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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군 여행] 육육봉의 절경 청량산 청량사.........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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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청량산 청량사(淸凉山 淸凉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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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민생고를 해결하고 곧장 식당을 나온다. 청량사를 가기 위해서다, 깊은 산골 외지’ 하면 떠오르는 경
상북도 봉화골. 봉화는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이어지는 외진 산골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교통이 불편
할 뿐 아니라 겨울 날씨가 매우 추운 곳 중 한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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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천연 요새와 같은 지형 덕분에 원시상태의 자연림과 수많은 동·식물이 잘 보존되고 있으며. 이곳에 백두
대간수목원이 자리 잡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 덕분에 봉화는 우리나라 오지 속에 속한 청정 고을로 사람이 살
고 싶은곳 중 한곳으로 유랑자 친구도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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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은 선비같다. 아름다운 봉우리가 줄을 이어 늘어섰는데, 그 모양새가 군더더기가 없으며 기품있고 청아하다. 청량사는
‘선비의 산’청량산 품에 폭 안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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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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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가 어느정도 오지인가를 알게 해주는 재미있는 설화 하나를 소개해 본다. 그 옛날 봉화에 사는 한 농부가
자기 논 숫자를 세봤다고 한다. 분명 100뙈기였던 논이 아흔아홉 뙈기밖에 없었다. 몇 번을 세다가 단념하곤 옆
에 둔 삿갓을 집어드니 모자라는 한 뙈기가 거기에 있더라는 이야기다. 그만큼 평평한 땅이 드물고 가파른 곳
이라는 말이다. 봉화는 그렇게 오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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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지역 교통망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경상북도, 남부지역은 교통이 발달한 반면, 북부 지역에 위치한 봉화는
영양, 청송 등과 함께 교통 낙후 지역이다. 또한 ‘경상도의 철원’이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대구 경북 지역 중에
가장 추운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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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오지속의 이름 만큼이나 봉화는 춘양목(금강소나무), 잘 자라고 있어 봉화 송이버섯, 이 유명하며, 영화
<워낭소리> 촬영지로 잘 알려진 곳이자 춘향전 주인공 이몽룡의 모델이 된 성의성의 생가인 계서당이 이곳기
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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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오늘도 발길 따라 바람 따라 흐른다. 청량사로 가는 길목에서 낙동강 상류 발원지를 따라 굽이굽이
흘러가는 낙동강 강물을 따르다 보면 어느새 오늘 유랑자가 가야할 작고 골 깊은 청량산에 접어든다. 경북 봉
화군 명호면에 위치한 청량산은 해발 870m로 높지 않은 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북의 작은 소금강이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절경들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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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이란 이름은 가진 찻집 안심당(安心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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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 절집에서 차 한 잔은 어떨까. 바람이 그리울 때, 소리가 그리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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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어 솟은 바위 봉우리와 깎아지른 듯 기암괴석과 깊은 절벽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산세가 수려하기로 유
명하다. 이런 까닭에 한국 100대 명산에도 선정되는 등 유명세를 타고 있으며 1982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이다. 알다시피 청량산엔 12봉과 12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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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봉 으로는 장인봉, 외장인봉, 선학봉, 자란봉, 자소봉, 탁필봉, 연적봉, 연화봉, 향로봉, 경일봉, 금탑봉, 축륙봉,
등 12봉우리가 산세를 기획(企劃) 감독하고, 어풍대, 밀성대, 풍형대, 학소대, 금가대, 원효대, 반야대, 만월대, 자
비대, 청풍대, 송풍대, 의상대 등 12개의 대(臺)가 연출(演出)하여 청량산의 아름다움을 표출(表出)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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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 오면 떠내려가는 비탈에는 스님과 불자들은 불심으로 피눈물나를 고난의 행군이 있었다. 눈만뜨면 잔디를 깔았고, 침목
으로 계단을 만들고 돌을 쌓았다. 어엿한 범종각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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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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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맞은편 축용봉(해발845m)에서 바라다보면 치마를 펼쳐놓은 듯하고 청량사가 자리한 터는 풍수지리학적
으로 볼 때 길지 중의 길지로 꼽힌다는 풍수전문가들의 평이다. 육육봉(12 봉우리)이 연꽃잎처럼 청량사를 둘
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흡사 연꽃의 수술 자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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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풍수’란 ‘바람을 막고 물을 얻는다.는 뜻인 장풍 득수(藏風 得水)를 줄인 말로, 생명을 불어 넣는 지기(地
氣:땅 기운)를 살피는 것이다. 자연에서 태어난 사람은 바람과 물로 생명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풍수라는 한
자어의 뜻을 풀이하면 자연(풍수)이 땅(지)의 모든 기운을 다스림(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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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는 바람과 물을 생활 속으로 끌어들여 그것을 지리적인 조건에 맞춰 해석하는데, 산세(山勢), 지세(地勢),
수세(水勢) 즉 산의 모양과 기, 땅의 모양과 기, 물의 흐름과 기 등을 판단하여 이것을 인간의 길흉화복에 연결
시켜 이에 의해서 생활하는 인간의 본질을 나타내는 것이 풍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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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일까 중,님들이 이런 한 풍수에 밝다보니 우리나라 명당자리엔 대부분 절집들이 자릴잡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렇듯 풍수에 얽힌 청량산 또한 마찬가지이다. 동양철학으로 볼 때 높은 산 깊은 골엔 항상 설화(說
話)들이 깃들어 있기 마련이다. 이곳 청량산에도 외에는 아니다. 청량산에는 8개의 굴과 4개의 약수가 있으며
옛 선인들의 발자취가 서린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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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류정(원효정),원효대사가 우물을파 즐겨 마셨다는 곳이다 (범종루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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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루주련
願此鐘聲遍法界(원차종성편법계) 원컨대 이 종소리 법계에 두루 퍼져
鐵圍幽暗悉皆明(철위유암실개명) 철위산의 깊고 어두운 무간지옥 다 밝아지며
三途離苦破刀山(삼도이고파도산) 지옥, 아귀, 축생의 고통과 도산의 고통을 모두 여의고
一切衆生成正覺(일체중생성정각) 모든 중생 바른 깨달음 이루어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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聞鍾聲煩惱斷(문종성번뇌단)이 종소리 들으시고 번뇌망상 끊으소서.
智慧長菩提生(지혜장보리생)지혜가 자라고 보리심을 발하소서.
離地獄出三界(이지옥출삼계)지옥고를 여의고 삼계를 뛰쳐나와
願成佛度衆生(원성불도중생)원컨대 성불하시고 중생제도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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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명필 김생이 처녀와 내기 끝에 신필로 탄생했다는 김생굴, 퇴계 선생이 머물며 공부했다는 오산당(청
량정사), 신라 말 대학자 최치원이 마셨다는 총명수, 청량사를 창건한 원효대사와 소의 전설 등이다.
이러한 명산(名山)을 놓칠리 없는 중, 님들이 마련한 청량산에도 산만큼 작고 아름다운 절집 청량사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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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아홉에 삼촌 손에 이끌려 출가한 지현 스님(주지)이 현재 절을 지키고 있다는 청량사!. 먼저 절 입구에 도
착하면 [차량 절대 오르지 못함]이라 적혀 있다. 절까지 대략 30분. 중간 중간에 숨을 돌리지 않으면 못 오를 정
도의 경사길로 가파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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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동자승의 위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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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층탑은 밤이면 불을 밝혀 야간산행을 나섰다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길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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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맞던 불상 안에서는 『훗날 인연 있는 승려가 제자리에 모시라』는 글귀와 함께 석가모니 진신사리 5과가 나왔다. 이세택이
라는 사람이 쓴 「청량지」에 따라 사리는 『모든 봉우리 기가 모이는』 본전 앞 사자목에 5층 탑을 세워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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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층석탑과 좌측 봉우리가 금탑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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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을 지나 종탑까지 사천왕도 없고 석단도 없고 이렇다 할 누각도 없어서 무사통과이지만 걸림이 있었다
면, 그 숫자는 오직 자기 페이스에 달려 있다. 도대체 원효대사는 어떤 맘을 먹고 이리도 험한 곳에 절을 지었
을까. 그런데 길모퉁이를 돌아 헉헉대고 절이 뵈는 곳쯤에 이르면 왜 절이 이곳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온몸으
로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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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몸을 붙이고서 빽빽하게 선 거대한 열 두 암봉 한가운데에 가파르고 비탈진 곳(경사각도 70도)에 살짝 몸
을 숨기며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은 절집!. 오늘의 주인공 청량사다, 연꽃을 상상하면 그 풍광이 어렵지 않게 떠
오른다. 그리고 그 암봉들에는 소나무와 각종 활엽수가 울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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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5층 석탑-금탑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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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전 앞에는 잘 생긴 소나무가 한그루 있다. 이름하여 [삼각우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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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전 주련
地藏大聖威神力(지장대성위신력)지장보살님의 범접할 수 없는 존엄한 능력은
恒河沙劫說難盡(항하사겁설난진)항하의 모래처럼 설명해도 다하기 어려우니..
見聞瞻禮一念間(견문첨례일념간)보고 듣고 예배하는 한 생각의 잠깐 동안에도
利益人天無量事(이익인천무량사)사람과 하늘에 부처님 공덕이 헤아릴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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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지장보살삼존상 :현재 보물 제 1666호 목조지장보살삼존상은 ‘지장전’을 새로 개축하여 별도로 모시고 있다. 원래 있던
자리에는 개금불사를 통해 관음보살상이 대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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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꽃술쯤 되는 한가운데에 농부 삿갓 아래 숨었을 정도로 작은 터가 있고 절은 거기 있다. 퇴계가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 나와 흰기러기뿐]이라 했을 정도로 꼭꼭 숨었다. 그 풍광은 [아~~고개만 절레절레] 입말부터
아뭇소리 못하고 서서 넋을 잃는 모습까지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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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가파른 길을 힘겹게 오르면 청량사 본체가 들어나고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이란 이름은 가진 찻집 안심
당(安心堂)이 보인다, 그러나 위쪽으로 보이는 절 집들은 안심할 수는 없을 정도로 바람이라도 불면 무너져 내
릴 것처럼 불안하고 위태롭게만 보인다. 참으로 대단한 불심이다. 이런 곳에 어떻게 절집을 지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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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은신한 오마대(五馬臺)가 있으며 당시 친필로 쓴 청량사 유리보전(淸凉寺‘琉璃
寶殿’)은 1974년
12월 10일 경북유형문화재 제47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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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여래상을 모시는 유리보전(琉璃寶殿)의 주련
一念普觀無量劫(일념보관무량겁) 일념으로 무량겁을 관하노니
無去無來亦無住(무거무래역무주)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으며 머무름 또한 없도다
如示了知三世事(여시료지삼세사) 이처럼 삼세의 일을 모두 안다면
超諸方便成十力(초제방편성십력) 모든 방편 뛰어 넘어 십력을(불도를) 이루리라’ 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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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안심당에서 범종루 까지는 채 100미터도 되지 않지만, 범종루 외엔 절집 지붕조차도 안보일 정도로 경사각
도는 가파르다. 유랑자는 잠시 안심당에 멈춰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란 현판을 구경하는 듯, 슬쩍 안심당 내
부를 살펴보면서 가푼 숨을 진정 시켜본다. 역시 산은 밥을 먹고 오르면 안된다는 교훈 또 다시한번 느끼는 순
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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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미터 달리기를 전력 질주한 사람처럼 유랑자는 헐떡이는 호흡을 수습한 뒤 범종루에 다다르니 마지막 관문
5층 석탑으로 오르는 계단이 또 기다린다. 우라질…….ㅋ(수양부족), 처음부터 끝까지 경사도가 높은 오르막길이
지만 그러나 못 오를 사람은 없다. 어른도, 아이도, 노인도, 등산화를 신어도, 단화를 신어도, 고무신을 신어도
장비 없이 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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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칠약사여래좌상(가운데.보물 1919호)및 복장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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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사에는 보물 제 1666호 목조지장보살삼존상(2010 10 25 지정), 보물 제1919호 건칠약사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2016.11.16.지정),
건칠보살좌상 및 복장유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91호(2015.12.28. 지정)등등 많은 유물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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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무소와 선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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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올라왔는데 대웅전도 없이 소박한 유리보전과 지장전, 산신각 그리고 종무소와 요사채
몇 동이 있을 뿐이다. 뭐징? 허무할까? 그러나 비경 속에 자리 잡은 절집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선경(仙境)속의
절집임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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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보전 뒤로는 하나의 바위로 이루어진 큰 바위산이 부처님 가슴팍처럼 버티고 있고, 지장전 뒤로는 온화한
미소를 가진 연화봉이 불뚝 솟아 있다. 여기가 바로 세평 하늘이다.(하늘이 세평밖에 안 보인다는 뜻) 청량산 육
봉에 갇혀 요새처럼 자리했지만, 청량사는 온종일 빛이 여물고 사계절이 철철이 적당히 익어가는 절집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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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니들이 거주하는 요사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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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다. 원래 이 상은 부처가 태자였을 때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출가하여, 중생구제라는 큰 뜻을 품고
고뇌하는 태자사유상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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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별들이 무리 지어 육육봉의 밤하늘에 은하수 다리를 수놓고. 가을이면 전국의 불자들이 산사음악회를
보러 청명 하늘 색바람에 실려 뭉게구름처럼 청량사로 몰려든다. 겨울에는 하늘나라 함박눈이 12봉 12대에 하
얀 무명옷으로 갈아입힌다. 봄에는 귀 여문 나뭇잎들이 목탁소리에 깨어나 萬化方暢(만화방창)이 되어 초록입술
을 내미는 청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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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눈이 내리면 청솔가지 부러지는 소리에 귀를 씻고 물이 부족하면 쏟아지는 별빛으로 샤워를 하며 청량
사는 그렇게 綠陰芳草(녹음방초)같은 얼굴로 유랑자를 맞이하고 있다. 그렇다 절(節) 과 나 모두는 어느 날 우연
을 가장한 필연으로 문득 불어온 바람이 소리를 스치며 이루어진 인연들이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꽃이 필까? 잎이 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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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각(山神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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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5층탑 뒤에 서 본다, 발 아래로 펼쳐지는 풍경(風景)들이 마치 한폭의 산수화가 된다. 그리고 돌아서
오던 길을 내려다보니 사바(娑婆)가 저 아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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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청량사는 과거 매우 큰 절이었다. 예불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봉우리마다 자리 잡은 암자에서는 스님들의
낭랑한 독경소리가 이 거대한 분지를 가득 메웠다고 했다. 하지만 조선시대 주자 학자들은 절에서 음풍농월(吟
風弄月)하다가 절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풍기군수 주세붕은 절터에 소수서원을 짓고 청량사에 놀러와서는 승려
들을 꾸짖고 봉우리마다 유교식 이름으로 개명을 해버리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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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우송(삼각우총) 소나무와 5층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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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나한을 모신 응진전 앞 반석은 경유대라 개칭했으니 경유는 그 자신의 호였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퇴계 이
황은 아예 절 안에 집을 짓고 [오산당], 즉 [내 산에 있는 집]이라 현판을 내걸었으니, 당시 중님네를 [백정보다
더 천한]계급이라며 멸시하던 권세가와 불교의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게 바로 이 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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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연유로 암자들은 이제 무시로 발에 밟히는 기와 파편으로 변했고 절은 유리보전(내청량사)과 응진전(외
청량사)만 남은 채 엉망이 되어 그렇게 세월을 보냈다. 그러던 것을 스님들 과 불자님들의 불심으로 일궈내 오
늘에 이른 청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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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당 옆에는 산이 좋아 산에 사는 산꾼 이대실(69)씨가 산다. 도예면 도예, 대금이면 대금, 시조면 시조, 그림이면 그림….
뭐 하나 못하는 게 없는 사내다. 오가는 사람에게 차를 그냥 내주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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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청량사는 청량산과 더불어 세평 하늘과 세평 땅과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밀어를 속삭이고 버
티며 여승들과 오늘을 살아가고 있었다. 불가에서의 해탈(解脫)은 평화로운 공존이 아닐까? 아님 유랑자(流浪
者)의 바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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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님 청량사에 수도하고 있는 비구니(女僧)들은 알고 있을까? 오늘은 아스라한 청량사 5층 석탑이 봉황이 되어
육육봉 하늘로 날아 노를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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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이제 친구와 함께 절집 뒤길을 따라 하늘 다리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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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afe.daum.net/b2345/9t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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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명호면 청량산길 199-152
(지번)명호면 북곡리 246-1
연락처 054-672-1446 대표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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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몇차례 다녀오긴 했는데도 " 어! 저런게 있었던가" ? ...............
유랑자님의 사진속에서 청량사의 진면목을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아~~ 그러시군요. 제가 워낙 궁금증이 많은 사람인지라.. ㅎㅎ
각자의 호불호에 따라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겠지요.
유랑자의 여행길은 좀 피곤한 여행길 입니다. 마구 들쑤시고 다녀서요. ^^*
암튼 저 역시도 청량사를 아직 다 돌아보지를 못했습니다.
제가 돌아 본 곳은 내 청량산만 보았구요. 외청량산에 있는
응진전을 못 보고 와서 못내 아쉽습니다.
다음에 한번 더 기회를 보아야 할것 같습니다.
감사 합니다.
꼭한번 가보고싶네요.
ㅎㅎㅎ 그럼요.
이러한 풍경을 보고 욕심이 안 생기신다면
삶의 낙이 없겠지요. ㅎㅎ
정말 좋은 곳입니다.
기억해 두셨다가 언제 시간이 나시면 한번 다녀 오세요.
결코 후회는 없을 거라는 확신 입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