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그림 같은 도시 샌안토니오(San Antonio)
알라모 요새 / 리버워크(River Walk) / 당시 민병대(民兵隊) 모습 재현
러벅에서 심심하여 가족들의 걱정을 뿌리치고 홀로 남부 샌 안토니오(San Antonio)로 훌쩍 떠났다.
거리로 보면 서울에서 부산정도의 거리로, 중간쯤 텍사스 주도인 어스틴(Austin)을 지나간다.
샌 안토니오(San Antonio)는 영화로도 잘 알려진 알라모(Alamo) 요새가 있는 텍사스 남부의 아름다운 도시로, 2월 초에 갔는데도 따뜻한 날씨로 반 팔을 입은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이곳은 원래 멕시코 땅이었던 까닭으로 건물들이나 도시 모습 전체가 미국이라기보다는 멕시코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유명한 리버워크(River Walk)로 도심 한가운데로 흐르는 강이 도시 지표면보다 5~6m 낮아서 계단을 통하여 강변까지 내려가야 하는데 강변에는 거대한 나무들이 들어차 있고 수많은 아름다운 다리는 물론, 건물 밑까지 배가 드나들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폭이 5~6m 정도로 꼬불꼬불한 운하(運河)는 양쪽 강변을 따라 산책로도 잘 꾸며져 있고, 작은 관광 크루즈(Cruz)가 쉴새 없이 다니고 있어 나도 타보려고 기다렸는데 넘쳐나는 관광객이 길게 늘어서 있어 줄 뒤에 서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8달러 50센트를 받는 관광 크루즈는 45분 정도 도심 가운데 운하를 도는데 저녁이 되면 양쪽 강안에는 수많은 카페와 노천 음식점들이 오색 불빛을 밝히며 손님들을 손짓하고, 5~6명으로 구성된 마리아치(Mariachi-솜브레로<Sombrero/밀집모자>를 쓴 멕시코 전통 복장의 악단)들이 식당을 돌며 기타(Guitar)와 아코디언 반주에 맞추어 경쾌한 멕시코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매우 이색적이었다.
싸구려 숙소를 찾아 1박하고 다음 날은 미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였던 비극(悲劇)의 현장 알라모(Alamo) 요새를 둘러보았다. 18세기 초 프란체스코 수도회(修道會)의 전도소(傳道所)로 이곳에 지어졌던 알라모(Alamo)는 수도회에서 이 지역의 전도(傳道)를 포기하자 스페인(사실 멕시코)이 점령하여 요새로 사용했는데 이곳 주변에 미루나무가 많아 미루나무라는 의미의 알라모(Alamo:스페인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1835년 12월, 텍사스 의용군 부대는 멕시코 군대를 몰아내고 알라모를 되찾는데 멕시코의 반격이 시작되자 샘 휴스턴(Sam Houston)을 비롯한 텍사스 지도층은 이곳을 포기를 결정하고 철수(撤收)하지만 이 지역 사람들로 구성된 의용군(義勇軍)들은 끝까지 사수(死守)하기로 결의하고 철수를 거부한다.
1836년 2월 23일, 멕시코의 ‘산타 안나(Santa Anna)’ 장군이 이끄는 멕시코 정규군의 대공세가 시작되자 의용군을 이끌었던 제임스 보이(James Bowie) 대령과 윌리엄 트래비스(William Travis) 대령은 183명의 의용군을 지휘하여 5.000여 명의 멕시코군에 맞서 14일간이나 저항하다가 전원이 전사(戰死)한다.
이것이 알라모 전투(Battle of the Alamo)로, 멕시코군도 1.000~1.600명의 전사자를 냈다고 한다.
미국 의용군들이 알라모 요새에서 14일간 버티어 준 덕분으로 샘 휴스턴 장군이 이끄는 미국 정규군은 방어태세를 갖출 수 있었고, 결국 철수하였던 미국 정규군이 다시 공격하여 멕시코군을 격파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이 전쟁 결과로 멕시코 땅이었던 텍사스(Texas), 뉴멕시코(New Mexico), 애리조나(Arizona) 일부의 엄청난 땅이 미국 영토(領土)가 되었고 그 이후, 알라모(Alamo)는 텍사스 인들의 자랑이자 영웅적 저항(抵抗)을 상징하는 장소가 되었으며 전사자들 전원은 영웅(英雄)으로 추앙받게 된다.
매월 첫 토요일은 그날을 기념하여 각종 전시회가 열리고 의용군 복장을 한 자원봉사자들이 당시 사용하였던 무기들을 들고 행진하는 모습도 보여주는데 내가 갔던 날이 마침 2월 첫 토요일이라 운 좋게도 수많은 관광객과 함께 모든 것을 보며 과거의 아픈 상처를 되새겨 볼 수 있었다.
당시, 전투에서 어린아이들 7명과 여자들 8명만이 살아남았다는 조그만 방, 수많은 당시의 유물들을 전시한 몇 개의 방과 꽤 넓은 안마당, 외벽 등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알라모 요새 앞의 거리 또한 관광객들로 넘치고, 길거리는 예쁘게 치장한 꽃마차 여러 대가 관광객들을 태우고 있었으며 수많은 기념품 가게들이 들어차 있었다.
관광 꽃마차 / 알라모 추모 타워 / 한국전(6.25) 기념 조형물
또, 근처의 자그마한 공원에는 한국전쟁(6.25)과 월남전(越南戰) 참전기념 조형물이 있었는데 한국전 참전기념 조형물은 겨울철인 듯, 참호 속에 방한복을 입은 미군 두 명이 피곤한 표정으로 보초를 서고 있는 모습이어서 가슴이 쓰라렸다.
그 둘레로는 전사자들의 명단이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고...
벽면에는 한국전쟁(6.25)에서 미군 5만여 명이 전사하였다고 적혀 있었다.
이곳 샌 안토니오(San Antonio)는 지극히 멕시코적인 모습으로, 또 미국 자존심의 대명사인 알라모 요새로 미국인들이 가장 와보고 싶은 관광지 중의 하나라고 한다.
이곳 알라모는 텍사스 인들의 자랑이자 영웅적 저항의 상징이 되었으며 전사자들 전원이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이것이 멕시코전쟁 중 ‘알라모 전투’로 후일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알라모요새 안쪽은 가운데 메인 홀에 성당이 있고 둘레는 작은 방들이 있는데 당시 전투에서 어린아이와 여자들 15명 만이 살아남았다는 조그만 방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 밖에 수많은 당시의 유물들을 전시한 몇 개의 방과 꽤 넓은 안마당, 총탄 자국이 선명한 외벽 등도 잘 보존되어 있다.
샌안토니오의 자랑 리버워크 / 미국의 자존심 알라모 요새(집사람, 손녀)
몇 년 후, 집사람과 다시 미국 딸네 집을 방문했을 때 손녀들을 데리고 다시 이곳을 방문하여 다시 한번 골고루 둘러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