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위해 간구해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로마 8,34ㄴ)
2월의 마지막 주일이며 사순 시기의 두 번째 주일을 맞는 오늘 우리가 듣게 되는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가 겪는 모든 시련과 고난, 그리고 죽음의 고통마저도 모두 이겨내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우선, 오늘 제 1 독서의 창세기의 말씀은 신앙의 성조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야기합니다. 팔십이라는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인이라 여겨지던 아내 사라를 통해 하느님으로부터 약속받은 아들 이사악을 낳게 되었을 때, 아브라함은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을 것입니다. 늦은 나이에 어렵게 낳은 아들에게 아브라함은 자신의 심장이라도 떼어줄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온 정성과 사랑을 아낌없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가혹한 시련을 내리십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사랑하는 아들,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정말이지 받아들이기 힘든 아니 말도 안 되게 가혹한 이 하느님의 명령이 아브라함에게는 마치 심장을 찢는 고통과도 같았을 것입니다. 오늘 독서의 내용에는 그 구체적인 내용이 생략되어 있지만 창세기의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아들 이사악을 하느님의 명령대로 제물로 바치기로 결심하고 아들과 함께 모리야 땅으로 가던 길에 제물을 태울 장작과 불은 준비되어 있는데 정작 제물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이사악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제물은 어디 있냐고 물었을 때, 아브라함의 마음은 정말 갈기갈기 찢기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 하나뿐인 아들 바로 네가 하느님께 바쳐질 제물이라는 말을 차마 할 수는 없었던 아버지, 그래서 제물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해 주실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마음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고통 그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약속된 장소로 이르러 아들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칼을 꺼내 들었을 때, 하느님께서 보내신 천사가 나타나 아브라함의 손을 잡으며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천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네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창세 22,16-17)
늦은 나이까지 아이를 갖지 못했던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명대로 자신의 하나뿐인 소중한 아들을 하느님께 봉헌하려고 하자 천사를 통해 들려주신 하느님의 이 약속의 말씀, 아브라함의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번성하게 해 주겠다는 이 약속의 말씀은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 곧 자신의 하나 뿐인 소중한 아들을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는 그 굳은 믿음에게 대한 하느님의 응답이자 은총의 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상상해보건대, 아브라함은 아들 이사악을 얻고 하느님을 향한 마음이 전과는 같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들을 얻은 기쁨에, 또 늘그막에 얻은 그 아들의 재롱에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오직 아들에게만 정신이 쏠려 지냈을 것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다시금 하느님께 대한 믿음의 자세를 물으신 것이며, 아브라함은 이 하느님의 뜻에 자신의 믿음으로 응답한 것입니다.
한편 오늘 제 2 독서의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의 말씀은 오늘 제 1 독서의 창세기가 전하는 아브라함이 보여준 굳은 믿음의 실천에 하느님께서 어떠한 선물을 상급으로 내려주시는지를 바오로 사도의 음성을 통해 잘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로마 8,31.34ㄴ)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당신의 하나 뿐인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고 내어주시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편’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와 함께 // 우리의 곁에서 우리의 편이 되어 주시는 하느님, 하느님이 우리 곁에 계시기에 그 누구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으며 그 누구도 우리를 고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우리의 곁에서 우리를 의롭게 해 주십니다.
이처럼 오늘 제 1 독서와 제 2 독서의 말씀은 사순 시기를 보내며 우리가 하는 모든 재계의 실천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 우리가 실천하는 믿음의 모습에 하느님이 어떠한 은총의 선물을 베풀어 주시는지를 공통되게 이야기합니다.
이 같은 면에서 오늘 복음 말씀은 오늘 제 1 독서와 제 2 독서의 말씀이 전하는 하느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총의 선물을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의 모습을 통해 전합니다. 높은 산에 올라 제자들 앞에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시는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을 전하는 오늘 복음 말씀 안에서 마르코 복음사가는 변모의 결정적 순간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그 무렵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분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 그때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마르 9,2-4)
구약의 가장 큰 인물로서 예언을 상징하는 엘리야와 율법을 상징하는 모세의 곁에서 세상 그 무엇도 그보다 더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나는 모습으로 변모하신 예수님의 모습은 분명 인간의 모습이지만 동시에 그 모습 안에 하느님의 무한하고도 깊은 사랑을 지니고 계신 예수님의 신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그 예수님의 모습은 오늘 말씀이 전하고 있는 진리, 곧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시는 분, 우리의 죽음마저도 쳐 이기시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이 예수님의 거룩한 모습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참회와 보속의 시기, 재계의 실천으로 우리의 마음을 다시금 하느님께 되돌리는 사순 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사순 시기 우리가 실천하는 모든 행위의 궁극적 목적은 오늘 화답송의 시편이 말하듯 죄로 인해 비참한 상태에 머물고 있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 주님의 자비하심을 믿고 의지하며 주님의 곁으로 걸어가는 길, 주님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죄에서 돌아서서 하느님의 곁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실천하는 모든 회개의 궁극적 목적이며 그것이 하느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유일한 한 가지입니다. 그 길을 걸어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하느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 그 시련과 보속의 길에서 힘들어하고 지쳐 있는 우리들, 죄로 물들어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것에 힘겨워하는 우리들에게 오늘 말씀을 통해 희망을 보여주십니다. 제 1 독서의 아브라함에게 전하는 하느님의 약속의 말씀을 통해, 제 2 독서의 바오로 사도의 음성으로 하느님이 우리의 편이 되어 주실 것이라는 말씀을 통해 그리고 오늘 복음의 거룩히 변모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하느님은 우리에게 밝은 빛의 희망을 분명하게 보여주십니다.
세상은 분명 시시각각 또 호시탐탐 나약한 우리를 괴롭히고 하느님께로 향하는 우리 마음을 위협하며 우리의 마음을 두렵게 만듭니다. 40일간의 사순 시기, 재계의 실천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다잡고 하느님께로 다시금 돌아가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하며 머리에 재를 얹은 지 이제 열흘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그 열흘이 지난 지금, 우리의 마음이 과연 첫 마음 그대로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그 대답은 회의적일 뿐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나약하고 부족하며 하느님을 향한 마음에 얕은 믿음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우리들에게 하느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 좌절하지 말고 희망을 간직하며 다시금 힘을 내라고 용기를 불어 넣어 주십니다. 오늘 들은 이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의지해 보십시오. 오늘 말씀이 전하듯 하느님이 우리의 편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의 곁에서 언제나 한 결 같이 우리의 편이 되어, 우리가 겪는 모든 시련과 고통을 함께 겪어 주시며 우리에게 그 모든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가 주님이라 고백하는 하느님 그 분이십니다. 그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며 다시금 힘을 내보십시오. 그 하느님이 우리의 편이 되어 우리 곁에서 힘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무엇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그 무엇도 우리를 두렵게 만들 수 없습니다. 바로 그 모습이 오늘 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를 통해 드러납니다. 이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오늘 제 1독서의 아브라함이 보여준 신앙의 자세, 곧 하느님께 모든 것을 내어 놓을 수 있는 믿음의 자세, 오직 그것뿐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기념하는 사순 시기, 우리를 위해 죽음을 마다하지 않으신 예수님의 사랑을 합당하게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굳건한 신앙의 자세를 통해 여러분 모두가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내려주시는 사랑의 은총을 풍성히 그리고 넘치도록 받게 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태 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