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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순방기 (6)---예루살렘 편
聽林, 李和燮
2010년 03월12일(금), 맑은 날씨이다. 유대교에서 안식일(shabat)이 금요일 일몰시부터 토요일 일몰시까지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금요일과 토요일은 한국의 토요일, 일요일 주말과 같은 휴일이다. 구약성경 창세기2장3절에 의하면, 하느님께서 6일간 창조의 일을 모두 마치시고 7일 날에 쉬셨기 때문에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낸다. 이 숫자 개념을 농경지에도 적용하여 전체 면적의 1/7에 작물을 재배하지 않고 休耕하고 6/7에만 재배하며, 휴경 농경지는 해마다 윤번한다고 한다. 따라서 오늘과 내일은 이스라엘 산업체가 모두 쉬는 날이기 때문에 오늘은 예루살렘 구 도시인 성지를 관광하고 사해를 관광하는 날이다. 모두들 가벼운 마음으로 관광버스를 타고 오전 8시에 숙소를 출발하였다. 지중해 해안, 해발 0m로부터 해발 800m인 예루살렘 성지를 관광하고 해발 -400m인 사해를 관광하는 것이다. 회원들은 사해 체험을 위하여 수영복을 모두 준비하였다. 나도 어제 밤에 숙소 매점이 문을 막 닫으려 할 때 수영복을 샀다. 매점 판매원은 슬리퍼 한 켤레도 권하였는데, 해안가를 연상하던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 구매하지 않았다.
관광버스가 우리를 내려준 곳은 높이 800m의 감람산(올리브 산)정상 부근으로서 신약성경 사도행전1장9절~12절에 의하면 올리브 산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곳이다. 아래 사진은 감람산에서 예루살렘 동쪽 구 시가지를 조망하며 찍은 사진인데, 중앙에 황금으로 덮인 사원이 이슬람교의 오마르사원(황금사원, 바위사원)으로서 관광객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 사원의 위치는 솔로몬 왕(BC965~BC926)이 7년에 걸쳐 건축한 성전 자리인데, 유대교 ·그리스도교 · 이슬람교 등 유일신 종교들의 공통조상인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창세기22장2절) 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려 했던 제단 바위가 있는 곳이라고 한다. 지금은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AD571~632)가 하늘로 올라간 바위도 있는 자리라 하여 이슬람교의 성지가 되었다. 황금사원의 아래 서쪽 석벽의 일부가 유대인들의 성지인 ‘통곡의 벽’으로 알려져 있다. 감람산 바로 아래에는 돌무덤들이 있는 묘지 터인데, 유대교에 의하면 앞으로 올 메시아가 감람산으로 내려오면 그 메시아를 만날 순서대로 유대인 랍비의 무덤이 배열되어 있다고 한다.
그 메시아가 예루살렘 성벽 동쪽 문으로 들어간다고 하는데, 그 동쪽 문을 이슬람교 측이 막아 버렸다고 한다. 문이 막힌 동쪽 성문이 사진의 오른쪽 부분에 희미하게 보이고 관광객이 통과하는 성문은 동쪽 성문보다 더 오른 쪽에 있다.
올리브 산 정상에서 오른 쪽으로 이동하여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중턱 쯤 되는 곳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며 우신 곳(신약성경 루카복음서19장41절~44절)을 기념하는 성당인 눈물교회가 있었다. 이 교회는 이스라엘 예루살렘 동부 올리브 산에 있으며 프란체스코회 소속이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 말씀하셨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그때가 너에게 닥쳐올 것이다. 그러면 너의 원수들이 네 둘레에 공격 축대를 쌓은 다음,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조여들 것이다. 그리하여 너와 네 안에 있는 자녀들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눈물 교회를 조금 내려가면 왼쪽으로 게세마니 올리브 동산이 있었다. 요한복음서 18장 1절~2절에 의하면 키드론 골짜기 건너편 정원으로 기술된 곳으로서 게세마니는 기름 짜기의 뜻을 가진 히브리어이다.
이곳은 예수께서 종종 제자들을 데리고 가서 기도하신 곳이고,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밤에 번민하시며 최후의 기도를 하신 곳이다. 마태오 복음서 26장 36절~43절 그리고 마르코 복음서 14장 32절~40절에 의하면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라고 반복 기도하셨다. 기도하신 바위 위에 이를 기념하여 만국교회가 세워졌다. 다음 사진은 게세마니 동산에 있는 수령 1500년 된다는 올리브 나무이다.
드디어 예루살렘 구 시가지 성벽에 있는 통로 문에 다다랐다. 통로 문에서부터 이스라엘 군인들이 소총으로 무장한 채 근무를 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고난 받으신 십자가의 길 14처마다 기도와 묵상을 하려고 하였던 나의 애초 계획은 무산되었다. 십자가의 길 14처는 예수님께서 사형선고 받으심으로부터 해골 터(히브리 말로 골고타)에서 무덤에 묻히심까지 그 과정을 14처로 구분하여 프란체스코회가 만들었다고 한다. 그 길 구역은 이슬람교를 믿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거주지이고 상업 지대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무장 군인들이 골목마다 경계 근무를 하고 있었다. 요즈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 정착촌을 건설하는 문제로 분쟁이 있는 때이다. 그런데도 관광객이 많아서 어수선한 분위기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고통을 극복하고 승리하심으로써 이곳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성지로 되었고 그 덕을 팔레스타인 이슬람교 사람들이 누려서 오늘날에도 관광업으로 생계를 이어가게 하시니 참으로 자비하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 받으신 제1처”와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신 제2처를 지났고, 아래 사진은 제3처로서 “예수님께서 기력이 떨어져 넘어지신 곳”이다.
제3처 “예수님께서 기력이 떨어져 넘어지신 곳”
다음 사진은 제4처로서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신 곳”이다.
나는 이 장면을 볼 때마다 두 분의 눈이 마주 치지 않았으리라고 추측한다. 성모님은 아드님을 바라 보셨겠지만, 아들은 차마 어머니를 바라보지 못하였으리라. 레지오 마리애 수첩에 기술된 기도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사람들의 조롱과 모욕을 받으며 고통스러워하시는 아들 예수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성모님의 피맺힌 아픔을 봅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당신의 아들이 이 길을 걸어가야만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명의 길이 열린다는 것을 믿으며 고통을 참아내셨으니, 성모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전구하시어, 복음을 전하다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제4처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신 곳”
다음 사진은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를 진 제5처가 끝나고 예수님께서 다시 십자가를 지시며 일어나셨을 때 짚은 손자국”이라고 한다. 그 다음 사진은 제6처로서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린 곳”이다.
제5처의 끝 위치에서 십자가를 다시 지고 일어나셨던 예수님의 손자국.
제6처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 드린 곳”
어느덧 “기력이 다하신 예수님께서 두 번째 넘어지신 제7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신 제8처” 그리고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신 제9처”를 지나고 성묘 (聖墓) 교회의 정면이다. 성묘교회는 예수님의 무덤에 세운 교회이다.
성묘교회의 정면
성묘교회 안으로 들어서니 어두침침하였다. 사람들을 따라서 가다보니 “예수님께서 옷 벗김 당하신 제10처”를 지나 어느덧 제11처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이르렀다. 매를 맞고 십자가를 지고 이곳까지 끌려 오면서 당한 고통에 이어서, 루카 복음서 23장34절에 의하면, 못질을 당하실 때의 고통 속에서도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라고 청하셨다.
제11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
제12처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곳”인데, 휘황한 장식들이 가득하였다. 마태오복음서 27장46절과 마르코복음서 15장34절에 “예수님의 깊은 절망”이 표현되어 있다. 루카 복음서 23장 46절 및 요한복음서 19장30절에 의하면,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다 이루어졌다.”라고 말씀하시며 숨을 거두셨다.
제1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곳”
“제자들이 예수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린 제13처”를 어느덧 지나니 50여명의 순례자들이 줄서서 기다리는 곳이 나타났다. 바로 “예수님께서 묻히신 무덤 제14처”의 입구이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지 3일 만에 다시 살아 부활하신 곳이니 사람들이 붐볐다.
제14처 “예수님께서 묻히셨던 무덤 입구”
무덤 입구 맞은 편 경당에서 어느 부인이 Orthodox!라고 외쳤다. 내가 그 부인에게 확인해보니 기도하려고 그리스 정교회 신자들을 부르는 소리였다. 그 무덤 입구를 떠나며 나도 기도하였다.
“우리가 가진 세상의 명예도, 지위도, 권세도, 재산도, 건강도 죽음과 함께 사라지지만, 우리가 이웃에게 베푼 것, 사랑을 행한 것은 영원하리라. 예수님, 저에게도 주님의 사랑을 전하고 조금이라도 실행하는 은총을 허락하소서!”
일행은 성묘교회를 나와서 유대인 지역으로 접어들었다. 입구에 공항에서와 같이 짐을 검색하는 기계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가지고 있는 짐을 그 기계 속으로 통과시키는 검색 절차를 마쳤다. 이슬람 사원으로 가는 입구에도 이러한 검색 절차를 밟는다고 한다. 유대인 지역 골목에는 이스라엘 군인들이 없었다. 골목을 벗어나니 광장이 나타났고 그 광장 끝에 통곡의 벽이 보였다. 통곡의 벽으로 접근하려면 남자는 머리에 얹는 모자를 써야 하는데, 나는 서울에서 구매한 모자를 쓰고 다녔기 때문에 입구 마당에 비치한 것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었다. 통곡의 벽은 노천부분과 건물 안에 있는 부분이 있는데, 건물은 석벽에 붙여 지은 것처럼 보였다. 각각의 부분을 다음 2매의 사진에 실었다. 그 사진중 위의 것은 노천에 있는 벽이고, 아래 사진에 건물 안에서 기도하는 유대인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이 모습은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의 정통 복장이다. 검은 양복에 검은 모자 그리고 귀 앞으로 자란 옆머리 등이다. 옆머리를 기르면서 구레나룻도 같이 기르는 남성도 있다. 그리고 통곡의 벽 틈새에는 종이들이 많이 박혀 있는데, 유대교도들이 소원을 그 종이에 적어서 틈새에 밀어 넣은 것이다.
통곡의 벽 노천 부분, 벽을 향하여 오른쪽
통곡의 벽 건물 부분 내부, 벽을 향하여 왼쪽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서기 70년에 유대인들과 로마군의 전쟁에서 로마군이 유대인을 죽이고 성전을 불태워 파괴하였는데, 유일하게 남아 있던 서쪽 벽이 통곡의 벽이다. 예수님이 올리브 산 눈물교회 위치에서 예고하신 예루살렘 멸망의 증거가 이 ‘통곡의 벽’임을 역사는 알리라.
왠지 가슴이 답답하였다. 예루살렘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이스라엘 순방기 (6)----사해 편이 다음에 이어집니다.
첫댓글 14처의 기도문 까지 담으신 자상하심과 진솔하심이 말미에서 주님께 청하신 간절한 기도에 마음 뜨거웠읍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