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의 '시'가 지난 23일 제63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았다. 수상에도 불구하고 '시'는 국내 극장가에서 지난 5월 13일 192개의 상영관에서 공개됐지만 흥행 참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감독은 칸 현지인터뷰에서 "투자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씁쓸한 고백을 털어놓았다. 비경쟁 부문인 '주목할 만한 시선' 수상작인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도 5월 6일 전국 26개 극장 개봉이라는 초라한 대접을 받으면서 한국에서 '예술성 있는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지난(至難)한 작업임을 뼈저리게 실감케 한다.
창작인들의 실험적 시도에 비중을 두고 있는 칸 영화제를 통해 한국 영화인들의 업적이 국제적으로 공인(公認)받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짚어봐야 할 점은 칸 영화제의 독특한(?) 시상 제도다. 칸뿐만 아니라 베니스·베를린 등 유럽 영화 3대 강국에서 열리는 영화제는 모두 수상 예정작(자)들에게 시상식 참석을 요청하며 사실상 미리 수상을 귀띔해 주고 있다. 심사를 거쳐 하루 동안 진행되는 미국의 아카데미상과는 달리, 평균 7일 내외로 진행되는 운영 방식 때문에 칸·베니스·베를린 영화제 집행위원회측은 폐막식 당일 수상 예정자가 본국으로 떠나 버릴 것을 염려해 수상자(작)에게 미리 통보를 해주는 편법을 쓰고 있는 것이다.
반면 미국의 영화 잔치인 아카데미 시상식은 할리우드 위력이 5대양 6대주로 확대되면서 지구촌 영화 축제로 자리 잡고 있다. 아카데미는 무려 5000여명에 달하는 심사위원단이 있음에도 행사 당일까지 수상자(작)에 대해 철저한 비밀을 유지하고 있으며, 사전 발설했을 경우 '영화계에서 영구 추방'이라는 암묵적 규제를 충실히 이행, 상에 대한 공정성을 보장하고 있다. 국제영화제 수상자에 대한 사전 노출은 공정성과 권위를 훼손시키는 행위다. 이것은 결국 유럽 영화계의 자존심이라는 칸 영화제가 아카데미상의 권위를 뛰어넘을 수 없는 장애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큰물에서 놀아라!"는 속담이 있다. 한국 영화인들은 '칸·베니스·베를린'에서 수상 여세를 몰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수상을 위해 전력하길 바란다. 아카데미 수상은 한국 영화의 존재 가치를 세계화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미국의 패권주의를 선도하는 아카데미에 출품을 시도하는 것조차 부끄럽다'는 일부 철부지 발언도 있지만, 한국 영화계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영화축제는 칸보다는 아카데미라는 것을 국내 영화인들이 염두에 뒀으면 한다. 2009년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은 일본의 '굿바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