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도전받는 남성다움
1960년대 우리 사회는 도시화, 공업화, 산업화 등으로 급격하게 변했다.
특히 도시의 공업화로 대규모의 임금 노동자가 필요하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동하였다. 농경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변하면서 인구 이동이 심해지자, 기존의 대가족 형태는 이동하기에 편리한 핵가족 형태로 변하게 되었다. 이러한 가족 제도의 변형은 남성과 여성의 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 왔다.
일터와 가정이 분리되자 남성은 경쟁적인 일터에서 성실한 직장인이자, 가정 경제를 이끄는 생계 부양자가 되었다. 자수성가, 출세, 책임 있는 가장이라는 말은 흔히 남성다움을 보증하는 말이 되었다. 사회인과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해내는 데 적합한 책임감, 지배적이고 강한 행동, 결단력, 독립성, 성취 지향, 힘, 합리성을 두루 갖춘 남성이 이상형으로 떠올랐다.
이러한 남성다움은 정치를 중심으로 놓았던 조선 시대와 경제를 중심으로 하는 현대 사회의 변화와 맞물려, 벼슬로 의를 실천한다는 군자상과 자본주의에 적합한 남성상이 혼재되어 나타났다. 가족의 생계보다는 대의 명분을 중시하고 가족 관계에서도 아버지가 중심이 되었던 전통적인 남성상과,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는 도구적 역할로 전락하고 가족 관계에서도 남편이 중심이 되는 현대 남성상이 결합되어, 우리 나라 남성상은 서구 남성보다 더 무거운 남성다움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가부장제를 심화시키면서도 한편에서는 가부장제를 붕괴시킬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녀의 성 역할 분업이 확고해진 상태에서 남녀 모두에게 동등한 교육 기회가 부여되고 산업화와 기계화로 여성이 경제 활동에 참여하고 많은 여성이 공적 영역에 진출하면서 사회적 경제적으로 자립하였다. 남성은 생계 유지자로서의 위치는 확고하면서도, 가정에서의 위치는 줄어들어 가부장적 위치가 불안해졌다. 거기다 여성의 자율성 회복을 강조한 여성 운동까지 가세하여 가부장제를 위협하고 남성다움의 토대를 흔들어 남성의 입지는 더욱 좁혀졌다.
1960년대 이후 여성 운동은 당연시해 오던 남녀의 존재 방식과 그 관계를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남녀의 성격과 태도, 남성은 직업노동, 여성은 무보수 가사노동만을 한다는 성별 역할 분리, 남녀 관계의 기본 조직인 가족의 가부장적 성격 등이 재검토되었다. 70년대 이후 여성 해방 운동은 교육, 노동, 가족법에서의 성 차별을 폐지하는 데 중점을 두었고 그 후 가족법 개정, 남녀 고용평등법, 탁아입법 제정 등의 성과를 올렸으며 곧 부부 재산 공유제도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성 평등을 줄기차게 주장해 온 여성 운동은 남성에게도 영향을 미쳐 남성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게 되었고 남성다움의 위기로 나타났다. 남성들의 위기는 당연히 열등하다고 생각했던 여성들의 능력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면서 시작되었다.
변화하는 사회, 변화를 요구받는 남성
연암 박지원은 '양반전'을 통해 조선 사회 신분 관계의 한 단면을 보여 주었다. 신분이나 남녀 관계가 주종의 위계 질서로 이루어진 유교 사회에서 양반은 상민을 지배하기 위해서 매사에 상민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했다.
(양반이란 선비, 대부, 군자라 칭하며 결코 비천한 행동을 하지 말며 옛 사람의 높은 행적을 본받아 이를 따를지어다. 양반은 굶주림을 참고 손에 돈을 쥐지 말 것이며, 아무리 더워도 버선을 벗지 못하며, 밥상을 대할 때 반드시 의관을 갖추어야 한다. 아무리 분하더라도 홧김에 기물을 발로 차면 안 되며 추워도 화롯불을 쬐어서는 안 되며 남과 이야기할 적에 침이 튀지 아니 하도록 하여야 하느니라)
이러한 행동 양식은 양반이라는 집단의 이름으로 개인의 삶을 속박시키는 굴절된 삶의 방식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기꺼이 이러한 삶을 받아들였고 오랫동안 유지해 왔다. 그들은 사소한 행동 규범에서 사회 활동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우월성을 습득하고 실행하는 가운데 양반 문화를 만들어 전수시켰다. 양반은 양반 지배 문화 아래에서 편한 입장이었다.
자질구레한 노동은 상민에게 떠넘기고 이들을 부리면서 자유롭게 살았다.
(설혹 선비가 군색하여 낙향을 할지라도 아직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법이니 이웃 소를 빌려 자기 논밭을 먼저 갈게 하며 동리 사람에게 김을 매도록 하느니라. 만약 그 누구라도 양반을 업신여겨 말을 듣지 아니 할 적에는 그 놈의 코에 잿물을 부으며 상투를 잡아 내고 수염을 뽑는다 해도 감히 원망조차 못하리라)
따라서 양반은 약간의 고통이 따르지만 더 큰 보상이 있는 한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알 필요가 없었다. 그 후 많은 민란과 동학 농민 전쟁을 겪고 앞서 발전한 서구의 평등 사상을 접하는 동안, 상민은 자신들의 처지를 깨닫고 양반의 논리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신분제는 양반 스스로 자신들의 한계를 깨닫고 없앤 것이 아니라 사회의 변화와 자신들이 우월성을 비추어 보던 대상인 상민에 의해 차츰 무너졌다.
20세기는 사회 질서의 측면에서 본다면 성, 인종, 신분에 의해 차별을 받아 온 피지배 집단으로부터 강력한 도전을 받는 시기로, 특히 여성의 지위는 19세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되었다. 이러한 충격 속에서 우리 사회는 남녀의 성 역할을 엄격하게 요구하며 전통적인 성 역할 이미지를 계속 유지시키는 한편, 부분적으로나마 여성의 역할 변화를 허용하였다. 산업화로 인해 여성이 경제 활동에 참여하고 평등에 기초를 둔 민주주의 가치관이 확산되면서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남성은 자신들의 우월성을 비춰 보던 여성에게서 남성 고유의 행동으로 여기던 남성다움의 특성들이 양파 껍질 벗겨지듯 하나씩 드러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다. 남성은 겉으로 분명하게 드러내지는 않지만 의식 속에서 여성이 열등하다는 신화가 깨지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 소리와 함께 치열한 경쟁, 업적, 능력 중심의 사회에 맞는 남성다움에 대한 강박 관념과 입신 양명, 금의 환향, 수신 제가 같은 표현에서처럼 인생에서 뭔가 이뤄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다.
오늘날 서구는 물론 우리 사회에서까지 이렇게 남성다움이 '문젯거리'로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이래 남성은 인간의 모델이었고 그들의 삶만이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남성의 삶은 역사의 변천 과정에서 소수 지배층의 이해 관계에 따라 강화된 것일 뿐, 인간 본성의 자연스런 표현도 아니고 대다수의 이해 관계를 반영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대다수 남성은 스스로를 돋보이게 할 만한 힘도, 여성이 생각하는 만큼의 사회적인 권력도 없다. 그런데도 남성은 사회적으로 우월한 입장이어서
"나는 누구인가?"
하고 자문할 필요를 거의 느끼지 못했다. 사회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는 남성은 행동에 다소 제약이 있기는 하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다움을 추구할 때 일정한 보상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남성은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꿈이 있고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한 자신이 짊어진 짐을 내려놓지 않는다. 이로 인해 남성은 영웅의 꿈에 안주할 것인가 현실적인 변화의 요구에 부응할 것인가를 놓고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갈등에 싸여 있다.
그러면 변화하는 우리 사회에서 남성 자신은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에 봉착해 있는지 남성의 콤플렉스를 통해 살펴보고, 그 해결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