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3.27.수요성령집회 설교(고난주간)
*본문; 롬 6:6
*제목; 고난주간, 죽음이 없으면 삶도 없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롬 6:6)
프롤로그. 폐쇄성의 원칙
독일 게슈탈트 심리학에는 “폐쇄성의 원칙”(완결성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일부를 보고 전체를 유추할 수 있는 인간의 경향성이요 능력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점선으로 표현된 것을 보고 형태를 유추합니다. 그것을 절대로 원이 아닌데, 원이라고 부릅니다.
사람은 이러한 심리적 작용이 원활해야 관계와 삶이 원활해집니다. 유추할 수 없는 표현을 하고 알아주기를 바라는 사람이나, 유추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이런 면에서 다 “환자”(?)입니다.
이제부터는 유추할 수 있도록 표현하고, 상대의 표현을 듣고 완성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웁시다. 삶과 관계가 행복해집니다.
믿음도 똑같은 패턴입니다. 매일 똑같은 예배, 똑같은 기도, 똑같은 말씀 같지만, 다 무엇인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이를 알려고 하는 것이 신앙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지겹다고만 하지 말고, 그 뒤에서 당신을 표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갑시다.
1. 은혜와 죄
은혜란 무엇입니까? 은혜란 설교를 듣고 목사에게 하는 인사말처럼 ‘은혜 받았습니다.(감동 받았습니다.)’라고 하는 단순하고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은혜란 우리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아니 여기에 더해서 정말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은혜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은혜가 있으면 마음이 바뀝니다. 은혜가 있으면 관계가 바뀝니다. 은혜가 있으면 삶도 바뀝니다. 이런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이런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이런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까?
먼저는 “간구”해야 합니다.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것이 바로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시 119:58’(구p.892)을 봅시다.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간구하였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시 119:58)
주님은 간구하는 자에 은혜를 베푸시고, 사모하고 주린 영혼을 채워주십니다.(시 107: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시 107:9, 구p.883)
둘째는 “은혜를 담을 그릇”을 만들어야 합니다. 한 번 받은 은혜를 다 쏟아버리고 비참한 인생의 말로를 맞은 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스라엘의 삼손이 그랬고, 초대왕 사울이 그랬고, 지혜의 왕 솔로몬이 그랬습니다.
그렇다면 “은혜를 담을 그릇”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그의 ‘삶과 인격’입니다. 은혜는 은혜의 삶과 인격에 담겨지는 것입니다.
셋째는 은혜를 날마다 신선한 것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정확하게는 은혜가 병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악한 죄성이 은혜를 은혜로 간직하지 못하고 썩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 은혜 받을 때보다 더 나쁜 상황이 벌어집니다. 마치 로또가 당첨된 후 삶이 더 피폐해지는 것처럼, 성경의 표현대로는 한 귀신이 나갔다가 다시 일곱 귀신을 몰고 오는 것처럼(눅 11:24~26) 말입니다.
“24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25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26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눅 11:24~26)
위의 이야기를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은혜를 신선한 것으로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은혜는 우리 소관이 아니다.), 은혜의 그릇을 신선하게 닦아가는 것입니다. 이 작업은 ‘말씀묵상과 기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은혜의 유통기한은 “하루”(one-day)뿐입니다.
받은 은혜를 놓치지 말고, 말씀묵상과 기도도 내 삶과 인격을 다듬어가서, 천국 갈 때까지 이 은혜를 지켜 가십시오.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품고 있는 죄가 은혜의 그릇을 훼손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의 그릇을 파괴하고(은혜에 합당한 삶과 인격을 파괴하고), 받은 은혜를 다 흘려보내게 합니다.
죄가 무엇인가?
죄란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있다고 하는 모든 생각들,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고도 인생을 성공할 수 있다고 하는 모든 생각들입니다(교만과 불신앙).
죄란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하마르티아) 하나님의 자리에 있는 것들, 내 삶을 주장하는 모든 것들이 다 죄입니다(우상숭배). 있어야 할 자리(예배의 자리, 말씀을 지키는 자리 등)에 있지 않고 “각각 제 갈 길로 가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불순종).
이 모든 것은 사실 예수님이 우리의 진정한 왕이 되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롬 10:10’에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 후에,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는 것인데’, 아직 마음으로 예수님이 우리 삶의 진정한 왕이 되시지 못하니, 입술의 시인대로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죽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의 상징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친히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완전한 죽음이 바로 은혜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절정인 부활은 이처럼 완전한 죽음 뒤에 허락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내가 죽어야 은혜가 산다!!!”
2. 십자가에 우리 자신을 예수님처럼 못 박아라!
죽이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죽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첫째는 교만과 불신앙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창조주이십니다.
둘째는 우상숭배와 불순종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놓여 있는 것들, 결정의 자리에 있는 것들을 이제 내려놓고 하나님을 보좌에 앉게 하십시오. 있어야 할 자리,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이제부터 진지하게 수행하십시오.
모든 생명이 이로부터 납니다. 부활의 놀라운 은혜의 출발점을 오늘부터 시작합시다.
첫댓글 우리는 은혜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자들입니다. 이 은혜를 간구하고 사모해야 하고, 은혜의 그릇을 지켜내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의 죄를 날마다 주님 십자가 앞에 죽이고, 말씀과 기도로 은혜의 그릇을 깨끗하게 할 때 은혜가 담겨지고, 믿음의 세워지고, 하나님의 살아 계심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