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야와 ‘자두연두기(煮豆燃豆萁)’
한비야의 저서들 / 쓰촨성(四川省) 두보공원의 삼조상(三曹像) / 후베이성(湖北省)의 적벽(赤壁)
얼마 전 신문을 읽다가 한비야님이 쓴 칼럼을 읽었는데 놀랍고도 재미있는 점을 발견하여 몇 마디 덧붙여 본다. 한비야(韓飛野/본명 한인순)는 1958년생이니 나보다 11년이나 연하지만 세계 각국의 오지(奧地)를 여행하며 많은 여행기를 써서 세계여행을 꿈꾸던 나에게는 동경과 존경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2010년에 시작한 일련의 나의 세계 배낭여행도 한비야님, 더 거슬러 오르면 김찬삼(金燦三) 교수의 여행기가 자극이 된 것이 사실이다. 그녀는 내가 알고 있던 오지여행가(奧地旅行家)보다는 오히려 국제구호활동가로, 베스트셀러의 여행기와 구호활동 경험을 기록한 작가로, 산(山) 애호가로 더 유명한 분이었다.
미국 유타(U of Utah/유타주)대학과 터프츠(U of Tufts/매사추세츠)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한비야는 2011년부터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교장을 맡고 있으며, 현재 이화여대에서 몇 개의 강좌를 맡고 있고, 또 다양한 계층의 대중들을 대상으로 활발한 강연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비야님의 글에서 재미있었던 것은 어릴 때 ‘말이 너무 빨라’ 고생을 했고, 그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려 시(詩)를 외우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는데 나의 젊은 시절과 너무나 비슷하여 웃음이 절로 난다. 그녀는 말이 빠르고 덤벙대는 자신이 너무 싫어 손등에 볼펜으로, 집안 구석 구석에 매직으로 ‘천천히’라고 써 놓고 고치려고 애썼지만 고치기 어려웠다는.... 어른이 된 후에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왜 그렇게 말이 빠르냐?’라는 말을 들으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나도 중고등학교 시절, 말이 너무 빨라 친구들로부터 ‘입에 오토바이를 달았냐?’라는 말을 듣기도 했고, 중학교 때에는 ‘교내 책 빨리 읽기 대회(速讀大會)’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친구들 이야기로는 말이 빠르긴 한데 발음이 비교적 정확하여 그래도 좀 나은 편이라고 했다. 말이 빠르다 보면 자칫 말을 더듬기 쉽고 얼버무리게 되는 경우도 많다. 나도 다분히 그런 경향을 보였는데 나는 의도적으로 말을 할 때 악센트를 넣고 입 모양을 바르게 하여 정확한 발음을 하려고 남모르는 노력을 하였음을 사람들은 모른다. 더군다나 교육대학으로 진학하게 되자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말을 차근차근히 하여 학생들이 잘 알아듣도록 하는 것이 필수(必須)가 아닌가? 나는 대학 시절, 빠른 말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기에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고 해야 하나, 한비야님의 이야기가 특별히 마음에 와 닫는다.
나는 그런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햇병아리 교사 시절에는 강원도 사투리와 빠른 말버릇 때문에 학생들로부터 놀림을 받곤 했다.
한비야님은 말이 빠른 콤플렉스를 교정하기 위해서 닥치는 대로 시를 외워댔다고 하는데 나도 시조(時調) 암송하기를 좋아했던 터라 유사점이 있고, 나와 다른 점은 머리가 좋았던 모양으로 40여 년간 읽은 시가 1만여 편, 저절로 외워진 시도 수백 편이라고 한다. 시를 큰소리로 낭송하기를 좋아한다는 그녀는 낭송(朗誦)하다가 보면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정확하게 발음해야 하므로 빠른 말투를 교정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녀의 글에서 또 놀라운 것 중의 하나는 중국 어학연수를 할 때 당시(唐詩)와 송시(宋詩)를 하루에 1편씩 100수 이상을 외웠다니 존경스럽다. 중국은 학교에서 시 암송하기를 권장하여 초등학생들도 300수 정도는 거뜬히 외운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일상생활 중 누가 상황에 맞는 고시(古詩)의 한 구절의 운(韻)을 떼면 옆에 있던 사람들이 목청을 돋우어 다음 구절을 합창하듯 외는 것을 여러 번 목격하여 부러웠다고 한다. 나도 서양의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 등장인물들이 셰익스피어(Shakespeare)의 희곡이나 유명 시인들의 명구(名句)들을 주고받는 것을 보고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煮豆燃豆萁(자두연두기) 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 本是同根生(본시동근생) 相煎何太急(상전하태급)
위의 한시 ‘자두연두기(煮豆燃豆萁)’는 일명 ‘칠보시(七步詩)’라고도 일컬어지는데 조조의 다섯째 아들 조식(曹植)이 지은 너무나 유명한 시인데.....
중국 춘추전국시대, 영웅(英雄)과 간웅(奸雄)으로 엇갈린 평가를 받는 조조(曹操)는 아들이 20명이나 있었는데 그 중 다섯째 아들인 조식(曹植)이 총명하여 특히 사랑하였다고 한다.
조조(曹操)는 원소(袁紹)의 근거지인 업성(鄴城)을 차지하고 동작대(銅雀臺)라는 화려한 누각(樓閣)을 세우는데 시재(詩才)가 뛰어난 다섯째 아들 조식(曹植)에게 동작대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시를 짓게 하니 곧 천하 명문장 동작대부(銅雀臺賦)이다. 이 동작대부(銅雀臺賦)가 저 유명한 적벽대전(赤壁大戰)의 빌미가 될 줄이야.... 조조가 죽자 셋째 아들인 조비(曹丕)가 황제 위(位)에 오르는데 아버지가 총애하던 동생 조식(曹植)을 없애버리려고 궁중으로 불렀다.
‘아버지가 너의 시재(詩才)를 사랑했으니 너의 재주를 한 번 시험해 보겠다. 형제에 관한 시를 짓되 형(兄), 제(弟)라는 글자를 넣지 않고 시를 지어야 하며 그것도 일곱 걸음을 떼는 동안에 지어 보아라. 짓지 못하면 네 목숨을 내 놓아야 한다.’
조식(曹植)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지은 시가 위의 ‘자두연두기(煮豆燃豆萁)’, 혹은 ‘칠보지시(七步之詩)’이다.
<참고> 조비(曹丕)가 조조의 첫째 아들이라는 설도 있으나 셋째가 맞다.
煮豆燃豆萁<콩대를 때서 콩을 삶으니> 豆在釜中泣<솥(가마) 속의 콩이 울고 있다.>
本是同根生<본래 한 뿌리에서 났건만> 相煎何太急<어찌 이리 급하게 삶아대는가?>
<煮- 삶을 자, 燃- 사를 연, 태울 연, 萁- 콩깍지 기, 콩대 기, 釜- 가마 부, 煎- 달일 전>
조비는 동생 조식이 지은 이 ‘자두연두기’를 듣고 크게 부끄러움을 느껴 동생을 살려주었는데 조비(曹丕) 또한 그 아버지 조조(曹操)와 더불어 명문장가로 이름을 날려서 후세 사람들은 이 세 사람을 삼조(三曹)라 부르며 그 재능을 기렸다.
한비야가 어느 날 우연히 중국 고위관리를 만났는데 그 관리가 남북한(南北韓)의 통일은 절대로 안된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에 그러면 중국과 대만(臺灣)의 통일도 불가능하겠다고 맞장구를 쳐서 분위기가 썰렁해졌다고 한다. 잠깐 침묵이 흐른 뒤 그 중국 관리가 갑자기 위 조식(曹植)의 ‘자두연두기’ 첫 두 소절을 읊더라고 한다. 한교수가 곧 받아 뒤의 두 소절을 읊었더니 그 관리가 놀란 눈으로 쳐다보더니 악수를 청하며 술을 권하여 분위기가 풀어졌다고 하는데 그 장면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비야는 멋진 여자다.(이러쿵 저러쿵 말도 조금 있지만...)
<적벽대전(赤壁大戰)>
춘추전국시대, 오(吳)나라 교국로(喬國老)의 두 딸인 대교(大喬)와 소교(小喬)는 천하절색으로 강남이교(江南二喬)라 불리며 미색(美色)을 자랑했는데 언니인 대교(大喬)는 장사환왕(長沙桓王) 손책(孫策), 동생 소교(小喬)는 대장군 주유(周瑜)와 결혼을 한다.
손책(孫策)은 강동(江東/양자강의 동남쪽)의 호랑이로 불리던 손견(孫堅)의 첫째 아들로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한 맹장(猛將)으로 소패왕(小覇王)이라 불렸으나 26세에 자객의 손에 죽자 둘째 아들인 손권(孫權)이 왕위에 올라 강동을 평정하고 오(吳)의 초대황제에 오른다.
AD 2세기,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유비(劉備)의 근거지인 촉한(蜀漢) 땅으로 쳐들어오자 제갈공명(諸葛孔明)은 오(吳)나라 손권(孫權)을 찾아가 참전을 유도하지만 오의 대장군 주유(周瑜)는 남의 전쟁에 끼어들지 않겠다고 참전(參戰)을 주저한다. 그러자 제갈공명(諸葛孔明)은 조조(曹操)가 즐겨 읊는다는 동작대부(銅雀臺賦)를 이용하는데.....
“连二桥于东西兮,若长空之蝃蝀”<련이교우동서혜, 약장공지체동>
‘동서로 이어진 두 다리(二桥)는 마치 무지개처럼 하늘에 걸려있다.’ 를
“揽二喬于东南兮,乐朝夕之与共”<람이교우동남혜, 낙조석지여공>
‘동남쪽, 곧 동오(東吳)의 두 미인(二喬)을 끌어안고 아침저녁으로 즐겨보리라.’ 로
슬쩍 바꾸어 들려주며 조조가 조석(朝夕)으로 즐겨 읊는다더라고 했다.
두 개의 다리라는 ‘이교(二桥)’와 두 미인을 칭하는 ‘이교(二喬)’는 중국어로도 발음이 같은 모양이다.
참전을 망설이던 주유는 제갈공명의 이야기를 듣고 크게 노하여 전쟁을 결심하고, 마침내 저 유명한 적벽대전(赤壁大戰)이 일어난다. 결국, 유비와 손권 연합군은 조조의 대군을 양쯔강안(揚子江岸) 적벽(赤壁)에서 대파한다.
제갈공명의 지략(智略)이 멋지게 성공하는 장면으로 삼국지의 하이라이트이다. 이 적벽대전 이후 중국은 위(魏/조조), 오(吳/손권), 촉한(蜀漢/유비)의 삼국이 형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