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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링컨이 아니라 포드일 뿐입니다
리더에게는 자기의 생각을 정확히 표현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미사여구나 전문용어를 많이 쓴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또 말을 길게 한다고 해서 더 효과적인 것도 아니다. 현대의 과학기술이 엄청난 분량의 데이터를 작은 반도체나 CD에 담아내듯이. 유능한 리더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무수한 말들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다름아닌 유머다.
"미국의 경제 상황을 판단하는 기준은 세 가지다. 경기침체(recession)는 이웃이 실직했을 때. 불황(depression)은 내가 실직했을 때. 경기회복(recovery)은 카터가 물러났을 때."
이것은 1980년에 대통령 선거에 나선 레이건이 청중들 앞에서 했던 말이다. 이 한마디의 유머 속에는 실로 많은 내용들이 함축되어 있다. 침체에 빠진 미국경제, 사람들의 자기중심적 기준, 그리고 '경기침체는 카터의 무능함 때문' 이라는 신랄한 비판. 그것이 카터에게 그 어떤 논문이나 웅변보다도 날카로운 화살이 되었음은 말할나위도 없다. 바로 이것이 유머가 갖는 탁월한 표현기능이다.
프랑스의 정치지도자 클레망소에게 신문기자가 물었다.
"지금까지 본 정치가 중에서 누가 가장 최악입니까?" "이 나이가 되도록 아직 최악의 정치가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게 정말 입니까?" 그러자 클레망소가 분하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저 사람이 최악이다 싶은 순간 꼭 더 나쁜 사람이 나타나더군요."
유머의 함축적인 표현효과는 다수의 대중들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훨씬 더 생생하게 드러난다. 대표적인 예 중의 하나가 바로 포드대통령의 취임연설이다.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면서도 옛 정치인들과의 뚜렷한 차별성을 제시하지 못했던 그는 취임식 서두에 다음과 같은 한마디로 수 억의 미국인들을 웃게 만들었다.
"나는 링컨이 아니라 포드일 뿐입니다."
'포드'와 '링컨'은 사람의 이름인 동시에 자동차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는 고급승용차 링컨에 대중승용차 포드를 빗대서 정치가로서 자기의 대중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 절묘한 유머가 그에게 독자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주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역사에 길이 남을 명연설은 아니지만 자기의 정치적 성향이나 포부를 간결하게 표현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외국의 정치인들은 이처럼 대중연설을 할 때 재미있는 유머로 좌중을 사로잡으며 전달효과의 극대화를 꾀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포드의 다른말은 다 잊어도 자기들을 웃기게 만든 그 한마디만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연설만하면 괜히 분위기가 엄숙해지거나 아니면 전투적으로 격양되는 우리나라의 정치인들과 비교해 보면, 외국의 유권자들은 최소한 한 가지의 복을 더 타고난 셈이다.
- 김진배의 '웃기는 리더가 성공한다' 中에서 -
오는 12월 19일은 제17대 대통령을 뽑는 날입니다. 군사독재를 거쳐 국민의 손으로 대통령을 뽑기 시작한게 1987년부터였으니 올해로 꼬박 20년이 되는군요. 그동안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의 선택을 받고 청와대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네요.
예전에는 대통령 선거때가 되면 온나라가 들끓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죽기살기 식으로 싸우기도 하고 흑색선전과 네거티브식 폭로도 흔하게 보아왔던 광경이지요. 국민들도 후보에 따라서 싸워야 했습니다. 반드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지구가 반쪽이라도 날듯 큰일난다고 믿곤 했었지요. 그래도 올해는 예년과 달리 분위기가 많이 차분해진듯 보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본인이 '당선되어야 하는 이유'보다 상대방이 '당선되어서는 안되는 이유'가 더 많으니 국민의 입장에서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유권자로서 우리가 알고 싶은건 대통령이 되어서 얼마나 일을 잘 할 것인지, 그에 대한 준비와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에 관한 것인데 그와 관련된 말은 없고 상대방 흠짓내기에 더 힘을 쓰는군요. 더구나 모두 흥분만 할뿐 국민을 미소짓게 만드는 후보는 하나도 없네요. 물론 어의없는 웃음은 있었지만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84년 미국 대선에서 당시 대통령이었던 레이건과 측근들은 '대통령이 되기엔 너무 늙었다'는 대중적 인식을 극복하는 것이 선거전의 가장 큰 과제였다고 합니다. 경쟁자인 먼데일 후보가 줄곧 레이건의 '고령'을 문제삼고 나왔기 때문이죠. 그들의 TV토론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데일: "대통령의 나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레이건: "나는 이번 선거에서 당신의 나이를 문제삼지 않겠습니다." 먼데일: "그게 무슨 뜻입니까?" 레이건: "당신이 너무 젊고 경험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언제쯤 대통령 선거를 웃으면서 축제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될까요.
- 와플에세이 편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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