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4:22-33 관점과 시선
‘피에타’는 미켈란젤로 인생의 최대 걸작으로, 조각상이다.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이다. 수 많은 예술가들이 피에타를 만들었지만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일 것이다. 그는 평생에 걸쳐 3개의 ‘피에타’를 제작하였다. ‘베드로 성당의 피에타’, ‘피렌체 두오모 성당의 피에타’, ‘스포르체스코 성에 있는 피에타’가 그것이다. 노안으로 거의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촉각에 의지하여 세상을 떠나기 6일 전까지도 매달려 작업했던 작품이 ‘피에타’일 정도로, 미켈란젤로는 ‘피에타’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미켈란젤로가 만든 3개의 작품 중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동시에 모든 ‘피에타’ 조각 최고로 추앙받는 작품은 바로 ‘베드로 성당의 피에타’이다. 높이 174cm의 이 대형 조각은 대리석을 깎아 만들었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굉장히 사실적이다. ‘피에타’ 작품을 보고 있으면, 마치 행위 예술가가 앉아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만지면 움직일 것만 같고 살아 숨을 쉬고 있다고 느낄 정도로 말이다. 무엇보다 ‘피에타’는 고요하고 절제된 슬픔을 간직한, 뭔가 초월한 듯한 마리아의 표정이 큰 특징이다. '베드로 성당의 피에타’가 추앙을 받는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의 관점과 시선’에서 바라본 ‘피에타’이기 때문이다. '피에타’는 정면이 아닌 위에서 내려다 볼 때, 미켈란젤로의 진짜 의도를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처음에 ‘피에타’ 작품을 보고 “마리아가 예수님보다 크게 제작되었다!”, “마리아가 주인공인 것처럼 보인다!” 고 비난했을 때,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말했다.
“이 조각은 하나님에게 바치는 것이니 감히 인간의 관점과 시선으로 평가하지 말라.” 그의 말대로 ‘피에타’는 하나님의 관점과 시선으로 바라보려면 위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위에서 내려다 볼 때, 작품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인간의 눈높이에서는 마리아의 커다란 존재감이 눈에 띄지만, 위에서 보았을 때 즉,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때는 ‘피에타’의 주인공이 마리아가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미켈란젤로는‘피에타’를 ‘인간의 관점과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의 관점과 시선’으로 바라볼 것을 말했고, 그의 말대로 사람들이 ‘하나님의 관점과 시선’으로 위에서 바라보았을 때, 마리아보다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이 더 크게 보이게 되었다. 그렇다. 어떤 관점과 시선으로 바라보는가에 따라 작품의 해석이 달라지듯이 우리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난 모든 문제의 상황들을 어떤 관점과 시선으로 바라보는가에 따라 삶의 반응이 달라지고 삶의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황보다 중요한 것이 그 상황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과 시선인 것이다. 오늘 본문이 그것을 말씀하시는데 어떤 관점과 시선으로 상황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고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후, 사람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을 삼으려고 할 그때에, 예수님이 제자들을 즉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셨다. (예수님의 관점과 시선은 사람에게 있지 않음, 인기와 성공에 있지 않으심 -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께 있으심 - 예수님은 무리를 다 보내신 후 홀로 기도하러 가심 - 늘 예배자로 하나님 앞에 계심)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배를 타고 건너편 마을로 가던 중, 제자들이 탄 배는, 이미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거센 풍랑에 몹시 시달리고 있었다. 제자들이 당하는 고난을 다 아시고 예수님이 밤 사경에 (1경-저녁 6시 부터 9시, 2경은 저녁 9시부터 새벽 12시, 3경은 새벽 12시부터 3시, 사경은 새벽 3시에서 6시)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로 오셨다. (왜 오셨을까? 제자들이 만난 풍랑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고 오심) 히4:15에 보면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하셨다.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는 주님이시기에 우리들이 감당하지 못할 때는 오셔서 피할 길을 열어주신다. 고전10:13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하셨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므로 주님이 감당할 시험만 주시고 감당하지 못할 시험에는 반드시 피할 길을 열어 주실 것이니 염려하지 말고 주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관점과 시선으로 지금 내가 만난 모든 상황을 바라보길 축원한다.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았던 제자들은 어떤 관점과 시선으로 예수님을 바라보았는가? 하나님의 관점과 시선이 아닌 인간의 관점과 시선으로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유령’으로 보았고 예수님을 두려워하였다. 제자들이 만난 풍랑을 바라보면서 염려와 두려움 속에 빠져 있다 보니 믿음을 다 잃어버렸고 믿음 없는 시선으로 주님을 바라보니 주님이 아닌 유령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렇다, 우리들도 제자들처럼 만난 문제의 풍랑을 인간의 관점과 시선으로 바라볼 때가 많이 있다. 그래서 염려하게 되고, 불안과 두려움 속에 부정적인 반응 즉 불신의 반응과 불순종의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오늘 본문의 제자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다. (지금까지 주가 주시는 기적의 은혜를 체험하고 살았으면서도... 풍랑을 만나면 그 기적의 주님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고 분별하지 못함 - 제자들은 지금까지 수많은 기적을 체험했고 방금 전에도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함) 26-27절에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는데 주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여전히 풍랑의 두려움 속에 바다 위를 걸어 오시는 전능하신 예수님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수제자 베드로가 인간의 관점과 시선으로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의 관점과 시선으로 예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28절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베드로가 인간의 관점과 시선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관점과 시선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믿음의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예수님은 수제자 베드로의 반응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29절에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예수님은 물 위를 걸어오시는 전능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간구하는 베드로에게 ‘오라’고 말씀하셨고 베드로는 예수님이 주신 응답에 아직 풍랑이 거센 바다 위로 걸어가기 위해 배에서 내렸다. 작은 믿음으로 시작하여 큰 믿음의 역사로 성장하였다. (처음에는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하게 됨 - 베드로의 반응을 통해 알 수 있음 - 관점과 시선이 바뀌면 베드로처럼 배에서 내릴 수 있고 물 위를 걸을 수 있게 되는 것임) 베드로가 하나님의 관점과 시선으로 풍랑을 바라보지 않고 주님 주신 말씀을 바라보고, 물 위를 걸으시는 주님을 바라볼 때, 주님과 같이 물 위를 걷는 기적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다. 그렇게 계속 하나님의 관점과 시선으로 반응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베드로는 순간 물어오는 거센 바람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베드로는 다시 인간의 관점과 시선으로 반응하게 되었다. 그렇게 하나님의 관점과 시선을 잃어버리게 되었을 때, 베드로는 물에 빠지게 되었다. 말하자면 물을 지배할 수 없는 연약한 인간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바람으로 인해 믿음을 잃어버리게 되니 물 위를 더 이상 걷지 못하게 되었고, 물에 빠지는 처지가 되었다. 30절에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베드로가 물에 빠진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여러분, 두려움은 바로 불신앙의 열매다. 믿음으로 충만하면 절대로 두려움이 없지만, 믿음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문제의 상황을 두려워하게 된다. 인간의 관점과 시선 때문에 물 위를 걸으시는 주님, 그 물 위를 걷게 해 주신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바람을 바라 본 베드로는 결국 물에 빠졌고, 죽음의 위기를 만나게 되었다. 그때, 다시 하나님의 관점과 시선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그 시작이 바로 주님을 부르는 것이었다. (베드로는 바람을 보지 않고 예수님을 바라보며 간구함 - '구원해 주세요' - 기도의 시작이 나의 관점과 시선을 말해 줌 - 인간의 관점과 시선을 가진 자는 물에 빠져 죽어가면서도 절대로 예수님을 부르지 않음 - 기도하지 않음) 예수님은 다시 주님을 바라보며 간구하는 베드로를, 물에 빠져 죽어가는 베드로를 빠진 물속에서 건져 주셨다. (사망의 바다에서 건져주심 - 베드로를 외면하지 않으심) 31-32절에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들이 만난 풍랑의 상황들을 바라보며, 주님을 의심하게 된다면 결국 베드로처럼 문제의 상황을 정복하지 못하고 그 상황에 다시 빠지게 될 것이다. 이 시간, 우리 모두는 어떤 관점과 시선으로 문제의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 인간의 관점과 시선을 버리고 하나님의 관점과 시선으로 우리 주님만을 바라본다면 지금 우리들이 만난 풍랑의 문제는 작게 보이게 되고, 오직 예수님만 크게 보이게 되므로 물 위를 걷게 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