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도 글쓰기로 힐링할 수 있을까
황지은
429hwang@daum.net
얼마 전에 큰집 조카로부터 전화가 왔다. 서로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 집안 행사 때나 얼굴을 보고 지냈는데, 오랜만이다 싶었다. 새뜻한 목소리에 나긋나긋한 음색이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였다. 세월이 지났어도 조신한 조카임을 금세 알 수 있었다. 뜻밖이라 의아하면서도 반가웠다. 이내 날마다 만난 사이인 듯 둘이 친근하게 얘기를 나누었다. 명분은 새해 인사였지만 한참 듣다 보니 자기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가득 묻어나왔다. 돌아가신 어머니, 나에게는 맏동서인 형님이 보고 싶은가보다고 그렇게만 생각했었다.
나는 그 무렵에 우연히 만났던 지인과 헤어질 때, 배웅하던 장면이 형님의 잔잔한 모습과 오버랩되었다. 영락없이 동네 길마루에까지 와서 손을 흔들어주던 형님 같았다. 막내 동서인 내게는 어머니처럼 다정한 분이셨다. 문득 보고 싶었다. 형님과의 추억이 떠올리며 그 밤에 글을 썼다. 다시 읽어보고 있는데, 뜻밖에 조카한테서 전화 연락이 온 것이다. 어떤 기운이라도 있었나? 글로 텔레파시가 통했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면서도 조카가 전화를 걸어 온데는 무언가 사연이 따로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무언가 낌새가 있어 조카에게 다시 전화했다. 병원에 있다며 조카는 소곤거리듯 전화를 받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여전히 눈치를 챌 수가 없었다. 그런 조카에게서 저녁에 다시 전화가 왔다. 그제야 조카는 속내를 털어놨다. 그녀의 남편인, 조카사위가 뇌출혈로 쓰러져 한동안 입원했다가 얼마 전 퇴원했는데, 후유증으로 한쪽 몸이 마비되어 날마다 재활치료 받으러 다닌다고 했다. 전혀 생각지 못한 소식에 멍하니 할 말을 잊었다. 남편을 잠시도 혼자 둘 수 없어서 지금까지 하던 일을 접고 간병에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믿을 수 없는 말에 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조카사위는 정신이 맑아지자 “우리한테 어찌 이런 일이 생겼나?”라고 처지를 비관하여 한숨만 쉬니 어찌할 수가 없다고 말하는 조카였다. 설움이 복받쳐 서로 끌어안고 여러 번 울기도 했다고 말한다. 지팡이를 짚어도 아직은 중심을 못 잡고 쓰러져 조카가 수족이 될 수밖에 없단다. 형님이 살아계셨으면 너무도 가슴 아플 일이다. 하늘에 계신 당신이 어찌할 수가 없으니 내게 잠시 ‘동네 길마루에까지 와서 손을 흔들던 형님’이 되어 걱정스런 모습을 다시 보여주셨을까? 생각하니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조카는 혼자서 얼마나 속앓이를 했을까. 게다가 최근에는 위장에 탈이 나서 그 증상이 심해져 힘들다는 목소리가 더욱 나의 마음을 울컥하게 했다. 한마디 한마디가 가엽게만 들려왔다. 난 조카가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며 지내는 것이 많이 염려되었다. 간병하는 이는 자신의 건강을 먼저 챙겨야 한다. 그건 이미 겪어본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전화 통화를 하면서 문득 나는 작고하신 어머니를 떠 올렸다. 어머니는 생전에 혼자되어 지내실 때 쑥인절미를 즐겨 드셨다. 소화가 잘되고 든든해서 좋다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나 서둘러 거문도에 주문하여 배달된 쑥을 특별히 많이 넣고 인절미를 해서 조카에게 보냈다. 조카는 “숙모님, 고맙습니다. 병원에 다녀와 지칠 때 먹으면 힘이 나요.”라고 말하니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사람은 자기를 위로해 주는 이가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힘이 될 수 있다. 난 조카가 그러기를 바랐다. 혈당지수 낮은 벌꿀을 매일 아침 공복에 먹어보라고도 권하였다. 내 경험으로 영양과 치료 효과를 함께 볼 수 있어 좋았다. 쑥인절미로 조카의 입맛을 다시 잡고 건강도 차츰 좋아지기를 바랐다.
쑥인절미를 만들다 보니 내 어머니가 다시 그리워진다. 어머니는 허출할 때 쑥인절미를 즐겨 드셨다. 해마다 이른 봄이면 솜털을 달고 나오는 쑥을 캐러 냇둑으로 나가는 발걸음이 분주했다. 그 무렵 어머니는 종종 외할머니를 보고 싶어 하셨다. 산수가 지나신 분이 무에 그리 그리우셨을까? 그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노망이라도 드실까 하는 조바심에 그런 말씀은 제발 하시지 말라며 투정을 부리곤 했다.
나는 어머니에게도 어머니가 있었다는 사실을 미쳐 생각하지 못했다. 그랬다. 마음속에 품은 말을 자식한테는 다할 수가 없어 외로우셨음을 알아채지 못하였다. 한해 한해 어머니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세월이 쌓여 보아야 알 수 있다. 조카가 하늘나라에 가 계신 자기 어머니를 대신해 작은 어미인 내게 그 마음을 열고 아픈 사정 얘기를 하니 고맙기만 하다. 마음속에 울음보가 항아리만큼 가득 차서 터트리고 싶을 때는 주저 말고 얘기하라고 했다. 지금도 가끔은 나도 어머니가 그리우니까.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다. 조카는 자기 남편을 간병하며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외로울까.
며칠 전 극장에서 ‘크레센도‘ 영화를 보았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국제 피아노 경연대회에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하나가 되어 연주하는 광경에는 나도 모르게 눈자위에 눈물이 번졌다. 슬픈 내용이 아닌데도 밀려드는 진한 감동으로 눈물이 났다. 다시 남편 간병에 몸도 마음도 지쳐있을 조카 생각이 났다. 좋은 영화이니 감상해 보라고 권할 수도 없는 조카의 처지를 생각하니 안타깝기만 했다. 스스로 가능한 취미를 가지면서 마음속 응어리를 풀고 지낼 수 있을까. 혼자서 남편 병간호를 하면서도 터놓고 말할 수 없는 아픔을 작은어머니인 내게 전화로라도 자주 얘기해주기를 바라지만 마음에 그런 여유가 없을 것만 같다. 혹시 조카도 나처럼 그런 아픈 이야기도 글로 풀어내며 치유하라고 권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조카는 종합병원에서 수간호사로 일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보여주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 치열한 몸부림과 숙연함, 보고 들은 사연들은 또 얼마나 많이 쌓였을까. 기억 창고가 그득할 것 같다. 그런 조카지만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남편을 간병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음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글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 글을 쓰면 돌멩이처럼 단단하게 굳은 마음을 녹여 스스로 치유된다. 글에 마음을 담아내면 여유가 생긴다. 글은 사연을 풀어내고 간직해 주기도 한다. 내 마음이 편안하고 너그러워져 전에는 보이지 않던 소소한 일에서 뜻밖의 행복감을 느낄 수도 있다. 순간순간 하루하루의 어려움을 글로 풀어낼 수도 있을 것 같다. 조카가 글쓰기를 하여 나와 생각을 교류하며 서로 의지하고 지내면 더 좋겠다. 감성이 풍부한 조카는 글을 잘 빚어낼 것 같다. 마르지 않는 샘처럼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지금 맏동서인 조카의 어머니 대신에 그 조카의 어머니가 되어 혼자서 겪는 아픔을 어떤 방법으로라도 덜어내고 싶다. 글쓰기로 힐링하는 길을 열어주면서 그녀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싶은 심정이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남편에게 매달려 있을 조카의 모습이 다가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