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가 일주일째 이어지는 冬至로 가는길목 낼이 동지 날!
애동지네
낼 동지날이 음력 동짓달초열흘
동짓날이 초열흘안에 있으면 애동지
스무날
즉 중순 안에 있으면 중동지
스무하루 이후(하순)에 속하는 동지절기면 노동지라 일컫는다고
그 유래와 역사 익히기
동지팥죽 ,
동지팥죽을 먹는 유래에 관한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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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줄거리
.변이
.분석
.특징
.출처
.참고문헌
•역사
24절기의 하나인 동지는 밤이 가장 긴 날로 예부터 세시명절로 여겨왔다. 조선시대에는 동지를 작은 설, 곧 아세(亞歲)라고 했다. 이는 중국의 고대 역법에서 동지를 세수(歲首)로 하던 것의 유습으로 보기도 한다. 동지팥죽을 먹으면 나이 한 살을 먹는다고 하는 것은 설날의 떡국을 먹으면 나이 한 살을 먹는 것과 유사한 의미로, 곧 설의 잔재이다.
우리나라에서 팥죽을 먹었다는 기록은 고려시대부터 등장한다. 『익재집(益齋集)』에 동짓날은 흩어졌던 가족이 모여 적소두(赤小豆)로 쑨 두죽(豆粥)을 끓이고 채색 옷을 입고 부모님께 장수를 기원하며 술을 올리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여겼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웃어른을 공경하는 경로사상과 관련이 있지만 동짓날 팥죽을 먹는 유래에 대한 기록은 없다. 다만 중국 세시기 가운데 가장 오래된 종름(宗懍)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기록을 인용할 따름이다.
•줄거리
『형초세시기』에 기록된 동지팥죽의 유래담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그대로 인용되어 있는데 내용은 지극히 짧다. 옛날 공공 씨(共工氏, 요순시대에 형벌을 맡았던 관명에서 비롯한 성씨)에게 바보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 역질 귀신이 되었는데 생전에 팥을 두려워했으므로 동짓날 팥죽을 쑤어 물리쳤다. 이 유래담을 통해 팥이 예전부터 악귀를 예방하는 의미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변이
우리나라에서는 이야기가 다소 확장되어 팥죽과 아이를 관련시킨 이야기가 전해온다. 동지는 드는 시기에 따라 별칭이 있다. 동지가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하순에 들면 노동지라 하는데 중동지와 노동지에는 팥죽을 쑤지만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는다. 그 까닭은 아이에게 좋지 않기 때문이며, 이는 결국 동지팥죽 유래와 관련이 있다. 즉 동지팥죽은 역질이 된 아이 귀신을 쫓기 위한 것인데, 이러한 축귀행위가 자칫 집안의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처 탈이 날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팥죽 유래담은 동지팥죽이 벽사의 기능을 한다는 신앙성을 말하고자 부연(敷衍)된 이야기이다.
•분석
동짓날에는 팥죽을 쑤어 먼저 사당에 올려 동지차례를 지낸 다음 집안을 수호해 주는 주요 가신(家神)에게 올린 후 가족이 먹는다. 그리고 차례상에 올리기 전, 팥죽이 부글부글 끓을 때 국물을 떠서 대문이나 담, 집 앞의 고목 등에 뿌리는데 붉은 팥이 벽사(辟邪)와 축귀(逐鬼)의 역할을 한다고 믿어 예방하였다.
•특징
팥죽은 다른 때에도 먹을 수 있지만 동짓날 먹는 팥죽은 명절식으로 각별한 의미가 있다. 민속에서 붉은 색은 벽사의 기능이 있다고 여기는데, 동짓날 팥죽은 그 기능의 강도가 한층 더해진다. 또한 팥죽 한 그릇을 먹으면 나이 한 살 먹는다는 통과의례 음식의 의미도 있다.
•출처
高麗史, 東國歲時記, 荊楚歲時記.
참고문헌
♥그래서 동지절 맞은 내일위하여 미리 영하15도의 예보에도 시장에 나서다 어판에 있는 꽁꽁얼어붙은 쭉꾸미12수 일만원과 돈사태 한근 좀 안되는 5,600원량분을 구입했다
입맛 당기다
쭈꾸미 몇차례 휑구어서 냄비속 돈사태위에 펴놓고 가스불 당기다
약간의 물과 카렐라유 또 라면스프로 약간 간을 들이다
냄새 억제키위하여 헛개이파리 좀 넣었다
향이
코끝에 맴돈다
주방 앞에서서 익어간는 대로 건져내며
소불고기소스를 찍어먹다
참맛나네
점심은 쭉꾸미사태볶음으로 메우다
아침에 아들 온다고 하였는데 강추위니 오지말라고 한것이
좀 억박자 미안하군
맛있는 사태고기쭉꾸미 요리 할 줄 난 미처몰랐다
급 요리메뉴
팥죽과 낙지 사다 먹으려했던 동짓날 계획이 앞당겨진 오늘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