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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분 / 15세 이상 관람가>
감독 : 버나드 로즈
출연 : 게리 올드만 / 조한나 터 스티지 / 이사벨라 로셀리니 / 예로엔 크라베
연주 :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 게오르그 솔티 지휘
첼로 : 요요마
음악가를 다룬 대부분의 영화가 천재적인 음악세계를 주로 다루는 전기물과 달리 이 영화는 베토벤의 연인에 대한 열정과 그 사랑이 음악으로 승화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1827년, 베토벤의 오랜 친구 안톤 쉰들러는 베토벤의 죽음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다. 죽음을 앞둔 베토벤이 작성한 유서에는 그의 막대한 유산을 동생이 아닌 "나의 불멸의 연인에게"로 남겨져 있다. 그녀의 행방을 찾으면서 베토벤에게 펼쳐진 격정적 사랑의 비극이 드러난다. 베토벤에게는 세명의 여인이 있었다. 베토벤은 그녀들과의 사랑에서 비통함과 열정, 그리고 사랑과 증오, 운명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고, 이를 음악으로 표출해 낸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여인에게 유산을 남기게 된다. 불멸의 연인은 한 여인이자, 그의 음악이었다.
=== 참고자료 === <2013년 5월 6일 네이버캐스트 / 진회숙 글>
영화 속 클래식
버나드 로즈 감독
불멸의 연인
“나의 천사이자 나의 전부이며 나의 분신인 그대. 잠시 시간을 내어 그대에게 몇 자 적어 보내려고 하오. 내일이 되어야 머물 곳을 알게 될 것 같소. 왜 이리 가슴이 아픈지 모르겠소.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이런 고통이 없을텐데.”
베토벤이 죽은 후 그의 책상서랍에서 발견된 편지이다. 편지에는 수신인의 이름은 없고 대신 ‘불멸의 연인에게’라고만 쓰여져 있었다. 베토벤이 그토록 열렬하게 사랑했던 이 여인은 누구였을까? 버나드 로즈 감독의 [불멸의 연인]은 이런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영화는 베토벤이 죽은 후 그의 비서인 쉰들러가 베토벤과 친했던 여인들을 차례로 찾아나서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가 가장 먼저 찾아간 사람은 전기작가나 베토벤 전문가 사이에서 가장 유력한 불멸의 연인 후보로 꼽히고 있는 줄리에타 기차르디(Giulietta Guicciardi)이다. 기차르디 백작의 딸인 줄리에타는 베토벤에게 피아노를 배우던 제자로 1801년 베토벤과 만났을 당시 열 일곱 살이었다. 베토벤은 어린 제자에게 연정을 느꼈으며, 피아노 소나타 [월광 Moonlight]을 작곡해서 그녀에게 바쳤다. 하지만 줄리에타와 베토벤 사이에는 귀족과 평민이라는 신분의 차이가 있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줄리에타가 갈렌베르크 백작과 결혼함으로써 끝나게 되는데, 영화에서도 줄리에타는 불멸이 연인이 아닌 것으로 나온다.
그 후 쉰들러는 제2의 여인을 찾아 간다. 그녀는 헝가리 귀족 에르도디 백작부인. 베토벤이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귓병의 악화로 세상을 비관해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유서를 썼던 바로 그 해였다. 당시 그녀는 병약한 몸으로 남편과 헤어져 세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었다. 베토벤을 연구한 프랑스 작가 로망 롤랑의 말에 의하면 베토벤이 평생 동안 만난 여인 중에서 에르도디 백작부인만큼 베토벤의 음악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그녀에게 베토벤의 음악은 삶의 유일한 희망이자 보람이었다, 그녀는 베토벤을 자기 집에서 거처하도록 했으며, 그를 항상 감싸고 이해하고 도와주었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쉰들러는 베토벤이 불멸의 연인에게 보낸 편지를 에르도디 백작부인에게 보여주지만 그녀는 자신은 그 편지의 주인공이 아니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쉰들러에게 불멸의 연인이 누구인지 알려준다.
백작부인의 얘기를 듣고 쉰들러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사람은 요한나. 바로 베토벤의 동생 카스파의 아내이다. 이것 때문에 베토벤이 동생의 아내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고 오해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고,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허구이다. 사랑은 커녕 생전에 베토벤은 요한나를 경멸하고 미워했다고 한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두 사람이 열렬하게 사랑해서 아이까지 낳은 것으로 나온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카스파와 요한나가 결혼하기 전, 베토벤은 요한나를 사랑했다. 하지만 카스파가 선수를 쳐서 요한나와 결혼하는 바람에 두 사람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몰래 만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 덧 요한나는 베토벤의 아이를 갖게 된다. 그 아이가 바로 카를이다. 그 후 두 사람은 칼스바트의 한 여관에서 만나기로 한다. 오는 도중 마차가 흙탕물에 빠지는 사고를 당한 베토벤은 요한나에게 조금 늦겠다는 편지를 보내지만 요한나는 이것을 보지 못하고 그냥 돌아가 버린다. 뒤늦게 여관에 도착한 베토벤은 그녀가 간 것을 알고 불같이 화를 낸다.
그 후 베토벤은 노골적으로 요한나를 미워하기 시작한다. 동생 카스파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자 조카 카를에 대한 생모의 양육권을 박탈하는 소송을 청구하는데, 실제로도 베토벤은 생모로부터 아이를 빼앗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고 한다. 요한나가 아이를 양육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그녀가 남편의 돈을 훔치고, 그를 독살하려 했으며, 무도회에서 몸을 팔았다는 등 온갖 헛소문을 퍼트리고 다녔다. 결국 생모로부터 조카를 빼앗는데 성공한 베토벤은 조카를 지극정성으로 키운다. 그의 목표는 카를을 음악가로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카를은 음악에 소질도, 흥미도 없었다. 자신을 향한 베토벤의 편집증적인 집착에 고통스러워 하던 카를은 결국 자살을 기도한다. 자살시도는 미수에 그쳤고, 그 덕분에 카를은 생모에게 돌아갈 수 있었다.
영화의 마지막에 베토벤은 요한나와 화해한다. 병상에 누워 마지막을 기다리는 베토벤이 요한나를 불러 카를에 대한 친권을 생모에게 양도하는 서류에 서명한다. 그리고 방을 나가는 요한나를 향해 자조적인 목소리로 “희극은 끝났다”라고 말한다.
쉰들러의 방문을 받은 요한나는 자신과 베토벤이 한때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녀는 베토벤이 자기를 버리고 모욕했지만 이제 그를 용서한다고 말한다. [합창교향곡 Choral]을 듣고 나서 그렇게 위대한 음악을 작곡한 사람을 도저히 미워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쉰들러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고 편지를 받은 요한나는 베토벤이 자기에게 보낸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흘린다.
[불멸의 연인]에는 수없이 많은 베토벤의 음악이 나온다. 베토벤의 장례식에는 [장엄미사] 중 [키리에], 줄리에타와 베토벤이 처음 만날 때는 [비창 소나타 Pathetique], 베토벤이 줄리에타와 거리를 산책할 때는 [영웅교향곡 Eroica], 줄리에타의 집에서 새로 도착한 피아노를 칠 때는 [월광소나타 Moonlight], 나폴레옹 군대가 만행을 저지르는 장면에서는 [운명교향곡 Schicksal], 전쟁 통에 아들을 잃고 슬퍼하는 에르도디 백작부인과 함께 연주할 때는 피아노 3중주 [유령], 카를이 자살을 하기 위해서 산으로 올라가는 장면에서는 [교향곡 7번], 어린 시절 아버지의 학대를 피해 집을 나온 베토벤이 숲으로 달려가는 장면에서는 [합창교향곡], 병석에 누운 베토벤이 요한나와 마지막으로 만날 때는 [현악4중주 13번, 카바티나], 요한나가 눈물을 흘리며 베토벤이 보낸 편지를 읽을 때에는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의 2악장이 흐른다.
이 중 가장 도발적인 곡은 베토벤이 줄리에타의 손을 잡고 거리를 활보할 때 나오는 [영웅교향곡]이다. 베토벤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귀족들 사이를 헤치고 나가며 이렇게 외친다. “너희들의 시대는 끝났어.” 베토벤이 [영웅교향곡]을 쓰기 시작할 무렵 프랑스로부터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프랑스 혁명이 내세우는 자유와 평등의 바람이었다. 공화주의자였던 베토벤은 나폴레옹의 영웅적인 행동에 찬사를 보냈다. 그는 나폴레옹을 인류에게 평등과 자유의 이상을 실현시켜줄 진정한 영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향곡을 작곡해 그에게 바칠 생각을 했다.
베토벤은 사상의 자유가 한창 고개를 들던 시기에 지적으로 성장했다. 그가 태어나서 십대를 보낸 곳은 본이었는데, 그곳에 있는 본 대학은 당시 라인 지방 계몽주의 운동의 중심지였다. 계몽이란 민중의 무지몽매함을 이성에 의해 깨우친다는 의미를 가진 것으로 계몽주의는 현존하는 가치에 대한 가차 없는 비판과 회의와 부정을 정신적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베토벤은 본에 있을 때부터 계몽주의를 신봉하는 교수와 학생들이 다니는 술집에 자주 드나들며 그들과 친분을 쌓았다. 그러던 참에 마침내 프랑스 혁명이 터졌다. 1789년, 멀리 프랑스로부터 불어온 뜨거운 혁명의 열기가 계몽주의로 무장한 열혈 청년의 가슴을 달구었다.
프랑스 혁명이 몰고 온 새 시대의 이상에 잔뜩 고무된 상태에서 쓴 [영웅교향곡]은 교향곡의 역사에 일대 ‘혁명’을 가져온 작품이다. 여기서 베토벤은 고전주의를 지나 낭만주의로 넘어가는 시대를 풍미했던 베토벤의 풍운아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교향곡 1번과 2번이 선배들의 전통을 충실히 따르며 교향곡 작곡가로서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 본 작품이라면, 3번은 그 발판 위에서 새로운 변화,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독창적이고 파격적인 실험을 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영웅교향곡]에 이르러 교향곡 작곡가로서 베토벤의 독창성이 찬란하게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독창성은 그의 마지막 피아노 협주곡인 [황제]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영화에서는 베토벤과 에르도디 백작부인이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이 곡의 1악장이 나온다. 실제의 에르도디 백작부인은 병약했지만 영화에서는 매우 자유분방하고 도발적인 캐릭터로 나온다.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는 베토벤이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연주하다 실수를 해 관객들의 야유를 받자 과감하게 무대 위로 올라가 그를 데리고 나오는 당찬 여성으로 그려진다. 이 장면에서 베토벤이 연주하는 [황제]의 웅장한 곡상에 용기를 얻어서 그렇게 당찬 행동을 했던 것일까. 그녀의 행동은 [황제]의 도입부 만큼이나 도발적인 것이었다.
베토벤은 모두 5개의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했다. 초창기 협주곡들은 선배인 모차르트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보이지만 세 번째 협주곡부터는 ‘혁신가’인 베토벤의 개성이 드러난다. 그 중에서도 마지막 곡인 [황제]는 교향곡과 같은 스케일을 자랑한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이 협주곡은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하는 화려하고 장대한 서주로 시작한다. 협주곡의 경우, 오케스트라가 먼저 주제를 제시하고, 이어서 독주악기가 등장하는데, [황제]는 피아노가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화음에 맞추어 화려하고 웅장한 서주를 연주하는 것이 특징이다. 1악장의 끝부분에 독주악기가 혼자 연주하는 카덴짜가 나오지만, [황제]에는 이런 독립적인 카덴짜가 없다. 대신 베토벤은 첫머리에 카덴짜에 버금가는 화려한 서주를 두어 관객들의 주의를 단번에 사로잡는 효과를 노렸다.
이어지는 2악장은 화려하고 장엄한 1악장과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베토벤의 곡 중에서 가장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곡인데, 듣고 있으면 베토벤의 협주곡이 아니라 쇼팽의 로망스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베토벤에게 이렇게 애절하고 달콤한 로맨티시즘이 있었나 놀라울 정도다. 그 로맨틱한 선율을 배경으로 베토벤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나의 천사이자 나의 전부이며 나의 분신인 그대. 잠시 시간을 내어 그대에게 몇 자 적어 보내려고 하오.”
베토벤이 죽은 후에야 자기에게 보낸 편지를 읽게 된 요한나. 한때 가없는 열정과 애증의 대상이었으나 이제는 아릿한 아픔과 회한으로 가슴에 남은 사람. 편지를 읽으며 요한나는 눈물을 흘린다.
이어서 장면은 베토벤과 요한나가 서로를 격정적으로 사랑하는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요한나가 폭우를 무릅쓰고 칼스바트에 있는 여관에 도착하는 장면, 방에 들어가 베토벤을 기다리던 그녀가 베토벤이 보낸 편지를 보지 못하고 그대로 방을 나오는 장면 그리고 여관에 도착한 베토벤이 서둘러 방으로 올라가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음악의 중심은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로맨틱한 주제선율에서 템포 루바토로 로맨틱하게 하강하는 야상곡풍의 피아노로 옮겨간다. 오케스트라에 이어 피아노가 장식이 가미된 주제선율을 연주하면 음악이 꺼져가는 불꽃처럼 서서히 사그라진다.
요한나가 베토벤의 무덤을 찾아온다. 이때 그녀에 대한 사랑이 “영원히” 변함없을 것이라는 베토벤의 목소리가 들린다. 음악이 점점 사라져간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또 다른 도약을 위해 잠시 숨을 고르는 것이다. 화면이 ‘루드비히 반 베토벤’이라고 쓰여진 무덤의 묘비를 비추는 순간, 3악장의 화려한 불꽃을 내뿜기 시작한다. 2악장의 끝자락에서 가물가물 사라져가던 음악이 3악장에서 단호하고 명쾌한 멜로디로 다시 살아난다. 한때의 의혹이 사랑의 확신으로 바뀌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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