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을 위하여 모인 사람은 일곱이었다. 산악대장 성영희를 비롯하여 부대장 김선희, 임재흥(공의원), 임영훈(편집국장), 김성보(사무처장), 지난 달 입단한 김선순 단우였다. 명도암 입구 주차장에서 승용차 2대에 나누어 타고 한남리를 향하여 출발했다.
한남리는 한라산 남쪽 마을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지대가 높은 곳이다. 북쪽으로 제주시와의 경계까지 이르러 성판악휴게소 바로 동쪽도 한남리에 속한다. 성판악휴게소에서 남쪽으로 4㎞ 넘는 거리의 516도로가 한남리와 신례리의 경계선이다.
우리가 목표로 한 곳은 그렇게 북쪽 멀리까지는 아니고 머체왓숲길이다. 머체는 큰 돌 또는 돌무더기를 뜻하는 말이어서 돌이 많은 지경임을 알 수 있다. 2012년엔가 머체왓숲길을 조성했으니 이제 10년을 바라보게 된 곳이다.
소롱곶길과 머체왓길이 겹치는 구간이 있고 각각 2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되는 길이다. 두 길을 다 걸으려면 4시간 정도가 걸리니까 머체왓길만 가기로 합의하였다. 여성 동지 두 분은 식당에 들어가더니 하도 오래 안 나와서 뭘 하나 걱정했는데 막걸리 안주로 전을 주문하여 사느라고 늦었다고 한다. 참 자상한 분들이다. 하늘은 흐리고 비가 올듯말듯하지만 걷기에는 참 좋은 날이다. 서쪽으로 출발했다. 출발 기념으로 사진을 찍고….
공사한 지 얼마 안 되는 저류지의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 본격적인 숲길로 들어서서 조금 걸으니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너비의 비포장도로가 나온다.
가로질러 바로 숲으로 다시 들어선다. 제주의 숲 속에는 새비낭(찔레나무) 가시가 많아 통행이 어려운 곳이 많은데 이곳엔 그게 거의 없어 걷기에 참 좋다. 어떤 곳엔 야자매트가 깔려 있고 자갈길도 좀 있지만 잔디처럼 자란 풀밭길도 한참 이어진다.
길에 세워진 안내판이 눈에 띈다. 〈방애혹〉이라는 설명이다. 화전으로 농사를 지었던 곳이다. 주변보다 낮은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므로 글자를 〈방애ᄒᆞᆨ〉이라 써야 맞는데 제주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만든 것이니 어쩔 수 없지 생각하면서도 바르게 표기해 주어야 하는데… 하는 불만이 가시지 않는다.
가장 먼저 눈에 띈 식물은 양치류의 관중이다. 이번에는 대나무숲길이 나온다. 대나무는 인가에 많이 심었던 것이라 대나무가 보이면 인가가 있었나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인가는 여기서 한참 북동쪽으로 가야 머체왓마을터가 있을 뿐이다.
이름 모를 나무가 반쯤 쓰러져 있지만 당당히 살아 있다. 그 밑으로 김성보 단우가 겸손한 태도로 지나온다.
큼직한 때죽나무가 가로막는다. 뿌리 주변에 많은 맹아를 키워내고 있다. 맹아는 곧게 자란다. 그래서 몇 십년 전까지만 해도 괭이 등 농기구의 자루로 많이 썼던 나무이다.
제밤낭기원쉼터라는 표시가 눈에 띈다. 이 나무는 제밤낭 또는 ᄌᆞ밤낭이라 부른다. 표준어는 구실잣밤나무이다. 커다란 바위 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영양분을 구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니 뿌리를 아래로 아래로 내릴 수밖에. 그러다 보니 뿌리가 바위를 완전히 감싸게 되었다. 그 뿌리는 보통의 뿌리와는 다르게 위로 솟아 납작한 모양을 이루었다. 단단해지기 위한 자구책이다. 이런 뿌리를 판근이라 부르는데 제주의 곶자왈에서는 흔히 보이는 현상이다.
겨울이 되었다고 꽃을 대신하여 수국 잎사귀가 보라색으로 변하였다.
잔디가 이어지는 길가에 겨울딸기가 무리지어 자라고 있다. 지금 열매가 익을 시기다. 크고 탐스럽지는 않고 그렇게 달지도 않아 볼품없지만 이 겨울에 자연산 딸기라니 얼마나 귀한 것인가! 한두개씩 따서 맛을 보고 간다.
작은 내를 지나게 되었다. 내는 온통 바위이다. 그 바위 위에도 큼직한 나무가 자란다. 그런데 이 나무는 뿌리가 다 닳아진 것 같다. 밑으로 뿌리를 내리려 해도 큰 물이 날 때마다 뿌리가 잘려 버렸을 것이다. 그래도 저렇게 건강하게 자라고 있으니 놀라울 뿐이다.
사진 찍느라고 50m 쯤 뒤에서 쫓아갔는데 먼저 전망대에 도착한 일행은 벌써 막걸리를 꺼냈다. 전망대는 흔히 높게 만든다. 그런데 이곳 전망대는 평상만 깔았다. 그래도 멀리까지 잘 보인다. 정말 멋진 것은 폭낭 한 그루이다. 여름이면 그늘을 만들어 주기 때문에 지붕 있는 정자를 구태여 만들 필요가 없다. 전, 졸인 김치, 구운 달걀까지 잘 갖추어진 안주에 먹다 보니 막걸리가 부족한 느낌이다. 우리는 배달의 민족이니까 배달시켜 먹자는 농담도나온다. 아쉽지만 일어서야지.
다시 걷는다.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숲을 이루어 웅장하다.
4.3 이전에는 사람이 살았던 머체왓마을 터에 이르렀다. 남원읍 한남리 산 5-22번지 일대이다. 예전에 목축업을 하던 문씨, 김씨, 현씨 등이 마을을 이루고 살았으나, 4·3사건 당시
소개되어 그 후 복귀하지 못한 마을이다. 이 마을 어린이들은 의귀초등학교에 다녔다. 오늘날 이곳에는 당시의 집터에는 삼나무 등이 자라고 있으며 집의 벽체, 동네 골목길,
우영밭 터, 통시, 굴묵 입구를 받쳤던 넓적한 돌판, 화덕, 항아리 깨진 조각, 술이나 석유 등을 담았던 병, 사기그릇, 함석가위, 양동이 등이
남아 있어 1950년 전후 제주도 산간지방의 생활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앞의 사진 2장은 2013년에 찍은 것이다. 지금은 유물 대부분은 없어졌다. 잡초가 우거져 전체를 조망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그래도 건물 벽이 골격을 유지하고 있으며, 건물 앞에는 물팡 흔적이 남아 있고, 통시에는 디딜팡과 돝도고리가 완연하다. 돝도고리에 곧 조그만 도세기가 다가설 것 같다.
서중천을 만나자 서쪽 기슭에 붙여 내려간다. 숯 굽는 사람들이 썼던 것으로 추정되는 움막이 나란히 2개가 보존되고 있다. 가까이에 식수로 쓸 수 있는 서중천 맑은 물이 있으니 이곳에 자리잡았을 것이다. 여성 동지 두 분이 험한 내창 바위를 가뿐하게 뛰어다닌다.
주차장이 가까워진 지점에 소원 비는 돌탑 쌓기가 있어 김선희 단우가 꼭대기에 돌 하나를 얹어 놓는 데 성공하였다. 소원을 빌었느냐는 질문에 빌었다고 하면서 몇 달 후에 성취 여부를 말해 주겠단다. 소원이 무엇인지 자못 궁금하다.
점심은 남원리 토향식당에서 우럭매운탕, 생선구이, 옥돔국 등 제주 토속 음식으로 먹었다.
첫댓글 자상하게 기술한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제주흥사단산악회 핫팅!!!
잘 읽었습니다
제주yka에 가고 싶어요.
박국철, 김상경 두 분 단우님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국 산행에도 참가할 기회를 가져야 되는데 그게 쉽지 않네요. 멀지 않은 장래에 산에서 한 번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