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믿음이 크도다 (마15:22~28)
믿음은 무엇일까요?
기독교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단체입니다.
교회는 믿음을 빼고는 존재할 가치도 존재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다니는 성도님들도 어떻게 해서든지 믿음을 가지려고 해야 합니다.
[롬10:9]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라고 말씀하셨기에 믿음이 없으면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지 못하고 그 말씀을 따라 살 수가 없게 됩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은 온통 저주받은 세상입니다.
우리의 조상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므로 영생이 사망이 되고 정복하고 다스리고 충만의 복을 누리고 영생해야 할 사람들이 원수 마귀 사탄의 노예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기에 사람의 삶이 고통과 슬픔과 아픔의 연속이 되고 마지막에는 흙으로 돌아가는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이 저주를 풀어주시고 구원해 주시려고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님이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신 것입니다.
[롬1:7]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라며 우리에게 평강을 주신 것입니다.
[사41:10]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라며 우리에게 위로의 말씀을 믿음이 있는 자에게 한량없이 주시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큰 믿음이요 구원받을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첫 번째로 우리 인생의 답은 예수님이다, 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마15: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가나안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진멸하라는 명령이 모세에게 여호수아에게 내려진 저주받은 민족입니다.
저주받은 땅에 태어난 저주받은 여인이 자신의 딸이 귀신이 들렸다고 예수님께 나와 소리를 지르며 고쳐 달라고 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당연히 예수님은 이 가나안 여인을 상대할 수 없는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배척받고 멸시받아야 하는 이 여인의 기도를 들어줄 의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고려 사람들은 유교에 불교에 무속신앙에 토속 종교등에 빠진 혼잡한 민족입니다. 가나안 민족보다 더 더럽고 불결한 민족이 바로 조선 사람들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민족을 위하여 순교의 피를 흘려준 믿음의 선배님들이 계셨고 선교사님들이 계셨기에 이 땅에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이 전해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기도할 때 주변에 있는 제자들이 민망할 정도로 예수님으로부터 철저히 무시와 멸시를 당해야 했습니다.
마15: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라며 청을 할 정도로 여인은 심한 천대를 받았습니다.
마15: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라는 말씀으로 면전에서 멸시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여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입니다.
교회에서 자신의 기분을 잡치게 했기에 자존심이 용납할 수 없다고 뒤로 물러가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인 것입니다.
이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세상 낙으로 빠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라는 것이 마음 아픕니다.
두 번째로 나를 버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무시와 멸시와 천대를 받은 여인이 예수님 앞에 나옵니다.
마15: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그런 모욕을 받고도 그 앞에 나와 절을 한다는 것은 자기 믿음에 절제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막14:65 어떤 사람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가야바라는 대제사장의 뜰에서 심문당하실 때 일어나 일입니다.
그의 권능과 자존으로 일순가에 그들을 멸하고 싶었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에 그 믿음에 순종하여 그 굴욕을 참으시는 예수님을 묵상합니다.
가나안 여인도 비록 천민 출신이고 그 딸이 귀신이 들려 도움을 받으러 왔지만 그에게도 자존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인은 자신의 믿음에 순종했습니다.
자기의 자존심 보다는 자신의 믿음이 더욱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마15: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라는 참을 수 없는 말을 듣게 됩니다.
지금까지 참고 참아 왔는데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라는 것이 우리의 변명이고 주장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빌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렇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신의 믿음에 순종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죽기까지 나를 버리는 믿음이 나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마15: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 말은 귀신들린 딸을 살리기 위해 예수님 앞에 자신을 죽이는 순교의 고백입니다.
아무리 모성애가 강해도 어떻게 이런 고백이 나올 수 있을까요?
그것은 이 여인의 심령 속에 성령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삼상16:13]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맞서 싸우는 용맹한 용사가 된 것은 하나님의 종에게 안수받고 하나님의 영이 임했기 때문이며 환난 당할 때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가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에 감동 받으니 한번 설교에 오천 명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고
[창41:38]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라는 말씀과 같이 요셉이 형제들로부터 인신매매를 당하여 애굽에 팔려 갔지만 성령에 충만하여 그를 비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회로 삼아 애굽을 자신의 품에 품는 축복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귀신들린 딸을 둔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 앞에 모욕과 천대를 받으면서도 참고 인내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마음에 성령의 감동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마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아멘입니다.
우리도 구원받을 큰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내 자존을 죽이면 하나님의 영이요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이 내 마음에서 살아 움직이십니다.
내 자존이 살아 있으면 성령님의 소리가 들리지 않고 내가 죽으면 성령님의 목소리가 내 심장에 쿵쿵하고 들리게 됩니다.
가나안 여인이 오직 예수님의 도움을 바라고 그에게 목숨을 걸고 간구한 것처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의 문제를 예수님께 가져와 예수님이 응답하시고 축복하실 때까지 간구하면 하나님 나라가 내 것이 되는 은혜가 충만하게 됩니다. 아멘
2023 05 21 네 믿음이 크도다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