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미술상 심사평
이중섭의 탄생 100주기에 열린 제28회 이중섭미술상 심사는 다시 한 번 작가가 보여준 치열한 삶의 의미를 새겨보고, 동시에 한국 미술계의 다양성과 높아진 수준을 대변할 수 있는 수상자를 찾는 데 초점을 맞췄다. 두 차례 심사 과정을 거치면서 풍성한 후보군과 뛰어난 미술가들을 만나는 기쁨과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길에 대한 소신의 소유자이면서, 좋은 환경을 마다하고 조국으로 돌아와 그의 공간을 그렸던 이중섭처럼 한국이라는 장소성·지역성의 의미를 부각시킨 작가로 의견이 좁혀졌다.
수상자로 선정된 배병우는 한국 사진사(史)의 대표적 작가이다. 사진이 예술의 매체로 자리 잡기 시작한 지는 100년 남짓하지만, 한국 미술계에서는 최근 사진을 이용한 작가들의 약진이 눈에 띈다. 배병우 작가는 일찍부터 세계적 미술기관으로부터 작품 제작을 의뢰받았고 국내외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해 왔다.
그의 작품의 미덕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시간과 공간의 농도 깊은 표현이다. 그의 사진은 인내에서 탄생한다. 고요한 새벽, 해 질 녘의 향수, 안개 낀 오후에 자연이 만들어내는 가짜 같은 진짜 풍경을 시적(詩的)으로 포착하려고 많은 시간을 기다린다. 집요함에 가깝게 느껴지는 철저한 순간 포착이 잡아낸 풍경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회화적인데, 마치 먹으로만 그려낸 한 폭의 수묵화처럼 보인다.
배병우가 즐겨 포착한 대상인 꿈틀거리는 소나무, 사라질 듯 떠 있는 섬, 언덕과 산, 바다와 강물들은 모두 우리를 품었던 친숙한 환경이지만, 동시에 시간이 멈춘 듯한 태고의, 원초적인 이미지이기도 하다. 인간 이전의 시간, 기록 이전의 장소, 어떠한 소리도 배제된 사진들은 기묘하게도 관객의 기억을 자극한
다.
일상을 둘러싼 다양한 대상을 찍지만 숭고한 미감과 순수한 감정이 결합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이중섭 이후 계보를 이어가는 한국의 감성적 아름다움의 추구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없는 것을 표현하는 작가가 아닌, 존재하지만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이미지를 우리에게 전해주는 작가 배병우. 그의 작품 안에서 우리는 삶을 다른 시각으로 만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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