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시편 85편 7-13절
설교제목 : 땅에 깃든 사랑과 정의
또 다른 감사의 현실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우리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 한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4년을 돌아보며 지금까지 인도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추수감사절로 드리는 주일입니다. 한 해를 돌아보니 가장 소중한 감사는 건강과 생명이라는 공통된 내용이었습니다.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현재와 내일을 기약할 수 없습니다. 올 한 해 가까운 가족들을 떠나보면서 내 곁에 있는 이들에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것임을 깊이 새길 수 있어서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차마 감사합니다라고 입밖에 꺼낼 수 없는 불온함은 여전합니다. 세계는 여전히 불구덩이 속에서 포성의 소리가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군인들을 파병하여 외화벌이에 나서 극심한 갈등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미심쩍었지만, 설마설마했던 일들이 대통령 둘러싼 충격적인 일들이 벌어지는 정황과 증거들로 인하여, 근본 없이 돌아간 나라의 실태 앞에서 감사보다는 경멸과 조롱, 분개하는 여러 복합적 정서가 일어나 쓰레기를 청소하느라 감사를 입 밖으로 내뱉기가 조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의식적 상황과는 달리 저의 깊은 곳에서는 또다른 감격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하기만 합니다.
지난 금요일에 번역원고를 마무리하고 새벽에 꿈을 꾸었습니다. “저는 어떤 좁은 동굴같은 곳에 만들어진 기도처에 기어서 들어가니 모든 벽에 수많은 작은 인물 조각들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래쪽에는 중년의 여성이 기도하고 있어서 방해가 될까봐 그냥 나왔습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다시 그곳에 갔습니다. 기어들어가 앉은 제사로 석회벽에 조각된 상들을 만지며 무어라 기도를 하는데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정면 벽은 사라지고 앞에 일렁이는 바다의 파도가 앞에 펼쳐졌고, 태양빛이 아름답게 비추었습니다. 너무나 감동이 되어 다시 한번 눈물을 지었습니다. 잠시 깨었다가 다시 잠이 들었는데, 저는 군인이었습니다. 어떤 부대가 창설 이래 처음 기수식을 해서 나라로부터 인정받았습니다. 야외공간에는 전역을 위한 짐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전역식이 곧 진행될 예정이었습니다. 두 개의 소대원들이 우르르 나가서 서로 인사하고 전역을 했는데, 다음은 우리 소대 차례였습니다. 저는 속으로 아직 7월 18일이 일주일 남았는데 오늘 전역식을 하라고 하니 의아해했습니다. 저는 동료들과 나가면서 그동안 잘해주고 의지했던 건장한 젊은 사람들과 악수도 하고 그들을 안아주면서 고마웠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눈물이 살짝 고였고, 힘든 시간 잘 해낸 것에 감동받았습니다.”
외부적 상황과는 전혀 다른 고요함, 생동감, 감사, 고마움, 감동이 묻어난 꿈을 꾸고 이런 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지럽고 힘겨운 삶의 한복판에서 여전히 우리 내면에서는 감사와 감동으로 우리 삶을 채워져 가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을 통하여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사와 감동이 있는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또한 주님 때문에, 당신 때문에 감사를 고백하며 살 수 있는 인생 여정이기를 소망합니다.
고통의 이면
오늘 시편 기자는 포로되어 억압받다가 돌아온 자기 백성에게 축복을 주시길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돌아오셔서 진노를 풀으시고, 용서하시어 그 땅에 사랑과 정의가 깃들기를 기도합니다. 시편 85편은 한마디로 자신의 땅에 평화가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주의 깊게 시를 음미해보면, 시인은 포로된 상황에서 풀려나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에는 감당하기 힘든 일들, 실망스런 사건들로 위기에 처했습니다. 무언가 큰 전환을 경험하며 회복되었지만, 현실은 여전히 풀어야할 삶의 문제와 위기가 있었던 것입니다. 시인은 다시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주님의 땅에 은혜를 베푸시어, 포로가 된 야곱 자손을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백성들이 지은 죄악을 용서해 주시며, 그 모든 죄를 덮어주셨습니다(1-2).”
지난날 죄악으로 포로로 끌려갔음에도,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떠올립니다. 과거에 하나님과 맺은 약속, 선택받음은 헛된 자부심이 되어 교만하였습니다. 그런 부끄러운 역사를 떠올리며 하나님이 뜻하신 길에서 벗어나 욕망을 따라 산 죄를 용서해 주셨음을 상기하고 있습니다. 고통과 곤경, 어려움은 우리를 다시 반성할 수 있게 합니다. 팽창되고 교만한 삶을 돌이키게 합니다. 우리 삶에 어긋난 것들을 성찰하게 합니다. 심리적으로 고통과 방향상실은 외부세계로 향하던 정신에너지를 거두어, 내면세계로 향하도록 강제합니다. 이런 리비도의 후퇴는 기존의 삶의 태도를 정화하고 새롭게 변화하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결국 고통은 우리가 가급적 피하고 싶은 것이지만, 우리를 다시 새롭게 하려는 주님의 초대이자 동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통은 겉보기에 부정적이고 파괴적이지만, 그 이면에는 긍정적이며 건설적인 면을 내포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수용하기 어렵지만, 고통은 또 다른 선물인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 세계와 우리 자신이 경험하는 곤경과 어려움은 새로운 변환을 위한 해산의 진통처럼 보입니다. 이런 고난의 시간에 고통을 견디어내어, 고통의 이면에 있는 가치를 발견하고, 새롭게 변화되고 발전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이든 듣겠습니다
시인은 포로살이에서 돌아와 회복되었지만, 다시 고통에 처하여 하나님께서 다시 돌아오시어 구원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주님의 백성이 주님을 기뻐하도록 우리를 되살려 달라고 간청합니다. 때때로 우리 자신이 겸손히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고통은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를 되찾게 해줍니다. 내 뜻과 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것을 멈추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청할 수 있게 합니다. 긴장 속에서 경쟁하며 하나님을 망각하고 기쁨과 감사를 잃어버린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을 기뻐할 수 있도록 간구하게 합니다. 시인은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내가 듣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평화를 주실 것입니다(8a).”
이 구절은 기도의 열매, 변화된 태도가 무엇인지 일러줍니다. 기도는 나의 소망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듣겠습니다”라는 능동적 수용이 기도자의 태도이자 열매입니다. 기도의 결과물은 내맡기고 신뢰하는 태도의 생성입니다. 기도 속에 어떤 것을 말씀하시든지 순복하겠다는 순종이 가슴속에 담겨야 합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아기 예수의 탄생을 고지합니다. 마리아는 몹시 놀라고 당황하였습니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내가 아이를 임신하는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태어날 아이에 대하여 마리아에게 설명합니다. 그 이야기를 다 들은 후 마리아는 고백합니다.
“보십시오, 나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눅 1:38).”
수용하기 힘든 낯선 소식 앞에서 말씀대로 자신에게 이루어지기를 고백합니다. 이런 수용과 신뢰가 신성한 아기, 구세주의 탄생 그릇이 되게 합니다. 우리의 인생 여정에서 맛없는 음식은 뱉고, 맛있는 것만 먹을 수만은 없습니다. 내게 어떤 맛이 주어져도 신뢰하며 수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삶은 꽃이 피고, 열매 맺을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듣겠습니다”라는 시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수용하고 신뢰하는 태도로 우리의 삶이 조금씩 무르익어가는 복된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땅에 깃든 사랑과 정의
시인은 주님의 거룩한 백성들이 망령된 데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평화를 주실 것이고, 주님을 경외함으로 주님의 영광이 땅에 깃들 것임을 노래합니다.
“... 주님의 성도들이 망령된 데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평화를 주실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의 구원은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가까이 있으니, 주님의 영광이 우리 땅에 깃들 것입니다(8b-9).”
망령된 데로 가는 것은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서 우리에게 힘을 주고, 풍요를 줄 거라 믿는 것을 향하여 머리를 조아리며 따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머리를 조아리게 하는 것은 돈과 권력의 신입니다. 그런데 더 많은 부와 더 높은 권력을 향해갈수록 평화보다는 불화와 긴장이 증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킬 것이 많은 자는 불안한 법입니다. 무언가 쟁취하려는 자는 갈등에 직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 세계가 직면한 고통의 문제입니다. 또한 우리 개인이 직면한 고통의 문제입니다. 시인은 주님이 주시는 평화와 주님의 영광이 깃든 땅이 될 때 나타나는 것을 열거합니다.
사랑과 진실이 만나고, 정의는 평화와 서로 입을 맞춘다.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는 하늘에서 굽어본다. 주님께서 좋은 것을 내려 주시니, 우리의 땅은 열매를 맺는다(10-12).”
‘사랑’과 ‘진실’, ‘정의’와 ‘평화’는 진정한 구원의 내용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이요, 선물입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구현해야할 과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진실(진리)과 만나야 하고, 정의는 평화와 입을 맞추어야 합니다. 진실이 없는 사랑, 진리가 부재한 사랑은 맹목이 되고,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평화가 부재한 정의는 불평등을 조장하고, 불안과 갈등을 부추깁니다. 사랑이 진실과 만나고, 정의가 평화와 입을 맞추기 위해서는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서로의 특성들이 함께 어우러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내면에 이미 이런 사랑과 진실, 정의와 평화를 지향하는 씨를 뿌려놓으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과 진리가 구현될 때 인간됨과 아름다움을 느끼고, 정의와 평화가 실현될 때 따뜻한 희망이 솟아나는 이유일 것입니다. 무관심과 거짓, 불의와 전쟁을 보면 우리 마음에 기쁘지 않고 답답하고 때로 화가 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랑과 진실, 정의와 평화가 깃들기 위해서 이런 것들을 가꾸고 돌보는 책임을 떠맡아야 합니다. 우리 내면의 정원에서, 그리고 이 나라의 토양에 무관심과 거짓, 불의와 불평등을 솎아 내려할 때 우리의 땅에는 아름다운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감사절을 맞이하여 우리 안에 그리고 이 땅위에 평화가 깃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과 진리가 어우러지고, 정의가 평화와 입맞출 수 있는 길을 열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