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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어떤 경우에는 여전히 유효하다. 경제적 실패, 심적 고난등으로 인한 좌절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때라면 옛말 그른 것 없다는 식으로 믿어볼만한 속담이다. 하지만 현대의학의 발전은 개똥밭보다 더 비참한 상태에서도 생명을 부지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말하자면 이렇다. 응급 상황이 발생했다. 환자는 심폐소생술(CPR)에 의해 살아났지만 이미 상태가 비가역적으로 악화되고 있기 때문에 죽음은 예정되어 있다. 몸에 난 구멍이란 구멍에는 죄다 호스가 꽂히고 군데군데 한 뼘짜리 바늘에 찔려 생명유지장치에 의지해서 여생을 보내다가 죽는다. 남은 이들에게 정신적 충격과 물리적 손실을 남긴 채.
이런 경우 '그러니깐 당신도 살아' 따위의 성공담을 들이밀기란 퍽 같잖은 일이다. 기계와 약물에 의지해 내일, 모래 하고 있는 이들에게 생명의 위엄은 지워진 지 오래이며, 죽음이 예정된 상태에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인내해간다는 것은 학살과 광기의 시대에 빈번했던 고문의 매커니즘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비가역적인 - 좀더 입말에 찰싹 달라붙게 표현하자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서 '그럴 바에야 죽는 길'을 택하는 것은 절망적인 자포자기가 아닌 내가 나인 채로 죽겠다는 자유의지의 표현이 아닐까? 이러한 의지가 공식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비교적 명확히 표명될 때 의무기록지나 경과보고서에는 no-CPR, 좀더 간략히 DNR이라고 적히게 된다.
Do Not Resucitate
(소생술 사용금지)
행위 자체에 내재된 극적인 요소 때문에 『ER』시즌 2에 처음 등장한 이래, DNR은 의학 드라마에서 단골 메뉴로 나오게 된다. 1990년 환자 자결권 법안이 통과되면서 미연방내 모든 입원 환자들은 유사시 자신의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거나 포기하는 각서에 서명하는 것이 의무화가 되었다. 까닭에 미국인들에게 환자 자결권이라는 것은 낯선 개념이 아니다. 이 때문에 최근의 의학 드라마인 『Grey's Anatomy』나 『House M.D.』에서는 법적인 문제가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충동적으로, 혹은 소신껏 환자들에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의사들이 더 인간적으로 그려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가 역사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미국에서도 DNR을 포함한 환자자결권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30년도 채 되지 않았다.
의료윤리학자인 제이 카츠가 쓴 『The Silent World Of Doctor and Patient』의 한 케이스는 환자자결권이 논의되기 시작할 무렵의 미국 의학계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만 21세의 여성인 이피게니아 존스의 좌측 유방에서 악성종양이 발견됐다. 이때 가능한 치료법은 1) 유방절제술과 2) 국소치료술이 있다. 1)번 수술법을 택할 경우 생존률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높아지지만 평생 아마조네스로 살아야 한다. 2)번 수술법에 따르면 유방은 보존할 수 있으나 생활에 여러가지 제약을 받게 되고 재발 가능성도 100%에 가깝다. 재발 이후 1)번 수술을 한다고 해도 통계적 생존률에는 변화가 없지만 수술 자체는 더욱 어려워진다. 담당의는 당시의 관행대로 '의학적으로 더 안전한' 1번 수술법을 시행하기로 결정하고 수술 날짜를 잡았다. 이것은 얼마전까지의 우리네 종합병원 실상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회진 도중 레지던트가 치프에게 황급히 무엇을 보고하면 여러 의사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약어와 용어로 자기들끼리 대화하고 심각한 표정을 짓다가 '수술 스케쥴 잡게' 하며 치프가 나가버리면 환자들은 사색이 되어서 아무 것도 모르는 PK(폴리클 : 본과 3학년 병원 견습생)의 하얀 가운을 잡고 도대체 무엇이냐고 울부짖는다.
그런데. 이피게니아 존스에 대한 유방절제술이 시행되기 얼마 전. 담당의는 한가지 회의에 빠지게 된다. 이제 갓 소녀티를 벗고 청춘이 꽃피기 시작한 여성의 유방을 의사가 임의로 도려내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계속해서 고민하던 그는 수술을 만 하루 남겨두고 병실로 찾아가 그녀에게 가능한 치료법과 예후를 설명하고 최종 선택권을 환자 자신에게 맡겼다. 이피게니아 존스는 안전한 삶을 포기하는 대신 꽃다운 삶을 선택했다. 의사 사회는 들끓었다. 특히 그 어느 나라의 의사들보다 자존심이 높은 미국의 외과의사들은 이러한 처사를 좌시할 리 없었고, 비난과 논쟁이 여기저기서 일어났으며 이피게니아 존스가 참석한 TV 토론회까지 열리게 된다.
미국의 경우 학부 4년, 대학원 4년을 마치고 USMLE 스텝 2 까지 통과해야 라이센스가 나오는데 우리나라의 라이센스와는 달라서 개인 개업은 할 수 없는 훈련 라이센스일 뿐이다. 여기서 수련의가 되어 외과전문의가 되기 위해서는 인턴 1년 레지던트 8년이라는 살인적인 시간이 소요되는데 이것도 우리나라처럼 붙어만 있으면 무사히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매년 평가시험을 쳐서 낙오되면 좀 더 급이 낮은 병원으로 옮기던가, 유급을 해야한다. 학부, 대학원, 수련의 과정 모두를 유급없이 무사히 마치더라도 군복무가 포함된 우리나라보다 더 긴 17년을 공부하는 셈이다. 이런 그들도 심사숙고해야 하는 의료결정을 단 몇 분 정도의 브리핑을 받은 환자가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은 자존심 문제 이전에 아예 상상을 할 수 없었던 일인 것이다.
하지만 유사한 결과에 이르는 다양한 치료법이 존재할 때,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몇가지 경우를 제외하게 되면 나머지 치료법은 기술적인 선상에서 이야기할 것이 못된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 '어떤 치료법을 택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는 기술적인 어려움 때문에 제기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가치관에 의해 제기되는 까닭이다. 위험하고 불편하더라도 제 몸을 간직할 것인가, 아니면 유방을 절제하고 좀더 안전한 삶을 살 것인가? 이런 문제는 미국의 외과의사가 아무리 똑똑하고 잘났다고 해도 임의로 결정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떨까? 사실 우리 의학에서는 환자자결권은커녕 의료인문사회학에 대한 커리큘럼조차 제대로 마련된 것이 거의 없다. 학부과정에서 가르쳐주는 것은 의료법학, 의료윤리학, 의사학 정도가 전부다. 서울 지역 두 개 대학병원의 의사 100여명을 대상으로 한 통계 조사에 따르면 DNR의 경우 다문 한 시간이라도 체계적으로 수업을 받은 케이스는 16%에 불과했고, 그 중 3분의 1만이 의사 면허를 따기 전에 배웠으며 심한 경우 수련의 과정을 밟으면서 DNR이라는 것을 접하는 동시에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의무기록지에 마커로 DNR을 적시하지만 우리의 경우 의무적인 상황임에도, 정서적 문제, 법적 문제 때문에 의무기록지 대신 order sheet이나 progress note 같은 비공식 서류에 쓰는 경향이 강하다. 때문에 DNR을 신청했음에도 엉뚱하게 심폐소생술이 시행되는 경우가 많다.
DNR의 교육이나 절차가 삐걱거리는 것은 DNR 이전에, 심폐소생이나 응급의학에 대한 관심이나 정책적 배려가 일천한 까닭이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우리 문화가 가진 독특함도 상당부분 영향을 끼치고 있다. 가령 DNR이 번복되는 경우 중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죽어야 하기 때문'에 DNR을 무시하고 심폐소생을 했다는 케이스가 상당한 비율을 차지했는데 이런 이유는 같은 동아시아 국가인 일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이것은 오랜 농경문화의 영향으로 객사를 터부시 해온 까닭이며, 나아가 강한 가족주의 내에서 죽음에 이른 사람을 대하는 독특한 정서가 형성되어있는 까닭이다. 이런 상태에서 무작정 서구식, 미국식 DNR을 흡수하는 것을 올바르다고 할 수는 없다.
이 독특한 정서를 잘 보여주는 영화가 있다. 전통가족주의의 전범에 대해서 소상히 관찰하여 이야기하는 임권택의 『축제』는 우리의 가족주의가 가지고 있는 (중)환자에 대한 인식이 비교적 자세히 나타난다. 임종을 맞은 할머니에 대해 딸에게 설명을 해주는 소설가 아버지는, 할머니가 늙고 병들어 갈수록 쪼그라들고 어린애가 되어가며 딸은 할머니가 나이를 잃어가는만큼 나이를 먹어간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여전히 유효한 사고 방식으로 만일 가족 안에서 사람이 병들거나 늙게 되면 거의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무의식 중에 그가 유아적으로 퇴행한다고 간주하여 환자의 모든 것을 대신하려 든다.
죽음에 대한 인식의 문제는 문화적으로 접근할 여지를 남겨둔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는 자유주의의 기본적인 입장을 재고해본다면, 우리의 자결권이 가지고 있는 실상은 너무 초라하다. 어쩌면 '자결권'이라고 해봐여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에 영향을 받아 3.1 운동이 촉발되었다' 정도가 정규교육과정에서 배우는 자결권의 전부인 우리에게는 환자 자결권이라는 것이 익숙하지도 않을 뿐더러 부담스럽기까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또한, 가족주의 전통이 뿌리 깊은 이 땅에서 환자가 개인의 신념에 딸라 자신의 명운을 결정 짖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환자 자결권의 백미인 DNR의 경우 비교적 선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 유수의 병원에서조차 온전히 환자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서 시행된 경우는 1% 미만에 지나지 않는다. 과반수 이상이 의료인 단독, 혹은 의료인과 가족의 합의에 의해 DNR이 시행되었다는 사실은 사뭇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민주화라는 명목으로 긴 세월 동안 투쟁을 해왔고, 의회적으로는 그것을 쟁취하였지만 우리 생활 속속들이 민주화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은 환자자결권에 심각한 인식의 부재에서도 명징하게 드러난다. 죽음에 대한 토착 정서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우리가 결정지을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해야한 한다.
하지만 우리의 민주주의 풍토에서는 이러한 환자자결권에 대한 강조가 또다른 넌센스를 낳을 소지도 안고 있다. 환자자결권은 미국식 자유주의의 흐름에서 나온 것이지만 미국이 그토록 집착하고 자랑하는 총기소지권처럼 역사적 정통성을 가지고 있거나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의 법접할 수 없는 상징인 것은 아니다. 환자자결권은 환자들이 원하는 바를 실천하는 하나의 길이며 권리일 뿐이지 환자자결권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환자들이 원하는 바가 우선이지 자기결정에 대한 부담을 전적으로 환자에게 지우겠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뜻이다. 가령, 자결권의 극단적 형태로, 네이버 지식검색을 통해 자신의 병을 진단하고, 처방하는 것은 어떤 환자도 원하지 않는다. 권리 추구만이 절대선이라고 호도하는 작금의 시민단체들이 생산하는 극단적으로 단순화된 담론들이 환자자결권에도 적용되는 것은 환자-의사 쌍방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실상 병원을 찾는 이들이 원하는 것은 '친절'이다. 친절이란 무엇인가? 아침 나절 온동네 직원들이 정문에 사열하여 '고객을 최고로 모시겠습니다'라고 외치며 90도로 인사하는 것이 친절인가? 아니다. 환자들은 단지 자신의 몸이 어떠한 상태인가를 알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은 것이다. 나아가, 의사들이 자신과 이야기하고 있음을 느끼며, 고쳐야할 기계로 취급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정받길 원하는 것이다. 됨됨이에 대한 커리큘럼이라고는 눈씻고 찾아봐야 겨우 있는 의과대학 교육과정에서 '족보로 발라줘야'하는 것이 고작 작년 시험문제나 선배 의사들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 따위 만은 아니다. 부디. 나의 동지들이 조금이라도 더 일찍 '친절이란 무엇인가'를 깨닫기를 바란다.
“침술, 메디칼 안된다”
- 미국 한의사(=침구사)는 더욱 기반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을 듯!
가주 예산삭감 정책에 밀려
*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침치료를 보험지급에서 제외한다고 한 조치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본래 캘리포니아 주에서 한의사로 자칭하는 침구사란 면허증은, 의료보조인의 지위이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침구사 면허증은 민간자격증인 NCCAOM 보다는 훨씬 권위가 높은 주정부 면허증 이다. 때문에 의사에게만 지급하는 의료보험을, 침치료를 전담하는 침구사(의료보조인)에게는 지급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법규정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아졌다.
아직도 한국에서 미국 침구사 캘리포니아 면허증을 한의사로 잘못 인식하여, 정식 의사로 분류될 것이라는 혼돈을 하고 침구사 면허 시험을 준비하는 분들이 가끔 보이고 있다. 미국으로 건너가 낭패당하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미국 동양의학 제도의 실상을 계도하는 조치가 절실하다.
또한 미국, 캐나다에서는 역시 자연의학 NMD 의사가 대체의학의 대표적인 의료인 직업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보다 많은 한국 개업 한의사가 아메리카에서 의료인으로 대접받는 기반을 확보할 수 있도록 홍보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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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아놀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서명한 2009~2010년 예산안에 정부보조 의료보험 메디칼(Medi-Cal)에서 침 치료 혜택을 제외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밝혀졌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400억달러가 넘는 재정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전 부서에 걸쳐 총 150억달러에 이르는 긴축재정과 예산삭감 정책을 발표했고, 침 치료를 메디칼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침 치료의 메디칼 폐지는 오는 7월1일부터 실시되며 침 치료 외에도 카이로프랙틱 치료와 심리상담, 검안, 치과 치료 등도 메디칼 대상에서 제외됐다.
가주한의사협회(회장 김갑봉)는 “침 치료는 지난 80년대부터 메디칼 대상으로 포함돼 저렴한 진료비와 우수한 치료효과로 환자와 보험사 모두에게 이득을 주었다”며 “어렵게 명맥을 유지해 오던 메디칼 침 치료 커버리지가 중단됨에 따라 한의사들은 물론 환자들도 피해를 입게 됐다”고 밝혔다.
메디칼은 침 치료를 선택 수혜사항으로 분류해 환자 1인당 최고 30달러까지 진료비 수가를 지급해 왔다. 가주한의사협회 남형각 사무국장은 “주정부가 메디칼 침 치료에 대해 지급하는 진료비가 1회에 5.75달러에 불과하다”며 “메디칼 침치료 폐지는 경제적인 문제보다는 정부 의료보험인 메디칼이 침 치료를 제외하면서 일반 의료보험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 더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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