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일지 14, 15] 힘내라, 이라크! 힘내자, 철군! (2004년 8월 22일, 23일)
힘내라, 이라크!
텔레비전이며 신문이며 온통 올림픽 이야기지만 올림픽 이야기만 나오면 바로 건너 땅에 벌어지고 있을 폭격과 전투가 겹쳐지면서 눈살이 찌푸려지곤 했다. 일요일(14일) 밤, 서울에서 내려온 이들에, 이곳 울진 분들 몇 사람이 집에 와 있다가 텔레비전을 켜고 같이 뉴스를 보았다. 텔레비전 뉴스는 잘 보지도 않지만, 가끔 보기만 해도 올림픽 얘기 말고는 다른 얘기는 거의 못 보았다. 어제도 아홉 시 뉴스를 보면서 이게 스포츠 뉴스인지, 아홉 시 뉴스인지 참 너무하다 싶었다. 다른 곳으로 한참 눈을 돌렸다가 다시 텔레비전 화면을 보니 아주 낯익은, 그리고 그리운 모습 - 나르길라(물 담배)를 물고 있는 사람들. 이라크에는 물 담배를 놓은 가게가 많다. 마치 우리 나라의 찻집처럼 탁자에 소파를 양쪽으로 놓은 자리들을 여럿 갖추어 놓고서 물 담배를 피울 수 있게 하는 가게가 있는가 하면 식사도 할 수 있는 식당을 겸한 곳도 있다. 사람들은 물 담배를 물고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가게 안에 있는 텔레비전을 보거나 한다. 그런데 바로 그 장면이 뉴스에서 나오고 있었다. 물 담배를 입에 문 채 활짝 웃는 사람들 얼굴,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사람들 모습, 뭔가 했더니 이라크가 축구 경기에서 이겨 4강에 올랐다는 거다. 통쾌! 경기 내용을 본 것도 아니고, 축구 종목이 지금 어떻게 되어 가는지도 잘 알지 못하지만 이라크가 이겨 저렇게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니 내 마음도 시원했다. 아마 나라를 빼앗겨 살던 시절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베를린에서 메달을 목에 건 손기정 할아버지, 남승룡 할아버지를 보며 저렇게 기뻐했겠지. 무언가 설움과 맺힌 한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겠지. 나르길라를 파는 가게 안에 모인, 물 담배를 문 사람들이 텔레비전 앞에서 두 손을 번쩍 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래, 힘내라, 이라크!
조금 아까 농성을 마치고 오는 길에 들러 인터넷을 보니 참세상 윤태곤 기자가 그 축구시합과 관련된 몇 가지 사실을 엮어 쓴 글이 있었다. 이 날 이라크가 이긴 축구시합은 다른 나라도 아니고 바로 오스트레일리아, 특수부대 900명을 이라크에 파병한 나라라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내 마음부터 울렁였다. 그래, 질 수 없는 경기였을 거다. 져서는 안 되는 경기, 물론 상대편의 오스트레일리아 축구선수들이야 개인적으로 이라크에 나쁜 감정이 없을지는 모르나 그네들은 내 나라를 짓밟고 있는, 침략군을 보낸 나라의 팀이다. 내 식구를, 내 나라 이웃들에게 총을 들이대고 있는 나라의 팀. 이라크 축구팀의 승리가 다시 한 번 눈물겹다. 한참 이런 감동에 젖어 있는데, 기자는 그 뒤에서 아찔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만약에 우리 나라가 파라과이를 이기고 4강에 올랐다면 이라크와 만나게 되었을 거라는 얘기. 이라크 사람들에게 한국은 이미 오스트레일리아보다 더한 나라가 되었다. 미국을 뺀 나머지 가운데에서는 세계 2위의 파병국가. 내가 이라크 사람이라 해도 한국한테만큼은 절대로 지고 싶지 않은, 결코 질 수 없는 마음이 되었겠지.
어제 뉴스 화면에는 8강 전이 열리는 날에도 붉은 옷을 입고 거리 응원을 나온 시민들이 광화문을 가득 메웠다. 어이가 없다고 말을 한다면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실례가 되는 걸까? 하지만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앞서 어느 날 일기에도 쓴 것처럼 나 또한 축구 경기를 좋아하고, 거리 응원의 문화의 긍정성을 인정하지만, 이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라크 전쟁은 남의 나라 전쟁이 아니다. 우리 나라 군대가 참전을 하고 있으니 그 전쟁은 이미 우리 나라 전쟁이다. 미국만의 전쟁인가? 영국만의 전쟁인가? 두 나라 다음으로 많은 침략군을 보낸 나라가 바로 우리 나라이다. 우리 나라가 벌이고 있는 전쟁, 적어도 내 나라가 침략군을 보내 한 나라를 괴롭히고 있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모였다면 당장 침략 놀음을 때려치우라고 외쳐야 하는 게 우선 아닌가? 광화문뿐이 아니다. 그 새벽에도 도시 곳곳은 경기장마다 축구경기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나는 정말 모르겠다, 그래도 되는 건지. 혹시 어쩌면 이 세상은 그것을 지배하는 엄청난 누군가가 있어서 우리를 모두 거대한 최면과 망각으로 다스리고 있는 걸까? …… 그래, 있다. 있고 말고. 그 누군가는 다름 아닌 자본, 인간의 탐욕을 아주 그럴 듯하게 제도화하고 합리화한 것이다. 자본은 우리를 자신의 룰과 자신의 감각 속에 아주 사로잡아버린다. 그것은 곧 벗어날 수 없다는, 어쩔 수 없다는 무력감과 포기를 가르치고, 그 안에서 억압받는 자들마저도 그 질서와 문화의 신봉자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잊게 만든다. 그것이 보여주는 것에만 열광하도록, 그것이 가리키지 않는 것은 모두 나와 상관없는 문제가 되도록. 그리고는 결국 우리를 최면과 망각으로 돌려세운 뒤, 이윤이 많이 생길 곳이라면 이빨을 드러내고 발톱을 세워 달려든다. 아무리 물어뜯고, 죽이고, 내동댕이쳐도 우리는 자본이 보라는 쪽으로만 고개를 돌릴 뿐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그 참혹한 일에 대해서는 모를 뿐이다. 안다 해도 모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놀랍도록 거대하면서도 교묘한 그 힘은 우리의 이성과 도덕을 마비시키고 있다. 그 잔인하고 끔찍한 일을 벌이는 곳에 내 손 하나가 가서 함께 그 몹쓸 짓을 하고 있어도 그건 마찬가지다. 내 한 손으로는 힘없는 이들을 죽이고 있으면서도 나는 전광판을 보며 축구시합을 응원한다. 아, 이 무서운 최면과 망각, 제도화된 욕망, 자본.
만약 한국 축구가 파라과이를 꺾고 4강에 올라갔다면 8강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 응원을 이루겠지? 광화문에 몇십 만 명이 모이고, 월드컵을 치른 경기장마다 붉은 옷 가득하겠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한국은 과연 정부와 국회만 뻔뻔한가? 침략군대 보내는 것을 막자고 모이는 자리에는 그리도 인색한 사람들이, 그래서 결국 침략군을 보낸 나라의 사람들이 축구 경기를 한다 하여 도심을 가득 메웠다. 뉴스 화면에 보이는 광화문의 인파를 보면서 자꾸만 '저 사람들이 파병철회, 철군을 함께 외쳤다면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저 정도의 인파가 나서서 요구했다면 김선일 씨는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제라도 그렇게 되어야 할 텐데, 철군을 이루려면 다 같이 들고일어나야만 할 텐데…… 마음이 착잡했다. 만일 한국이 올라가 이라크와 맞상대를 하게 되는 상황이 온다면 아무리 내가 우리 축구팀을 좋아한다 해도, 그래도 주저 없이 이라크를 응원했을 거다. 그 시합은 단순히 한국 대 이라크의 경기가 아니라 침략을 한 나라 대 침략을 당한 나라의 경기이기 때문이다.
이라크 축구팀의 선전을 가지고 그 까닭을 이라크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전파했기 때문이라 선전하던 부시에게 '내가 만약 축구선수가 아니었다면 총을 들고 저항군이 되었을 것이다' 하고 한 방을 먹인 팔루자 출신의 선수 말처럼, 이라크 선수들은 매 경기마다 이맘 알리 사원을 지키는 저항군의 심정으로 운동장을 뛸 것이다. 축구 경기를 이긴다 하여, 지금껏 숨져간 만 오천 가까운 목숨과 그 목숨을 잃은 슬픔을 대신할 수 있겠냐만은, 조금이라도 용기가 되고 잠시라도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 수 있다면 계속해서 이라크가 이겼으면 좋겠다. 침략군대 보내는 걸 그대로 막지 못하고, 철군도 이루지 못하고 있는 못난 나라의 국민이, 부끄러운 마음으로 이렇게 마음으로나 응원을 한다. 힘내라, 이라크!
힘내라, 철군!
나자프에서 협상이 있을 거라고, 메흐디 민병대가 사원에서 나가기로 했다 하여 그게 잘하는 건지 어떤 건지 적어도 초유의 학살 사태만은 피하게 되었구나 싶었다. 하지만 오늘 본 알 자지라의 뉴스를 보니 사원 둘레에 있는 민병대의 부대에 폭격이 있었다. 탱크가 쏜 포탄은 사원의 담장 하나에 커다란 구멍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조마조마하다. 기름바다 앞에서 불덩어리를 들고 내리 꽂는 것만 같다. 과연 알라위 임시정부는, 미국을 비롯한 점령군들은 협상을 하고 싶은 뜻이 있기는 한 것일까? 초토화, 씨를 말려버리겠다는 작정을 한 건 아닐까? 죄를 짓는 자들은 언제나 마음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이라크 점령이 일 년 반 가까이 지나는 동안 미군들 가운데 반 이상이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까닭도 그것이다. 물론 예측할 수 없는 공습과 폭격, 무차별 난사의 두려움 앞에 숨을 졸여야 하는 건 이라크 민중들이지만, 적어도 이라크 민중들은 마음의 사슬 따위는 없다. 하지만 엄청난 무기의 화력을 지닌 점령군 병사들은 하루하루 시들어가고 있다. 언제, 어디에서 저항하는 시민의 총탄이 날아올지, 분노에 찬 시민이 몸에 폭탄을 두르고 자살 공격을 해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긴장하는 건 그네들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더욱 발악을 하고 있다. 씨를 말리려고 민간인이 사는 마을이라도 자기네에게 이상하다 낌새만 있으면 폭격을 퍼부어 댄다. 총알이 날아온 방향이라면 그곳에 아이가 있건 노인과 아낙네뿐이건 상관없이 총구에 불꽃을 튀게 한다. 벌써부터 그들은 미쳐있는 것이다. 아부그레이브 교도소의 포로학대, 민간인에 대한 학살, 어린아이에 대한 조준사격, 이 모두 정상인이라면 할 수 없는 짓들이다. 그네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고, 그래서 미쳤고, 미쳐가고 있다. 그 미친 짐승들은 살인 무기를 몸에 지닌 채 전투기라는 철갑 날개까지 갖추고서 발악을 하고 있다. 그 발악은 다 죽일 때까지, 다 죽여서 더 이상 저항할 자가 없을 때가 되어야 끝이 날 것이다. 저 미친 것들의 발악을, 다 죽일 때까지 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말인가? 그리고 곧 한국군 또한 그렇게 미쳐갈 것이다. 그리고 저항군과 맞닥뜨리게 되면 미쳐 발악을 할 것이다. 그 다음 차례는 죽이는 것이겠지, 아이나 노인이나 아낙네나 할 것 없이 눈앞에서 꿈틀거리는 거라면 뭐든지 다.
14일 서울에 올라갔을 때 집회에서 받은 <<부안독립신문>>. 신문 기사 가운데 미국의 정책연구소(IPS)가 냈다는 흥미로운 보고서가 소개되어 있었다. 미국이 국제사회의 약속을 어떻게, 얼마나 어기고 있는가에 대해서야 따로 말을 하지 않아도 다들 알 것이고, 대강 어림으로만 알고 있던 사실을 수치로 밝혀 준 대목이 있다. "2004년 7월말까지 931명의 미군을 포함 총 1055 명의 '동맹군' 병사가 사망하고 5976명이 부상당했다. 그리고 1만 1487명~1만 3458명의 이라크인과 50명~90명의 근로자들, 30명의 기자들이 이라크 전쟁에서 희생되었다" 그리고 "7월에 사망한 미군 수가 54명, 지난 6월의 42명에 비해 매월 눈에 띄게 늘어가고 있다며 이것은 미군의 폭격과 저항군의 격렬한 활동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전쟁이 가면 갈수록 저항군의 수와 자살폭탄의 횟수 또한 멈추지 않고 불어나고 있다며 말이다. 이 보고서의 결론 역시 더 이상의 희생을 막는 방법은 미군의 철수에 있을 뿐이라 했다.
오늘 농성장에서 울진21이라는 지역 신문의 기자와 인터뷰를 하던 도중, 기자가 파병철회, 철군을 주장하는 하는 까닭에 대해 몇 가지만 얘기해 달라고 물어보았다. 순간 막막해졌다. 그건 다른 막막함이 아니라 한꺼번에 수십 가지 까닭들이 한꺼번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무엇부터, 어디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내가 철군을 바라는 까닭은, 우리가 철군을 해야만 하는 까닭은 침략군이 되어 떠난 우리 청년들을 살리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그 보다 더 중요하게는 우리 청년들이 그곳 나라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죽는 것을 막기 위해서, 죽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리고 결국은 내가 입고, 먹고, 쓰고, 누리는 모든 것들이 이라크 침략 전쟁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라크인들을 죽여 빼앗은 살과 피가 어떤 식으로든 이 나라 기름 값에 책정이 되었을 테고, 나는 그 기름을 돌리는 공장에서 나오는 물건을 쓸 것이며, 버스를 탈 것이며, 물을 따뜻하게 데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알면서도 이라크 전쟁을 그저 남의 전쟁이라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손을 놓고 있다면 그건 이미 스스로가 침략자, 학살자가 되었다는 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꼴이다.
최소 하루 스무 명 이상을 죽이고 있는 학살을 막고, 최소한 내가 그 학살로 빼앗은 살과 피로 살지 않으려면 하루 빨리 이 전쟁을 끝내야 한다. 그리고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 이 땅에서 먼저 해 낼 것은 당연히 철군. 철군을 이루는 것이 미 점령군의 힘을 약하게 하는 것이다. 철군을 해 내는 것이 미 점령군을 고립시키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당연히 빠른 시일 내로 철군을 하게 하는 데에 두어야 할 것이며 그 싸움의 대상 또한 너무나도 당연하게 노무현 정권일 수밖에 없다. 잠시 잠깐 노무현의 이미지에 홀렸던 이들 가운데 지금 억압받고, 빼앗기고, 짓밟히고 있는 이들, 그리고 그이들과 처지를 함께 하려는 이들은 누구라도 안다. 이 정권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상상 이상의 잔인함을 가지고 있는지. 하지만 아직도 중간 계급, 계층의 많은 이들은 '그래도 노무현, 그래도 노무현'을 미련처럼 버리지 못하는 듯 하다. 이 정권의 억압과 짓밟힘에서는 살짝 빗겨서 살아도 되기 때문일까? 노무현 식 통치, 노무현 식 최면과 망각 아래에서라면 충분히 위협을 느끼지 않고 살아도 되기 때문일까? 노무현 정권은 당장 파병을 철회하고, 철군하라. 침략전쟁에 파병을 강행한 정권은 퇴진해야 한다.
군청 앞 농성
엊그제 내려와 두 밤을 잔 시치프스와 아멜리는 오후 버스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편에 청와대 앞 수사 님께 드리라고 엊그제 만든 걸개그림도 전했다. 먼 곳까지 내려온 동무들인데 잘 해주지도 못하고 보내는 것 같아 마음에 걸린다. 오후가 되어 햇살 님과 함께 울진 보건진료소에 갔다. 마침 보건진료소에 계시는 선생님 한 분이 울진에서 오랫동안 지역운동을 해온 분이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지율 스님은 55일째가 되어도 건강검진을 거부하고 계시다는데 오늘로 보름이 된 나는 검진을 받으러 갔다. 둘레 분들 걱정이 많다. 둘레 분들이 그렇게 걱정을 해주고, 마음을 써주는 것 무척 고마우면서도 그 마음이 애끓는 걱정이 아니라 철군 운동에 힘을 보태는 쪽으로 갔으면 더 좋을 텐데 싶었다. 그건 아마 나 뿐 아니라 단식을 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걱정하며 힘들어하는 마음, 또는 좋은 죽염이나 효소 물 한 통보다 더 힘이 나는 건 철군을 한 번 더 외치는 것이야말로 효소 몇 통 보내주는 것보다 더 힘이 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고행을 하고 계시는 지율 스님도 결국 스님 자신을 보아달라는 것이 아니라 쉰 닷새를 굶고 있는 스님의 몸을 통해 천성산의 도롱뇽을 비롯한 수많은 목숨들을 보아주기를 바라는 것일 테고, 김재복 수사님이나 나 또한 굶고 있는 우리를 통해 날마다 죽어가고 있는 이라크 땅의 죄 없는 사람들을 보아달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그 마음을 몰라서가 아니다. 걱정해주시는 마음들, 오늘 하루만 해도 꽤 많은 전화를 받았다. 그 만큼의 생명의 기운을 전해 받았다. 고마운 마음으로만 치면 정말 얼마나 고마운지.
(군청 앞 농성장, 8월 21일 찍은 사진)
혈압과 몸무게를 재고, 피과 오줌을 받고, 심전도까지 몇 가지 검사를 하고 난 뒤 전교조 울진 지회 사무실로 들어갔다. 농성장에 나갈 시간이 한 시간 쯤 남았는데 왜 그리 잠이 오는지, 두루마리 휴지를 베개 삼아 잠깐 눈을 붙였다. 조금 추운 것 같아 눈을 뜨니 한 시간 삼십 분이나 지나 있다. 부랴부랴 서둘러 농성장으로 나가니 피켓을 든 사람들이 많다. 오랜만에 농성장에 나온 미진이가 인사를 건넸고, 미진이 옆에는 못 보던 아이 하나가 더 있다. 아마 미진이 동무인가 보다. 둘 다 꽃을 닮았다. 오늘부터는 유인물을 다시 만들어 군민들께 드렸다. 일다 님이 부탁한 피켓을 하나 더 만들어 주셨다. 전쟁반대, 파병반대의 뜻 말고 정권 퇴진을 분명하게 요구하는 피켓이 없던 게 아쉬웠다. 오늘까지 군민 단식 릴레이에 함께 한 분들의 수는 시작한지 스물 하루만에 모두 일흔 일곱 명. 행곡에서 농사를 짓는 박영숙 님도 오랜만에 나오셨다. 반갑다. 농성을 마치고 책방에 모여 간단하게 정리회의를 했다. 그게 정리회의인지 종례인지 아무튼 앞으로는 날마다 농성을 마치고 삼십 분씩이라도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지기로 했다. 모임으로 일을 하는 틀이 조금씩 갖추어진다. 그 자리에서 나온 얘기는 과연 천막을 쳐서 상설 농성장을 만들 것인가 하는 얘기였다. 하지만 지역에서는 다들 그런 경험이 없으니 답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상설 농성장이 어떤 상징을 가질 것인가, 그것이 구심이 되어 운동을 배가 시켜갈 수 있을 것인가, 농성장 주변판을 만들어갈 힘이 되는가…… 따위에 대한 문제들. 어쨌든 얼굴을 마주하고 고민을 나누니 좀 더 짜내다 보면 순리대로 방법이 찾아질 거라는 믿음이 들었다. 일꾼 모임 회의는 원래 토요일로 잡았는데, 그것을 좀 당겨 모레 갖기로 했다. 단식이 벌써 보름을 넘겨 스무 날로 가고 있으니 느긋할 수만은 없겠다는 말씀들을 많이 하셨다.
하루 가운데 가장 좋은 시간은 파병철회 우산을 들고 농성장에 앉아 있을 때이다. 힘내라, 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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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파라과이 전을 보면서도 파라과이를 이기면 이라크하고 붙겠다고 생각하니, 참 뭐랄까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을 응원해야 하나? 이라크가 지기를 바라야 하나? 그래도 우리 나라인데, 아니 침략군을 보내놓고 그 사람들을 이기려고까지 해야 하나? 물론 져주는건 있을 수 없겠지만... 운동경기는
운동경기일 뿐이지만... 잔뜩 가진 사람들이, 잔뜩 빼앗은 사람들이 더 뺐으려고, 더 가지려고 하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파라과이전 응원하면서도 못내 이상한 감정이 들긴 했는데, 불행히, 다행히 이라크와의 경기는 없게 되었다. 쩝. 마음놓고 이제 이라크를 응원해야겠다. 이라크 힘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