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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정원 이슈 전문가 좌담회②]
의협 “증원 필요 없다”
병협 “1000명 증원 필요”
OECD 통계 두고도 신경전
“부족한 분야 분석하고 논의해야”
‘한국 의사 수는 부족한가.’ 오래된 논쟁거리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수면 위로 끌어올린 문제다. 정부·여당은 의사 수가 부족하다고 판단,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의료계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청년의사는 창간 28주년을 맞아 지난 19일 전문가들과 함께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의대 정원 확대 필요한가’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좌담회는 청년의사 유튜브 채널 K-헬스로그 ‘코로나 파이터스 라이브’(코파라)에서 생중계됐다.
의대 정원 확대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청년의사 창간 28주년 특집 좌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 자료를 두고도 다양한 해석을 내놓으며 첨예하게 대립했다. 설전도 오갔다.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고 있는 대한의사협회는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지역이나 진료과별 수급 불균형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병원협회는 의사 인력난이 심각하다며 의대 입학 정원을 1,000명 정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의대 예방의학교실 홍윤철 교수가 이날 공개한 ‘의사 인력 적정성 연구’ 결과도 병협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이 연구는 병협 의뢰로 진행됐다.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는 의료의 질과 환자 안전 측면에서 적정한 의사 수를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도 했다.
사 회: 강양구 과학전문기자
출연진: 대한의사협회 성종호 정책이사
대한의사협회 안덕선 의료정책연구소장
대한병원협회 정영호 회장
서울의대 예방의학교실 홍윤철 교수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
청년의사는 창간 28주년을 맞아 지난 19일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의대 정원 확대 필요한가'를 주제로 전문가 좌담회를 개최했다.
강양구: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이 제기될 때마다 근거 자료로 제시되는 수치가 OECD 통계다. 2017년 기준 인구 1,000명당 임상 의사 수는 한국이 2.3명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적다. 한국은 한의사가 포함된 수치여서 의사 수만 놓고 보면 더 적다는 지적이다. OECD 평균은 3.4명입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성종호: OECD 회원국 중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평균보다 높은 국가 중에서도 의사 수 부족 논란은 있다. 의사 수는 너무 많아도, 적어도 문제가 된다. 많으면 의료 수요가 과도하게 형성되기 때문에 의료비 지출이 많아진다. 의사 수가 적으면 의료 접근성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의료의 질도 떨어질 수 있다. 역설적으로 우리나라는 의사 수가 부족하다고 하지만 의료의 질은 떨어지지 않는다. 지역적 불균형은 의사뿐 아니라 공공성이 있는 다른 직종에도 있다. 이것은 의사 수의 문제가 아닌 사회·문화적인 현상이다.
대한병원협회 정영호 회장
정영호: 의료 인력 문제는 절대적인 숫자와 적절한 배치가 함께 가야 해결할 수 있다. OECD 평균에 비해 우리나라는 의사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명백하고도 객관적인 수치 자체를 부정하면 안 된다. 절대적인 숫자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턱없이 부족하고 전 세계적 국가에서 가장 하위에 있다는 아주 객관적인 사실조차 부정하면 안된다. 배치 문제도 중요하지만 절대적인 숫자도 중요하다.
안덕선: OECD 통계를 인류 보편적인 정답처럼 봐서는 안된다. 인구 1,000명당 임상 의사 수가 우리나라는 2.3명이고 미국은 2.4명이다. 하지만 미국은 의사를 만나서 진료를 받는 데 평균 4주가 걸린다. 대학교수가 하루에 보는 외래 환자도 10명 정도다.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그 안에는 문화적인 요소도 반영돼 있다. 틀렸다, 맞았다의 문제가 아니다. OECD 숫자에는 함정이 많아서 그 자체에 의존해서는 안된다.
김 윤: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를 OECD 평균까지 올리려면 현재보다 2.78배 늘려야 한다. 우리나라 의사들은 외국보다 3배쯤 많은 외래 환자를 본다. 하지만 시간으로 비교하면 외국의 3분의 1 수준이다. 단순히 횟수를 따져서 생산성이 높다, 업무량이 많다고 할 순 없다. 골든타임 이내에 치료를 받지 못하는 지역이 많다. 특정 진료과 인력이 부족해 인건비가 상승하고 의사들이 인건비에 따라 병원을 옮겨 다닌다. 이런 현상들을 배제한 채 우리나라 의사 수가 충분하다고 얘기하는 건 적절치 않다. 의사 1명이 보는 환자가 OECD 평균의 6배 정도 되는 상황에서 의료의 질이나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얘기하긴 쉽지 않다.
강양구: 홍윤철 교수가 중요한 문제로 지적했던 것 중 하나가 지역별 의사 수급 불균형이다(관련 기사: 의대 정원 1500명 늘려도 2067년까지 의사 부족).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한의사협회 성종호 정책이사
성종호: 지역별 수급 불균형 문제는 우리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의사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지역별 불균형 문제는 제도적인 틀을 혁신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지방 의료기관에 의사들이 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의료 여건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전 세계 어디든 의료취약지에는 인센티브 제도가 있고 의료기관을 개설하거나 운영하는 사람에 대한 지원도 충분하다. 지역별 불균형을 단순히 수가 문제로 접근하긴 어렵다. 인력을 늘린다고 해도 그들이 의료취약지로 갈 것인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의사의 인건비가 증가했다고 하지만 요즘 금융기관에 근무하는 직원들 평균 연봉이 1억원이 넘는다. 예전에 비해서 의사의 임금 자체는 높지 않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근로자 가구당 월 소득과 의사의 월 소득이 큰 차이가 없다. OECD 자료에도 나와 있다.
김 윤: 우리나라는 의사 숫자가 부족하기도 하지만 분포가 굉장히 불균형한 게 문제다. 개원의가 너무 많고 과목 간 불균형도 심하다. 분포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양적으로 수를 늘리는 게 핵심이다. 현재 정부는 의대 정원을 증원해서 늘어난 인력을 의사가 부족한 곳에 배치하는 정책과 의료취약지 병원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의료 질을 유지할 수 있는 정책을 같이 추진하고 있다.
의사 임금 얘기를 해보겠다. ODEC 통계와 국세청 세금자료를 기반으로 근로자 평균임금 대비 의사 임금을 비교해보면 OECD 평균은 의사 임금이 근로자보다 2.75배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의사 전체 평균은 근로자보다 5.45배, 개원의는 6.10배 높다. 우리나라 의사의 소득 수준이 OECD 평균의 2배 수준이다.
개원의 너무 많다
vs
병원이 안뽑는다
강양구: 현장에서는 의료 인력난을 호소하는 곳들이 많다. 병협에서 파악한 의료 인력난 원인은 무엇인가.
정영호: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 면허를 취득하면 대부분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밟는다. 그리고 전문의를 취득하면 펠로우를 하고 세부전문의를 또 한다. 그렇게 세부전문의 자격까지 취득한 후에는 개원을 한다. 개원가에 의사가 너무 많다.
의대 정원만 늘린다고 의료 인력난이 해결될까?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양질의 의사를 배출하고 배치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10년 정도만 의대 입학 정원을 1,000명 증원하고 새로 배출되는 의사가 늘어나기 전까지는 개원의 중 일부가 병원으로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서울의대 김윤 교수
안덕선: 전문의 수련을 4~5년 동안 받고 나서도 그 분야로 나가기 힘드니 개원하는 의사들도 많다. 정부는 공공재를 표방한다고 하면서 의사 양성에 드는 교육비는 지원하지 않는다. 영국의 경우 잉글랜드 지역에서만 의사 양성을 위한 교육비로 연간 8조원을 지원한다. 눈앞에 보이는 병원의 인력 수요 때문에 의사 수를 늘리자고 하는데 그런 방향으로 인력을 양성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김 윤: 지금 지적한 내용을 기반으로 정부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증원하는 의대 정원에 대해서는 국가가 돈을 들여 교육을 하겠다는 것이다. 예단해서 해석하고 반대하면 안 된다.
안덕선: 반대한 적 없다. 조심해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종호: 보건복지부 담당 부서와 얘기해보면 김 교수가 말한 것과는 다르게 얘기한다. 박근혜 정권 때 의사 인력 증원에 대해 공론화 없이 밀실에서 추진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그런데 2020년에도 갑자기 이 문제가 대두됐다. 사회적인 합의를 거쳐 추진돼야 하는 일을 왜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해서 진행하는가.
김 윤: 정부가 결정을 했나. 결정된 건 없다.
강양구: 의대 입학 정원 확대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한 건 정영호 회장뿐이다. 1000명 정도 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
정영호: 단 전제조건이 있다. 추가로 의사가 배출되기까지 10년이 걸리는데 그때까지는 어떻게 할 것인지가 해결돼야 한다. 의대 정원만 늘리면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성종호: 우리나라 의사 인력은 부족하지 않다. 보건의료제도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봐야 한다. 의사가 병원에서 근무를 하려면 병원에서 의사를 뽑아줘야 한다. 의사가 왜 병원으로 가지 않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정영호: 뽑고 싶어도 못 뽑고 있다. 의사들이 갈 곳이 많기 때문이다.
낮은 수가가 기피과 양산
vs
공급 과잉으로 갈 곳 없는 게 문제
성종호: 숫자의 문제가 아니고 건강보험제도의 문제다. 수가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의사가 더 많이 배출된다고 해도 외과나 산부인과를 누가 전공하려고 하겠는가. 개원가로 들어오는 의사들이 병원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건강보험제도가 개선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사들이 병원으로 갈 수 없다.
대한의사협회 안덕선 의료정책연구소장
안덕선: 현재 한 대학(서남의대)이 폐교됐고 그 정원(49명)이 살아 있다. 그 정원을 살리는 것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지금 해야 할 일은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게 아니라 적정 의사 수와 전문의 수 등을 추계하고 분석할 수 있는 면허기구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마추어 기구 같다. 연구는 좀 그만하고 그럴 돈 있으면 면허기구를 설립하는 일을 해줬으면 좋겠다.
김 윤: 흔히 수가가 낮으니까 전공의 지원율이 낮다고 이야기를 하고 그 대표적인 예로 외과, 비뇨의학과, 흉부외과를 든다. 인구당 전문의 수를 비교하면 이런 과목들은 미국보다 우리나라에 훨씬 많다. 수요가 있어서 그만큼의 의사를 뽑아서 양성한 게 아니고 병원이 필요한 만큼 뽑아서 그렇다.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후에는 갈 곳이 없으니 지원자가 줄어든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흉부외과다. 흉부외과 지원자가 너무 적어서 지난 2009년 흉부외과 수가를 100% 인상했다. 그 후 전공의 지원율이 올라가긴 했지만 많이 올라가진 않았다. 수가의 문제가 아니고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다보니 배출된 사람이 갈 곳이 없다는 게 문제다.
의대 정원 증원만 얘기할 게 아니라 그렇게 해서 배출된 인력이 세부전문의 자격까지 취득한 후 개원해서 감기 환자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부족한 부분을 추계하고 의료전달체계와 공공의료 강화 정책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
강양구: 의대 정원을 증원할 필요가 있다면 그 규모는 얼마나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김 윤: 어디에 의사 인력을 배치할 것이냐를 전제로 해서 인력을 늘려야 한다. 300~500병상 규모인 2차 병원 중 인력이 부족한 곳들이 있다. 공공과 민간병원 합쳐서 4,000명 정도 필요하다. 코로나19 사태로 중환자실과 감염관리 인력이 부족하다. 이 부분만 계산하면 현재 5,000명 정도가 부족하다. 이 정도 인력을 충원하려면 의대 입학 정원을 최소 500명 정도 증원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성종호: 수가 문제가 아니라고 했는데 일리 있는 지적이긴 하다. 하지만 흉부외과 수가를 100% 올린다고 병원이 만족하는가. 아니다.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이다. 흉부외과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으면 그 정도 수가가 적정하다. 흉부외과를 전공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후)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흉부외과 전문의를 뽑지 않는 이유는 수가가 너무 낮아서 적자가 나기 때문이다. 흉부외과 전공의 시절에 월급 조금 더 받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병원에서 흉부외과 전문의를 뽑도록 해줘야 한다.
김 윤: 병원이 왜 흉부외과 전문의를 뽑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성종호: 간단하다.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정영호: 꼭 그렇지는 않다. 뽑고 싶어도 지원자가 없어 못 뽑고 있다.
김 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인상돼야 흉부외과 수가는 적정한 수준이 되는 것인가.
안덕선: 영국이나 캐나다의 경우 2019년 자료만 봐도 GP(일반의)가 30만불(3억6,000만원 정도)을 받으면 외과 전문의는 40만~50만불(4억8,500만~6억700만원)을 받는다. 외과 계열 전공의 수는 우리나라보다 적다. 수요에 집중해야 한다. 병원을 운영하기 위해 전공의를 양성하진 않는다.
수도권-지방 간 인력 격차 너무 커
홍윤철: 의사 수에 대한 시각차가 큰 이유는 수도권과 지방 간 인력 차가 크기 때문이다. 서울에는 너무 많고 지방은 너무 부족하다. 의협에는 서울 상황이 너무 많이 반영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데이터를 보면 서울과 지방 간 격차가 심하다.
서울의대 홍윤철 교수는 지난 19일 청년의사 창간 28주년 특집 좌담회에서 '의사 인력 적정성 연구' 결과 일부를 공개했다.
성종호: 이건 의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국민에게 무한대의 의료기관 선택권이 주어진다. 제주도에 있는 사람도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와서 삼성서울병원이나 서울아산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려고 한다. 반면 지방에 있는 의사들은 다양한 환자를 보지 못해 한계를 느낀다. 성형외과 전문의로서 그 역할을 하고 싶지만 환경이 따라 주지 않는 셈이다. 환자 입장에서도 진료권 설정이 필요하다.
김 윤: 병원을 적정 규모로 키우고 그 병원이 지역에 있는 대학병원들과 연계해서 시스템적으로 환자를 진료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체계를 전제로 의사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
강양구: ‘지방 병원에서 일해 보면 불편함이 많다. 의사가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게 많고 간호사 수가 부족하다보니까 환자를 입원시키더라도 제대로 케어가 되지 않는다. 월급 자체는 수도권보다 많이 준다. 그러나 돈을 많이 받고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지방 소재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봉직의가 전하는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