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에 이르기를 한악은
忠宣王(충선왕)
때에 벼슬이 右大言(우대언)이 되었고 忠肅王(충숙왕)
때에 選部典書(선부전서)를 역임하고 知密直司事(지밀직사사)에 승진되었다.
충숙왕이 元(중국 원나라)나라 황제의 入朝(입조)하라는 부름을 받고 원나라에
들어가는데 악이 이를 수행하게 되었다.
그때 瀋(심)왕 暠(고)가 부당한 허욕에서 왕위를 넘겨다 보고 여러 가지 허구를 꾸며 헐뜯고
비방하여 왕을 괴롭히는지라 渥(악)이 탁월한 지혜와 기발한 책모로 간계를 막아내고 왕을 위기에서 탈출케 한
공훈으로 一等功臣(일등공신)의 鐵拳(훈패)를 하사하고 壁上(벽상)에 圓形(벽상)하고 上黨府院君(상당부원군)으로 책봉하고 宣力左理功臣號(선력좌리공신호)를 하사하였다.
벼슬이 여러차례 승진하여 贊成事(찬성사)에 이르렀고 忠惠王(충혜왕)
초기에 中贊(중찬)이 되었고 下世(하세)한 후에는 思肅(사숙)의 諡號(시호)를 주고 忠惠廟庭(충혜묘정)에 配享(배향)되었다.
아들은 大淳(대순),
公義(공의),
中禮(중례),
公衍(공연),
方信(방신)이니 大淳(대순)은 知都僉議司事(지도첨의사사)를 역임하였으나 忠定王(충정왕)
말기에는 機張監務(기장감무)로 좌천되기도 하였다.
公義(공의)는 淸城君(청성군)에 冊封(책봉)되고 諡號(시호)는 平簡(평간)이요,中禮(중례)는 벼슬이 政堂文學(정당문학)으로 繼城君(계성군)에 책봉되고,公衍(공연)은 覺星大禪師(각성대선사)이며,方信(방신)은 벼슬이 贊成事(찬성사)로 西原君(서원군)에 책봉되었다.
思肅公(사숙공)께서는 7男을 두셨는데 고려사에는 5男만이 전하여 있고 6男
公瑞(공서);
登科
不仕(등과 불사;
과거에
등과하였으나 벼슬을 하지 않음)
7남 方道(방도);
推忠協贊功臣
匡靖大夫 西海道副元師 諡忠靖(추충협찬공신 광정대부 서해도부원사 시충정)
墓所(묘소);
公의 墓所(묘소)는 長湍郡
東道面 細川(장단군 동도면 세천,
속칭 가극곡)
西坐卯向(서좌묘향)에 자리하고 있으며, 옛날부터 表石(표석)이 있었는데 端宗(단종)2년(甲戌
단기 3787,
서기 1454년)에 玄孫(현손)
右議政
確(우의정 확)등이 短碣(단갈)을 改竪(개수)하였다.
諱字(휘자)
號(호)는 思肅公(사숙공)을 지칭함은 물론이거니와卒及(졸급)
享秊(향년)은 公이 고려 원종15년 (甲戌
단기3607
서기1274년)에 태어나시고 충혜왕 3년(壬午
단기3675,
서기1342년)에 돌아가심을 명시하였고 또 後配宋氏(후배송씨)는 正尹(정윤)
宋某(송모)의 딸인데 4男을 출생하였다는 사실이다. 前後(전후)
족보에서 아직까지 보지 못한 信蹟(신적)을 오백년 후에 밝힌 것을 흔쾌히 생각하며,
그 전말을 譜版(보판)에 수록한다.
子
女 :
大淳 公義 仲禮 公衍 方信 公瑞 方道
공은 고려 공민왕 때의 문신이며 무신이다.우정승을 지내고 충혜왕묘에 배향되신 사숙공 渥(악)의 아들로 제학공 謝奇(사기)의 손자이며,
어머니는 변한국대부인 원주 원씨니 동지밀직사사
卿(경)의 따님이시다.
공민왕
4년(1355)에 과거에 급제하였다.동왕 7년에 상장군으로 동북면
병마사로 나갔다가 다시 내직으로 돌아와 추밀원 직학사로써 동왕 9년에 동지공거를 맡아 진사시를 취하고 정몽주 등 33인을 試取(시취;
시험을 보아 인재를 뽑음)하였다.
동왕
10년 직학사로서 다시 동북면 병마사로 나갔다.그런데 이 해 10월에 홍건적의 반 성과 사 유,
관선냉,
주원수,
파두반 등이 20만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삭주에 침범하고 계속 남하하므로 방어전을 폈으나 패하여 왕이 안동으로 피난 가고 경도는 함락되었다.동왕 11년에 공은 안 우,
이방실,
황 상,
김득배 등 여러 장군들과 더불어
20만 대군을 이끌고 맹공을 펼쳐 홍건적의 괴수인 사 유,
관선생 등을 참살하니 적들이 저희들끼리 서로 밟아
죽고 얼어서 죽는 등 시신이 성내에 가득하고 참수된 자가 십 여만명에 이르렀으며 적들이 元帝(원제)로부터 탈취하였던 옥새와 금은 보화,
병기 등을 노획하고 경도를
수복하였다.
이듬 해 그 공으로
일등공신에 녹훈되고 정당문학에 승진하였으며,
부모님과 처에게는
3계급을 초월한 관작을,
아들
1인에게는 7품직을 宣授(선수)하고 자손들에게는 음직을
서임하며,
田
100결과 노비 10구 등을 하사 받았다.
이 해 원나라가 덕흥군을 세워서 왕을 삼고 요양성의
군사를 거느리고 들어왔다.
공은 첨의평리로써 동북면도 지휘사가 되어 김귀와
더불어 화주에 주둔하여 동북방을 수비하고 있었는데 그 때 또 여진족이 변방을 침략하였으므로 공이 병마사 전이도,
이 희,
이용장 등을 파견하여 이를
격퇴하였다.
북변 사람 김방괘는 이성계의
고모부이다.
삼선과 삼개라는 두 아들이 있으니 여진에서
성장하였고 체력과 용력이 범인보다 뛰어났다.
원나라 덕흥군의 군병이 의주를 포위하고 선주에
칩입하자 이를 격퇴키 위하여 이성계가 급히 진군하게 되었다.
평소에는 이성계에게 감히 접근도 못하던 삼선과
삼개가 이 기회를 이용하여 여진을 유인하고 끌어 들여 화주 이북이 모두 함락되었다.
좌우로 적군을 맞아 영전연패하니 장수들이 전의를
상실하게 되었다.
그러나 공은 군사를 재정비하여 진격하도록 하고
이성계도 김 귀 등과 함께 3면으로 진격하여 적을 대파하고 화주,
함주 등 잃었던 땅을 모두
수복하였다.
삼선과 삼개는 여진으로 달아난 후 돌아 오지
못하였다.
왕은 이성계를 더욱 신뢰하게 되었고 공에게는 비단을
하사하여 그 공훈을 포상하고 개선 할 때는 내전에서 연회를 베풀고 축하하였다.
곧이어 서원군에 봉하였고 원나라에서는 홍건적을 토벌한 공으로 봉훈대부
비서승감을 선수하였으며,
훗날에 또 찬성사에 제수하였다.
공민왕 20년에 공을 첨의찬성사로,
이 색을 정당문학으로,
또한 이성계를 지문하부사로 삼으니
.
공민왕 23년에 자제위 홍 륜이 익비와 통정하여 임신되었음을 내시 최만생이 밀고하니
왕은 자기의 소원이 성취됨을 은근히 기뻐하며 말하되 "내일은 홍 륜을 죽여 이 비밀을 엄폐할 것인데 너도 이 사실을 알고 있으니
죽음을 면할 수 없구나"
하였다.
최만생과 홍 륜은 자기들이 살기 위하여 그날밤 왕을
시해하였다.
그 후 체포되어 국문을 열 때
韓
安,
권 진,
홍 관,
노 선 등도 공범이라 고백하니
韓
安은 공의 둘째 아들이요,
모두가 자제위 소속이다.
韓
安은 가혹한 고문에도 불구하고 범행에 가담한 바
없다고 끝까지 불복하였으나 §
1374년(甲寅)
공민왕 23년 ▷
명(明)나라 홍무(洪武)
7년 9월 갑신일§
국역(國譯)
여사제강(麗史提綱)
홍 륜 등의 일방적인 증언에 따라 공범으로 취급
받아 홍 륜 등과 함께 주살당하였다.
공은 먼 곳으로 귀양가고 친속들도
유배되었다.
그 후 우왕 2년(1376)에 집의 김승득과 헌납 안 정 등이 韓
安 과 노 선(盧瑄).
홍 관(洪寬)과 권 진(權瑨)
등과 동일하게 부모처자까지 극형에 처하자고 주장하니
시중 이인님,
찬성사 목인길,
평의 변안렬,
정당문학 홍중선,
문하시중 경복흥 등은 그 당시 한 안과 노 선은
범행에 간여한 바 없다고 불복하였슴에도 주살해 놓고 또 그 친속에게 극형을 가중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역설하였으나 왕은 이를 따르지 않고 체복사
이 영을 보내 공을 참화케 하고 장남 호군공 休(휴),
3남 녹사공 寧(녕),
4남 烈(렬)등도 모두 참하였다.
공은 벼슬을 시작한지 20여년에 홍건적,
여진족 등의 칩입과 우왕난정등의 내우외환한 와중에
출장입상으로 이를 극복하고 누누한 공을 세웠으나 일장춘몽으로 덧없이 미쳐 생각지도 못한 참화를 당하였으니 하늘이 무심치
않은가.
다만 불행 중 다행히도 장남 호군공과
3남 녹사공의 후손들이 조선시대에 이르러 현달하여 왕후가
두분,
부마가 두분,
경위재상이 수십인에 이르니 이 모두가 공의
적덕행의에 따른 응보로 생각된다.
공은 당시 유학의 태두인 목은(이색),
포은(정몽주),
이 초은 등과 문교하여 남은 글과 시도 많을 것으로
예상되나 현재까지 전래되는 것은 단 한구절 뿐이다.
배위는 교하군 부인 노씨이니 판서공 신의
따님이시다.
슬하에 5남 3녀를 생육하셨으니 장남(休),
차남(安),
3남(寧),
4남(烈)은 화를 입었고 5남(任)
판윤공만이 연소하여 화를
면하였다.
묘소는 장단 세곡산 소재 사숙공의 묘소인 안산에
있다고도 하고 혹은 실호되었다고 하나 현재 장단은 휴전서 내 DMZ에 위치하므로 이를 확인할 수도 없어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삼상리
서원군(방신)의 사당에 제단을 설치하고 매년 음력 3월 13일에 제사를 봉행한다.
제공 - 한진휘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자랑스러운 조상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