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고리에 매달린 민물새우탕
솔향 남상선 / 수필가
새벽 6시에 문을 열었다. 배달된 중도일보 신문기사를 읽기 위해서였다. 순간 문고리에 매달려 있는 팩이 눈에 띄었다. 짐작은 했지만 옆 라인에 사시는 김종복 여사님께서 다녀가신 흔적이었다. 팩을 풀어보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민물새우탕이었다. 아마도 따뜻할 때 먹으라고 바쁜 종종걸음까지 동원한 거 같았다. 그 소중한 정성에, 사랑에, 가슴이 뭉클했다.
온기가 식지 않은 걸로 보아 끓이자마자 종종걸음으로 달려오신 게 틀림없었다. 국물 속에는 군침을 흘리게 하는 민물새우가 숨죽이고 있었다. 팽이버섯, 나박김치무조각, 맛깔나는 양념 일당들이 식욕을 자극하고 있었다. 수저로 떠서 시식 하면서 맛을 보았다. 맛있는 게 감칠맛 그 자체였다. 맛집음식 뺨치는 맛이었다.
순간 문고리의 민물새우탕은 어렸을 적 골동품 추억까지 불러오는 것이었다.
논배미 물툼벙에서 얼멩이로 잡아온 민물새우 추억까지 불러오는 거였다. 뚝배기에 어머니의 정성까지 넣어 보글보글 끓이던 그 옛날 어머니표 민물새우탕이 보이는 것 같았다. 수십 년 전 어머니 사랑까지 불러오는 요술 새우탕임이 분명했다.
따뜻한 새우탕 국물에서 풍겨 나오는, 그 아름다운 마음이 사랑이 되어 꿈틀거리고 있었다. 동시에 어렸을 적, 어머니께서 끓여 주시던, 뚝배기 민물새우탕이 클로즈업되어 날 어렵게 하고 있었다. 형언할 수 없는 두 여인의 사랑이, 정성이, 감사함으로 탈바꿈하여 느껍게 하고 있었다. 요즈음처럼 각박한 세상에 이런 사랑을 받는다는 행복감으로 무르녹고 있었다.‘사랑’이란 단어에는 마음이 약해지는지 노사연의‘바램’이란 가사가 얼굴을 내미는 거였다.
『 내 손에 잡은 것이 많아서 손이 아픕니다.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온 몸을 아프게 하고, 매일 해결해야 하는 일 땜에 내 시간도 없이 살다가 평생 바쁘게 걸어 왔으니 다리도 아픕니다. 내가 힘들고, 외로워질 때, 내 얘길 조금만 들어 준다면, 어느 날 갑자기 세월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진 않겠죠.
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한 마디 지친 나를 안아 주면서 사랑한다. 정말 사랑 한다는 그 말을 해 준다면, 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할 겁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저 높은 곳에 함께 가야 할 사람 그대뿐입니다. 』 바램/노사연
힘들고 지친 인생길이지만‘사랑한다.’는 그 말 한 마디가 위로가 되고, 힘이 나는 것은 너와 나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내 반쪽 같은 사람이‘사랑한다.’는 그 한 마디만 해 준다면, 절로 힘이 날 것이다. 가시밭길, 사막길 같은 인생 험로이지만 버팀목으로 생각하는, 사랑하는 사람이‘날 정말 사랑한다.’고 해주는 그 한 마디는 보약보다 더 힘이 날 것이다. 내가 걷는 길이 어떤 길이든 그 길은 꽃길로 여겨질 것이다.
「 - 정말 사랑한다는 그 말을 해 준다면, 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할 겁니다.- 」
실로 사랑의 힘은 위대한 것이다.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큰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런 지인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 행복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민물새우탕을 문고리에 걸어놓으신 김종복 여사님은 어머니 사랑을 느끼게 하시는 분이셨다. 수렁이 있는 논배미 물툼벙에서 얼멩이로 민물새우를 잡아다 뚝배기 새우탕을 끓여 주시던 그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분이셨다. 밥맛이 없을 때, 뚝배기 새우탕으로 입맛이 나게 해 주시던, 우리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분이셨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우리 어머니를 어디서 만나 교류를 하셨는지, 그 옛날 우리 어머니 사랑과 솜씨를 너무 많이 닮은 분이셨다.
문고리에 열린 사랑의 열매처럼 걸어놓으셨던 그 음식들은 잊을 수 없다. 어머니 솜씨의 간이 밴, 그 열무김치, 잡채, 찐 만두, 시래기 무친 것, 몸보신 삼계탕, 부침개의 그 사랑을 잊을 수 없다. 왈칵 쏟아지는 소나기 그리움으로 뚝배기 새우탕을 끓여 주시던 어머니를 보고 싶어 하고 있다. 오늘 따라 그 동안 문고리에 매달렸던 올망졸망 꾸러미들이 총동원되어 행복감으로 맥질하고 있다.
문고리에 매달린 민물새우탕이 담긴 그릇 속엔
김종복 여사님의 그 정성이, 사랑이, 숨 쉬고 있었네.
전천후 보약 - 그 아름다운 마음 - 이 명약으로 있었네.
난 여지껏, 열매는 나무에만 열리는 줄 알았더니
우리집 문고리엔, 나무도 아닌 것에 열매가 열리고 있었네.
그 열매 알고 보니, 어머니 사랑으로 무르익은 열매였었네.
나무에 열리는 열매는 시큼털털한 맛도 있으련만
여사님이 문고리 사랑으로 주셨던 그 열매 한 알 한 알은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먹을수록 맛깔나는 행복의 열매였었네.
김종복 여사님, 당신은 행복을 주시는 만 년 산타이십니다.
첫댓글 감동 그 자체입니다. 김종복 여사님 고맙습니다. 늘 살타로 사시며 건강하시길.
행복하신 우리선생님.
추억의어머니를 떠올리게하신 김종복여사님.
사람은 베푼만큼 사랑을 받는다고~
선생님의 진실한 사랑은
모든이에게 감동을 주셨기 때문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