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7월 17일 월요일 맑음
‘흐음, 삼계탕이라. 옛날 실력이 나올지 모르겠군’
벌써 17년이 흘렀다. 양지초등학교에서 육상부를 지도할 때다.
점심시간에 우연히 6학년 교실에 올라가게 되었다.
마침 교실 복도에서 배식을 하는데 자율 배식이었다. 그 때는 급식실이 없어서 밥, 국, 반찬을 교실로 날라 복도에서 배식을 하였다. 무심결에 지나치는데 육상부 성은지가 식판을 들고 밥을 푸고 있는 모습을 우연히 쳐다보게 되었다.
은지가 밥을 두 숟가락 정도 식판에 담더니 김치를 작은 조각 두 개를 살래살래 흔들더니 탁탁 털어 식판에 담는다. 아마도 고춧가루를 떼어내는 모양이다.
다른 반찬은 쳐다보지도 않고 교실로 들어가네. 살찐다고 하는 모양이지.
‘어라, 조걸 먹고 운동을 한단 말인가 ?’ 충격이었다.
그 순간, 옛날 신례원국민학교 일이 떠 올랐다.
봄 소풍을 갔는데 한 개구쟁이가 자유 시간에 미꾸라지 한 마리를 잡아왔다.
“야, 이렇게 크고 굵은 미꾸라지는 처음 봤다. 뱀장어 만하네. 교실 어항에 키우자” 어항에 넣고 가금씩 먹이를 주었더니 잘 지냈다.
그러다가 여름방학이 되었고, 개학날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항에서 작은 미꾸라지 한 마리가 헤엄치고 있었다. ‘어, 웬 미꾸라지가 ?’
방학 전에는 커다란 미꾸라지가 있긴 있었는데, 그 놈은 어디 가고 어디서 새끼 미꾸라지가 나왔나 ? 생각하다 깜짝 놀랐다. ‘그럼 그 커다란 놈이 이렇게 ....’ 충격이었다. 여름방학 내내 먹을 것이 없는 어항에서 혼자 보낸 미꾸리는 제 살을 축내면서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을 쳤다는 얘긴데, 키까지 바짝 줄어든 모습은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놀라웠다.
그 후 운동선수를 가르칠 때마다 잊지 않았고, 하나라도 더 먹이려고 애를 썼었다. 시골에서는 학교에서 우유 하나를 주지 않아 개구리를 잡아 뒷다리를 구어 먹였고, 숙직비 사흘 치 900원을 손에 쥐면 돼지뼈 한 마리분을 사서 가마솥에 넣고 고아서 국물을 먹였었다. 정 먹일 게 없을 때는 우리 집 개를 잡아서 먹인 적도 있고....
대전에 와서는 학교에서도 가끔씩 고기도 먹여주었고, 대부분 넉넉한 가정의 아이들이라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편안했었는데 이 건 아니었다.
‘은지가 조만큼을 먹고 오후에 땀흘리며 운동을 하면 섭취한 영양분보다 과도한 에너지를 소비해 결국은 제 살을 깎는 게 되겠다.’는 생각 치밀어 올랐다. ‘다른 아이들도 대부분 그렇다면 운동을 하는 게 제 건강에 해가 될 것이 아닌가 ?’ 운동이 먼저가 아니라 먹는 훈련을 시키는 게 더 급하다.
학교에 말씀을 드리고 급식실에 부탁을 해서 육상부 선수들의 밥과 반찬은 따로 달라고 부탁을 해서 내가 밥을 많이씩 퍼주고 내 앞에서 함께 먹었다.
처음에는 밥 많이 먹기가 생고생처럼 고역이었지만 점차 나아져 갔다.
육상선수들은 오후 훈련이 끝나면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다시 학교로 와서 7시부터 10시까지 보충수업을 시켰다.
그런데 운동이 끝나면 얼른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와야 할 아이들이 아이스크림 하나 먹고, 운동장에서 놀다가 교실로 들어오곤 했다. ‘응, 이놈들이 밥 먹기가 싫으니까 아예 굶는구나. 이 걸 또 어떡한다 ?’
충분한 영양섭취 없이 운동을 하면 역효과가 난다는 것은 확실하니까....
‘그래 내가 저녁밥을 해서 먹이는 방법밖에 없다’
학교의 허락을 얻고, 학부모님들 동원해서 육상부실을 주방과 식당으로 꾸몄고, 밥을 해서 먹인 게 3년 동안이었다.
매일 법동 시장에 나가봐도 그게 그거고 언제나 반찬이 고민거리였다.
그래서 육상부 학부모님들로부터 요리를 배워나갔다. 계란 하나 가지고도 여러 가지 만들었고, 불고기에 소머리 국밥, 아구찜에 고등어조림 등 까지 영역을 넓혀 나갔지. 그 때에 아이들은 엄청 잘 먹었고, 전국대회에서 제일 많은 메달을 땄었다.
그 중에 삼계탕은 제일로 맛이 좋다는 평을 들었고, 그 실력을 가족들에게 발휘했더니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이 나는가 보다.
‘우리 아들이 먹고 싶다는 데.... 그런데 옛날 실력이 나올까 ?’
홈프러스에 가서 삼계탕 닭과 황기 등 재료를 샀다. 요즈음은 점점 더 편리해져 봉투 하나에 찹쌀까지 골고루 다 들어있어 신경 쓸 것이 별로 없었다. 4명이 한 번 먹고 아들 둘이 한 번 더 먹을 분량으로 여섯 마리 분을 샀지.
값이 4만원, 식당에서 먹을 때의 절만 수준이었다. 그것도 좋은 일이고....
우리 마누라는 닭고기를 싫어해서 자기 것은 빼라고 하더라. 그럴 수 있나 ?
집에 와서 손질을 하고 뱃속에 찹쌀을 넣고 밤, 은행 등 집에 있는 재료를 충분히 넣었다. 국물 맛이 제대로 나야 닭도 맛이 있는 법이다. 음식의 맛을 내려면 양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깐 마늘이 없어 서운했다.
드디어 저녁 시간, 학교에 있는 충희를 빼고 셋이서 둘러앉아 닭 한 마리씩을 차고 앉았다.
‘어떤 반응이 나올려나 ?’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원래 고기를 좋아하는 충정이는 고개를 끄떡이며 잘 먹고 있고, 안사람은 궁금했다. “음 맛있어. 맛있어” 인사치례가 아니라 정말 잘 먹으면서 나오는 소리다. ‘흐흠, 좋구나. 안사람이 닭고기가 맛있다는 소리를 처음 해 보는구나’
나도 앞으로는 안사람이 한 요리를 먹으면서 맛있다는 소리를 많이 해야겠다.
내 입에서도 맛있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오늘 요리 성공. 나는 한 마리를 다 해치웠고, 안사람과 충정이도 거의 다 먹었다 “나 내일 학교에 가서 삼계탕 맛있게 먹었다고 자랑해야지”
안사람이 신이 났다. 또 해달라는 얘길 테지. 뭐 또 하면 되지.
충희는 10시에 와서 저녁은 학교에서 먹었으니 반마리만 달란다.
참 잘 먹는다. “아빠, 주말마다 해 주세요”
“그럼, 엄마와 너희들이 좋아한다면 얼마든지 해 주지”
이러다가 나중에 삼계탕 식당을 내는 거 아냐 ?
첫댓글 초임지 양지초에서 교장선생님과 함께 했던 육상부~~~ 기억이 생생하네요^^ 저도 4년 애들 밥 해 먹이고 공부시키고...지금의 공운방의 시초죠~~ 그때가 그립네요
건강 잘 챙기세요 교장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