 상주국으로부터 은퇴한 소신 김부식이 임금의 명령을 받들어 편찬함.
新羅本紀 第一
신라본기 제일
始祖 赫居世居西干 南解次次雄 儒理尼師今 脫解尼師今 婆師尼師今 祇摩尼師今 逸聖
시조 혁거세거서간 남해차차웅 유리이사금 탈해이사금 파사이사금 지마이사금 일성
尼師今
이사금
始祖, 姓朴氏, 諱赫居世, 前漢孝宣帝五鳳原年甲子, 四月丙辰一曰正月十五日, 卽位, 號居西
시조, 성박씨, 휘혁거세, 전한효선제오봉원년갑자, 사월병진일왈정월십오일, 즉위, 호거서
干, 時年十三, 國號徐那伐, 先是, 朝鮮遺民, 分居山谷之間爲六村, 一曰閼川楊山村, 二曰突
간, 시년십삼, 국호서나벌, 선시, 조선유민, 분거산곡지간위육촌, 일왈알천양산촌, 이왈돌
山高墟村, 三曰觜山珍支村或云干珍村, 四曰茂山大樹村, 五曰金山加利村, 六曰明活山高耶村,
산고허촌, 삼왈취산진지촌혹운간진촌, 사왈무산대수촌, 오왈금산가리촌, 육왈명활산고야촌,
是爲辰韓六部, 高墟村長蘇伐公, 望楊山麓, 蘿井傍林間, 有馬跪而嘶, 則往觀之, 忽不見馬,
시위진한육부, 고허촌장소벌공, 망양신록, 나정방림간, 유마궤이시, 칙왕관지, 홀불견마,
只有大卵, 部之, 有嬰兒出焉, 則收而養之, 及年十餘歲, 岐寲然夙成, 六部人, 以其生神異,
지유대란, 부지, 유영아출언, 칙수이양지, 급년십여세, 기의연숙성, 육부인, 이기생신이.
推尊之, 至是, 立爲君焉, 辰人謂瓠爲朴, 以初大卵如瓠故, 以朴爲姓, 居西干, 辰言王或云呼
추존지 지시, 입위군언, 진인위호위박, 이초대란여호고, 이박위성, 거서간, 진언왕혹운호
貴人之稱.
귀인지칭.
시조의 성은 박씨며, 이름은 혁거세이다. 전한 효선제 오봉 원년 갑자(서기전 57) 4월 병진⟨혹은 정월 십오일이라고도 함⟩즉위하여 왕호를 거서간이라 하고, 그때 나이는 13세, 국호는 서나벌이라 하였다. 일찌기 조선(朝鮮)의 유민(遺民)들이 이곳에 와서 산곡간에 헤어져 여섯 촌락을 이루었다. 첫째는 알천(閼川)의 양산촌(楊山村), 둘째는 돌산(突山)의 고허촌(高墟村), 셋째는 觜山(취산)의 진지촌(珍支村)⟨혹은 간진촌(干珍村)⟩,넷째는 무산(茂山) 대수촌(大樹村), 다섯째는 금산(金山)의 가리촌(加利村), 여섯째는 명활산(明活山)의 고야촌(高耶村)이란 것이니 이것이 진한의 6부이었다. 고허촌장인 소벌공(蘇伐公)이 양산기슭 나정옆의 숲 사이를 바라보니, 말이 꿇어 않아 울고 있는지라, 가보니 말은 간데 없고, 다만 있는 것은 큰 알뿐이었다. 알을 깨어본즉 어린아이가 나왔다. 곧 데려다가 길렀더니, 나이 10여 세가 되매 유달리 숙성하였다. 6부 사람들은 그 아이의 출생이 이상하였던 까닭에 높이 받들더니 이때 이르러 그를 세워 임금을 삼았다. 진한 사람들은 박(瓠)을 박(朴)이라 할새, 처음 큰 알이 박과 같다 하여 박(朴)으로써 성을 삼았다. 거서간은 진한의 말로 왕이란 뜻이다.⟨혹은 귀인을 이르는 말이라 한다⟩
四年, 夏四月辛丑朔, 日有食之.
사년, 하사월신축삭, 일유식지.
4년(서기전 54) 여름 4월 초하루 신축에 일식이 있었다.
五年, 春正月, 龍見於閼英井, 右脇誕生女兒, 老嫗見而異之, 收養之, 以井名名之, 及長有德
오년, 춘정월, 용견어알영정, 우협탄생여아, 노구견이이지, 수양지, 이정명명지, 급장유덕
容 始祖聞之, 納以爲妃, 有賢行能內輔, 時人謂之二聖.
용 시조문지, 납이위비, 유현행능내보, 시인위지이성.
5년(서기전 53) 봄 정월에 용이 알영정에 나타나서, 오른쪽 갈빗대에서 한 계집아이를 낳았다. 늙은 할멈이 이를 보고 이상히 여기어 데려다 기를새 우물 이름으로 이름을 지었다. 자라면서 덕행과 용모를 갖추어 시조가 듣고 왕비로 받아들였다. 행실이 어질고 내조가 훌륭하여 당시 사람들은 그들을 두 성인이라고 하였다.
八年, 倭人行兵, 欲犯邊, 聞始祖有神德, 乃還.
팔년, 왜인행병, 욕범변, 문시조유신덕, 내환.
8년(서기전 50) 왜인이 군사를 이끌고 와서 변경을 침범하려다가, 시조의 신덕이 있음을 듣고 돌아갔다.
九年, 春三月, 有星孛于王良.
구년, 춘삼월, 유성패우왕양.
9년(서기전 49) 봄 3월에 살별(孛星)이 왕량성좌에 살별이 나타났다.
十四年, 夏四月, 有星孛于參.
십사년, 하사월, 유성패우삼.
14년(서기전 44) 여름 4월 삼성좌에 살별이 나타났다.
十七年, 王巡撫六部, 妃閼英從焉, 勸督農桑, 以盡地利.
십칠년, 왕순무육부, 비알영종언, 권독농상, 이진지리.
17년(서기전 41) 왕이 6부를 순행할새, 왕비 알령도 따라 갔다. 농사와 양잠을 힘쓰도록 권장하여 토지의 생산을 충분히 이용 하도록 하였다.
十九年, 春正月, 卞韓以國來降.
십구년, 춘정월, 변한이국내항.
19년(서기전 39) 봄 정월 변한이 나라를 바치며 항복해 왔다.
二十一年, 築京城, 號曰金城, 是年, 高句麗始祖東明立.
이십일년, 축경성, 호왈금성, 시년, 고구려시조동명입.
21년(서기전 37) 서울에 성을 쌓아 금성(金城)이라 하였다. 이 해에 고구려의 시조 東明(동명)이 왕위에 올랐다.
二十四年, 夏六月壬申晦, 日有食之.
이십사년, 하육월임신회, 일유식지.
24년(서기전 34) 여름 6월 그믐 임신에 일식이 있었다.
二十六年, 春正月, 營宮室於金城.
이십육년, 춘정월, 영궁실어금성.
26년(서기전 32) 봄 정월 금성에 궁실을 지었다.
三十年, 夏四月己亥晦, 日有食之, 樂浪人將兵來侵, 見邊人夜戶不扃, 露積被野, 相謂曰, 此
삼십년, 하사월기해회, 일유식지, 낙랑인장병래침, 견변인야호불경, 로적피야, 상위왈, 차
方民不相盜, 可謂有道之國, 吾儕潛師而襲之, 無異於盜, 得不愧乎, 乃引還.
방민불상도, 가위유도지국, 오제잠사이습지, 무이어도, 득불괴호, 내인환.
30년(서기전 28) 여름 4월 그믐 기해에 일식이 있었다. 낙랑인이 군사를 이끌고 와서 침범하려다가 변방 사람들이 밤에도 문을 잠그지 않으며 노적가리가 들에 가득함을 보고 말하기를 이곳 사람들은 서로 도둑질을 하지 아니하니 가위 도가 있는 나라라 할만 하다. 우리가 군사로 몰래 습격하는 것은 도적과 다름이 없으니 부끄럽지 아니하냐 하고, 곧 군사를 이끌고 돌아갔다.
三十二年, 追八月乙卯晦, 日有食之.
삼십이년, 추팔월을묘회, 일유식지.
32년(서기전 26) 가을 8월 그믐 을묘에 일식이 있었다.
三十八年, 春二月, 遣瓠公聘於馬韓, 馬韓王讓瓠公曰, 辰卞二韓, 爲我屬國, 比年不輸職貢,
삼십팔년, 춘이월, 견호공빙어마한, 마한왕양호공왈, 진변이한, 위아속국, 비년불수직공,
事大之禮, 其若是乎 對曰, 我國自二聖肇興, 人事修, 天時和, 倉庾充實, 人民敬讓, 自辰韓遺
사대지예, 기약시호, 대왈, 아국자이손조흥, 인사수, 천시화, 창유충실, 인민경양, 자진한유
民, 以至卞韓. 樂浪. 倭人, 無不畏懷, 而吾王謙虛, 遣下臣修聘, 可謂過於禮矣, 而大王赫怒,
민, 이지변한. 낙랑. 왜인, 무불외회, 이오왕겸허, 견하신수빙, 가위과어예의, 이대왕혁노,
劫之以兵, 是何意耶, 王憤欲殺之, 左右諫止乃許歸, 前此, 中國之人, 苦秦亂, 東來者衆, 多
겁지이병, 시하의야, 왕분욕살지, 좌우간지내허귀, 전차, 중국지인, 고진난, 동래자중 다
處馬韓東, 與辰韓雜居, 至是, 寖盛, 故馬韓忌之, 有責焉, 瓠公者未詳其族姓, 本倭人, 初以
처마한동, 여진한잡거, 지시, 침성, 고마한기지, 유책언, 호공자미상기족성, 본왜인, 초이
瓠繫腰, 渡海而來, 故稱瓠公.
호계요, 도해이래, 고칭호공.
38년(서기전 20) 봄 2월에 호공을 마한에 보내어 예방하매. 마한 왕이 호공을 꾸짖어 가로되, 진한과 변한 두 나라는 우리의 속국인데 근년에 공물을 보내지 아니하니, 대국를 섬기는 예의가 이와 같을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호공이 대답하되, 우리나라는 두분의 성인이 일어나면서 인사가 잘 다스려지고 천시가 조화를 이루어 창고는 가득차고 백성들은 공경과 겸양을 알게 되었으며. 진한의 유민으로부터 변한. 낙랑. 왜인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품지 않음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임금은 겸허하게 소신을 보내 예방하니 지나친 예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왕께서는 진노하여 군사로써 겁박하니 무슨 뜻이냐고 하였다. 마한왕이 격분하여 호공을 죽이려고 하매 좌우의 신하들이 간언하여 말리는지라, 귀국을 허락하였다. 이보다 앞서 중국 사람이 진(秦)나라의 난리에 괴로와하여 동쪽으로 오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 다수가 마한의 동쪽에 처하여 진한 사람들과 더불어 섞여 살더니 이에 이르러 점점 성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마한이 이를 꺼리어 책망한 것이었다. 호공의 집안과 성씨는 자세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그 본시 왜인으로 처음에 박(瓠)을 허리에 차고 바다를 건너온 까닭에 호공(瓠公)이라 일컬었다.
三十九年, 馬韓王薨, 或說上曰, 西韓王前辱我使, 今當其喪征之, 其國不足平也, 上曰, 幸人
삼십구년, 마한왕훙, 혹설상왈, 서한왕전욕아사, 금당기상정지, 기국불족평야, 상왈, 행인
之災, 不仁也, 不從乃遣使, 弔慰.
지재, 불인야, 불종내견사, 조위.
39년(서기전 19) 마한왕이 돌아갔다. 어떤 사람이 임금에게 일러 가로되, 서한(西韓)의 왕이 전에 우리 사신을 욕보인 일이 있으니, 지금 그 국상을 당한 기회에 이를 치면 그 나라는 족히 애써 평정할 것도 없다고 하였다. 왕이 가로되, 남의 불행을 다행히 여기는 것은 어질지 못한 일이라 하여 듣지 않고 사신을 보내 조위(弔慰)하였다.
四十年 百濟始祖溫祚立.
사십년 백제시조온조입.
40년(서기전 18) 백제 시조 온조(溫祚)가 즉위하였다.
四十三年, 春二月乙酉晦, 日有食之.
사십삼년, 춘이월을유회, 일유식지.
43년(서기전 15) 봄 2월 그믐 을유에 일식이 있었다.
五十三年, 東沃沮使者來, 獻良馬二十匹曰, 寡君聞南韓有聖人出, 故遣臣來享.
오십삼년, 동옥저사자래, 헌양마이십필왈, 과군문남한유성인출, 고견신래향.
53년(서기전 5) 동옥저의 사자가 와서 좋은 말 20필을 바치며 말하되, “우리 임금이 남한(南韓)에 성인이 났다는 말을 들었기에 소신를 보내 바치게 하였습니다.”라 하였다.
五十四年, 春二月己酉, 星孛于河鼓.
오십사년, 춘이월기유, 성패우하고.
54년(서기전 4) 봄 2월 그믐 기유에 살별이 하고 성좌에 나타났다.
五十六年, 春正月辛丑朔, 日有食之.
오십육년, 춘정월신축삭, 일유식지.
56년(서기전 2) 봄 정월 초하루 신축에 일식이 있었다.
五十九年, 秋九月戊申晦, 日有食之.
오십구년, 추구월무신회, 일유식지.
59년(서기 2) 가을 9월 그믐 무신에 일식이 있었다.
六十年, 秋九月二龍見於金城井中, 暴雷雨, 震城南門.
육십년, 추구월이용견어금성정중, 폭뢰우, 진성남문.
60년(서기 3) 가을 9월 두 마리의 용이 금성의 우물에 나타나더니 갑자기 우레가 치고 비가 내렸으며 성 남문에 벼락을 쳤다.
六十一年, 春三月, 居西干升遐, 葬蛇陵, 在曇巖寺北.
육십일년 춘삼월 거서간승하, 장사능, 재담암사북.
61년(서기 4) 봄 3월에 거서간이 승하하여 사릉에 장사지내니 능은 담암사 북쪽에 있다.
南解次次雄立 次次雄, 或云慈充, 金大問云, 方言謂巫也, 世人以巫事鬼神. 尙祭祀, 故畏敬之, 遂稱
남해차차웅입 차차웅, 혹운자충, 김대문운, 방언위무야, 세인이무사귀신. 상제사, 고외경지, 수칭
尊長者, 爲慈充, 赫居世嫡子也, 身長大, 性沈厚, 多智略, 母閼英夫人, 妃雲帝夫人一云阿婁夫
존장자, 위자충, 혁거세적자야, 신장대, 성침후, 다지략, 모알영부인, 비운제부인일운아루부
人, 繼父卽位, 稱元.
인, 계부즉위, 칭원.
남해 차차웅이 왕위에 올랐다.〱차차웅을 혹은 자충이라고도 하였다. 김대문이 이르되, 방언에 무당을 의미한 말이니 무당이 귀신을 섬기고 제사를 받드는 까닭에 사람들은 무당을 두려워하고 공경하여 마침내 존장자를 일컬어 자충이라 하였다⟧ 그는 혁거세의 친아들이다. 체격이 장대하고 성품은 침착하고 지략이 많았으며, 어머니는 알영부인이요. 비는 운제부인⟨혹은 아루부인이라고도 하였다⟩이니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즉위하여 이 해를 원년으로 칭하였다.
論曰, 人君卽位, 踰年稱元, 其法, 詳於春秋, 此先王不干之典也, 伊訓曰, 成湯旣沒, 太甲元
론왈, 인군즉위, 유년칭원, 기법, 상어춘추, 차선왕불간지전야, 이훈왈, 성탕기몰, 태갑원
年, 正義曰, 成湯旣沒, 其歲, 卽太甲元年, 然孟子曰, 湯崩, 太丁未立, 外丙二年, 仲壬四年,
년, 정의왈, 성탕기몰, 기세, 즉태갑원년, 연맹자왈, 탕붕, 태정미입, 외병이년, 중임사년,
則疑若尙書之脫簡, 而正義之誤設也, 或曰, 古者, 人君卽位, 或踰月稱元年, 或踰年而稱元年
칙의약상서지탈간, 이정의지오설야, 혹왈, 고자, 인군즉위, 혹유월칭원년, 혹유년이칭원년
踰月而稱元年者, 成湯旣沒, 太甲元年, 是也, 孟子云太丁未立者, 謂太丁未立而死也, 外丙二
유월이칭원년자, 성탕기몰, 태갑원년, 시야, 맹자운태정미입자, 위태정미입이사야, 외병이
年, 仲壬四年者, 皆謂, 太丁之子, 太甲二兄, 或生二年, 或生四年而死, 太甲所以得繼湯耳,
년, 중임사년자, 개위, 태정지자, 태갑이형, 혹생이년, 혹생사년이사, 태갑소이득계탕이,
史記便謂此仲壬. 外丙爲二君, 誤也, 由前, 則以先君終年, 卽位稱元, 非是, 由後, 則可謂得
사기편위차중임. 외병위이군, 오야, 유전, 칙이선군종년, 즉위칭원, 비시, 유후, 칙가위득
商人之禮者矣.
상인지예자의.
론하여 가로되 임금이 즉위하면 해를 넘겨 원년을 칭하는 것은 그 법이 『춘추』에 상세히 있으니, 이는 고칠 수 없는 선왕의 법이다. 이훈(伊訓)에 『성탕이 이미 죽었으니 태갑 원년이다.』라 하였고, 정의에는 『성탕이 이미 죽었으니 그 해가 곧 태갑 원년이다』라 하였다. 그러나 맹자에 『탕왕이 죽자 태정이 즉위하지 않았고, 외병은 2년, 중임은 4년이다.』라고 하였으니, 아마 『상서. 이훈』에 몇 글자가 빠져서 정의의 잘못된 설명이 나온 듯싶다. 어떤 사람은 “옛날에 임금이 즉위하면 어떤 경우는 달을 넘겨 원년이라고 칭하기도 하고, 혹는 해를 넘겨 원년을 칭하기도 하였다”고 말한다. 달을 넘기고 원년이라고 칭한 것은 『성탕이 이미 죽으니 태갑 원년이다.”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맹자에서 『태정이 즉위하지 않았다.』 라고 한 것은 태정이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었음을 일컬음이고, 『외병 2년, 중임은 4년이다.』고 한 것은 모두 태정의 아들인, 태갑의 두 형이 태어 난지 2년 혹은 4년 만에 죽었음을 말하는 것이니, 태갑이 탕을 이를 수 있었던 까닭이다. 『사기』에서 문득 중임과 외병을 두 임금이라 하였으나 이는 잘못이다. 전자에 따르면 앞 임금이 죽은 해에 남해 차차웅이 즉위하여 원년을 칭하였으니 옳지 않고, 후자에 따르면 곧 상나라 사람의 예법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元年, 秋七月, 樂浪兵至, 圍金城數重, 王謂左右曰, 二聖棄國, 孤以國人推戴, 謬居於位, 危
원년, 추칠월, 낙랑병지, 위금성수중, 왕위좌우왈, 이성기국, 고이국인추대, 류거어위, 위
懼若涉川水, 今鄰國來侵, 是孤之不德也, 爲之若何, 左右對曰, 賊幸我有喪, 妄以兵來, 天必
구약섭천수, 금린국래침, 시고지불덕야, 위지약하, 좌우대왈, 적행아유상, 망이병래, 천필
不祐, 不足畏也, 賊俄而退歸.
불우, 불족외야, 적아이퇴귀.
원년(서기 4) 가을 7월 낙랑 군사가 와서 여러 겹으로 금성을 포위하였다. 왕이 좌우에게 일러 가로되 「두 성인이 돌아가시고 내가 나라 사람들의 추대로 그릇되이 왕위에 오르니 두려움이 마치 냇물을 건너는 것과 같다. 지금 이웃 나라가 침범하니 이는 나의 부덕한 까닭이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는가?」 좌우의 신하들이 대답하되 “적이 우리가 국상을 당하였음을 다행으로 여기어 함부로 군사를 이끌고 와서 치니, 하늘이 절대 돕지 않을 것이니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적은 조금 지나 물러갔다.
三年, 春正月, 立始祖廟, 冬十月丙辰朔, 日有食之.
삼년, 춘정월, 입시조묘, 동십월병진삭, 일유식지.
3년(서기 6) 봄 정월 시조의 사당을 세웠다. 겨울 10월 초하룻날 병진에 일식이 있었다.
五年, 春正月, 王聞脫解之賢, 以長女妻之.
오년, 춘정월, 왕문탈해지현, 이장여처지.
5년(서기 8) 봄 정월에 탈해의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맏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七年, 秋七月, 以脫解爲大輔, 委以軍國政事.
칠년, 추칠월, 이탈해위대보, 위이군국정사.
7년(서기 10) 가을 7월 탈해를 대보로 하고 군무와 국정를 맡겼다.
八年, 春夏 旱.
팔년, 춘하, 한.
8년(서기 11) 봄과 여름에 가물었다.
十一年, 倭人遣兵船百餘艘, 掠海邊民戶, 發六部勁兵以御之, 樂浪謂內虛, 來攻金城甚急, 夜
십일년, 왜인견병선백여소, 약해변민호, 발육부경병이어지, 낙랑위내허, 래공금성심급, 야
有流星, 墜於賊營, 衆懼而退, 屯於閼川之上, 造石堆二十而去, 六部兵一千人追之, 自吐含山
유유성, 추어적영, 중구이퇴, 둔어알천지상, 조석퇴이십이거, 육부병일천인추지, 자토함산
東至閼川, 見石推知賊衆, 乃止.
동지알천, 견석추지적중, 내지.
11년(서기 14) 왜인이 병선 백여 척을 보내 해변의 민가를 노략질하므로, 6부의 정병을 보내 막게 하였다. 낙랑인이 생각하기를 ‘나라 안이 비었을 것이다.’ 하고 금성을 공격해오니 몹시 급박하였다. 밤에 유성이 적의 진영에 떨어지자 적의 무리가 두려워하여 물러나 알천가에 주둔하고 돌무더기 20개를 만들어 놓고 물러갔다. 6부의 군사 1천명이 그들을 추격하였는데, 토암산 동쪽에서부터 알천에 이르러 돌무더기를 보고서 적의 무리가 많은 것으로 알고 이에 중지하였다.
十三年, 秋七月戊子晦, 日有食之.
십삼년, 추칠월무자회, 일유식지.
13년(서기 16) 칠월 그믐날 무자에 일식이 있었다.
十五年, 京城旱, 秋七月 蝗, 民饑, 發倉廩救之.
십오년, 경성한, 추칠월, 황, 민기, 발창늠구지.
15년(서기 18) 서울에 가뭄이 들었다. 가을 7월에 황충해의 재해가 있어 백성들이 굶주리므로 창고의 곡식을 풀어 그들을 구제하였다.
十六年, 春二月, 北溟人耕田, 得濊王印獻之.
십육년 춘이월 ,북명인경전, 득예왕인헌지.
16년(서기 19) 봄 2월 북명 사람이 밭을 갈다가 예왕의 인장을 얻어 왕에게 바치었다.
十九年, 大疫, 人多死, 冬十一月, 無氷.
십구년, 대역, 인다사, 동십일월, 무빙.
19년(서기 22) 역병이 유행하여 사람이 많이 죽었다. 겨울 11월에 얼음이 얼지 아니하였다.
二十年, 秋, 太白入太微.
이십년, 추, 태백입태미.
20년(서기 23) 가을에 금성이 태미성좌로 들어갔다.
二十一年, 秋九月, 蝗, 王薨, 葬蛇陵園內.
이십일년, 추구월, 황, 왕훙, 장사릉원내.
21년(서기 24) 가을 9월에 황충해를 입었다. 왕이 돌아가매 사릉원 안에 장사지냈다.
儒理尼師今立, 南解太子也, 母雲帝夫人, 妃日知葛文王之女也或云妃姓朴許屢王之女, 初南解
유리이사금입, 남해태자야, 모운제부인, 비일지갈문왕지녀야혹운비성박허루왕지여, 초남해
薨, 儒理當立, 以大輔脫解素有德望, 推讓其位, 脫解曰, 神器大寶, 非庸人所堪, 吾聞聖智人
훙, 유리당입, 이대보탈해소유덕망, 추양기위, 탈해왈, 신기대보, 비용인소감, 오문성지인
多齒, 試以餠噬之, 儒理齒理多, 乃與左右奉立之, 號尼師今, 古傳如此, 金大問則云, 尼師今
다치 시이병소지, 유리치이다, 내여좌우봉입지, 호이사금, 고전여차, 김대문칙운, 이사금
方言也, 謂齒理, 昔南解將死, 謂男儒理, 壻脫解曰, 吾死後, 汝朴昔二姓, 以年長而嗣位焉,
방언야, 위치리, 석남해장사, 위남유리, 서탈해왈, 오사후, 여박석이성, 이연장이사위언,
其後, 金姓亦興, 三姓以齒長相嗣, 故稱尼師今.
기후, 김성역흥, 삼성이치장상사, 고칭이사금.
유리이사금이 즉위하니, 남해의 태자다. 어머니는 운제부인이요 비는 일지갈문왕의 딸이다.⟨혹은 이르되 비의 성은 박씨로 허루왕의 딸이라도 하였다⟩앞서 남해가 돌아간 후 유리가 당연히 즉위해야 할 터인데, 대보 탈해가 본디 덕망이 있으므로 왕위를 그에게 밀어 사양하니, 탈해는 말하되 신기대보는 용렬한 사람이 감당할 바가 아니다. 내가 듣건대 지혜있는 사람은 이(齒)가 많다 하니 떡을 물어 시험하자고 하였다. 유리의 잇금이 많으므로, 이에 좌우로 더불어 그를 받들어 왕을 세우고 호를 이사금이라고 하였다. 옛부터 전하는 말은 이와 같거니와, 김대문은 이르되 『이사금은 즉 방언으로서 잇금을 의미한 말이니 옛적에 남해가 장차 돌아가려 할 때 아들 유리와 사위 탈해에게 일러 가로되, 내가 죽은 후 너희 박. 석 이성이 연장자로 왕위를 이어라고 하였다. 그 후에 김씨도 또한 일어나 세 성씨들 중에 나이 많은 자를 선택하여 왕위를 잇도록 한 이유로 왕위을 이사금이라고 불렀다』
二年, 春二月, 親祀始祖廟, 大赦.
이년, 춘이월, 친사시조묘, 대사.
2년(서기 25) 봄 2월 친히 시조사당에 제사지내고 대사면을 실시하였다.
五年, 冬十一月, 王巡行國內, 見一老嫗飢凍將死, 曰予以眇身居上, 不能養民, 使老幼至於此
오년, 동십일월, 왕순행국내, 견일노구기동장사, 왈여이묘신거상, 불능양민, 사노유지어차
極, 是予之罪也, 解衣以覆之, 推食以食之, 仍命有司, 在處存問, 鰥寡孤獨老病不能自活者,
극, 시여지죄야, 해의이복지, 추식이식지, 잉명유사, 재처존문, 환과고독노병불능자활자,
給養之, 於是, 鄰國百姓聞而來者, 衆矣, 是年, 民俗歡康, 始製兜率歌, 此歌樂之始也.
급양지 어시, 인국백성문이래자, 중의, 시년, 민속환강, 시제도솔가, 차가낙지시야.
5년(서기 28) 겨울 11월 왕이 나라안을 순행하다가 한 늙은 노파가 굶주림과 추위로 죽어감을 보고 가로되, 내가 보잘 것 없는 몸으로 왕위에 있어 능히 백성을 기르지 못하고 늙은이와 어린아이로 하여금 이러한 지경에 이르게 하니, 이는 나의 죄라 하고, 옷을 벗어 그를 덮어 주고 밥을 주어 먹게 한 후 이내 유사에게 명하여 곳곳마다 홀아비. 홀어미. 고아. 자식 없는 늙은이와. 늙고 병들어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자를 위로하고 보살펴 양식을 나누어 주어 부양하도록 하였더니, 이에 이웃나라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오는 자가 많았다. 이 해에 백성들이 즐겁고 편안하여 처음으로 도솔가를 지어니 이는 가악의 시초이었다.
九年, 春, 改六部之名, 仍賜姓, 楊山部爲梁部, 姓李, 高墟部爲沙梁部, 姓崔, 大樹部爲漸梁
구년, 춘, 개육부지명, 잉사성, 양산부위양부, 성이, 고허부위사량부, 성최, 대수부위점량
部一云牟梁, 姓孫, 干珍部爲本彼部, 姓鄭, 加利部爲漢祇部, 姓裵, 明活部爲習比部, 姓薛, 又
부일운모량, 성손, 간진부위본피부, 성정, 가리부위한기부, 성배, 명활부위습비부, 성설, 又設官, 有十七等, 一伊伐湌, 二伊尺湌, 三迊湌, 四波珍湌, 五大阿湌, 六阿湌, 七一吉湌, 八
설관, 유십칠등, 일이벌찬, 이이척찬, 삼잡찬, 사파진찬, 오대아찬, 육아찬, 칠일길찬, 팔
沙湌, 九級伐湌, 十大奈麻, 十一奈麻, 十二大舍, 十三小舍, 十四吉士, 十五大烏, 十六小烏
사찬, 구급벌찬, 십대나마, 십일나마, 십이대사, 십삼소사, 십사길사, 십오대오, 십육소오
十七造位, 王旣定六部, 中分爲二, 使王女二人, 各率部內女子, 分朋造黨, 自秋七月旣望, 每
십칠조위, 왕기정육부, 중분위이, 사왕녀이인, 각솔부내녀자, 분붕조당, 자추칠월기망, 매
日旱集大部之庭, 績麻, 乙夜而罷, 至八月十五日, 考其功之多少, 負者置酒食, 以謝勝者, 於
일한집대부지정, 적마, 을야이파, 지팔월십오일, 고기공지다소, 부자치주식, 이사승자, 어
是, 歌舞百戱, 皆作謂之嘉俳, 是時, 負家一女子起舞, 歎曰會蘇會蘇, 其音哀雅, 後人因其聲
시, 가무백희, 개작위지가배, 시시, 부가일녀자기무, 탄왈회소회소, 기음애아, 후인인기성
而作歌, 名會蘇曲
이작가, 명회소곡
9년(서기 32) 봄에 6부의 이름을 고치고 성을 내려 주었다. 양산부를 양부라 하여 그 성을 이(李)라 하고, 고허부를 사량부, 그 성을 최(崔)라 하고 대수부를 점량부,(혹은 모량이라고도 함) 그 성을 손(孫)이라 하고, 간진부를 본피부, 그 성을 정(鄭)이라 하고, 가리부를 한기부, 그 성을 배(裵)라 하고, 명활부를 습비부, 그 성을 설(薛)이라 하였다. 또 관직을 베풀어 17등급을 두니 제1은 이벌찬, 제2는 이척찬, 제3은 잡찬, 제4는 파진찬, 제5는 대아찬, 제6은 아찬, 제7은 일길찬, 제8은 사찬, 제9는 급벌찬, 제10은 대나마, 제11은 나마, 제12는 대사, 제13은 소사, 제14는 길사, 제15는 대오, 제16은 소오, 제17은 조위였다. 왕은 6부를 정하고 나서 이를 절반씩 둘로 나누어 왕의 딸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부안의 여자들을 거느리고 무리를 나누어 편을 짜서 가을 7월 16일부터 날마다 일찍이 대부의 마당에 모이어 길쌈을 시작하여 밤 10시경에 마치는데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적의 많고 적음을 헤아려 지는 편은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 사례하고 이에 노래와 춤과 온갖 놀이를 행하는데 이를 가베라 한다. 이때 진편의 한 여자가 일어나 춤추며 탄식하기를 회소회소라 하여 그 음조가 슬프고 아름답거늘 후대 사람들이 그 소리로 인하여 노래를 지어 이름을 회소곡이라 했다.
十一年, 京都地裂, 泉湧, 夏六月, 大水.
십일년, 경도지열, 천용, 하육월, 대수.
11년(서기 34) 서울에 땅이 갈라지고 샘이 솟았다. 여름 6월 홍수가 났다.
十三年, 秋八月, 樂浪犯北邊, 攻陷朶山城.
십삼년, 추팔월, 낙랑범북변, 공함타산성.
13년(서기 36) 가을 8월 낙랑이 북변을 침범하여 타산성을 쳐서 함락하였다.
十四年, 高句麗王無恤, 襲樂浪滅之, 其國人五千來投, 分居六部.
십사년, 고구려왕무휼, 습낙랑멸지, 기국인오천래투, 분거육부.
14년(서기 37) 고구려왕 무휼이 낙랑을 습격하여 멸망시켰다. 그 나라 사람 5천 명이 와서 투항하였으므로 6부에 나누어 살게 하였다.
十七年, 秋九月, 華麗. 不耐二縣人, 連謀率騎兵犯北境, 貊國渠師以兵, 要曲河西敗之, 王喜
십칠년, 추구월, 화려. 불내이현인, 연모솔기병범북경, 맥국거사이병, 요곡하서패지, 왕희
與貊國結好.
여맥국결호.
17년(서기 40) 가을 9월 화려. 불내 두 현의 사람들이 공모하여 기병을 거느리고 북쪽 변경을 침범하므로 맥국의 거사가 군사로써 곡하의 서쪽에서 가로막아 이를 깨트리니, 왕은 기뻐하여 맥국과 우호를 맺었다.
十九年, 秋八月, 貊師獵得禽獸, 獻지.
십구년, 추팔월, 맥사렵득금수, 헌지.
19년(서기 42) 가을 8월 맥국의 거사가 사냥을 하여 새와 짐승을 바쳤다.
三十一年, 春二月, 星孛于紫宮.
삼십일년, 춘이월, 성패우자궁.
31년(서기 54) 봄 2월 살별이 자궁성좌에 나타났다.
三十三年, 夏四月, 龍見金城井, 有頃, 暴雨自西北來, 五月, 大風拔木.
삼십삼년, 하사월, 용견금성정, 유경, 폭우자서북래, 오월, 대풍발목.
33년(서기 56) 여름 4월 용이 금성 우물에 나타나더니 얼마 있다가 폭우가 서북으로부터 쏟아져 왔다. 5월에는 큰 바람이 불어 나무를 뽑혔다.
三十四年, 秋九月, 王不豫, 謂臣寮曰, 脫解身聯國戚, 位處輔臣 屢著功名, 朕之二子, 其才不
삼십사년, 추구월, 왕불예, 위신료왈, 탈해신연국척, 위처보신 루저공명, 짐지이자, 기재불 及遠矣, 吾死之後, 俾卽大位, 以無忘我遺訓, 冬十月, 王薨, 葬蛇陵園內.
급원의, 오사지후, 비즉대위, 이무망아유훈, 동십월, 왕훙, 장사릉원내.
34년(서기 57) 가을 9월 왕이 병으로 편치 못하여 신하들에게 이르되, 탈해는 그 신분이 임금의 친척이고 위가 대신의 자리에 있고 여러 번 공명을 나타냈다. 나의 두 아들은 재주가 탈해에게 미치지 못하니, 내가 죽은 뒤에는 탈해로 즉위케 하여 나의 유훈을 저버리지 말라 하였다. 그 해 왕이 돌아가매 사릉원내에 장사지냈다.
脫解尼師今立一云吐解, 時年六十二, 姓昔, 妃阿孝夫人, 脫解, 本多婆那國所生也, 其國在倭
탈해이사금입일운토해, 시년육십이, 성석, 비아효부인, 탈해, 본다파나국소생야, 기국재왜
國東北一千里, 初其國王娶女國王女爲妻, 有娠七年, 乃生大卵, 王曰, 人而生卵不祥也, 宜棄
국동북일천리, 초기국왕취여국왕여위치, 유신칠년, 내생대란, 왕왈, 인이생란불상야, 의기
之, 其女不忍, 以帛裹卵並寶物, 置於櫝中, 浮於海, 任其所往, 初至金官國海邊, 金官人怪之
지, 기녀불인, 이백과란병보물, 치어독중, 부어해, 임기소왕, 초지금관국해변, 금관인괴지
不取, 又至辰韓阿珍浦口, 是始祖赫居世在位三十九年也, 時海邊老母, 以繩引繫海岸, 開櫝見
불취, 우지진한아진포구, 시시조혁거세재위삼십구년야, 시해변노모, 이승인계해안, 개독견
之, 有一小兒在焉, 其母取養之, 及壯身長九尺, 風神秀朗, 智識過人, 或曰, 此兒不知姓氏,
지, 유일소아재언, 기모취양지, 급장신장구척, 풍신수랑, 지식과인, 혹왈, 차아불지성씨,
初櫝來時, 有一鵲飛鳴而隨之, 宜省鵲字, 以昔爲氏, 又解韞櫝而出, 宜名脫解, 脫解, 始以漁
초독래시, 유일작비명이수지, 의성작자, 이석위씨, 우해온독이출, 의명탈해, 탈해, 시이어
魡爲業, 供養其母, 未嘗有懈色, 母謂曰, 汝非常人, 骨相殊異, 宜從學以立功名, 於是, 專精조위업, 공양기모, 미상유해색, 모위왈, 여비상인, 골상수이, 의종학이입공명, 어시, 전정
學問, 兼知地理, 望楊山下瓠公宅, 以爲吉地, 設詭計, 以取而居之, 其地後爲月城, 至南解王학문, 겸지지리, 망양산하호공택, 이위길지, 설위계, 이취이거지, 기지후위월성, 지남해왕
五年, 聞其賢, 以其女妻之, 至七年, 登庸爲大輔, 委以政事, 儒理將死曰, 先王顧命曰, 吾死
오년, 문기현, 이기여처지, 지칠년, 등용위대보, 위이정사, 유리장사왈, 선왕고명왈 오사
後 無論子壻, 以年長且賢者, 繼位是以, 寡人先立, 今也, 宜傳其位焉.
후 무론자서, 이년장차현자, 계위시이, 과인선입, 금야, 의선기위언.
탈해이사금이 즉위하니 이는⟨혹은 吐解(토해)라고도 함⟩그 때 나이 62세이며, 성은 석씨요 비는 아효부인이다. 탈해는 본시 다파나국의 출생으로, 그 나라는 왜국의 동북 1천리 되는 곳에 있었다. 처음 그 국왕이 여국왕의 딸을 데려다 아내를 삼았더니, 임신한 지 7년 만에 큰 알을 낳거늘, 왕이 가로되 사람으로서 알을 낳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일이니 버리라고 하였다. 그 아내는 차마 그러하지 못하고 비단에 알을 싸서 보물과 함께 궤짝 속에 넣어 바다에 띄워 가는 대로 가게 하였다. 처음 금관국의 바닷가에 이르렀으나 금관국 사람들이 이를 괴이하게 여겨서 거두지 아니하고, 다시 진한의 아진포구에 이르니 이때는 시조 혁거세가 재위한 지 39년 되던 해였다. 그때 해변의 노파가 이를 줄로 잡이당기어 바닷가에 매고 궤를 열어본즉 거기에 한 어린아이가 들어 있었다. 그 노모가 이를 데려다 길렀더니, 자라자 신장이 아홉자나 되고 풍채가 빼어나고 환했으며 지식이 남보다 뛰어났다. 어떤이가 말하기를 “이 아이는 성을 알지 못하니 처음 궤짝이 와 닿을 때 까치 한 마리가 날아와 짖으며 따라다녔으니 까치 작(鵲)에서 조(鳥) 줄여 석으로 성을 삼고, 그 아이가 궤짝을 열고 나왔으니 이름을 탈해라 지으리라 하였다 한다.” 탈해가 처음에는 고기잡이로 업을 삼아 그 노모를 봉양할새 한때도 게으름 피운 적이 없었다. 어머니가 말하기를 “너는 범상한 사람이 아니요 골상이 특이하니 학문을 배워 공명을 이루라고 하였다.” 이에 탈해는 학문에 오로지 힘쓰고 겸하여 지리를 아는지라 양산 밑에 있는 호공의 집을 바라보고 그 터가 길지라 여겨 속임수를 써서 그곳을 빼앗아 살았는데, 그 땅은 후에 월성이 되었다. 남해왕 5년에 이르러 왕이 그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딸을 주어 아내를 삼게 하였고, 7년에는 그를 대보로 등용하고 정사를 맡기었는데, 유리가 돌아갈 때 가로되 “선왕이 유언으로 말하기를 내가 죽은 뒤에는 아들이나 사위를 막론하고 나이 많고 어진 사람으로 위를 잇게 하라 하셨으므로 과인이 먼저 왕위에 올랐다. 이제 마땅히 왕위를 물려주어야겠다.”
二年, 春正月, 拜瓠公爲大輔, 二月, 親祀始祖廟.
이년, 춘정월, 배호공위대보, 이월, 친사시조묘.
2년(서기 58) 봄 정월에 호공을 대보로 삼았다. 2월 왕이 직접 시조묘에 제사지냈다.
三年, 春三月, 王登吐含山, 有玄雲如蓋, 浮王頭上, 良久而散, 夏五月 與倭國結好交聘, 六月
삼년, 춘삼월, 왕등토함산, 유현운여개, 부왕두상, 양구이산, 하오월, 여왜국결호교빙, 육월 有星孛于天船.
유성패우천선.
3년(서기 59) 봄 3월 왕이 토함산에 올라갔는데, 검은 구름이 덥개처럼 왕의 머리 위에 뜨더니 한참 있다가 흩어졌다. 여름 5월 왜국과 친교를 맺고 사신을 교환하였다. 6월에 천선성좌에 살별이 나타났다.
五年, 秋八月, 馬韓將孟召, 以覆巖城降.
오년, 추팔월, 마한장맹소, 이복암성항.
5년(서기 61) 가을 8월 마한장수 맹소가 복암성을 바치며 항복하였다.
七年, 冬十月, 百濟王拓地, 至娘子谷城, 遣使請會, 王不行.
칠년, 동십월, 백제왕척지, 지낭자곡성, 견사청회, 왕불행.
7년(서기 63) 겨울 10월 백제왕이 땅을 넓혀 낭자곡성에 이르러 사자를 보내어 만나기를 청하였으나 왕은 가지 않았다.
八年, 秋八月, 百濟遣兵, 攻蛙山城 冬十月, 又攻狗壤城, 王遣騎二千, 擊走之, 十二月, 地震
팔년, 추팔월, 백제견병, 공와산성, 동십월, 우공구양성, 왕견기이천, 격주지, 십이월, 지진 無雪.
무설.
8년(서기 64) 가을 8월에 백제가 군사를 보내어 와산성을 공격하였다. 겨울 10월에 또 구양성을 공격하였으므로 왕이 기병 2천 명을 보내어 공격해 쫓아버렸다. 12월에 지진이 있고 눈이 오지 아니하였다.
九年, 春三月, 王夜聞, 金城西始林樹間, 有鷄鳴聲, 遲明, 遣瓠公視之, 有金色小櫝掛樹枝,
구년, 춘삼월, 왕야문, 금성서시림수간, 유계명성, 지명, 견호공시지, 유금색소독괘수지,
白雞鳴於其下, 瓠公還告, 王使人取櫝開之, 有小男兒在其中, 姿容寄偉, 上喜, 謂左右曰 此
백계명어기하, 호공환고, 왕사인취독개지, 유소남아재기중, 자용기위, 상희, 위좌우왈 차
豈非天遣我以令胤乎, 乃收養之, 及長聰明多智略, 乃名閼智, 以其出於金櫝姓金氏, 改始林名
개비천견아이영윤호, 내수양지, 급장총명다지략, 내명알지, 이기출어금독성김씨, 개시림명
雞林, 因以爲國號.
계림, 인이위국호.
9년(서기 65) 봄 3월 왕이 밤에 금성 서쪽의 시림의 숲에서 닭 우는 소리를 들었다. 날이 새기를 기다려 호공을 보내어 살펴보게 하였더니, 나무 가지에 금색의 작은 궤가 걸려 있고 그 밑에 흰 닭이 울고 있었다. 호공이 돌아와서 아뢰자,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 궤를 가져다 열어 보니 그 속에 사내아이가 들어 있는데, 자태와 용모가 특별히 뛰어났다. 왕이 기뻐하며 좌우에게 일러 가로되 “이는 하늘이 나에게 아들을 준 것이 아니냐 하고 거두어 길렀다. 성장하자 총명하고 지략이 많았다, 이에 이름을 알지라 이름하고 금궤짝에서 나왔으므로 해서 성을 김이라 하였으며, 시림을 고치어 계림이라 이름하고 이를 국호로 삼았다.
十年, 百濟攻取蛙山城, 留二百人居守, 尋取之.
십년, 백제공취와산성, 유이백인거수, 심취지.
10년(서기 66) 백제가 와산성을 공격하여 빼앗아 2백명을 머무르게 하고 지키게 하였으나, 얼마 되지 않아 이를 다시 뺏어왔다.
十一年, 春正月, 以朴氏貴戚, 分理國內州郡, 號爲州主, 郡主, 二月, 以順貞爲伊伐湌, 委以
십일년, 춘정월, 이박씨귀척, 분리국내주군, 호위주주, 군주, 이월, 이순정위이벌찬, 위이
政事.
정사.
11년(서기 67) 봄 정월 박씨의 귀척으로 국내의 주. 군을 나누어 다스리게 하였다. 이름을 주주. 군주라 하였다. 2월에 순정으로 이벌찬을 삼아 정무를 맡기었다.
十四年, 百濟來侵.
십사년, 백제래침.
14년(서기 70) 백제가 침입하였다.
十七年, 倭人侵木出島, 王遣角干羽烏禦之, 不克, 羽烏死之.
십칠년, 왜인침목출도, 왕견각간우오어지, 불극, 우오사지.
17년(서기 73) 왜인이 목출도를 침입하니 왕이 각간 우오를 보내 그들을 방어하게 했으나 이기지 못하고 우오는 죽었다.
十八年, 秋八月, 百濟寇邊, 遣兵拒之.
십팔년, 추팔월, 백제구변, 견병거지.
18년(서기 74) 가을 8월 백제가 변경을 노략질하였으므로 군사를 보내 그들을 막았다.
十九年, 大旱, 民饑, 發倉賑給, 冬十月, 百濟攻西鄙蛙山城, 拔之.
십구년, 대한, 민기, 발창진급, 동십월, 백제공서비와산성, 발지.
19년(서기 75) 큰 가뭄이 있어 백성이 굶주리므로 창고를 열어 곡식을 나누어 주어서 구제하였다. 겨울 10월 백제가 서쪽 변경의 와산성을 쳐 점령하였다.
二十年, 秋九月, 遣兵伐百濟, 復取蛙山城, 自百濟來居者二百餘人, 盡殺之.
이십년, 추구월, 견병벌백제, 복취와산성, 자백제래거자이백여인, 진살지.
20년(서기 76) 가을 9월 군사를 보내어 백제를 쳐 와산성을 도로 빼았고 백제로부터 와서 살던 사람 2백여 명을 모두 죽이었다.
二十一年, 秋八月, 阿湌吉門與加耶兵, 戰於黃山津口, 獲一千餘級, 以吉門爲波珍湌, 賞功也.
이십일년, 추팔월, 아찬길문여가야병, 전어황산진구, 획일천여급, 이길문위파진찬, 상공야.
21년(서기 77) 가을 8월 아찬 길문이 가야 군사와 황산진구에서 싸워 1천여 명을 목 베었으므로 길문을 파진찬으로 삼아 공로를 포상하였다.
二十三年, 春二月, 慧星見東方, 又見北方, 二十日乃滅.
이십삼년, 춘이월, 혜성견동방, 우견북방, 이십일내멸.
23년(서기 79) 봄 2월에 혜성이 동쪽에서 나타났고, 또 북쪽에도 나타났다가 20일 만에 없어졌다.
二十四年, 夏四月, 京都大風, 金城東門自壤, 秋八月, 王薨, 葬城北壤井丘.
이십사년, 하사월, 경도대풍, 금성동문자양, 추팔월, 왕훙, 장성북양정구.
24년(서기 80) 여름 4월 서울에 큰 바람이 불었고, 금성 동문이 저절로 무너졌다. 가을 8월에 왕이 돌아가 성 북쪽의 양정구에 장사지냈다.
婆娑尼師今立, 儒理王第二子也或云儒理第奈老之子也, 妃金氏, 史省夫人, 許婁葛文王之女也,
파사이사금입, 유리왕제이자야혹운유리제나노지자야, 비김씨, 사성부인, 허루갈문왕지여야,
初脫解薨, 臣僚欲立儒理太子逸聖, 或謂逸聖雖嫡嗣, 而威明不及婆娑, 遂立之, 婆娑節儉省用
초탈해훙, 신료욕입유리태자일성, 혹위일성수적사, 이위명불급파사, 수입지, 파사절검성용
,而愛民 國人嘉之.
,이애민 국인가지.
파사이사금이 즉위하니 유리왕의 둘째 아들이다.⟨혹은 유리왕의 동생 나로의 아들이라고도 하였다⟩왕비는 김씨, 사성부인으로 허루 갈문왕의 딸이다. 당초 탈해가 돌아가매 신하들은 유리의 태자인 일성을 세우려 하다가, 어떤 자가 말하되 일성은 비록 맏아들이나 위험과 현명함이 파사를 따르지 못한다 하여, 드디어 파사를 세웠던 것이다. 파사는 절약하고 검소한 생활로 씀씀이를 줄이고 백성을 사랑하였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아름답게 여겼다.
二年, 春二月, 親祀始祖廟, 三月, 巡撫州郡, 發倉賑給, 慮獄囚, 非二罪悉原之.
이년, 춘이월, 친사시조묘, 삼월, 순무주군, 발창진급, 려옥수, 비이죄실원지.
2년(서기 81) 봄 2월 직접 시조묘에 제사를 지냈다. 3월 왕이 주군을 돌면서 창고을 열어 어려운 백성들에게 곡식을 베풀어주며, 옥중 죄인을 조사하여 두 가지 사형제가 아닌 것은 다 놓아주게 하였다.
三年, 春正月, 下令曰, 今倉廩空匱, 戎器頑純, 儻有水旱之죄, 邊鄙之警, 其何以禦之, 宜令 삼년, 춘정월, 하령왈, 금창늠공궤, 융기완순, 당유수한지죄, 변비지경, 기하이어지, 의령
有司勸農桑, 練兵革, 以備不虞.
유사권농상, 연병혁, 이비불우.
3년(서기 82) 정월에 영을 내리어 가로되, 『지금 창고가 텅비었고 무기가 무디었으니 만약에 수재나 한재가 있거나 변방에 변고가 있게 되면 어떻게 이를 막으랴. 마땅히 유사로 하여금 농사와 누에치기를 권하게 하고 병기를 단련하여 이외에 대비케 하라』하였다.
五年, 春二月, 以明宣爲伊湌, 允良爲波珍湌, 夏五月, 古陁郡主獻靑牛, 南新縣麥連歧, 大有
오년, 춘이월, 이명선위이찬, 윤량위파진찬, 하오월, 고타군주헌청우, 남신현맥연기, 대유
年, 행者不䝴糧.
년, 행자불재량.
5년(서기 84) 봄 2월 명선으로 이찬으로, 윤량으로 파진찬으로 삼았다. 여름 5월 고타군주가 푸른 소를 바치고, 남신현에서는 보리줄기가 가지를 쳤다. 풍년이 크게 들어 행인이 양식을 싸가지고 다니지 않게 되었다.
六年, 春正月, 百濟犯邊, 二月, 以吉元爲阿湌, 夏四月, 客星入紫微.
육년, 춘정월, 백제범변, 이월, 이길원위아찬, 하사월, 객성입자미.
6년(서기 85) 봄 정월 백제가 변경을 침범하였다. 2월 길원을 아찬을 삼았다. 여름 4월에 객성이 자미성좌로 들어갔다.
八年, 秋七月, 下令曰, 朕以不德, 有此國家, 四鄰百濟, 南接加耶, 德不能綏, 威不足畏, 宜
팔년, 추칠월, 하령왈, 짐이불덕, 유차국가, 사린백제, 남접가야, 덕불능수, 위불족외, 의
線葺城壘, 以待侵軼, 是月, 築加召, 馬頭二城.
선즙성루, 이대침질, 시월, 축가소, 마두이성.
8년(서기 87) 가을 7월 영을 내리기를 『짐이 부덕한 사람으로 나라를 다스리어, 서쪽으로 백제를 이웃하고, 남쪽으로 가야와 접하였으며, 덕은 능히 백성을 편안하게 하지 못하고 위엄은 족히 먼곳을 두렵게 못하니 마땅히 성루를 수리하여 적의 침입에 대비하라』 하였다. 이달에 가소성과 마두성 두 성을 쌓았다.
十一年, 秋七月, 分遣使十人, 廉察州郡主不勤公事, 致田野多荒者 貶黜之.
십일년, 추칠월, 분견사십인, 염찰주군주불근공사, 치전야다황자, 폄출지.
11년(서기 90) 가을 7월 사자 10명을 나누어 파견하여 주주와 군주를 감찰하여, 공무에 힘쓰지 않거나 논밭을 황폐하게 한 자의 관직을 강등시키거나 파면하였다.
十四年, 春正月, 拜允良爲伊湌, 啓其爲波珍湌, 二月, 巡幸古所夫里郡, 親問高年, 賜穀, 冬
십사년, 춘정월, 배윤량위이찬, 계기위파진찬, 이월, 순행고소부리군, 친문고년, 사곡, 동
十月, 京都地震.
십월, 경도지진.
14년(서기 93) 봄 정월 윤량으로 이찬을 삼고, 계기를 파진찬으로 삼았다. 2월에 고소부리군을 순행하여 친히 나이 많은 사람을 몸소 위문하고 곡식을 하사하였다. 겨울 10월에 서울에 지진이 있었다.
十五年, 春二月, 加耶賊圍馬頭城, 遣阿湌吉元, 將騎一千擊走之, 秋八月, 閱兵於閼川.
십오년, 춘이월, 가야적위마두성, 견아찬길원, 장기일천격주지, 추팔월, 열병어알천.
15년(서기 94) 봄 2월 가야의 적들이 마두성을 포위하자 아찬 길원를 보내어 기병 1천을 이끌고 쳐서 쫓았다. 가을 8월에 알천에서 열병하였다.
十七年, 秋七月, 暴風自南, 拔金城南大樹, 九月, 加耶人襲南鄙, 遣加城主長世, 拒之, 爲賊
십칠년, 추칠월, 폭풍자남, 발금성남대수, 구월, 가야인습남비, 견가성주장세, 거지, 위적
所殺, 王怒, 率勇士五千, 出戰敗之, 虜獲甚多.
소살, 왕노, 솔용사오천, 출전패지, 로획심다.
17년(서기 96) 가을 7월 폭풍이 남쪽에서 불어와 금성 남쪽의 큰 나무가 뽑혔다. 9월 가야인이 남쪽 변경을 습격하여 가성주 장세를 보내어 막게 하였더니 적군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왕이 노하여 용사 5천을 거느리고 나가 싸워 적을 깨트리니 사로잡거나 죽인 자가 매우 많았다,
十八年, 春正月, 擧兵, 欲伐加耶, 其國主遣使請罪, 乃止.
십팔년, 춘정월, 거병, 욕벌가야, 기국주견사청죄, 내지.
18년(서기 97) 봄 정월에 군사를 일으켜 가야를 정벌하려고 하였으나, 그 나라 임금이 사신을 보내어 사죄를 청하므로 이에 그만두었다.
十九年, 夏四月, 京都旱.
십구년, 하사월, 경도한.
19년(서기 98) 여름 4월 서울에 가뭄이 들었다.
二十一年, 秋七月, 雨雹, 飛鳥死, 冬十月, 京都地震, 倒民屋有死者.
이십일년, 추칠월, 우박, 비조사, 동십월, 경도지진, 도민옥유사자.
21년(서기 100) 가을 7월 우박이 내려 날아다니던 새가 죽었다, 겨울 10월에는 서울에 지진이 있어 민가가 쓰러지고 죽는 자까지 있었다.
二十二年, 春二月, 築城名月城, 秋七月, 王移居月城.
이십이년, 춘이월, 축성명월성, 추칠월, 왕이거월성.
22년(서기 101) 봄 2월에 성을 쌓고 월성이라 이름하고 가을 7월 왕이 월성으로 옮겨가 살았다.
二十三年, 秋八月, 音汁伐國與悉直谷國爭疆, 詣王請決, 王難之謂, 金官國首露王, 年老, 多
이십삼년, 추팔월, 음즙벌국여실직곡국쟁강, 예왕청결, 왕난지위, 금관국수로왕, 연노, 다
智識, 召問之 首露立議, 以所爭之地, 屬音汁伐國, 於是, 王命六部, 會饗首露王, 五部皆以伊
지식, 소문지 수로입의, 이소쟁지지, 속음즙벌국, 어시, 왕명육부, 회양수로왕, 오부개이이
湌爲主, 唯漢祇部 以位卑者主之, 首露怒, 命奴耽下里, 殺漢祇部主保齊而歸, 奴逃依音汁伐
찬위주, 유한기부 이위비자주지, 수로노, 명노탐하리, 살한기부주보제이귀, 노도의음즙벌
主陁鄒干家, 王使人索其奴, 陁鄒不送, 王怒, 以兵伐音汁伐國, 其主與衆自降, 悉直. 押督二
주타추간가, 왕사인색기노, 타추불송, 왕노 이병벌음즙벌국, 기주여중자항, 실직. 압독이
國王來降, 冬十月, 桃李華.
국왕래항, 동십월, 도이화.
23년(서기 102) 가을 8월 음즙벌국과 실직곡국이 강역을 다투다가, 왕에게 와서 해결해 주기를 청하므로 왕이 이를 난처히 여기어 이르되, 금관국 수로왕이 연로하고 지식이 많다 하니, 그를 불러 물었더니, 수로가 건의하여 다투던 땅을 음즙벌국에 속하게 하였다. 이에 왕은 6부에 명하여 모여서 수로를 위한 연회에 모이게 하였는데, 5부는 모두 이찬으로 접대 주인을 삼았으나 한기부만이 지위가 낮은 사람으로 주장하게 하였다. 수로가 노하여 종 탐하리에게 명하여 한기부주인 보제를 죽이고 돌아갔다. 그 종은 도망하여 음즙벌주 타추간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 종을 찿았으나 타추가 보내주지 아니하는지라, 왕이 노하여 군사를 일으켜 음즙벌국을 치니 두목과 무리가 스스로 항복하였다, 실직국과 압독국의 두 나라 왕도 와서 항복하였다. 10월에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피었다.
二十五年, 春正月, 衆星隕如雨, 不至地, 秋七月, 悉直叛, 發兵討平之, 徒其餘衆於南鄙.
이십오년, 춘정월, 중성운여우, 불지지, 추칠월, 실직반 발병토평지, 도기여중어남비.
25년(서기 104) 봄 정월에 뭇 별들이 비와 같이 떨어졌으나 땅에는 이르지 아니하였다. 가을 7월 실직국이 반란을 일으켰으므로 군사를 보내 토벌하여 평정하고, 나머지 무리들을 남쪽의 변방으로 옮기었다.
二十六年, 春正月, 百濟遣使請和, 二月, 京都雪三尺.
이십육년, 춘정월, 백제견사청화, 이월, 경도설삼척.
26년(서기 105) 봄 정월에 백제가 사신을 보내어 화해를 청하였다. 2월에 서울에 눈이 석자나 왔었다.
二十七年, 春正月, 幸押督賑貧窮, 三月, 至自押督, 秋八月, 命馬頭城主 伐加耶.
이십칠년, 춘정월, 행압독진빈궁, 삼월, 지자압독, 추팔월, 명마두성주, 벌가야
27년 봄 정월 압독에 거둥하여 빈궁한 자에게 먹을 것을 베풀어 주고, 삼월에 압독에서 돌아왔다. 가을 8월 마두성주에게 명하여 가야를 치게 하였다.
二十九年, 夏五月, 大水, 民飢, 發使十道, 開倉賑給, 遣兵伐比只國. 多伐國. 草八國. 幷之
이십구년, 하오월, 대수, 민기, 발사십도, 개창진급, 견병벌비지국. 다벌국. 초팔국. 병지
29년(서기 108) 여름 5월 홍수가 나서 백성이 굶주리므로 10도에 사신을 보내어 창고를 열어 구제해 주었다. 군사를 보내어 비지국. 다벌국. 초팔국을 쳐서 병합하였다.
三十年, 秋七月, 蝗害穀, 王遍祭山川, 以祈禳之, 蝗滅, 有年.
삼십년, 추칠월, 황해곡, 왕편제산천, 이기양지, 황멸, 유년.
30년(서기 109) 가을 7월 황충이 곡식을 해하므로 왕이 두루 산천에 제사하여 기도하였더니 황충이 없어지고 풍년이 들었다.
三十二年, 夏四月, 城門自毁, 自五月, 至七月, 不雨.
삼십이년, 하사월, 성문자훼, 자오월, 지칠월, 불우.
32년(서기 111) 여름 4월 성문이 저절로 무너졌다. 5월부터 7월에 이르기까지 비가 내리지 아니하였다.
三十三年, 冬十月, 王薨, 葬蛇陵圓內.
삼십삼년, 동십월, 왕훙, 장사릉원내.
33년(서기 112) 겨울 10월 왕이 돌아가매 사릉원 안에 장사지냈다.
祇摩尼師今立或云祇味, 婆娑王嫡子, 母史省夫人, 妃金氏, 愛禮夫人, 葛文王摩帝之女也, 初지마이사금입혹운지미, 파사왕적자, 모사성부인, 비김씨, 애례부인, 갈문왕마제지여야, 초
婆娑王獵於楡湌之澤, 太子從焉, 獵後, 過韓歧部, 伊湌許婁響之, 酒酣, 許婁之妻, 携少女子
파사왕렵어유찬지택, 태자종언, 렵후, 과한기부, 이찬허루향지, 주감, 허루지처, 휴소녀자
出舞, 摩帝伊湌之妻, 亦引出其女, 太子見而悅之, 許婁不悅, 王謂許婁曰, 此地名大庖, 公於
출무, 마제이찬지처, 역인출기여, 태자견이열지, 허루불열, 왕위허루왈, 차지명대포, 공어
此, 置盛饌美醞, 以宴衎之, 宜位酒多, 在伊湌之上, 以摩帝之女, 配太子焉, 酒多, 後云角干.
차, 치성찬미온, 이연간지, 의위주다, 재이찬지상, 이마제지여, 배태자언, 주다, 후운각간.
지마이사금이 즉위하니⟨혹은 祇味(지미)라고도 하였다⟩파사왕의 친아들로 어머니는 사성부인이요, 비는 김씨 예례부인으로 갈문왕 마제의 딸이다. 일찍이 파사왕이 유찬 못가에서 사냥할 때 태자도 따라갔다. 사냥이 끝난 뒤 한기부를 지나게 되었는데, 이찬 허루가 잔치를 베풀었다. 술이 취하자 허루의 아내가 한 소녀를 이끌고 나와 춤을 추었다. 마제 이찬의 처도 그의 딸을 데리고 나오니 태자가 보고 기뻐하매, 허루는 좋아하지 아니하였다. 왕이 허루에게 일러 가로되, “이곳 지명이 대포인데, 공이 여기에 성찬과 맛좋은 술을 마련하여 즐겁게 해주었으니 마땅히 주다의 위계를 주어 이찬보다 위에 있게 하겠다. 그리고는 마제의 딸을 태자의 배필로 삼았다. 주다(酒多)는 후에 각간이라고 하였다.
二年, 春二月, 親祀始祖墓, 拜昌永爲伊湌, 以參政事, 玉權爲波珍湌, 申權爲一吉湌, 順宣爲
이년, 춘이월, 친사시조묘, 배창영위이찬 이참정사, 옥권위파진찬, 신권위일길찬, 순선위
級湌, 三月, 百濟遣使來聘.
급찬, 삼월, 백제견사래빙.
2년(서기 113) 봄 2월 친히 시조묘에 제사를 지냈다. 창영을 이찬으로 삼아 정사에 참여케 하고 옥권으로 파진찬. 신권으로 일길찬. 순선으로 급찬을 삼았다. 3월에 백제가 사신을 보내와 예방했다.
三年, 春三月, 雨雹, 麥苗傷, 夏四月, 大水, 盧囚, 除死罪餘悉原之.
삼년, 춘삼월, 우박, 맥묘상, 하사월, 대수, 노수, 제사죄여실원지.
3년(서기 114) 봄 3월 우박이 내려 보리의 싹이 상하고, 4월에 홍수가 났다. 죄인의 정상을 살펴 사형수를 제외한 나머지를 죄다 풀어주었다.
四年, 春二月, 加耶寇南邊, 秋七月, 親征加耶, 帥步騎度黃山河, 加耶人伏兵林簿, 以待之,
사년, 춘이월, 가야구남변, 추칠월, 친정가야, 수보기도황산하, 가야인복병임부, 이대지,
王不覺直前, 伏發圍數重, 王揮軍奮擊, 決圍而退.
왕불각직전, 복발위수중, 왕휘군분격, 결위이퇴.
4년(서기 115) 봄 2월 가야가 남쪽 변경을 침입하였다. 가을 7월 친히 가야를 정벌하였는데, 보병과 기병을 거느리고 황산하를 건너니 가야인은 군사를 덤불에 숨겨놓고 기다리었다. 왕이 알지 못하고 나아가니 복병이 일어나 두어 겹으로 에워싸니 왕이 군사를 지휘하여 싸워 포위를 뚫고 물러났다.
五年, 秋八月, 遣將侵加耶, 王帥精兵一萬, 以繼之 加耶嬰城固守, 會久雨, 乃還.
오년, 추팔월, 견장침가야, 왕수정병일만, 이계지, 가야영성고수, 회구우 내환.
5년(서기 116) 가을 8월 장수를 보내 가야를 침입케 하고 왕은 정병 1만 명을 거느리고 그 뒤를 이으니, 가야는 성에 들어않아 굳게 지키고 있었는데, 마침 비가 오래 내렸므로 되돌아 왔다.
九年, 春二月, 大星墜月城西, 聲如雷, 三月, 京都大疫.
구년, 춘이월, 대성추월성서, 성뇌여, 삼월, 경도대역.
9년(서기 120) 봄 2월 큰 별이 월성 서쪽에 떨어지니 소리가 우레와 같았다. 3월에 서울에는 역병이 크게 돌았다.
十年, 春正月, 以翌宗爲伊湌 昕連爲波珍湌, 林權爲阿湌 二月, 築大甑山城, 夏四月, 倭人侵
십년, 춘정월, 이익종위이찬, 흔련위파진찬, 임권위아찬, 이월, 축대증산성, 하사월, 왜인침
東邊
동변
10년(서기 121) 봄 정월 익종으로 이찬을 삼고, 흔련으로 파진찬을 임권으로 아찬을 삼았다. 2월에 대증산성을 쌓았다. 여름 4월에 왜인이 동쪽 변경에 침범하였다.
十一年, 夏四月, 大風東來, 折木飛瓦, 至夕而止 都人訛言, 倭兵大來, 爭遁山谷, 王命伊湌
십일년, 하사월, 대풍동래, 절목비와, 지석이지, 도인와언, 왜병대래, 쟁둔산곡, 왕명이찬
翌宗等諭止之, 秋七月, 飛蝗害穀, 年饑, 多盜.
익종등유지지, 추칠월, 비황해곡, 년기, 다도.
11년(서기 122) 여름 4월 큰 바람이 동쪽에서 불어와 나무가 부러지고 기와를 날리더니 저녁에 이르러 그치었다. 서울 사람들이 “왜병이 크게 쳐들어온다”는 말을 잘못 퍼뜨리고는 다투어 산골로 도망하여 숨었다. 왕이 이찬 익종에게 명하여 설득하여 그치게 하였다. 가을 7월에 황충이 날아와 곡식을 해쳤다. 흉년이 들고 도적이 많았다.
十二年, 春三月, 與倭國講和, 夏四月, 隕霜, 五月, 金城東民屋陷爲池, 芙蕖生.
십이년, 춘삼월, 여왜국강화, 하사월, 운상, 오월, 금성동민옥함위지, 부거생.
12년(서기 123) 봄 3월 왜국과 화해하였다. 여름 4월에 거리가 오고 5월에 금성 동쪽의 민가가 저절로 땅 속으로 들어가면서 못이 되고 연이 돋아났다.
十三年, 秋九月庚申晦, 日有食之.
십삼년, 추구월경신회, 일유식지.
13년(서기 124) 가을 9월 그믐 경신에 일식이 있었다.
十四年, 春正月, 靺鞨大入北境, 殺掠吏民, 秋七月, 又襲大嶺柵, 過於泥河, 王移書百濟請求,
십사년, 춘정월, 말갈대입북경, 살략이민, 추칠월, 우습대령책, 과어이하, 왕이서백제청구,
百濟遣五將軍助之, 賊聞而退.
백제견오장군조지, 적문이퇴.
14년(서기 125) 봄 정월 말갈이 북쪽 변경에 크게 쳐들어와 관리와 백성을 죽이고 노략질 하였다. 가을 7월에는 또 대령책을 습격하고 이하를 지났으므로 왕이 백제에 글을 보내 구원을 청하니, 백제는 다섯 장군을 보내 도우니 적이 듣고서 물러갔다.
十六年, 秋七月甲戌朔, 日有食之.
십육년, 추칠월갑술삭, 일유식지.
16년(서기 127) 가을 7월 초하루 갑술에 일식이 있었다.
十七年, 秋八月, 長星竟天, 冬十月, 國東地震, 十一月, 雷.
십칠년, 추팔월, 장성경천, 동십월, 국동지진, 십일월, 뇌.
17년(서기 128) 가을 8월 장성이 하늘에 뻗치고 10월에 나라 동쪽에 지진이 있고, 11월에 우레가 울렸다.
十八年, 秋, 伊湌昌永卒, 以波珍湌玉權爲伊湌, 以參政事.
십팔년, 추, 이안창영졸, 이파진찬옥권위이찬, 이참정사.
18년(서기 129) 가을 이찬 창영이 죽었으므로 파진찬 옥권을 이찬으로 정사에 참여시켰다.
二十年, 夏五月, 大雨, 漂沒民戶.
이십년, 하오월, 대우, 표몰민호.
20년(서기 131 여름 5월 큰 비가 내려 민가가 떠내려가고 물에 잠겼다.
二十一年, 春二月, 宮南門災.
이십일년, 춘이월, 궁남문재.
21년(서기 132) 봄 2월 왕궁 남문에 불이 났다.
二十三年, 春夏, 旱, 秋八月, 王薨, 無子.
이십삼년, 춘하, 한, 추팔월, 왕훙, 무자.
23년(서기 134) 봄과 여름에 가물었다. 가을 8월에 왕이 돌아가니 아들이 없었다.
逸聖尼師今立, 儒理王之長子或云日知葛文王之子, 妃朴氏, 支所禮王之女.
일성이사금입, 유리왕지장자혹운일지갈문왕지자, 비박씨, 지소예왕지녀.
일성이사금이 즉위하니, 유리왕의 맏아들이고(혹운일지갈문왕의 아들이라고 하였다자 한다) 비는 박씨인데 지소례왕의 딸이다.
元年, 九月, 大赦.
원년, 구월, 대사.
원년(서기 134) 9월 대사면을 실시하였다.
二年, 春正月, 親祀始祖廟.
이년, 춘정월, 친사시조묘
2년(서기 135) 봄 정월 친히 시조묘에 제사지냈다.
三年, 春正月, 拜雄宣爲伊湌, 兼知內外兵馬事, 近宗爲一吉湌.
삼년, 춘정월, 배웅선위이찬, 겸지내외병마사, 근종위일길찬.
3년(서기 136) 봄 정월에 웅선으로 이찬을 삼아 내외의 병마사를 겸하여 맡아보게 하고, 근종으로 일길찬을 삼았다.
四年, 春二月, 靺鞨入塞, 燒長嶺五柵.
사년, 춘이월, 말갈입새, 소장령오책.
4년(서기 137) 봄 2월 말갈이 변방에 쳐들어와 장령의 목책 5개를 불질렀다.
五年, 春二月, 置政事堂於金城, 秋七月, 大閱閼川西, 冬十月, 北巡, 親祀太白山.
오년, 춘이월, 치정사당어금성, 추칠월, 대열알천서, 동십월, 북순, 친사태백산.
5년(서기 138) 봄 2월 금성에 정사당을 두었다. 가을 7월에 알천 서편에서 군사를 크게 사열하였다. 겨울 10월 북쪽으로 순행하여 태백산에 직접 제사지냈다.
六年, 秋七月, 隕霜殺菽, 八月, 靺鞨襲長嶺, 虜掠民口, 冬十月, 又來, 雷甚乃退.
육년, 추칠월, 운상살숙, 팔월, 말갈습장영, 로약민구, 동십월, 우래, 뢰심내퇴.
6년(서기 139) 가을 7월 서리가 와서 콩을 헤쳤다. 8월 말갈이 장령을 습격하여 백성을 노략질하였다. 겨울 10월에 또 쳐들어 왔으나 우뢰가 심하매 곧 물러가 버렸다.
七年, 春二月, 立柵長嶺, 以防靺碣.
칠년, 춘이월, 입책장영, 이방말갈.
7년(서기 140) 봄 2월에 장령에 목책을 세워 말갈을 방비하였다.
八年, 秋九月辛亥晦, 日有食之.
팔년, 추구월신해회, 일유식지.
8년(서기 141) 가을 9월 그믐 신해에 일식이 있었다.
九年, 秋七月, 召羣公, 議征靺鞨, 伊湌雄宣上言不可, 乃止.
구년, 추칠월, 소군공, 의정말갈, 이찬웅선상언불가, 내지.
9월(서기 142) 가을 7월에 여러 신하들을 불러 말갈을 정벌할 일을 의논하였다. 이찬 웅선이 불가하다 아뢰어 그만 두었다.
十年, 春二月, 修葺宮室, 夏六月乙丑, 熒惑犯鎭星, 冬十一月, 雷.
십년, 춘이월, 수즙궁실, 하육월을축, 형옥범진성, 동십일월, 뢰.
10년(서기 143) 봄 2월 궁실을 수리하였다. 여름 6월 을축에 형옥이 진성을 침범하였다. 겨울 11월에 천둥이 쳤다.
十一年, 春二月, 下令, 農者政本, 食惟民天, 諸州郡修完堤防, 廣闢田野, 又下令, 禁民間用
십일년, 춘이월, 하령, 농자정본, 식유민천, 제주군수완제방, 광벽전야, 우하령, 금민간용
金銀珠玉.
금은주옥.
11년(서기 144) 봄 2월 영을 내려 말하였다. “농사는 정치의 근본이요, 먹는 것은 백성이 오로지 하늘로 여기는 것이니 여러 주와 군은 제방을 수리. 보완하고 전답을 널리 개간하라 하였으며 또 영을 내리어 민간에서 금은주옥을 사용하는 것을 금하였다.
十二年, 春夏, 旱, 南地最甚, 民飢, 移其粟賑給之.
십이년. 춘하. 한. 남지최심. 민기. 이기속진급지.
12년(서기 144) 봄과 여름에 가뭄이 있어, 남쪽 지방이 가장 심하며 백성이 굶주리매, 곡식을 옮겨 나누어 주어서 구제해 주었다.
十三年, 冬十月, 押督叛, 發兵討平之, 徙其餘衆於南地.
십삼년, 동십월, 압독반, 발병토평지, 사기여중어남지.
13년(서기 146) 겨울 10월 압독이 반란을 일으켜 군사를 보내 토벌하여 평정하고, 남은 무리들을 남쪽 땅으로 옮기었다.
十四年, 秋七月, 命臣寮, 各擧智勇堪爲將帥者.
십사년, 추칠월, 명신료, 각거지용감위장수자.
14년(서기 147) 가을 7월 신료들에게 명하여, 지혜와 용맹이 있어 장수될 만한 사람을 각기천거하라고 하였다.
十五年, 封朴阿道爲葛文王, 新羅追封王, 皆稱葛文王, 其義未詳.
십오년, 봉박아도위갈문왕, 신라추봉왕, 개칭갈문왕, 기의미상.
15년(서기 148) 박아도를 갈문왕에 봉했다.⟨신라에서는 죽은 후에 봉하는 임금은 모두 갈문왕이라 칭하거니와 그 뜻을 알 수 없다.⟩
十六年, 春正月, 以得訓爲沙湌, 宣忠爲奈麻, 秋八月, 有星孛干天市, 冬十一月, 雷, 京都大
십육년, 춘정월, 이득훈위사찬, 선충위나마, 추팔월, 유성패간천시, 동십일월, 뢰, 경도대
疫.
역.
16년(서기 149) 봄 정월 득훈으로 사찬을 삼고, 선충으로 나마를 삼았다. 가을 8월에 살별이 천시성좌에 나타났다. 겨울 11월에 우레가 울렸고 서울에 역병이 크게 유행하였다.
十七年, 自夏四月, 不雨, 至秋七月, 乃雨.
십칠년, 자하사월, 불우, 지추칠월, 내우.
17년(서기 150) 여름 4월부터 비가 오지 아니하더니 7월에 가서야 비가 왔다.
十八年, 春二月, 以湌雄宣卒, 以大宣爲伊湌, 兼知內外兵馬事, 三月, 雨雹.
십팔년, 춘이월, 이찬웅선졸, 이대선위이찬, 겸지내외병마사, 삼월, 우박.
18년(서기 151) 봄 2월 이찬 웅선이 죽었으므로 대선으로 이찬을 삼아 중외의 군사 일을 맡게 하였다. 3월에 우박이 왔다.
二十年, 冬十月, 宮門災, 慧星見東方, 又見東北方.
이십년, 동십월, 궁문재, 혜성견동방, 우견동북방.
20년(서기 153) 겨울 10월 궁궐 문에 불이 났다. 동쪽에 혜성이 나타나더니, 또 동북방에도 나타났다.
二十一年, 春二月, 王薨.
이십일년, 춘이월, 왕훙.
21년(서기 154) 봄 2월에 왕이 돌아갔다.
三 國 史 記 卷 第一
삼 국 사 기 권 제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