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운명이란 덫에 걸려 포기한 채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은 왜 “고립”이란 포기의 덫에 빠지게 되었을까요? 어느덧 54만명, 사회와 단절된 채 좁은 방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청년 54만명, 그들은 혼자 방안에서 혼자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는 것이 일상이라고 했습니다. 공시를 포기했다는 한 청년은 “공시에 수없이 응시했지만 모조리 떨어졌어요. 나만 패배자인 것 같아 사회에 나갈 용기가 나오지 않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23년도 실태조사를 통해 “고립 청년은 전체 청년인구의 5%에 달하는 54만명이고, 이중 은둔 청년은 24만명에 이른다”고 추산했습니다. 고립 청년은 타인과 관계를 맺지 못하고 긴급한 상황에서 도움을 받기 어려운 청년을, 은둔 청년은 사회활동 없이 집이나 방에 스스로를 가둔 청년을 의미합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실시한 온라인 심층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립ㆍ은둔 청년 8436명 중 6360명(75.4%)이 자살을 생각했고, 이중 1698명(26.7%)는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지자체 85곳 중 고립ㆍ은둔청년의 사후관리를 조례로 규정한 곳은 서울시 성북구, 서울시 강동구, 경기도 안산시 등 3곳(3.5%)뿐이라는 현실입니다.
그렇게도 행복을 위해 몸부림치는 인간의 모습들, 열심히 성실히 사는 것, 바르고 착하게 사는 것, 서로 믿고 봉사하며 돕고 사는 것, 꿈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며 노력하는 것 등등... 그런 것들이 틀린 것이 아닌데, 그런 것으로 채워지지도 않고, 채울 수도 없는 행복의 블랙홀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그것을 “운명”이라고도 하고, “팔자”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힘든 것은 가진 것이 없거나,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문제는 분명히 있는데 근본적인 답을 찾지 못하는 답답함이 인간을 더 괴롭게 합니다. 고난은 분명히 다가왔는데 그 이유를 모르는 억울함이 인간을 더 아프게 합니다. 지식과 정보는 홍수처럼 쏟아지는데 그 안에서 찾을 수 없는 나의 정체성은 인생을 허무하게 만듭니다. 교육은 갈수록 높아지는데 인간성은 점점 타락하는 현실도 부정하긴 어렵습니다. 사실을 밝혀준다는 실험과 연구는 많아도 인생의 행복을 알려주는 진실은 사람에게서 찾아보기란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인간이 거부할 수 없다고 하는 운명과 팔자, 그 부패해 버린 마음은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그리고 왜 인간은 원치 않는 불행의 운명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까요? 과연 당신은 예외입니까? 세상의 어떤 책도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지 않지만, 성경은 인간이 언제부터 운명과 팔자에 빠지게 되었는지, 운명을 가져다 준 장본인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장본인이 바로 마귀(사탄)입니다. 하늘에서 쫓겨나 세상으로 내려온 사탄은 아담과 하와를 속이고 인간을 장악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공중 권세를 잡고 모든 사람이 세상 풍속(운명, 사주팔자, 미신, 굿, 점, 궁합, 토정비결...)을 좇으며 살게 만들었습니다. 즉, 사탄이 하나님을 떠난 모든 사람의 운명을 알게모르게 쥐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운명과 팔자에 잡힌 인생은 어떤 삶을 살게 되는 것일까요? 성경은 운명과 팔자에 매인 사람에게 반드시 여섯가지 인생의 결과가 온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①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마귀에게 붙잡혀 마귀(사탄)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고, 반복되는 문제가 터지기도 하고, 가문의 질병이 대물림되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마귀(사탄)가 가져다주는 영적인 문제인데 사람들은 단순히 내 운명과 팔자인 줄 알고 속고 있습니다.
② 이해할 수 없는 불안이 찾아오게 됩니다. 인간은 이런 문제와 고통, 불안함을 벗어나려고 우상과 종교를 만들어 자신의 인생을 맡겨보기도 하고, 점을 쳐보기도 하고, 정성껏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며 지성을 빌어 보기도 합니다. 잠시 해결되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더 큰 어려움을 가져다주는 사탄의 속임수일 뿐입니다.
③ 마음의 병이나 정신적인 문제로 다가옵니다. 심한 악몽이나 가위에 눌리기도 하고, 불면증으로 잠을 못 이루기도 합니다. 환청과 환상에 시달리기도 하고, 극도의 외로움과 불안으로 우울증에 빠져 일상생활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④ 결국 육신적인 문제가 따라오게 됩니다. 불치병이 오고, 이름모를 병이 오고, 반복되는 질병으로 고통당하기도 합니다. 인간관계가 단절되고, 허무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⑤ 살아갈수록 미래는 점점 더 불안해 집니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게 되고, 이 땅에서 지옥같은 삶을 살다가, 결국은 죽어서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⑥ 내가 가지고 있던 좋은 점, 나쁜 점들이 놀라웁게도 자녀에게 모두 전달됩니다. 내가 겪어야 했던 인생의 고통과 문제들이 또 다시 내 자녀들에게 반복되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니 어떻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인간은 과연 운명과 팔자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하여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 방법은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는 것이었습니다.(요한복음1:14, 로마서5:8) 이 땅에 오신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복음1:21)
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요한복음14:6)
②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하시고, 저주와 재앙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마가복음10:45, 로마서8:2)
③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에서 부활하셨으며, 지금도 인간을 괴롭히고 지옥으로 끌고 가는 사탄(마귀)의 모든 권세를 완전히 멸하셨습니다.(요한일서3:8)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운명과 팔자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내 마음에 영접하심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당신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요한계시록3:20, 요한복음5:24, 요한복음1:12)
사탄이 가져다 준 운명의 덫에서 빠져나오는 하나님의 선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로마서8:1-2)
참된 기도란 어떤 것일까요?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는 세상 종교에서 말하는 기도와는 조금 다릅니다. 마태복음 6장에 보면 참된 기도가 어떤 것인지 나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6:25-33)
이 땅에는 세가지 과학이 존재합니다. 눈에 보이는 지구과학, 눈에 안보이는 정신과학, 더 중요한 과학이 바로 영적과학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이 왜 자살할까요? 무엇 때문에 정신질환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을까요? 원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축복받은 영적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이 축복을 사탄이라는 흑암존재의 속임수에 빠져 다 빼앗겨 버렸습니다. 그러니 세상은 과학이 발전할수록 타락과 혼돈의 문화가 점점 깊어져 가고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적인 질병과 정신병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지식은 있는데 영적인 힘은 없습니다. 돈은 있는데 영적으로는 가난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탄과 저주와 운명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그리스도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축복을 가지고 세상에 나가 승리하게 됩니다.
그 힘과 축복을 누리는 열쇠가 바로 “기도”입니다. 성경에는 기도응답에 대한 약속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한복음16:24)
기도하면 하나님이 성령(聖靈)으로 함께 하시고, 성령으로 인도하시고, 성령으로 역사하십니다. 기도하면 주의 사자(천사)들의 보호를 받게 되고, 사탄의 세력이 무너지고 불신앙이 떠나가게 됩니다. 기도하면 모든 문제에 대한 응답을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는 기도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그냥 일하지 말고 기도 속에서 일하고, 그냥 공부하지 말고 기도 속에서 공부해 보세요. 하나님의 능력이 늘 당신과 함께 할 것입니다.
살아있을 때 죽음 생각하기
인간의 삶은 생로병사의 스케줄을 누구나 따라가게 되어있다. 2022년 2월 8일 그날은 필자가 천국 가는 날이었다. 심장대동맥 박리 즉 심장 대동맥이 터지는 것이었으니 대개의 경우 90%가 20분내 사망이라는 중대한 질병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비된 의료진을 활용하셔 생명의 시간을 연장하셨고 수백명의 기도 사명자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셨다. 살아나서 돌아보니 정리되지 않은 책상과 보내지 못한 편지, 얼마의 남은 빚과 용서하고 용서받지 못한 여러 형편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겸손하신 선배 목사님이 차를 마시면서 이제 자신의 남은 기도는 ‘유종의 미’라고 하시는 말이 내게도 곱씹어졌다.
옛날 등이 굽어 콤플렉스가 있는 모세 멘델스존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모세는 훌륭한 인품으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지만 흉한 외모로 여자들에게는 비호감이었다. 어느날 독일을 여행하던 중 프룸체라는 여인에게 첫눈에 반한 모세는 자신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어떻게든 그녀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했지만 멋진 남자들에게 끊임없이 구애를 받던 프롬체는 모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모세는 그 지방을 떠나기 전날 밤 프롬체를 찾아가 자신의 진심을 한 이야기로 들려주었다. “주님이 제 미래의 신부를 정해주시는 꿈을 꾼 적이 있습니다. 주님은 저에게 훌륭한 외모를 주시고 아내의 등을 굽게 만들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내를 너무 사랑한 저는 제 등을 굽게 하고 아내에게는 더 없는 아름다움을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비록 꿈이지만 제 마음은 진심입니다. 저의 사랑을 받아주시겠습니까?” 모세의 진심은 프룸체의 마음을 움직였고, 두 사람은 평생의 동반자가 됐다고 한다. 광고회사에서 일하는 한사 버그웰은 업무차 히말라야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한 번의 방문으로 히말라야의 문화에 푹 빠진 그는 지역 문화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그러던 중 다음과 같은 부탄의 속담을 알게 됐다. “하루에 다섯 번의 죽음을 떠올려야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 이 속담을 잊을 수가 없었던 버그웰은 하루 5번의 시간을 정해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삶이 풍요로워졌다. 언젠가 어떻게든 죽는다는 생각에 지금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게 됐다. 버그웰은 이 경험을 바탕으로 불특정한 시간에 하루 5번 ‘죽음에 대한 명언’을 보내주는 앱을 개발했는데 유료임에도 수만명의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오늘 내가 죽는다면, 혹은 조만간 죽을 예정이라면 어제와 같은 삶을 살지 않고 완전히 변화된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주님이 허락하신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영원한 것을 위해 삶을 투자해야 한다. 지금 숨을 쉬면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자신의 능력과 힘 같지만 사실은 전능자의 보살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전원코드가 뽑히거나 꺼지면 그 전자기기는 무용지물이 되는데 인생에서 죽음도 한순간에 다가오는 인생의 한부분이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시간 속에서 예상할 수 있는 죽음을 한번은 깊이 생각해 놓아야 한다.
생명이 있기에 죽음이 있으므로 생명의 영원을 계속 가질 수 있다면 죽음의 두려움을 이길 수 있다. 지구상에 누군가가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요6:58)”하였던가? 그 선포에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은 그 누구라도 두려움 없이 그 약속을 누리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신기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