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경일보 / 2016.12.23.(금요일)자
유진의 詩가 있는 풍경
화이트 크리스마스
ㅡ나태주
크리스마스이브
눈 내리는 늦은 밤거리에 서서
집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는
늙은 아내를 생각한다
시시하다 그럴 테지만
밤늦도록 불을 켜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빵 가게에 들러
아내가 좋아하는 빵을 몇 가지
골라 사들고 서서
한사코 세워주지 않는
택시를 기다리며
20년 하고서도 6년 동안
함께 산 동지를 생각한다
아내는 그 동안 네 번 수술을 했고
나는 한 번 수술을 했다
그렇다, 아내는 네 번씩
깨진 항아리고 나는
한 번 깨진 항아리다
눈은 땅에 내리자마자
녹아 물이 되고 만다
목덜미에 내려 섬뜩섬뜩한
혓바닥을 들이밀기도 한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이브 늦은 밤거리에서
한번 깨진 항아리가
네 번 깨진 항아리를 생각하며
택시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시 읽기◆
아기예수의 탄생, 거리마다 울려 퍼지는 캐럴과 산타, 케잌과 촛불, 성스러운 기도와 찬양 그리고
축복 속의 화이트 크리스마스.....기쁨과 사랑이 넘치는 날이다. 공연히 들떠서 밤거리를 쏘다니기
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날이다. 눈이 오든 안 오든 성탄전야에는 소중한 사람과의 특별한 밤이길 소
망한다.
지금 노시인에게는 집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을 늙은 아내가 가장 소중한 사람이다. 밤늦도록 손님을
기다리는 빵집주인도 챙겨줄 겸, 아내가 좋아하는 빵을 몇 가지 골라 사들고, 쉽게 잡히지 않는 택시
를 기다리는 노시인의 모습이 따사롭다. 평안이란 그런 것이다.
유 진/ 시인, 첼리스트<선린대학 문예창작 전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