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진도(比珍島) 여행
여 행 일 : ‘18. 3. 7(수) 소 재 지 : 경남 통영시 한산면 비진리 산행코스 : 내항선착장→한산초등학교→팔손이나무 자생지→외항마을→비진해수욕장→망부석전망대→미인전망대→선유봉→노루여전망대→비진암→외항선착장(소요시간 : 3시간)
함께한 사람들 : 좋은 사람들 특징 : 통영에서 남쪽으로 10.5㎞ 지점, 한산도에서는 남쪽으로 3㎞ 지점에 위치한 작은 섬으로 해안선 길이 9.0㎞에 면적은 2.77㎢이다. 모양과 크기가 비슷한 두 개의 섬이 550m 길이의 모래톱(砂洲, sandbar)을 사이에 두고 남·북 방향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중 볼거리는 남쪽에 있는 바깥섬에 몰려있다. 여러 곳의 전망대에서는 안섬과 연결되는 모래톱은 물론이고 주변의 섬들이 빠짐없이 눈에 들어온다. 절벽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해식애(海蝕崖) 또한 실컷 구경할 수 있다. 또 다른 볼거리는 ’비진해수욕장‘이라 할 수 있겠다. 개미허리처럼 잘록한 모래톱을 달리 부르는 이름인데 이 모래톱을 사이에 두고 안섬과 바깥섬이 마치 아령처럼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서쪽해변은 잔잔한 바다와 모래가 덮인 백사장인 반면, 동쪽 해변은 거친 물살과 작은 조약돌로 이루어진 몽돌해변이다. 양쪽이 모두 바다라서 일출과 일몰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참고로 ’비진도(比珍島)‘란 섬의 형상이 마치 거대한 구슬 옥자가 푸른 비단 폭에 싸인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다른 한편으론 산수가 수려하고 풍광이 훌륭할 뿐만 아니라 해산물이 풍부하여 ‘보배(珍)에 비(比)할 만한 섬’이란 뜻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비진도의 한자를 ‘非珍島’나 ‘非辰島’로 쓰기도 했다.
▼ 찾아가는 길 : 일단은 통영항 여객터미널까지 와야만 한다. 비진도로 들어가는 배가 이곳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들어가는 배는 차도선(車渡船)과 쾌속선(快速船)이 있다. 통영항 여객터미널에서 비진도로 가는 배는 오전 7시, 11시, 오후 2시30분 세 차례 운항한다. 돌아오는 배는 오전 9시30분, 오후 1시50분, 5시에 비진도를 출발한다. 주말에는 달리 운항되고 있다고 한다. 오전 7시, 오전 9시, 오전 11시, 오후 1시5분, 오후 2시30분에 들어갈 수 있고, 오전 9시30분, 오전 9시55분, 낮 12시, 오후 1시30분, 오후 4시에 나올 수 있단다. 하지만 바다 상황에 따라 변동이 많으니 운항사인 한솔해운(☎ 055-645-3717, 055-641-0313)에 미리 문의해보는 것이 좋겠다. ▼ 비진도를 왕래하는 여객선의 운항사는 한솔해운이다. 우리를 태우고 들어간 배는 ’섬사랑 3호‘, 나올 때는 이보다 한참 큰 ’한솔 2호‘를 이용했다. 둘 모두 매물도로 들어가는 길에 잠깐 들르는 기항지(寄港地)로 삼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비진도의 외항(外港)까지만 운항한단다. 파도가 높은 탓에 매물도의 뱃길이 끊겼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뱃길에서 즐기는 눈요깃감도 사라져 버렸다. 한산도와 오곡도 등 올망졸망한 섬들을 구경하는 재미로 지루할 틈도 없다했는데, 오늘은 파도가 높아 갑판으로 나갈 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 통영항을 출발한지 30분쯤 지나자 뱃길로 10.5㎞인 비진도(比珍島)의 내항(內港)에 도착한다. 계획에는 없었지만 이곳에서 내리기로 한다. 원래는 외항(外港)에서 내릴 예정이었으나 트레킹코스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계획을 변경한 것이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내항에서 외항까지의 해안도로를 왕복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이었다. 해안도로 말고도 옛길이 나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들머리를 찾기가 힘들었지만 말이다. 덕분에 우린 시간이 남아돌아 통영으로 태워다줄 배가 들어올 때까지 1시간이나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 방파제를 빠져나오면 ’비진 내항‘이라고 쓰여 있는 2층짜리 건물이 길손을 맞는다. 마을회관으로 담벼락에는 이곳 내항의 풍경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맨 오른편에 적혀있는 ’1박2일‘이라는 글귀가 눈길을 끈다. KBS-2TV '해피선데이–1박2일'의 멤버들이 이 벽화(壁畫)를 그렸다는 표시라고 한다. 2013년에 DJ 성시경이 손편지로 받은 내항마을 주민들의 사연을 신청곡과 함께 전해주는 '비진도 FM 라디오' 편이 이곳 마을회관에서 진행되었는데, 이때 마을 이장의 부탁으로 그렸다는 것이다. 물론 벽화 아티스트들의 도움을 받았겠지만 ’감동코드‘를 담은 그들의 진심이 돋보이는 그림이라 할 수 있겠다. 아무래도 ’1박2일‘이라는 지명도가 보다 많은 여행객들을 불러 모으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 마을회관의 왼쪽에 위치한 경로당의 앞에는 ’위령탑(慰靈塔)‘이 세워져 있다. 한국전쟁과 월남전에서 전사(戰死)한 마을 청년들을 기리는 비석이라고 한다. 탑은 1981년 전국 풀베기 대회 때 받은 우승 상금으로 세웠단다. 그 오른편에 자리 잡은 송공비(頌功碑)도 눈에 띈다. 사업으로 벌어들인 돈을 동네의 일에 희사한 것을 칭송하는 비석인 모양인데, 한자로 적혀있기 때문에 옳게 해석했는지는 모르겠다. ▼ 마을회관과 경로당 사이, 정면으로 산을 바라보며 콘크리트길이 나있다. 알록달록한 지붕이 정겨운 마을 안길을 따라 200m쯤 들어가면 1937년에 개교했다는 ’한산초등학교 비진분교‘가 나온다. 2002년 SBS-TV를 통해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순수의 시대'를 촬영했던 명소이다. 젊은이들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이야기였는데, 주인공이었던 고수와 김민희가 천연잔디가 깔려있는 저 운동장에서 함께 뛰어 놀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텅 비어있을 따름이다. 아이들도 보이지 않는다. 한해 졸업생이 50명에 달할 때도 있었으나 세월의 무게를 배겨내지 못한 채 2012년에 폐교(廢校)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사라져버린 빈 운동장에는 숨결이 없는 소녀 하나만이 책을 읽고 있을 따름이다. 아니 신사임당과 충무공께서도 함께 자리를 지키고 계신다. ▼ 교문에는 오줌 누는 아이 동상이 서 있다. 그 아래에서 올려다보고 있는 아이는 여자로 보이는데, 호기심을 못 이겨 남자아이가 쉬하는 장면을 엿보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다. 애들이니 요즘에 유행하고 있는 ’미투운동(Me Too movement)‘과는 별 관련이 없겠지? ▼ 다시 회관으로 되돌아 나와 이번에는 ’팔손이 자생지‘로 향한다. 통영시에서 만들어 놓은 이정표(팔손이군락지↑ 0.1Km, 비진도 산호길↗ 2.1Km, 비진도 외항↗ 1.5Km, 올레길← 2.0Km)를 따르면 된다. 하지만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만들어놓은 이정표(비진도 산호길 2.1Km, 외항마을 1.9Km)에는 그에 관한 정보가 나와 있지 않으니 참조한다. 아무튼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자마자 길이 둘로 나뉘고, 오른편 바닷가를 따르자 곧이어 널따란 공터가 나타난다. 525,721㎡ 넓이의 ’팔손이나무 자생지‘는 이 공터와 경계를 맞대고 있다. 이 나무는 남부지방에서는 정원수로 많이 심기 때문에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온대지방에서 자라는 식물이기에 국내의 자생지(自生地)는 흔치 않다고 한다. 특히 비진도가 국내 팔손이나무 자생지 중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어 천연기념물(제63호)로 지정·보호되고 있단다. ▼ 팔손이나무는 두릅나무과에 속하는 상록관목으로 경상남도 남해와 거제도 등 해변의 산골짜기에서 자란다. ’팔손이‘라는 이름은 잎이 손바닥모양과 같이 7-9갈래로 갈라진데서 생겨났으며, ’팔각금반(八角金盤)‘ 또는 ’팔금반(八金盤)‘, ’팔수목(八手木)‘ 등으로도 불린다. 이 나무에는 슬픈 이야기 하나가 전해진다. 옛날 인도에 ‘바스바’라는 공주가 있었는데, 공주의 열일곱 생일날 어머니가 예쁜 쌍가락지를 선물로 주었다. 그런데 공주의 한 시녀가 공주방을 청소하다가 반지에 호기심이 생겨 양손의 엄지손가락에 각각 한 개씩 껴 보았다. 그러나 한번 끼워진 반지가 빠지지 않자 겁이 난 시녀는 그 반지 위에 다른 것을 끼워 감추었다. 반지를 잃고 슬퍼하는 공주를 위해 왕이 궁궐의 모든 사람을 조사하자, 시녀는 왕 앞에서 두 엄지를 제외한 여덟 개의 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때 하늘에서 천둥과 번개가 치고 벼락이 떨어지는 순간 그 시녀는 팔손이나무로 변했다고 전해진다. ▼ 이젠 외항마을로 간다. 공터 입구의 갈림길에서 이번에는 교회가 바라보이는 오르막길로 방향을 잡으면 된다. 이 길은 비진도의 서쪽, 쉽게 말해 오른쪽 해안선을 따라 나있는 시멘트 포장도로이다. 삭막한 시멘트길이 싫은 사람이라면 옛 사람들이 걷던 코스를 이용해도 된다. 아까 들렀던 한산초등학교 비진분교 앞을 지나면 산자락을 헤집으며 난 오솔길로 연결된다. 이 길은 비진도의 동쪽 해안선을 따라 나있다. 아무튼 난 보다 수월한 시멘트 포장길을 택했다. 이 길을 걷다보면 심심찮게 시야가 열린다. 오곡도와 한산도 등 주변 섬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고도(高度)가 낮은 탓에 섬인지 육지인지가 구분이 안 된다는 게 흠이라 하겠다. ▼ 그렇게 16분쯤 걷자 고갯마루에 올라선다. 길가에 배수지(配水池)가 만들어져 있는 걸로 보아 이곳 비진도에도 상수도시설이 설치되어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언젠가 해저관로(海底管路)를 통해 내륙의 물을 끌어온다는 기사를 읽은 것 같은데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 내리막길이 시작되면서부터 본섬과 마주보고 있는 작은 섬이 간간이 눈에 들어온다. 천연방파제의 역할을 하고 있는 ‘춘복도’인데, 아기자기한 갯바위들이 많아 우뭇가사리와 톳, 고동, 전복 등 해산물이 풍부해서 비진도 어민들의 생계에 중요한 수입원이 된다고 한다. 이 아담한 섬은 여러 개의 이름을 갖고 있다. 볼록한 배를 닮은 모양새 때문에 아무 음식이나 가리지 않고 맛있게 먹어 배를 채운다는 뜻으로 ‘충복도(充腹島)’, 하늘의 복덕이 충만한 섬이라 해서 충복(充福)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봄이면 봄처녀처럼 다양한 옷을 갈아입고 아름다움을 뽐낸다고 해 춘복도(春福島)가 되었다. 충복도의 뒤로는 오곡도와 내부도, 외부도가 떠 있다. ▼ 길가에 ‘평산 신씨(平山 申氏)’의 효열기행비(孝烈紀行碑)가 세워져 있다. 조금 전에는 ‘경주 이씨(慶州 李氏)’의 절효기실비(節孝紀實碑)도 만났었다. 그런데 둘 모두 여자들을 기리고 있다는 게 눈길을 끈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만나본 효행비(孝行碑)들은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의 것이 더 많았었다. 그 이유가 궁금해진다. 그리고 ‘여필종부(女必從夫)’ 등의 고리타분한 강요에 의한 결과가 아니었기를 가만히 빌어본다. ▼ 다양한 모양새의 해송(海松)과 이따금 불어오는 해풍, 거기다 새파란 바다를 벗 삼아 걷길 25분여, 진행방향 저만큼에 외항마을이 나타난다. 외항마을은 밧목, 바깥비진이라고도 불린다. 안섬과 밧섬(바깥 섬) 사이를 연결하는 백사장이 학의 긴 목처럼 생겨 바깥목으로 일컬어졌단다. 외항마을의 자랑은 뭐니 뭐니 해도 수려한 해변이다. 쭉쭉 뻗은 소나무가 일품인 소나무숲속공원도 빼놓을 수 없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 벤치를 놓아 피서는 물론이고 조망까지도 즐길 수 있다. ▼ ‘바다이야기 펜션’ 옆으로 내려서서 이번에는 ‘비진해수욕장’의 모래사장을 걷는다. 모래가 부드럽고 수심이 얕은데다 수온까지 알맞아 여름철 휴양지로는 최적지로 꼽히는 곳이다. 1977년에 문을 연 ‘비진도해수욕장’은 모래사장의 길이가 550m이다. 이곳이 섬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제법 큰 해수욕장이라 할 수 있겠다. 개장은 7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날씨 상황을 봐서 여는데 보통 40~50일 정도가 된단다. 참고로 모래사장의 왼편은 외항마을이다. 이미 입소문을 타버린 이곳은 내항마을과 달리 많은 민박집이 있다.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마을 중앙에 마을회관과 마을보건소가 나란히 있다. ▼ 안섬과 바깥섬은 모래톱(砂洲, sandbar)으로 연결된다. ‘목메기’라고도 불리는데, 한가운데를 시멘트로 포장을 해놓아 차량통행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 모래톱의 오른쪽, 그러니까 비교적 파도가 잔잔한 서쪽 해변은 은빛 모래사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외해(外海)의 파도가 들이치는 동쪽은 주먹만 한 몽돌부터 어른 몸통만 한 바윗돌이 지천이다. 오랜 세월 빗물과 파도에 씻긴 바위가 모난 외모를 버리고 동글동글하게 모양을 다듬었고, 먼 바다에 있던 모래가 조류에 실려와 오목한 비진도 앞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 너머 바다는 비취빛, 다른 표현을 빌면 영롱한 산호색이다. 둘레길의 이름이 ‘산호길’이 된 이유일 것이다. 아무튼 십여 년 전에 만들어놓은 이 콘크리트길이 요즘은 애물단지로 변했단다. 오른편(서쪽)에 있는 모래해변의 모래가 파도의 영향으로 동쪽 몽돌해변으로 자꾸 넘어가면서 모래해변이 점차 축소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콘크리트길을 더 높이던지, 아니면 길을 아예 걷어 내버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 모래톱의 끝, 그러니까 바깥섬의 들머리는 ‘국립공원탐방안내소’가 자리 잡았다. 출입구 창문에 ‘비진도 산호길 워크스테이션(workstation)’이라고 적힌 안내문이 붙어있는 걸로 보아 요즘은 주업이 산호길 안내로 바뀌었나보다. 아무튼 화장실을 갖추고 있으니 길을 나서기 전에 이용하면 좋겠다. 그밖에도 이 부근에는 사진 찍기 좋게 만들어놓은 ’외항마을 표지판‘과 나무액자 같은 커다란 포토존(photo zone)이 설치되어 있다. 뒤편에는 가슴가리개를 닮았다는 비진도와 꽃담이 곱다는 비진암에 대해 설명해 놓은 안내판 두 개와 이광섭의 ’망부석‘이라는 시를 적어 넣은 시판(詩板)도 세워놓았다. ▼ 외항마을 선착장에서 남쪽 섬의 산자락을 향해 파란 선(線)이 그려져 있다. 섬을 한 바퀴 도는 ‘산호길’로 안내하는 선이라고 보면 되겠다. 선을 따라가자 길이 둘로 나뉜다. 이정표(선유봉↑ 1.7Km/ 선유봉↗ 3.2Km/ 선착장↓ 0.3Km)에는 양쪽 방향 모두에다 선유봉을 표시해 놓았다. ‘산호길’이 바깥섬을 한 바퀴 돌아보도록 나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아무튼 우린 왼쪽으로 올라가서 선유봉을 둘러본 뒤에 오른쪽 길로 내려오기로 했다. ▼ 파란색 안내 선은 산자락 아래에 있는 ‘비진도 게이트’까지 이어진다. 아치형으로 만들어진 외형이 눈에 익다. 국립공원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겠다. 아무튼 이제부터 ‘산호길’이 시작된다고 보면 되겠다. 참고로 ‘산호길’은 바다 위의 국립공원인 한려수도에 만들어진 둘레길이다.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비진도와 매물도 등 통영 앞바다의 6개 섬에 탐방로를 개설해 ‘한려해상 바다백리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그중 하나가 길이 4.8㎞의 ‘산호길’인 것이다. 나머지는 미륵도(달아길) 14.7㎞, 한산도(역사길) 12.0㎞, 연대도(지겟길) 2.3㎞, 매물도(해품길) 5.2㎞, 소매물도(등대길) 3.1㎞ 등으로 이 모두를 합칠 경우 41.1㎞가 되므로 둘레길의 이름에다 ‘100리’라는 단위(單位)를 넣었다. ▼ 문(門) 안으로 들어서자 섬치고는 제법 너른 경작지(耕作地)가 나타난다. 비좁은데다가 경사까지 가파른 섬의 지형지세(地形地勢)를 최대한으로 살려서 어른 머리만한 돌을 쌓아올리고 그 위에다 작은 밭들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게 마치 층층의 계단을 보는 듯하다. 남해 가천마을의 ‘다랑이논’처럼 생겼다는 얘기이다. 저 다랑이밭 위에 푸른 농작물이라도 자란다면 한 폭의 멋진 그림이 될 수도 있겠다. ▼ 대나무밭을 지나면 이정표(선유봉→ 1.2Km/ 선착장↓ 0.8Km)가 있는 삼거리이다. 오른편으로 꺾어 선유봉 방향으로 오른다. 잠시 후 울창한 숲길로 들어선다. 길도 가팔라진다. 아니 엄청나게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그냥 치고 오르지를 못하고 왔다갔다 ‘갈지(之)’자를 그리고 나서야 겨우 고도(高度)를 높일 수 있을 정도이다. 길 주변에는 구실잣밤나무와 사약의 재료로 쓰였던 천남성, 청미래덩굴, 붉나무 등이 자주 눈에 띈다. 누군가는 ‘해병대나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육박나무와 비진도가 원산지인 비진도콩 등 다른 자생식물들도 많이 자라고 있다고 했다. 그는 가히 생태박물관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했었다. 마침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개개의 나무에다 이름표까지 매달아 놓았으니 서둘지 말고 읽어보면서 산을 올라보자. ▼ 땀을 한바가지나 흘리고 난 뒤에야 삼거리(이정표 : 선유봉→ 0.9Km/ 망부석전망대← 30m/ 선착장↓ 1.1Km)를 만나게 되고, 왼편으로 방향을 틀자 목제 데크로 만들어 놓은 ’망부석전망대‘가 나온다. 바다건너의 용초도와 죽도는 물론이고 그 뒤에 있는 한산도와 추봉도, 거제도 등이 한눈에 쏙 들어오는 멋진 전망대이다. 마침 전망대의 한켠에다 조망도를 설치해 놓았으니 눈앞에 펼쳐지는 실경(實景)과 비교해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일 것 같다. 하지만 전망대의 이름을 낳게 한 ’망부석바위‘, 즉 콧날이 오똑한 여인의 옆얼굴을 닮았다는 바위는 눈에 띄지 않는다. 옛날 선녀가 내려와 이곳에서 한 남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다가 바다로 나간 남자가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못하자, 기다림 끝에 망부석이 됐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바위라고 해서 기대를 했었는데 아쉬운 일이다. 탐방안내소에서 이곳까지는 25분이 걸렸다. ▼ 다시 길을 나선다. 가파른 오르막길이 또 다시 시작된다. 하지만 침목계단에다 통나무난간까지 만들어놓았으니 조금만 속도를 늦춘다면 별 어려움은 없겠다. ▼ 10분 정도 더 오르면 산호길에 있는 다섯 곳의 전망대 가운데 가장 빼어난 조망을 보여준다는 ’미인전망대‘에 이른다. 비진도의 안섬과 바깥섬을 연결하는 모래톱을 온전히 볼 수 있는 유일한 조망대(眺望臺)이다. ‘미인전망대’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가 아닐까 싶다. 섬이 아름다운 비진도의 또 다른 이름은 '미인도'다. 그러니 최고의 조망대에 ‘미인’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요 아래에 있는 바위의 이름이 ‘미인바위’라는 데서 만들어진 이름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런 넋두리를 늘어놓는 것은 그만큼 이곳에서의 조망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 데크에 서면 비진도 최고의 절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안섬과 바깥섬을 연결하고 있는 개미허리처럼 잘록한 모래톱(砂洲, sandbar)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곳 비진도를 두 개의 섬이 아령처럼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아니 ‘가슴가리개’처럼 생겼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저곳은 선뜻 거론하기조차 거북스러운 은밀한 부위가 될 수도 있겠다. 아무튼 모래톱의 양 옆에는 에메랄드빛의 산호바다가 펼쳐진다. 그야말로 영롱한 산호색이다. 이곳 비진도의 둘레길 이름이 ‘산호길’이라고 불리는 이유일 것 같다. 그뿐만이 아니다. 주변에 널린 섬들도 빠짐없이 시야에 잡힌다. 그 풍광에 압도돼 지금까지의 고생이 거짓말처럼 한꺼번에 사라져버린다. ▼ 이젠 선유봉으로 갈 차례이다. 나무계단을 오르자 커다란 바위 두 개가 상하로 층을 이루고 있는 게 보인다. 바위의 앞에는 ’흔들바위‘에 얽힌 전설을 적어 놓았다. 지상에 살던 청년과 결혼한 한 선녀가 어느 날 하늘로 올라가게 되었는데, 모시고 살던 시어머니의 식사가 걱정돼 땅으로 내려 보낸 것이 바로 흔들바위라는 것이다. 밥공기처럼 생긴 것이 흔들릴 것 같지도 않아 그냥 지나쳐 버린다. ▼ 흔들바위 위의 ’290m봉‘를 지난 산길은 가파르게 아래로 향한다. 맞은 방향도 역시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나무계단을 ’갈 지(之)‘자로 놓아가며 최대한으로 경사를 줄여놓았기 때문이다. 서서히만 오르내린다면 별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 이후부터는 완만한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그리고 5분쯤 후에는 선유봉 정상에 올라선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 30분, ’산호길‘의 들머리인 탐방안내센터에서는 1시간 정도가 걸렸다. 서너 평쯤 되는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정상표지석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선유봉, 해발 312m’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이정표(선착장 3.2Km/ 선착장 2.0Km)가 이를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참고로 ‘선유봉’이라는 이름은 ‘선유대’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정상 근처에 선유도인들이 수행하던 동굴의 이름이 ‘선유대’란다. ▼ 선유봉 정상은 절반의 조망만 허용해준다. 북쪽은 소나무가 시야(視野)를 가리고 있지만 남쪽은 망망대해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그래선지 남쪽에다 2층으로 전망대를 지어놓았다. 전망대에 오르면 망망대해에 떠있는 죽도와 가왕도, 매물도, 소매물도 등이 눈에 들어온다. 그 뒤에서도 크고 작은 섬들이 수도 없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난간에 세워진 조망도를 살펴보니 거제도와 장사도, 소병대도, 어유도, 홍도 등이 표기되어 있다. 땀도 식힐 겸 전망대에 앉으니 가까이에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특유의 깨끗함으로 시선을 유혹하고, 먼 바다에는 해무(海霧)가 낮게 깔려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감상하는 것 같다. ▼ 이젠 하산이다. 하산길은 전망대 옆으로 이어진다. 가파른 곳도 잠시 나타나긴 하지만 대부분은 완만한 경사로 이루어진 기분 좋은 내리막길이다. 거기다 가끔은 시야가 트이면서 남해의 푸른 바다까지 구경시켜준다. ▼ 그렇게 25분쯤 내려서자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간 비탈에 지어진 전망대(이정표 : 선착장 2.2Km/ 선유봉 1.0Km)가 길손을 맞는다. ’비진도전망대‘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데, 이곳에서의 조망 또한 뛰어나다. 마침 조망도가 세워져 있어 눈앞에 펼쳐지는 실경(實景)과 비교해가며 살펴본다. 가까이에 있는 내·외부지도와 연대도, 오곡도는 물론이고 연화도와 욕지도, 우도, 상·하노대도, 남도, 두미도, 추도, 수우도, 사량도 등 주변의 섬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눈에 쏙 들어온다. ▼ 잠시 후 벼랑 위에 지어진 또 다른 전망대를 만난다. ’노루여전망대‘라고 한다. 험한 지형 탓에 노루들이 떨어져 죽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는 바위벼랑에 걸터앉았다.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분이 한려해상국립공원동부사무소 명의의 ’쓰레기 투척 금지‘ 현수막을 달고 있는 게 보인다. 또 다른 여성분은 쓰레기를 줍고 있다. 그만큼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에도 빈 술병 몇 개가 길가에 버려져 있었다. 요즘의 대세는 ’가져온 것을 되가져 가는 매너‘인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노루여 전망대에서의 조망도 일품이다. 전망대에 서면 외부지도와 내부지도, 연대도, 오곡도가 성큼 코앞으로 다가온다. 그 뒤에 있는 연화도와 욕지도, 우도, 두미도, 추도 등도 자신도 함께 있다며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이곳도 역시 조망도가 세워져있는데 하단에는 노루여(노루여울, 獐灘)와 설풍이치에 대한 설명을 해놓았다. 옛날 선유봉 일대에는 노루가 많이 서식했는데, 사람들이 이 노루를 몰아 벼랑 아래로 떨어뜨려서 포획하곤 했단다. 이때 떨어진 노루를 가끔은 지나다니는 배에서 건져 올렸다고 해서 ’노루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노루같이 생긴 여(암초)가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설도 있단다. 그러나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는 이 모든 것을 부정했다. 한 개의 작은 섬(여)이 해안절벽 전체의 이름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곳의 옛 지명인 장탄(獐灘)에 주목한다. ’노루 장(獐)‘자에 ’여울 탄(灘)‘이니 물살이 센 곳을 나타내는 지명이 아니겠는가. ’설핑이치(雪風峙)‘라는 지명에 대해서도 적었다. 옛날부터 정초가 되면 북풍한설의 눈보라가 몰아쳤는데, 이때 바다로 쑥 내민 이 등마루에 눈바람이 받쳐 은세계의 설경을 이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 이후부터는 가파른 내리막길의 연속이다. 거기다 왼편은 아찔한 바위절벽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가파른 곳마다 계단을 놓았고 바다 쪽 벼랑에는 목제난간을 설치했다. 전망 좋은 곳에는 벤치까지 놓아두었다. 가파른 해안 절경과 쪽빛 바다를 실컷 즐겨보라는 배려일 것이다. 이런 곳에서는 구태여 발걸음을 재촉할 필요가 없다. 최대한으로 속도를 늦추고 눈앞에 펼쳐지는 절경에 취하고 볼 일이다. 저 멀리 희미하게나마 시야에 들어오는 섬은 모 음료회사의 CF 배경으로 등장했다는 무인도인 ’소지도‘일 것이다. ▼ 해안 절경을 바라보며 걷는다. 설핑이치와 성주여, 안노루여 등 파도가 때리고 깎고 바람이 다듬어 놓은 기암절벽과 괴석들이다. 자연이 빚은 조각품에 '아' 하고 입이 저절로 벌어진다. 바다로 눈을 돌려보자. 욕지도 천황봉과 연화도 연화봉이 아스라이 보인다. 섬은 마치 수평선에 떠 있는 것 같다. ▼ 그렇게 15분 정도를 내려가면 ’설풍치‘라는 바위벼랑이 나온다. 설풍치는 '눈바람 언덕'이란 뜻이다. 북풍한설 눈보라가 휘몰아칠 때면 바다 위로 쑥 내민 등마루에 눈이 쌓이면서 은세계의 설경을 이룬다는 비경(祕境)이다. ’슬핑이치‘, 또는 ’갈치바위‘라고도 불린다지만 갈치 같이 생겼다는 뜻은 아니란다. 바위 앞의 안내문에 따르면 태풍이 불 때마다 파도가 이 바위 위로 넘나들면서 소나무 가지에 갈치들을 걸쳐놓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치‘라 함은 해안선에 툭 불거진 단애(斷崖)를 일컫는 말이란다. 그렇다면 단애(斷崖, scarp, escarp)란 무얼 말하는 것일까. 수직 또는 급경사의 암석사면을 말하는데, 단층운동에 의해 형성된 것을 단층애, 요곡운동에 의해 형성된 것은 요곡애(撓曲崖, flexure scarp)라고 한다. 화산용암류의 말단이 급애를 이루는 경우에는 화산애(火山崖, volcanic cliff)라고도 한다. 침식작용에 의해 형성되는 단애를 침식애(侵蝕崖, erosion cliff)라 부름은 물론이다. ▼ 산호길은 이곳 설풍치(이정표 : 수포마을→ 0.3Km, 선착장 1.8Km/ 선유봉↓ 1.4Km)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이며 완만해진다.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등 상록수들이 꽉 들어찬 기분 좋은 산책코스이다. ▼ 8분쯤 더 걷자 돌로 쌓은 담이 나타난다. 가까이 다가가니 비진암(比珍庵)의 요사(寮舍)를 둘러싸고 있는 담장이다. 이 작은 섬에도 있을 건 다 있는 모양이다. 아까 안섬의 내항마을에서는 교회를 만났었는데, 이곳 바깥섬에 사찰(寺刹)이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서로 다른 섬에 위치하고 있으니 다툴 일도 없겠다. ▼ 아까 탐방안내소에서 ’꽃담‘이란 안내판을 보았었다. 비진암에 대해 낮은 꽃담이 감싸 안은 자그만 섬마을이라고 적고 있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길바닥에는 시들은 동백꽃이 나뒹굴고 있다. 『‘툭’. 꽃이 떨어졌다. 멍든 곳 하나 없이 붉은 이파리 그대로다. 채 시들기도 전에 작정한 듯 훌쩍 뛰어내린다. 말리고 싶다.』 절정에서 추락하는 동백을 보고 소설가 김훈은 ‘백제가 멸망하듯’이라고 표현했다. 필 때보다 질 때가 더욱 아름답다는 동백꽃이 얼마나 비장하면서도 아름다웠으면, 떨어지는 동백꽃잎에 ‘비장(悲壯)’이라는 표현까지 썼을까? ▼ 비진암 옆에는 돌담만 남은 ‘수포마을’이 있다. 집이 2~3채 있었으나 이젠 인적이 끊긴 채로 마을은 텅 비어 있다. 그저 때 이르게 핀 매화꽃만이 옛날 이곳에 사람이 살았었음을 상기시켜 줄 따름이다. ▼ 이젠 산호길의 막바지다. 수포마을에서 외항마을로 향하는 산길은 동백나무 군락이 만들어져 있다. 숲은 울창하다 못해 차라리 어두움을 만들어 내고 있다. 또한 굵기까지 하다. 지심도나 수우도 등에서 만났던 동백나무들 보다 훨씬 더 굵은 것이다. 이때, 또 다시 바다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되풀이한다. ▼ 트레킹의 날머리는 외항마을선착장 그렇게 20분 조금 못되게 걷자 진행방향 저만큼에 외항마을이 나타난다. 외항마을은 반듯반듯한 건물들이 들어서있는 게 전형적인 부촌(富村)의 모습이다. 어느 글에선가 비진도를 ’살기 좋은 섬마을‘이라고 적고 있었는데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당시 기사에서는 섬마을 주민들이 대부분 어선어업과 펜션, 민박업 등으로 생활이 여유로운 데다 어촌계 소득도 만만찮기 때문에 다들 살림이 넉넉하다고 했다. 어촌계는 전복 양식을 하면서 벌어들이는 수익을 마을 주민들에게 분배한다고 했다. 그게 연간 300만 원이나 된다니 특별히 돈 쓸 데가 없는 섬마을 노인들의 생활비로는 거뜬하지 않겠는가. 아무튼 오늘 트레킹은 3시간이 걸렸다. 중간에 쉬지를 않았으니 오롯이 걷는 데만 걸린 시간이라고 봐야겠다. |
출처: 가을하늘네 뜨락 원문보기 글쓴이: 가을하늘
첫댓글 비진도 사진 후기 감사드립니다.
좋은 곳 안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