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아가디르(Agadir)'에서...
a. 유 씨와의 만남
마라케시에서 ' 아가디르(Agadir)'라는 바닷가 도시까지는 버스로 세 시간 반 거리의 여정이었다.
확실친 않지만 약 250km 정도는 될 듯했다.
모로코도 한국보다는 훨씬 땅덩어리가 넓은 나라라, 북쪽 지중해 쪽에서 마라케시까지는 7~800km는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초반 마라케시 도심을 벗어나면서는 평원지역이었다.
서쪽(대서양 쪽)으로 산이 보이긴 했지만, 열대기후라서인지 뿌옇게 윤곽만 보이는 산은 별로 시선이 가지 않았다.
땅은 넓었지만 너무 건조한 사막(그렇다고 모래만 있는 곳은 아닌) 지역이라, 사이사이엔 수박이나 멜론을 가꾸는 대규모 농장이 보이기도 했고, 살구·포도·체리(세레사) 나무 농장도 보이는 등... 사막인데도 농사를 짓는 곳이 눈에 띄었다.
그러다 지루하면서도 물기라곤 하나도 없을 것 같이 건조한 사막 지형이 펼쳐졌다.
모로코에 오던 중 비행기 안에서 졸면서도 느꼈었지만, 전체적으로 붉은 기를 띠면서도 어쩐지 바랜 자주색 기운, 잿빛이거나 암갈색 계통의 — 건조함에서 오는 바랜 색감이 전반적으로 흐르면서... 산에는 점점이 나무들이 듬성듬성 있는 풍경이 이어지더니,
조금씩 산을 향해 오르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게 '아틀란틱 산맥 (Atlas Mountains)'이라는 것 같았다.
버스 안의 다른 승객들은 강렬한 햇볕을 피해 커튼을 닫은 채 잠을 자기도 했지만, 인야는 색다른 풍광에 매료되어... 내내 차창 밖을 보느라 쉴 틈이 없었다.
운 좋게 버스 중간 문 바로 뒷자리에 앉을 수 있어서, 너른 창으로 시원하게 바깥 풍경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움직이는 차 안이라, 처음에는 그냥 눈으로 보는 것으로만 감상할 생각이었지만,
'이런 독특한 풍광을 언제 다시 접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스치면서는... 이따금 차 안에서 바깥 풍경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런 지형 어디에선가 금방 말을 탄, 영화 '바람과 라이언'에 나올 것 같은 아랍 추장이... 바람처럼 산등성이를 달려갈 것만 같은 느낌이 강하게 전해오기도 했다.
인야는 귀에 스마트폰을 꽂은 채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그런 장대한 풍광을 보는 와중에 잔잔한 트럼펫 음악이 울려 퍼지니... 아주 멋진 영화음악 같은 감흥이 일도록 썩 잘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더구나 그 높은 산맥에는(나중에 들으니, 겨울엔 눈이 와서 스키도 탄다고 했다) 호수도 있었는데, 천연호수가 아닌 댐인 것처럼 보였다.
'여기가 분명 열대지방일 텐데, 저 산 언저리엔(거기만 유독) 구름이 산등성이를 덮고 있는 걸 보면... 상당히 높을 뿐만 아니라, 평지와는 온도 차이도 많이 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었다.
평소에 '지형'에 관심이 많은 인야는, 그런 산악지역을 지나면서는 도무지 그냥 있을 수 없어... 정신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도 있었다.
'만약 내가 혼자 차를 타(몰)고 여행을 한다면, 중간중간에 멈춰 설 곳이 한두 곳이 아니로구나!' 할 정도로, 인야의 시선을 빼앗는 곳이 많았는데, 미국의 네바다(Nevada)나 애리조나(Arizona) 주와는 또 다른 맛의 건조한 풍경이었다.
그러다 버스는 내리막으로 접어들었고, 조금씩 나무들이 많아지는 추세를 보였는데... 아프리카의 대서양으로 접어드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모로코는 대서양과 지중해 연안으로 도심이 발달한 듯... 점점 취락지역의 모습도 많아지고 있었고, 그렇게 목적지인 '아가디르(Agadir)'에 도착했다.
'대도시'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상당히 커보이는 도시는, 아프리카로 보기엔 너무나 화려하고 현대적인... 휴양도시 같기도 했다.
'여기서는 또 어떻게 해야 한다지?' 하는 막연함이 인야를 엄습해 왔지만, '이 후끈한 열기에 정신이 혼미해져서는 안 돼!' 하는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일단 전화번호는 있었기에 인야는 바로 그 교포에게 전화부터 걸었고, 그가 어떻게 찾아오라고 가르쳐준 대로... 그를 찾아가야 했다.
아무래도 젊은 남자들은 피한 상태로, 길거리에 앉아있던 노인이거나 버스를 기다리는 여성들에게 찾아가는 주소를 보여주는 것으로(말이 안 통하니, 그저 종이쪽지만을 보여주면서... 그들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인야는 택시를 탔고, 또 오후 세 시경 약속했던 대로... 아가디르 해변의 한국 식당으로 찾아갔다.
인야가 쭈뼛거리며 식당 문을 열자, 그 안에는 40대로 뵈는 남자가 인야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가 아까 전화를 걸었던... 이인야라고 하는 화간데요......" 하자,
"아, 힘든 길 찾아오시느라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하고 환하게 반겨주는 그는, 인야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젊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연세가 제법 있는 분인 줄 알았는데?' 하는 반가움마저 들었다. 굳이 깍듯한 예의까지 갖출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가,
"근데, 어떻게 이 먼... 모로코까지 오시게 됐습니까?" 하고 짐을 받아주기까지 하니,
"글쎄요, 저도 무슨 영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운명이 아닐까 하면서 오긴 했답니다." 하면서, 인야는 자신이 오게 된 이유를 간략하게 설명까지 해주었는데,
"아, 관광으로 오신 게 아닌... 화가 선생님이, 작품도 하셔야 하겠군요."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면서는,
"물론 집을 구하는 일이 제일 급하시겠네요!" 하고 상당히 빠른 이해도를 가지고 인야를 맞아 주었다.
그러니,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진작에 연락을 했어도 좋았을 걸......' 하는 뒤늦은 후회가 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인야는, '어쨌거나, 한국 사람과 끈이 닿았으니...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말이다!' 하고, 그를 만나자마자 마음이 놓여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유씨는,
"아무래도 여기는 마라케시보다는 호텔비도 좀 저렴할 겁니다." 하더니, "저희에게 오시는 손님을 주로 보내는 괜찮은 호텔을 알고 있으니, 화가 선생님도 한 번 거기로 가 보시죠. 마음에 안 드시면, 다른 곳으로 바꾸셔도 될 겁니다만..." 하면서, 솔직하고 순수하게 인야를 도와주는 모습을 보였다.
무엇보다도 인야에게 가장 시급했던 호텔 잡는 실질적인 문제까지 도와주니, 인야는 큰 짐 하나도 내려놓는 기분이었다.
더구나 그와 함께 갔던 호텔도 인야로서는 너무나 맘에 들었고, 바로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호텔비용도 150 DH로 마라케시보다 싸고 좋았다.
그가 돌아간 뒤 인야는 호텔 자체의 인터넷을 하며 여기저기에 메일을 보내고, 또 버스를 타고 오면서 버스 안에서 찍어두었던 사진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런데 저녁 무렵, 노크 소리가 나서 깜짝 놀라 문을 여니 유 씨가 다시 와 있었다.
원래는 다음 날 아침 10시에 만나기로 했었는데, 자신의 상황이 여의치 않아 오늘 왔다며... 내일은 8시에 일찍 바닷가 마을로 집을 찾으러 가보자고 했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자신을 도우려는 그의 성의가, 인야로서는 너무나도 고마웠다.
하루 종일 먹은 게 별로 없다 보니 배가 뒤숭숭하고 입맛도 별로 없었지만,
'아무래도 여기 음식과는 맞지가 않아, 고전을 할 것 같은데......' 하면서도, 유 씨가 온 김에 인야는 그와 함께 나가 저녁을 먹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