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의 시선에서 본 노인과 바다 (토론을 중심으로)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민음사.
청소년(중3-고2)들이 <노인과 바다>를 읽고 토론을 바탕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전반적인 별점은 높은 편이었으나 단조로운 구성, 긴장감이 다소 떨어진다고 했다. 등장인물도 노인과 소년뿐이고 그나마 소년은 전개와 결말에 잠깐 등장한다. 스토리 내내 노인이 바다에서 혼잣말을 하는 플롯이 지루하다는 평가였다. 별점을 높이 준 이유는 헤밍웨이라는 작가와 책 제목에 대한 인지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권위에 대해 후하게 준 점수이다. 그럼에도 “왜 이 작품이 노벨문학상을 받았을까”로 시작하는 궁금증.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체 이외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유가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우선, <노인과 바다>에 등장하는 ‘노인’, 산티아고를 바라보는 청소년들의 시각에 대해서 들어본다. 노인은 한 평생 어부로 바다에서 살았다. 무슨 일을 한 평생 한다는 것에 대해 장인정신과 직업적 아이덴티티, 자긍심이 보였다는 노인. 바다에 대한 정보와 노하우도 확실히 알고 있는 산티아고. 청새치를 잡고 끝까지 지키는 불굴의 의지도 엿보이고 바다에서 소년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외로움도 엿보이고 인생의 무상함도 읽혔다고 한다. 노인에게 청새치는 곧 자신이다. 노인은 어부이자 고기를 잡아서 먹고 살아야 하는 순환구조를 갖고 있다. 그 고리가 끊긴다면 노인은 위기에 빠진다. 84일 동안 고기를 잡지 못한 노인에겐 운이 없었지만 소년의 보살핌이라는 인간애를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겠다고 언급했다. 청새치와 상어와의 사투, 상어와 노인과의 싸움을 보면서 노인은 상어의 급소를 정확히 알고 있는 걸로 봐서 내공이 엄청나다고 했다. 자신의 분야에서 오랫동안 정진하는 모습을 보면 멋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노인에게도 그런 면이 보였다.
두 번째, 노인에게 ‘청새치’의 존재의미. 목숨을 담보로 청새치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항구로 가지고 오는 노인을 보면서 청새치와의 관계를 파악해본다. 노인에게 청새치는 경제수단이다. 노인은 고기를 잡아 시장에 내다 팔아 생명을 유지한다. 고기는 곧 생계이자 자산이다. 또, 소년과의 약속이다. 소년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은 그가 끝까지 고기를 사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다. 청새치는 노인에게 희망의 표상이기도 하다. 사자 꿈을 꾸는 노인을 보면 마음은 열정으로 가득하다. 이번이 마지막 운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청새치를 포기할 수 없었다. 이런 요소들이 노인에게 청새치를 포기하기 어려웠던 이유가 되는데 자신에게도 청새치처럼 끝까지 지키고 싶은 게 있다면 무엇일지 생각해보면 기억, 생명, 가족, 친구, 자존감이 있지 않을까...
세 번째는 ‘파멸’과 ‘패배’의 모습이다. <노인과 바다>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 노인은 말했다. “사람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 지언정 패배하진 않아.”(p.108)라는 부분이다. 파멸은 ‘파괴하여 없어짐’, 패배는 ‘겨루어 짐, 싸움에서 짐’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다. 노인은 파멸을 선택했다. 인생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노인의 선택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하고 있다. 피 냄새를 맡고 상어 떼들이 계속해서 오는 상황. 손은 청새치를 잡고 있어 불편한 상황에 작살로 상어들의 급소를 찔러 죽여야 한다. 노인의 결정이 무모하거나 오만해보일 수 있다. 상어들은 청새치의 살점을 뜯어 먹었기 때문에 가져가도 상품가치가 없다. 자신을 지키려면 더 이상 상어의 공격을 막아야 한다. 청새치를 바다에 놓아버릴 수도 있는 상황. 그럼에도 노인은 패배보다 파멸을 선택한다. 끝까지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사수하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망망대해는 앞으로 펼쳐질 인생과 같다. 어떤 순간 위협이 자신을 도사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때마다 패배를 선택하거나 비겁하게 뒷걸음친다면 자신의 책무, 고기를 잡아야 하는 일을 해내긴 무리다. 노인의 신념이 보이는 부분인데 소년도 잘 알고 있다. 소년의 아버지에겐 보이지 않는 신념이 노인에겐 있다고 하는 둘의 대화가 증명한다.
“그런데 아버지한테는 그다지 신념이라는 게 없어요.”, “그래, 그건 그렇다. 하지만 우리한테는 신념이 있지. 안 그러냐?” 노인이 대꾸했다. “물론이죠. 제가 ‘테라스’에서 맥주 한 잔 사 드릴 테니 드시고 나서 어구를 나르도록 하죠.”소년이 말했다. “그렇게 하자꾸나. 우린 어부들이니까.”노인이 대답했다.(민음사 p.11)
소년은 묻고 노인은 대꾸하고, 소년은 말하고 노인은 대답한다. 서로의 관계. 마지막으로 노인과 소년의 관계를 살펴본다. 소년과 노인은 나이차를 극복하고 우정을 나누는 모습을 보인다. 나이차를 극복할 수 있었던 건 서로에 대한 신념, 믿음이었다. 노인은 소년을 다섯 살 때부터 바다로 데리고 나가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고, 소년은 노인의 말을 잘 따랐다. 누군가를 따른 다는 건 사랑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노인의 사랑을 소년도 느꼈기 때문에 노인의 배를 타며 노인을 챙기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노인은 홀로 조각배를 타고도 계속 소년을 그리워한다.
-그러다가 그는 소리내어 말했다. “그 애가 있으면 좋으련만, 날 도와주면서 이걸 구경할 수 있을 텐데,”(문학동네 p.49)
-그 애가 곁에 있다면 날 위해 손도 문질러주고 팔뚝을 위해서 아래로 주물러서 쥐를 풀어줄 텐데, 노인은 생각했다. 하지만 곧 풀릴 거야. (문학동네 p.64).
-바람이 너무 거세게 불어서 큰 유자망 어선들조차 바다로 나가지 않을 상황이었으므로 소년은 늦게까지 잠을 자고는 매일 아침 하던 대로 노인의 오두막을 찾아온 것이다. 소년은 노인이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했다. 그런 노인의 두 손을 보고 울기 시작했다. 소년은 아주 조용히 오두막을 나와 커피를 가지러 갔다. 길을 따라 내려가는 내내 소년은 울었다. (문학동네 p.128).
뼈만 앙상한 고기를 매달고 어부가 돌아왔을 때 소년은 우는 모습을 보인다. 눈물은 노인을 생각하는 마음의 표현이자 노인을 기다리며 걱정했을 불안과 안도의 기쁨이 드러나는 상징이다. 세대차, 나이차를 극복하고 우정을 나누는 감성, 공감능력의 뛰어남이 소년을 두드러지게 만든다. 짧은 등장에도 불구하고 소년의 행동은 독자를 사로잡는다. 더욱이 유교적이고 존칭어가 뚜렷한 언어를 가진 한국사회에서 이런 모습은 드문 경우다. 친구는 동시대를 같이 살며 통하는 문화가 있어야하고 나이차가 존재하지 않을 때만 생기는 것은 아님을 소설은 보여준다. 이런 소년의 행동이 비현실적일 수도 있겠지만 멋있다는 의견도 있다. 노인을 위로해 주는 사람은 소년 마놀린뿐이었다. 노인에게 음식과 옷, 비누를 가져다주고 낚시 도구와 미끼를 챙기는 이 둘의 관계를 보면서 인간관계를 재정의 해보는 계기도 된다.
<노인과 바다>는 청소년 필독서로 다소 지루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노인을 통해 한 평생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간다는 것, 어부로 생활하는 고뇌, 소년과 나누는 우정, 파멸과 패배, 바다를 대하는 노인의 신념, 상어와의 사투, 순환되는 삶의 구조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토론할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왜 노벨문학상을 받았는지 알겠다는 토론 소감은 이를 증명해준다. 추상적이지 않고 과장된 문체없어 쉽게 읽을 수 있는 <노인과 바다>를 청소년들에게 추천한다.
별점 4.0 3.0 3.5 4.0 4.0
서평-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