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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태어난 후 가장 먼저 선호하는 맛은 단맛이다. 쓴맛이 나는 채소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짠맛이 강한 과자들이 많은데, 이 또한 자극적이다. 짠맛뿐만 아니라 단맛까지 과하게 가미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번 빠져들면 입맛을 바꾸기란 어렵다.
아이들은 달콤함의 유혹에 더 쉽게 빠진다. 사탕, 초콜릿 같은 군것질거리, 콜라와 가당 주스 같은 마실거리는 달다. 그 핵심에 설탕이 있다. 우리가 먹고 있는 설탕의 정체는 무엇일까. 얼마 전 우연히 본 TV 프로그램에서는 설탕의 해악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TV 쇼’이니만큼 아주 냉정하지는 않았다. 적당히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놀라게 만드는 정도? 사실 설탕은 그보다 훨씬 위험하다.
윌리엄 더프티의 <슈거 블루스>를 읽고 나면 ‘갑자기’ 설탕이 보기도 싫어진다. 어디서나 쉽게 마실 수 있는 믹스 커피가 무서워질 수도 있다. <슈거 블루스>는 윌리엄 더프티 본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연구 결과들을 모은 후 체계적으로 설탕의 해로움에 대해서 알리고 있는 책이다. 마약은 불법이니 구하기 어렵다. 그러나 설탕은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다. 이처럼 평범한 설탕이 오히려 마약보다 더 인체에 해로울 수도 있다.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지만, 조금이라도 건강한 삶을 원한다면 귀를 기울여보기 바란다.
<뉴욕 포스트>의 기자였던 윌리엄 더프티는 오찬 모임에서 우연히 글로리아 스완슨과 만났다. (<선셋 대로>를 본 관객이라면 그녀의 명연기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커피에 각설탕을 넣으려는 순간 글로리아 스완슨이 단호한 어조로 그에게 속삭였다. “흰 설탕을 먹는 건 자살 행위예요. 내게 신경 쓰이는 건 바로 그거랍니다.” 윌리엄의 머리에서는 그 기억이 떠나지 않았다. 무엇을 먹으면서 살아왔던가. 그는 자기가 살아왔던 식생활에 대해서 반추해보게 된다. 그것이 <슈거 블루스>라는 책이 나오게 된 이유이다.
1923년 금주령이 내리자 미국인들의 설탕 소비가 증가했다. 술 대신 사탕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윌리엄의 할머니도 항상 100파운드짜리 설탕 포대를 보관해두었다. 민들레를 따오면 그 위에 설탕과 레몬을 듬뿍 뿌려서 밀주를 만들었다. 할머니는 파이와 쿠키, 케이크에도 항상 설탕을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단맛이 강한 포도 음료수에 탐닉하던 윌리엄은 사춘기가 되자 여드름에 뒤덮였다. 고등학교 때는 차비를 아껴가며 매일 같이 몰트 초콜릿을 사 먹었다. 피부병은 더 심해졌다. 대학 때는 펩시콜라에 절어서 살았다. 1942년 징집되자 매점에서 맥아분유, 설탕을 넣은 커피, 캔디, 초콜릿, 코카콜라를 찾아 헤맸다. 그러다가 폐렴 증세로 입원하게 된다.
전선으로 나가자 단 음식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말고기와 토끼고기, 농부들이 먹는 검은 빵을 먹으며 지냈다. 그 18개월 동안 한 번도 앓지 않았다. 그러나 음식과 건강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미국으로 돌아오자 다시 단것들을 먹어댔다. 몸이 아파도 의사들 중 어느 누구도 먹고 마시는 것에 관심을 갖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처방으로 코카인까지 쓰는 의사도 있었다.
의사 친구가 식이요법을 처방해주었다. 담배와 커피 대신 아침에는 오트밀을, 점심에는 쌀을, 저녁에는 쌀과 닭고기를 더 먹을 것을 권했다. 식이요법을 할 때는 괜찮았으나, 커피나 펩시콜라를 마시면 병이 재발했다. 식이요법에 대해 무언가 깨닫고는 있었으나 그 의미를 명확히 알지는 못했다. 윌리엄은 글로리아 스완슨의 충고를 떠올리며 주변에 있는 설탕을 모조리 치운다. 설탕이 든 식품까지 버리자 선반과 냉장고가 금세 텅 비어버렸다. 처음에는 엄청난 고통과 메스꺼움, 편두통에 시달렸다. 마치 금단 증상 같았다.
3일 간 고통에 시달렸지만, 그 다음날 아침 새로운 기분으로 깨어난다. 기적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항문과 잇몸의 출혈이 멎고, 피부가 깨끗해지고 살이 빠졌다. “이 행복한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5개월 후 202파운드에서 135파운드로 날씬하게 살을 뺐고, 그 결과 새 몸과 새 정신, 새로운 삶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p28) 윌리엄은 글로리아 스완슨에게 당신 말이 옳았다는 편지를 쓴다. 이후로 그는 설탕 없는 삶을 살았다. 병원에 간 적도 없고, 아스피린조차 만져본 적이 없다.
버나드 퍼거슨은 말할 기운도 없는 사람들에게 설탕 퍼지를 먹였을 때의 상황을 기록했다. “결과가 너무 빨리 나타나 경악했다. 성령이라도 받은 듯했다. 굳었던 혀가 자연스럽게 풀리며 또렷이 발음을 할 수 있게 되었다.”(p57~58) 건강한 사람에게도 이처럼 강력한 효과를 미치는 설탕을 어린아이에게 주어도 되는 걸까. 아랍과 유대인 의사들은 극소량의 정제 설탕만을 처방전에 넣었다. 설탕은 뇌에 작용하는 환각제다.
만성적으로 영양이 결핍되면 뇌세포가 가장 먼저 고통을 겪게 된다. 신진대사가 원활한 몸은 부신(副腎)의 지휘 하에 정확히 균형을 이루며 작동한다. 당은 소화과정을 거쳐 단당류의 형태로 몸에 흡수된다. 그러나 정제 설탕은 대부분의 생화학적 소화 반응을 거치지 않는다. 그 결과 혈당치가 급격히 증가하고, 몸은 위기 상태에 빠진다. 가장 먼저 이 위기를 알아채는 곳이 뇌다.
혈당이 높아지면 기분이 고양된다. 그러나 혈당치가 떨어지면 기분도 처진다. 혈당치가 다시 오르기 전까지 움직이기도 힘들고 생각하는 것도 힘겹다. 설탕을 계속해서 먹으면 몸은 편한 것 같지만, 새로운 위기가 또 시작된다. 몇 년간 이런 식으로 살면 부신이 손상된다. 거듭되는 쇼크 탓에 부신이 망가지는 것이다.
중세에는 민간치료자들이 사람들을 약초로 치료했다. 마법사로도 불리던 그들에게 정제 설탕은 온전한 식품이 아니었다. 설탕은 교회와 정부에 아첨하는 인간들에 의해 수입되어 죽음과 세금, 함정과 말썽, 전쟁과 역병 같은 흔적만 역사에 남겼을 뿐이다. 민간치료자들에게 우울증이나 편두통, 광증을 호소하면 음식과 관련된 증세임을 알아채고 뇌를 진정시키는 약을 준다. 그러나 자연치유법은 사악한 마녀의 행위가 되었다. 환각 증세를 설탕 탓으로 돌린다는 소문이 떠돌자 ‘마녀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민간치료자들은 나라의 거대한 이익을 안겨주는 설탕 산업에 해악을 끼치려는 존재가 된 것이다. 중세의 의학은 왕과 귀족의 도움으로 교회가 완전히 장악했다. 의사들은 슈거 블루스 증세를 마술 탓으로 돌렸다. 의사와 사제는 민간치료자들을 마녀로 몰아 지옥불로 인도했다.
1973년 윌리엄 더프티는 남서 프랑스에서 민간치료자 모리스 메세게를 만났다. “옛 방식을 고수한 목조 창고에서는 약초를 건조대에서 건조시켰다. 식물의 성숙도와 달과 별의 운행주기에 맞추어 가장 알맞은 때에 거둔 것들이다....... 식물마다 나름의 시간표가 있고, 나름의 제철이 있다.”(p74) 그는 모든 것을 아버지에게 배웠다. 설탕은 언제나 엄격히 금지되었다.
어디서든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부가 행했던 자연치료법을 시행했다. 그의 선조들이 물려준 방법은 간단했다. “자연에서 키운 온전한 천연식품을 먹으라는 것이다. 시대를 앞서간다는 전위적인 현대 의학이 이제야 비로소 말하기 시작한 것을, 그의 조상들은 무려 400년 동안이나 어떤 모양과 제품이든 정제한 사탕수수와 사탕무는 먹지 말라고 열심히 말해 왔다.”(p76~77)
일본의 니오티 사쿠라자와의 <당신들은 모두 삼백안(三白眼)이다>에 자신의 경험을 적었다. “1인당 설탕 소비량이 엄청나게 급증하는 현상에 대해 서양의학과 과학은 이제 겨우 경보 신호를 울리기 시작했다...... 설탕은 의문의 여지 없이 인류 역사의 제1의 살인자다. 그것은 아편이나 방사능 낙진보다 더 나쁘다....... 아기들에게 설탕을 먹이고 판매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언젠가 자신들의 책임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깨닫고 공포에 사로잡힐 것이다.”(p77~78)
정신병자를 가두기 시작한 것은, 설탕이 약이 아니라 음식으로 자리를 바꾼 계몽시대부터다. 런던의 의사들은 슈거 블루스에 대한 증세와 징후를 깨닫고 기록을 시작했다. 도시의 설탕 소비량이 늘어나면서 정신병원에 끌려가는 사람은 계속 증가했다.
정신 병리 현상을 영양으로 치유할 수 있다고 보는, 현대 분자교정의학의 선구자인 폴링과 호퍼 박사 등이 내린 결론은 명확하다. 정신 장애란 인체가 당 의존성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해 발현한 최초의 증세일 뿐이란 것이다. 호퍼 박사는 “환자가 설탕이 든 음식을 제한하는 식이 프로그램을 따르도록 지도해야 한다”고 적었다.(p82) 정신분열증 환자의 식습관을 조사해보니 단 것과 캔디, 케이크, 카페인성 음료 등 설탕이 듬뿍 들어간 음식을 많이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음식은 부신을 자극하므로 조금만 먹든지 끊어야 한다. 오래 전에 ‘미천한’ 마녀들이 고생스럽게 깨달은 사실을 전위적인 현대 의학이 재발견한 셈이다.
니오티 사쿠라자와는 “암은 강한 체질의 사람이 걸리는 극심한 음성 질환이며, 정신분열증은 약한 체질의 사람이 걸리는 극심한 음성 질환”(p90)이라고 했다. 설탕은 극도의 음성 식품이며, 육류는 극도의 양성 식품이다. 음성이 강한 설탕은 암과 정신분열증 같은 극도의 음성 질환을 야기한다.
1662년 영국의 설탕 소비량은 제로에서 약720만kg으로 급증했다. 그로부터 3년 후 괴질환이 런던을 휩쓸었다. 당대 최고의 의사인 토마스 윌리스는 부유한 유명 인사들의 소변이 전례 없이 달짝지근해진 사실을 최초로 기록한 사람이다. 그는 이 증세에 당뇨병(diabetes mellitus)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스어 디아베테스는 단순히 소변이 많이 배출된다는 뜻이다. 라틴어 멜리투스는 ‘꿀의 달콤함’이라는 뜻을 지녔다. 멜(mel)은 꿀이며, 이티스(itis)는 염증을 말한다. 윌리스는 왕당파였고, 나중에 찰스 2세의 주치의가 된다. 찰스 2세도 수지맞는 설탕 무역에 목을 매고 있었다. 윌리스는 새로운 병의 책임을 설탕이 아니라 꿀벌에게 전가했던 것이다. 윌리스는 비타민C가 발견되기 수백 년 전에 설탕과 빈혈의 관련성을 직관적으로 깨달았다. 사탕수수나 사탕무를 정제하면 비타민C를 포함한 모든 비타민이 폐기된다.
1899년 러시아 연구자인 민코프는 개들이 죽기 전에 설탕을 함유한 소변을 배설한 걸 보고 원인이 췌장 안에 있다는 실마리를 잡았다. 1923년 캐나다의 밴팅은 정상인의 췌장에서 분비하는 인슐린 추출법을 발견하고, 인슐린이 당뇨병의 혈당치를 조절하고 있음을 발견하여 노벨상을 받았다. “인슐린의 발견은 ‘질병으로 잇속을 챙기려는 세력’들이 이를 어떻게 악용할지가 뻔히 보이는 근대 의학의 기적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슐린의 생산은 제약업계로서는 축복이다. 당뇨병 환자는 안정적인 시장을 형성한다.”(p104) 그러나 인슐린은 당뇨병을 고쳐주지 않는다. 당뇨병으로 인한 사망을 지연시킬 수 있을 뿐이다.
니오티 사쿠라자와는 “설탕 소비와 질병과의 연관성을 소리 내어 경고함에 있어 서양 의학은 수십 년이나 뒤쳐져 있다.”(p109)고 했다. 그는 균형 잡힌 식사가 필요하다고 한다. 현미와 일본 팥, 홋카이도 호박으로 구성된 식이요법을 제안했다. 그 외에 된장, 두부, 간장 같은 대두 식품을 권했으나 쉬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는 앞으로 변화할 것이라 예언했다. 그리고 실제로 변했다. “인슐린이 발견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당뇨병을 치료하는 서양 의사는 아무도 없다. 의사들은 계속하여 인슐린을 처방하고, 당뇨병 환자들은 평생 인슐린에 의존해야 한다는 운명을 받아들인다....... 인슐린의 투여는 평생 의사와 제약업체의 돈주머니를 불려 주겠다는 서약을 하는 셈이다.”(p112~113) 그는 탄수화물을 질적으로 구분하라고 요구했다. 정제하지 않은 통곡물과, 미국인 식단의 감자와 흰 빵, 정제 곡물, 백설탕을 똑같이 취급해서는 안 된다.
신세계 탐험에 동원된 선원들은 영양분이 깎여 나간 정제된 음식을 먹은 끝에 병에 걸리기 시작했다. 콜럼부스나 바스코 다 가마, 마젤란 모두 괴혈병으로 선원들을 잃었다. 엘리자베스 여왕 시절 영국 수병들도 마찬가지였다. 원거리 탐험을 나간 바이킹, 페니키아인, 극동아시아인들은 양배추나 다른 채소를 소금에 절이고, 콩과 다른 씨앗의 싹을 틔워 먹었기 때문에 괴혈병에 걸리지 않았다. 비타민C가 비결이었다.
선의였던 제임스 린드는 영양학적인 실험을 했다. 괴혈병 환자들에게 서로 다른 음식을 먹인 것이다. 오렌지와 레몬을 먹은 수병들은 금세 몸이 좋아졌다. “채소와 과일, 딸기류, 견과류 속에는 오늘날 비타민C라고 불리는 영양소가 자연 형태로 듬뿍 들어있다........ 사탕수수를 정제하여 설탕을 만들면 천연 성분의 90%가 제거되며 비타민C도 함께 사라진다. 이것이 천연 감미료 대신 비자연적인 농축 감미료인 설탕을 먹으면 괴혈병이 발생하는 이유다.”(p146)
9일 정도 기간 조난을 당했다면, 설탕을 먹는 것보다 안 먹고 견디는 것이 낫다. 그 정도 기간은 물만 마시면 멀쩡하지만, 설탕을 같이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 “정제 설탕은 몸에 치명적이다. 설탕에는 영양소는 없고 칼로리만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설탕은 없느니만 못하다고도 할 수 있는데, 설탕을 소화하거나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독소를 해독하고 체외로 배출시키려면 몸속에 저장된 소중한 비타민과 미네랄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p180)
설탕을 매일 먹으면 과도한 산성 상태가 지속된다. 간도 풍선처럼 부푼다. “혈액은 온몸을 순환하다가 활동성이 떨어지는 배, 엉덩이, 유방, 허벅지에 지방산을 옮긴다.”(p181) 뇌 기능에 심한 타격을 주며, 졸립고, 계산력과 기억력도 떨어진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입증해낸 것은 다음 세 가지다. “첫째, 설탕은 충치를 유발하는 주요 원인이다. 둘째, 설탕을 먹으면 과체중이 발생한다. 셋째, 식생활에서 설탕을 추방하면 전 세계인의 심각한 질병인 당뇨병과 암, 심장 질환 등의 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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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치아를 콜라에 넣으면 얼마 안 가서 녹아버린다. 하다못해, 못을 넣었는데 48시간 후에 완전히 녹아버렸다고 한다. “오늘날의 설탕업계와 콜라 재벌들은 대통령과 수상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있다. 1960년 닉슨 부대통령과 흐루시초프 소련 수상이 모스크바에서 가진 유명한 주방 토론(kitchen debate)은 흐루시초프와 펩시콜라 병을 같이 찍으려는 광고 쇼나 마찬가지였다. 닉슨은 펩시의 법인 변호사였다. 닉슨이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자 펩시콜라 사의 대표는 닉슨 대툥령의 후원회의 회장이 된다.”(p236)
콜라야 당연해 보이지만, 치약에도 설탕이 들어있지 않을까 의심해 봐야 하는 건 아닐까. 마트에서 파는 빵, 롤빵, 페이스트리, 크래커, 도넛, 잼, 케첩, 피클 등 모든 재료는 설탕으로 버무려 조리된 상태다. 꿀도 체에 거른 후 설탕으로 양을 늘린 것일 수 있다.
설탕이 든 식품을 모조리 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것은 어떤가.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면 설탕 대신 꿀을 넣어서 만들어보면 어떨까. 커피를 좋아한다면 차나 다른 음료는 없을까.
조지라는 청년의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 얘기 같다. 조지는 분유를 먹으며 자랐다. 고무젖꼭지를 통해 난생 처음 설탕을 먹은 것이다. 치아가 난 후에는 시리얼과 오렌지주스, 케첩에 든 설탕을 먹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그의 부모도 케첩에 설탕이 들어있다는 것을 몰랐다. 외할머니가 당뇨병으로 돌아가신 후 어린 조지도 당뇨병에 걸린다. 매일 인슐린을 스스로 주사했고, 쓰러지면 주스, 콜라, 단 음료수, 캔디, 시럽 등을 먹어야 했다. 현미나 일본 팥, 호박 같은 천연 탄수화물이 당뇨병을 고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의사들은 쌀은 탄수화물이므로 절대 금기라고 했다. 결국 단것을 흥청망청 먹은 결과 인슐린 투여량은 아주 높아졌다. 어느 날, 그는 동양의학을 공부하기로 결정했다. 현미, 채소, 약간의 생선, 샐러드, 콩, 해조류, 간장, 두부, 된장, 약간의 제철 과일 등을 먹었다. 2년이 지나자 마침내 인슐린 용량을 줄이게 되었고, 더 이상 각설탕을 갖고 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어른들은 스스로 판단할 수 있지만, 아이들은 그럴 수가 없다. 주변의 아이들에게 이유식, 시리얼, 음료수, 아이스크림 대신 사과나 배, 견과류, 건포도, 무가당 주스를 먹이자. “설탕을 전혀 먹지 않고 자란 아이는 수많은 설탕의 유혹을 받아도 스스로 먹지 않는다니 놀라운 일이다.......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설탕을 끊기가 쉽다.”(p265) 어릴 적에 인공감미료에 맛을 들이면 건강은 차치하고라도 자연식품의 진짜 단맛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좋은 음식을 찾아서 아이에게 준다면 미래의 건강이 보장될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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