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례 요한의 메시야 증거 사역
마가복음 1장 1-8절(마 3:1-12, 눅 3:1-18)
본문의 내용을 설명하기에 앞서 먼저 그 배경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3장 1-12절과 누가복음 3장 1-18절입니다. 마태복음 3장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서의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시게 된 시기에 일어난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장과 본문 3장 사이에는 약 30년간의 예수님의 생애가 생략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마태복음 3장 1절에서 말씀을 시작하시고 있는 ‘그때에’는 2장에서 예수님께서 유아 때 헤롯왕의 박해를 피하여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헤롯왕이 죽은 후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거한지 약30년이 지난 후의 일을 언급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태복음 3장 1-12절은 예수님께서 삼십세에 공생애를 시작하시기(눅3:23) 바로 전 곧, 사람들 사이에 나타나시게 된 때의 일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례 요한이 등장하여 천국의 도래를 전파하여 메시야 증거를 시작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3장 1-18절에서 1-2절을 보면 세례 요한은 디베료가 황제로 등극하여 다스린 지 15년째 되던 해에 하나님의 말씀이 광야에 살고 있는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했다고 말씀합니다. 그 당시는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그리고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또한 그의 동생 빌립은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또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 있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직을 맡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요한에게 임함으로 그의 선지자로서의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선지자로서의 요한의 등장이 있게 된 것입니다. 요한의 사역은 자기 뒤에 오실 메시야와 그분이 하실 일을 선포하는 데 있었습니다. 요한은 요단강 부근에 있는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임박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면서 메시야의 사역을 증거하며 백성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과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죄 사함 받은 증거로 물세례를 받을 것을 외쳤습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의 증거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에서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사역에 앞서 먼저 세례 요한을 사역자로 보내주셔서 그의 전파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되게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여 증거 하는 것에서 세상을 심판하실 「심판자」로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개가 뚜렷이 드러나고 있는 말씀이 바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내 뒤에 오시는 이는 능력이 많으시니…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을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입니다. 세례 요한이 증거하고 있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라는 말씀은 구약에서 예언하시고 있는 하나님의 언약인 천국 도래의 완전한 성취가 가까웠다, 임박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천국의 도래는 이스라엘 선지자들이 예언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다시금 이스라엘의 왕으로 나타나실 것이라는 것과 그의 왕 되심은 온 세상에 두루 퍼질 것이라는 사실의 핵심이었습니다(미4:7, 슥14:9). 구약의 예언에서 천국의 도래는 이스라엘에게 언약되어진 천국의 주인이신 왕이 오셔서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자기 백성을 자기의 나라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죄에서 구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천국이 가까웠다고 하는 것은 심판에 직면하여 있는 자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들이실 일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 속하지 않은 백성들에게는 천국이 도래하였다는 증거가 영원한 심판을 가져온다는 선포가 됩니다. 이 선포에서 세례 요한은 메시야 사역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증거하였습니다. 그것은 세례 요한이 외친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복음을 듣고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을 통하여 예비한 길에 오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를 하나님의 나라에 들이신다는, 그러나 세례 요한이 외친 회개의 복음을 들으나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을 통하여 예비한 길에 오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행하실 것을 증거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세례 요한이 외치는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복음에 의해서 사람들 앞에 나타나실 예수님은 구주되심과 함께 심판주되심의 이중적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처럼 구원과 함께 심판을 행하실 것이 세례요한이 증거한 예수님이 베푸실 세례인 성령 세례, 곧 예수님이 성령으로 베푸실 세례에 의해서 있게 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세례요한이 말한 예수님이 베푸실 세례를 마가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는가 하면, 마태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어서 ‘성령’과 함께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 이야기 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는 말은 ‘성령, 곧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일이 어떤 사람들에게서는 성령이 태우는 일을 하는 불의 성격으로 주어질 것임을 의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베푸실 세례가 성령으로 베풀어질 세례, 또는 성령과 불로 베풀어질 세례로 말해지고 있는 것은 당시 세례요한에게 나아와 요한이 행하는 물로 베푸는 세례를 받고자 나오는 사람들에는 요한의 증거를 듣고 죄를 고백하고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는 사람들인데, 이들과 함께 섞여 있는 또 다른 무리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입니다. 세례 요한은 이들이 자신에게 나아와 세례를 받고자 하는 것을 보면서 그들을 향하여 엄히 책망하며 꾸짖는 말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말이죠.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말을 들으며, 결코 아브라함의 후손이 될 수 없다는 것과 함께 예수님이 베푸시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것에 의해서 이미 이들에게는 나무뿌리에 도끼가 놓인 것과 같을 것 같아 꺼지지 않는 불에 던져져 태워질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어떤 자들이기에 이러한 처지인지요. 아브라함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삼고 있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자신들과는 무관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는 혈통의 계승, 할례와 율법을 받은 자라고 하는 전통성의 계승을 구원의 의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내세우면서 세례 요한이 베푸는 물세례를 아브라함에게 행하셨던 할례 의식과 같은 차원에서 생각하여서 물세례 받는 것을 하나님의 진노를 면제받는 의식이요 의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에게 나아와 물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은 할례 받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자신들과는 상관없으며 오직 아브라함에게 속하지 않은 이방인들에게만 임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들에게 있어야 할 회개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회개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그러한 태도를 가진 것은 아브라함에게 속하고 속하지 않고 하는 기준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지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세례 요한이 그들을 책망하는 것을 통해서 가르쳐 줍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혈연이나 혈통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그분의 절대적 주권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이며, 그러한 자들의 외적 특징은 회개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그러한 자들만이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다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는 일은 아브라함의 육적 혈육과 혈통에서 난 자손들에 의존하셔서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신다고 하면 돌들로도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사람의 혈육과 혈통에 의해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선택하셨듯이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의 믿음에’속한 자를 또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 자신의 절대 주권에 의해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세상에 오심은 천국의 도래로 말미암아 구원과 심판을 가져오는 것이기 때문에 세례 요한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물세례만을 받고자 하지 진정한 회개는 하지 않는 그들의 불신앙을 크게 책망하며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않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회개하지 않는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 이미 놓여져 있음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없는 것은 회개가 없는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외친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복음을 듣고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을 통하여 예비한 길에 오시는 예수님을 바라봄에 있게 하셨으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관심은 세례 요한이 행하는 물세례에만 있었지 세례요한이 증거한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세례요한이 증거한 예수님을 들어야 할 그들의 귀는 닫혀져 있었고 예수님을 보아야 할 그들의 눈은 감겨져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이 하는 회개의 복음이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며 행하는 물세례 사역을 통하여 오실 예수님을 드러냈습니다만 이들에게서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없었습니다. 회개에 있는 증거인 하나님 나라의 주로 오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에서 세례를 받고자 하는 것에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회개의 열매가 없는, 곧 예수님을 바라봄에 있지 않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열매가 없는 나무뿌리에 도끼가 운명입니다. 이들은 이 운명을 결코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나무는 모두 다 찍혀서 꺾여 넘어질 것이며, 불속에 던져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는 자마다 이렇게 하실 것을 정하신 이 하나님의 정하심대로 처리가 됩니다. 세례요한이 증거한 예수님은 손에 키를 들고 자기 타작마당의 곡식을 까불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는 일을 하실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 “그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입니다.
그러면 이제 세례 요한이 증거한 메시야와 그분의 사역인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세례 요한은 물세례를 행하면서 자기 뒤에 오시는 이가 행하시는 세례에 대해서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물세례가 자기 뒤에 오시는 이인 예수님의 성령과 불세례를 예시(豫示)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메시야 증거, 곧 예수님에 대한 증거를 좀 더 구체적으로 봅니다. 무엇이라고 증거했는가 하면,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요 1:15) 이 말의 의미는 예수님은 자기보다 위대하신 분이신데, 그분은 영원 전(永遠前)에 존재(存在) 하신 분이시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내 뒤에 오시나니,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똑같은 말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그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라는 말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하였습니다만, 마가는 단지 성령 세례에 대해서만 증거하고 있습니다만, 마태는, 그리고 또한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도 예수님이 베푸실 세례를 ‘성령과 불 세례’로 언급하면서 그 세례를 예수님이 행하실 두 가지의 일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누구신가, 어떤 분이신가 하는 예수님에 대한 성격을 규정하여 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여 모아 천국에 들여놓는 분이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께 버림받아 진노와 저주 아래 있는 자들에게 심판주로 나타나셔서 심판하여 영원한 멸망에 처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심판주로서 구원과 심판의 일을 하십니다.
세례 요한의 예수님에 대한 증거에서 말해지고 있는 베푸시는 세례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를 보도록 합니다. “그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요.” 여기서 ‘성령 세례’는 ‘성령으로 베푸는 세례’인데, 세례 요한이 베푸는 물세례와는 본질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은 거룩한 영, 곧 하나님의 영이라는 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자신의 영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9절에서는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을 같이 쓰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물세례는 예수님이 베푸시는 성령 세례를 증거하기 위한 표적의 목적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이며, 예수님이 베푸시는 성령 세례는 예수님의 사역 그 자체를 설명해 줍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로 자신의 영으로서 세례를 준다는 것이 세례 요한의 증거였습니다.
그러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에 접하게 됩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는 요엘 2장 28-32절에서 예언되고 있는「하나님의 신(영)으로 부어 주심」을 뜻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 강림의 사건을 요엘 선지자가 전한 예언 성취로 되어진 것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행 2:18-21). 곧 성령의 부어 주심입니다. 성령세례가 왜 있는가 하면 성령을 풍성히 부으시는 것으로서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성령의 사역이 어떠한 것인가를 뜻하는 것입니다. 이 성령의 부으심은 오순절에 있은 성령강림으로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베드로가 요엘 선지자의 예언 성취를 증거하는 것에서 보는 대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는 이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하시는 성령의 사역이 시작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은혜로운 날이 성령의 부어 주심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령이 우리 안에 임하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심으로써 되어집니다. 거듭남의 사역은 우리를 위<하늘/하나님>로부터 난 자가 되게 하는 것인데, 위에서부터 생명을 주시는 일을 하는 것으로서 우리를 죄에서 깨끗하게 씻기심으로써 예수님과 연합할 수 있는 새로운 생명을 갖게 해주심으로 되어집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게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한 뜻으로서 세례 요한은 “그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고 하는 간단한 말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일은 성령을 부으심에 의하여, 그래서 성령의 오심으로 온 세상에 있게 되었습니다. 세상 모든 나라에서 주 예수를 믿는 모든 자에게 말입니다. 사람이 구원 얻는 일은 사람에 의해서 되어지니 않고 - 사람에게 구원 얻는 원인, 조건이 있지 않고 - 성령의 주권적 사역인 죄 사함에 의해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일에 의해서 되어집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베푸시는 성령 세례와 함께 한 대비되는 용어인 ‘불 세례’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요.” 이 불 세례는 성령 세례와 더불어서 예수님 사역이 갖는 이중적인 의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는 도래하였으며, 하나님 나라가 자기 백성의 것이 되게 하는 사역에서 사람들에게 구원과 심판의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고 하는 이중적인 의미를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 세례를 베풀어주심으로써 성령 세례를 받은 자에겐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마지막 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 세례를 베풀어주시지 않은 자에겐 - 성령 세례가 허락되지 않은 자 -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마지막 심판을 받아 영원한 멸망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성령 세례를 베푸는 것이 상대적으로 그들에게는 불 세례를 베푸는 것이 됩니다. 곧 마지막 심판만이 그들에게는 남아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세례 요한은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여 있다”고 말한 것이며, 또한 성령 세례와 불 세례를 베푸심에 의한 결과의 초래에 대해서 언급하기를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고 하였습니다.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그래서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를 찍고 있으니 이제 그 나무가 꺾여 넘어지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즉, 그들의 운명이 불에 던져질 것에 정해져 있으며, 그 때의 가까움에 있습니다. 어떻게인지요.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바로 이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주이시며, 또한 심판 주이십니다. 그 분으로서 지금 하나님이 부르시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일을 하십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날에 불로 세례를 주시는 일을 하십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에 의하여 임하신 성령님은 사도들의 증거를 통하여 성령으로 말하게 하심을 따라 유대인들이 죽인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음을 말하였으며, 그 예수님을 온 세상의 주가 되게 하셨으므로, 주 예수의 이름을 믿으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름이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부으심은 성령의 말하게 하심으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이 증거되었으며, 성령의 부으심에 있은 사람들에게서 성령이 아니면 그 누구도 예수님을 주시라고 할 수 없는 놀라운 큰 일이 일어났습니다. 성령께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는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그러니까 예수님이 생명의 주이심을 시인함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날 주 예수를 믿는 자가 3천명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말이죠. 세례 요한이 말한 예수님이 베푸실 성령세례는 오순절에 먼저는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을 기다림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기다림에 있던 120명의 신자들이 있는 곳에 하늘에서 강한 바람이 휘몰아치며 오는 듯한 소리로 진동하는 모습으로, 그리고 불길이 혀처럼 갈라져 나타나서 각 사람 위에 머무르는 방식으로 충만하게 임하시는 것에 있었으며, 이를 통해서 성령으로 충만함에 있은 그들이 성령으로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 나라 방언을 하여 예루살렘에 모인 각 나라 각 처에서 올라와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그리스도로서 생명의 주가 되시는 복음을 듣게 하시는 성령의 부으심에 의한 곧 성령의 임하심이 있었습니다. 이 성령의 임하심이 있으므로, 그래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베드로의 설교를 들을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를 묻게 하고, 베드로가 권면하는 대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여 회개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믿는 믿음에 있었습니다.
성령의 부으심, 성령으로 베푸시는 이 세례를 온 세상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은 세상 끝날까지 행하십니다. 그래서 주 예수님을 바라봄에 있게 합니다. 주 예수님을 주로 맞아들여 섬김에 있게 합니다.
우리가 이 성령으로 충만함에 있는 자인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참으로 큰 일을 겪음에 있은 것입니다. 그리고 말이죠.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성령으로 충만함에 있음으로써 우리에게서 성령께서 권능있게 행하시는 놀라운 일들에 있습니다. 우리들이 날마다 예수님을 주님이시라고 고백하는 믿음을 표하는 것이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대수롭게 여기며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생명에 있는 일을 갖는 것을 예사롭게 여기고 대수롭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 된, 그분의 생명으로 연합한 교회를 이룸에서 우리들의 믿음이 잘 서 나가나고 있음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 것인지요. 우리들이 받은 구원이 참으로 견고하여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서서 굳게 믿음의 뿌리를 내림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의 권능을 보고 있지 않는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