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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도 오디션 - 우리 부부 이야기 ]
오디션 발표곡을 어떤곡으로 선택할 것인가?
단원마다 해결책이 다르겠지만, 우리 부부는 오래도록 서로 의논해서 결정하고 있다.
특히, 나의 장단점을 손바닥 드려다보듯 훤히 꿰뚫고 있는 아내는 나의 조언자로서 큰 역할을 하며, 내가 감당 못할 곡을 무리하게 선택해서 연주를 망치는 일이 없도록 충고해 주고, 가창중의 나쁜 습관이나 어울리지 않는 제스츄어를 지적하며 바로잡도록 도와주고 있다.
나에게는 노래 부르는 도중 고음 포르테 부분에서 머리를 흔들며 강조하는 나쁜 버릇이 있기에, 유투브 영상을 통해 나의 이런 결점을 확인하며 고치려고 애를 써왔다. 그 결과 올해에 조금은 개선됐으나 아직도 완벽하게 고쳐진 것은 아니기에 내년 오디션 때는 완벽하게 고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올해에도 아내를 포함한 동료들의 연주 기량과 매너에서 내게 부족한 점을 많이 깨닫고 배운다. 고마운 일이다. 아마츄어로서 쉽사리 차지할 수 없는 독창의 기회를 자체적으로 가진다는 사실과, 무대 긴장감에 익숙해지고 숙달되며 솔로무대의 경력을 쌓는다는 사실이 진정으로 고맙고 자랑스럽다.
그리고 이 긴장되는 연주 순간을 의연하고 진지하게 자신감을 갖고 당당하고도 능숙하게 표현하는 동료들이 부럽고 감탄스럽고 자랑스럽다. 그들 모두가 나의 살아 있는 멘토들이며, 생동감 넘치는 스승들이다.
특히 내게 결정적으로 부족한 부분은 연주 도중의 시선처리이기에 안정적인 포즈에 자신감을 지니고 자연스런 시선으로 가창하는 동료들로부터 큰 감동을 받는다.
가창력은 하루 아침에 개선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많은 깨달음과 학습과 시행착오 끝에 아주 조금씩 개선되는 것이라서 짧은 시간에 개선되기를 바라는 것은 헛된 욕심이라 생각되지만, 가창자세나 시선처리는 마음먹기에 따라서 비교적 단기간에 개선될 수 있음직도 한데....
그러나 이 문제도 절대로 쉽게 자리잡혀지는 것이 아님을 다시 깨닫는다. 내게 감동을 주는 동료의 가창 자세나 시선처리가 모두 오랜세월 그 동료의 생애를 통해 정착된 것이고 그 동료에게 익숙해지는 데에도 실로 많은 시간이 소요된 것이어서, 탐난다고 해서 덥석 내가 바로 도입하거나 본뜰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격청단 모든 동료의 연주가 내게는 신선하고 자극이며 깨우침인데, 특히 세월이 흐를수록 젊은 동료들에게 점점 시선이 더 가게 된다. 젊은 단원들에게서는 부드럽고 힘차고 유연하며 긴호흡에 감탄하게 되며, 내 나이가 들어갈수록 성량이 줄어들고 호흡이 짧아지며 비브라토에 거칠고 메마르고 탁한 소리가 나지 않을까 조심하게 된다.
나이가 들면서 오디션에 임하는 느낌과 자세도 점점 달라진다. 특히 단원중에서도 랭킹 3,4위의 고령자에 속하는 우리 부부는 80세를 넘어서게 되면서 과연 이 아름다운 축제에 앞으로 얼마나 더 지금의 건강상태를 유지하며 참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스스로의 질문에 숙연하게 되고, 매번 맞는 오디션이 마치 마지막 순간이듯 감상적이 되거나 숙연해지곤 한다. 자신의 운명을 단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이기에 이런 현상은 해가 갈수록 더욱 심화되고 절박해질 것이라 믿는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 짙어지는 이런 처연함과 비장함 때문인지 아내는 이번 오디션 곡과 의상 선택에 장고에 장고를 거듭한 끝에,
곡은 핸델의 오페라 [크세르크세스]에 나오는 아리아 [라르고]로,
의상은 친정 부친이 아끼던 연미복으로,
그리고 액센트 포인트로 할머니의 사랑이 듬뿍 담긴 꽃분홍색 명주 머플러로 골랐다.
자신이 소유했던 물품을 쉽사리 버리지 못하는 집념으로 무엇이든 오래도록 간직해 가는 아내에게는 선친의 유물인 연미복이나 할머니가 직접 아내를 위해 직조하고 염색해준 꽃분홍색 명주 머플러에도 또한 매우 소중한 의미와 사연들이 풍성하게 담겨져 있다.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연미복은 건국 이듬해 1949년부터 1961년까지 발행됐던 평화신문 출판부문 대표였던 장인어른이 주요 국가행사에 착용했던 유품으로 당대의 문화계 유명인사들과의 돈독했던 교분도 아내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있다. 서예가 위창 오세창(葦滄 吳世昌)님이나 명창 이은관(李殷官)님 같은 당대 문화계의 유명인사들도 선친의 막역한 지인분들이었다. 아내는 오세창선생이 장인의 생일 선물로 남겨준 휘호 장락무극-長樂無極-이 오늘날 우리 후손에게까지 그 덕담이 힘차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다. 아내가 아끼는 이 소장품은 오래도록 우리집 거실의 주요 장식요소가 돼있기도 하다.
아내가 이번 오디션 발표때 착용한 연미복에는 장인어른 전성기의 자부심과 기품이 서려있을 뿐만 아니라, 19년전 아내가 61세때 공연했던 톰죤슨과 하베이 슈밋트의 번안 뮤지컬 [환타스틱스](임수택교수 연출)에서 해설과 주인공을 겸하는 엘가로 역으로 활약하며 박수갈채를 이끌어낸 설렘과 열정이 베어 있는 무대의상이기도 했다. 이 공연을 환갑이 넘은 여고동창들이 17명이나 찾아와 지켜봐준 것도 아내의 자랑스런 추억 사진으로 남아 있다.
한편, 액센트 포인트로 목에 두른 꽃분홍색 화사한 명주 머플러는 아내가 고향 경기도 화성군 동탄면 석우리에서 11세로 6.25동란 피난살이를 하던 시절, 할머니가 직접 누에를 키우고 고치를 삶고 명주실을 뽑아내고 직접 직조기로 달가닥거리며 한올한올 비단을 짜내고 공들여 곱게 염색하는 모든 과정을 곁에서 지켜봤고,
먼훗날 큰손녀인 아내가 시집갈 때 예물로 만들어 주겠다는 할머니의 약속을 농담으로 알았으나 훗날 할머니가 그 약속대로 목화솜을 가득 채우고 폭신한 명주이불로 만들어 줘 우리 부부의 신혼시절을 따듯하게 품어줬던 뜻깊은 유품이었고,
훗날 바느질 솜씨가 예사롭지 않은 아내가 그 이불 커버를 여러개의 머플러로 리폼했던 것으로 69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최초의 부드러움과 화사한 색상을 고스란히 그대로 간직해온 명품이었다.
아리아 [라르고] 또한 아내에게는 깊은 사연이 깃든 곡이었다. 이곡은 여고 3학년때 교내 콩클에서 지정곡 현제명의 [산들바람]에 이어 자유곡으로 불러 입상했던 곡으로서 아내에게 생애 최초로 자신의 경쟁력이 성악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며 전교생들 가운데 커다란 존재감을 불러 일으킨 곡이었고,
당시 콩클 심사위원장이었던 이동훈선생님이 아내를 극찬하고, 대회가 끝난후 바로 교장실로 데려가 다시 한번 교장선생님 앞에서 노래부르게 하며 격려해준 일생 잊을 수 없는 곡이었다.
단기 4290년(서기 1957년), 서울 수복을 기념해서 9월28일 열린 그 교내 콩클의 심사위원으로 이동훈선생님, 장일남선생님과 정재동선생님등 훗날 대학교수로 옮겨가며 우리나라 음악계에 혁혁한 공을 세운 중진들이 망라돼 있었던 점도 아내의 자랑스런 추억 속에 아스란히 담겨있다.
특히 여중 시절, 아내를 볼때마다 '뭘 먹고 이렇게 살이 쪘냐?'면서 볼을 꼬집으며 귀여워해 주셨던 장일남선생님과, 여고시절 겨울 방학때 합창반 지도를 해주시던 어느날 도시락이 수북히 쌓인 훈훈한 난로가에 모두 둘러 앉아 환담중 어느 수다쟁이 학생을 훈계하다가 문득 시선을 돌려 아내를 정시하며 '너는 참 건실해...'라며 공개적으로 칭찬해 감동을 안겨줬던 정재동선생님은 아내의 생애 전반 가슴 깊이 자리잡혀 있는 존경하는 스승들이다.
[라르고]... 이곡은 또한 콩클입상 이후 아내가 동기생들에게 갑작스레 인기가 치솟아 졸업후 친구들의 결혼식에 빈번하게 초대되며 여러차례 축가로 불려진 곡이기도 했다.
친구들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러주는 사람은 정작 자신은 결혼을 늦게 하게 된다는 구설수에 망설여져서 나중에는 되도록 친구들의 결혼식 축하연주를 사양하기는 했으나, 사실 걱정하던 구설수 그대로 아내는 그 당시로서는 한참 노처녀인 스물아홉살이 돼서야 나와 결혼할 수 있었다. 그 시절 보통 여자들은 스물다섯살전에 시집을 가곤했다.
여자 나이 40세를 넘어서도 올드미스라는 인식이 전혀 없어진 지금 세태와는 격세지감이 있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얘기이기는 하지만,
동갑내기인 내가 군복무를 마치고 취직할 때까지 기다리느라 마음 고생이 심했을 아내를 생각하면 늘 고맙고, 특히 나를 성가대원으로 인도하고 마침내 오묘한 합창의 세계로 이끌어 우리 노부부에게 오늘날의 황금 시즌을 마련해준 것도 모두 아내 덕분이니 나는 늘 아내를 업고 다녀도 모자랄 입장이다.
매사가 제 눈의 안경이라지만, 나의 기준으로 봤을 때, 아내는 올해 체력 컨디션도 무난하고 의욕도 드높아 이번 오디션에서 어느때보다도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잘 펼친듯하다.
자신의 음역대에 맞춰 원음보다 2도를 낮춰 부른 덕분이기도 하고, 악보를 통채로 변환시키며 격려해준 바리톤 박창수님의 노고와, 낯선 악보를 초견으로 오디션 현장에서 바로 맞춤 반주해준 피아니스트 김윤경님의 멋진 협연도 크게 뒷받침됐다.
50대 중반, 전업 주부에서 탈출해 20여년 동안 연극과 뮤지컬로 크고 작은 수많은 무대에 올라 마침내 프로 뮤지컬배우로 발돋움한 외유내강의 늦깎이 연기자인 아내도 남격청단의 오디션 무대는 긴장이 됐던지, 먼저 지휘자님께 인사한 후 자신의 이름을 대고 이어서 작곡자와 곡명을 밝히는 단순한 순서조차 흔들려서 얼떨결에 경례와 성명 밝히는 부분을 건너뛰고 곡명부터 대는 바람에 단원들로부터 "이름은요?"하는 안쓰런 귀띔이 있고 나서야 뒤늦게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실수가 드러났고, 이런 원초적 오류에 단원 모두가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으나,
아내는 이미 이 연주에 나서면서 영적으로 네 사람으로부터의 힘찬 응원을 받고 있는 터였고, 곡도 아내에게는 인연이 매우 깊은 익숙한 곡이었기에 전주를 기다리는 순간부터 노래와 하나가 되며 몰입했고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하며 큰 허물 없이 가창을 마쳤다.
할머니와 아버지와 존경하는 스승의 영적 응원과 오디션 현장에서의 배우자의 염원까지 곁들여져 힘을 모은 아내는 그 어느때보다도 당당하게 자신감을 갖고 발표를 했다. 다만 곡의 서두를 장식하는 레치타티보 부분이 전체 진행 시간에 쫓겨 생략된 점이 아내로서는 자그마한 아쉬움으로 남았다.
" 저 푸른 숲이 서늘해 나의 영혼 쉬겠네. 항상 편히 쉬겠네. 괴롭거나 슬프거나 그 어머니 같이 저 푸른 숲그늘에 편히 쉬겠네. 언제든지... "
만약 [라르고]의 이 원어 독백이 살아났더라면 아내의 연극적 딕션이 제대로 빛을 발휘했을 것이라 믿는 것은, 십수년 동안 아내의 연기를 객석에서 조용히 지켜봤던 나홀로의 가상현실뿐일런지?
당시 콩클입상과 이동훈선생의 격려로 아내의 대학진학 목표가 국문과에서 성악과로 바뀌기도 했으니, [라르고]와 콩클입상은 여고졸업을 앞둔 18세 아내에게는 엄청난 전환점이었던 셈이다.
62년전 콩클 당일의 설렘과 초조함과 수상의 기쁨을 기록한 아내의 고색창연한 일기장은 오늘날까지도 아내를 순식간에 소녀시절로 되돌려 놓곤 한다.
한편 나는 이번 오디션에서 알버트 헤이 말로테의 [The Lord's Prayer]를 가창하며 두군데 음이 이탈됐다. '앗차 이럴 수가!' 하는 낭패감이 들었으나 그대로 가창을 계속할 수 밖에 없었고 천만다행스럽게도 가까스로 고음 부분을 아슬아슬하게 넘기면서 겨우 연주를 끝낼 수 있었으나, 전반적으로 안정감이 떨어지고 음도 메마르고 거칠었다.
작년도 오디션곡 [You will never walk alone]의 엔딩 카덴차 부분에서도 과욕을 부려 음이 꼬였었으니 2년이나 연속 있어서는 안 되는 흠결을 반복한 셈이지만, 이 정도로 넘어간 것이 그나마 내게는 행운이라 할 수 있다.
사실을 실토하자면 나는 그동안 계속 낮은 음으로 연습을 해왔었는데, 얼떨결에 반주 톤에 맞춰 노래를 시작하고 보니 내 한계에 벅찼던 것이다. 두번의 음이탈이 내 연습부족을 말해주고 있으며, 반복돼서는 안 될 부끄러움으로 남는다.
아직도 스스로를 60대 초반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터이니 이 과실을 나이 탓으로 돌리는 것도 구차스런 일이고... 무려 1년 동안이나 준비한 끝에 얻은 결과이니 모든 것이 내탓, 내 한계임을 어찌 부인할 수 있으랴?
오디션을 마치고 보니 아내도 나도 이모저모로 아쉬움이 없지 않다. 그러나 나나 아내의 이런 실수 모습도 우리 오디션 현장의 모습과 분위기와 느낌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길이고, 우리 부부가 직면했던 현실 그 자체의 사실적인 기록이라 생각돼 편집 없이 실황 그대로를 유투브에 올린다.
우리 부부의 이번 오디션 동영상이 유투브에 오르면 내게는 KBS에서 올려준 방송사 오디션 실황 동영상을 포함해서 여섯번째의 동영상이, 그리고 아내에게는 세번째의 동영상이 생겨나게 된다.
간단한 클릭 하나로 2011년, 2012년, 2015년, 2018년, 2019년의 내노래 실황을 순식간에 넘나들며 비교 청취할 수 있으니 유투브의 효능이 실로 놀랍다.
세월을 뛰어넘는 순간비교로 안타깝게도 내 소리가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씩 퇴행해 간다는 사실도 또렷이 실감하게 된다.
비록 그렇기는 해도 축제와 아울러 이토록 소중한 기록이 만들어지는 우리 합창단에 대해 늘 고마움과 자부심과 행복감을 느낀다.
내년 2020년도 오디션때는 무슨곡을 부를까? 우리 부부도 여러 단원들처럼 곡선정의 행복한 고민으로 새로운 한해도 소망과 기대가 가득 넘칠 것이라 믿는다.
1949년, 당시 86세의 오세창님이 우리 장인을 위해 남겨준 휘호처럼 장락무극-長樂無極-의 지평이 음악을 사랑하며 평생 음악과 더불어 만년 청춘으로 살아가는 우리 단원 모두의 곁에 늘 활짝 열려 있으면 좋겠다.
Largo - Händel 청춘합창단 80세 알토 박찬열 2019 오디션 실황 https://youtu.be/8QLfZ1M_Vyg
The Lord's Prayer - A.H.Malotte 청춘합창단 80세 테너 조석영 2019 오디션 실황 https://youtu.be/7nn2Snb4kfQ
2018년도 우리 부부 오디션 이야기와 실황
http://m.cafe.daum.net/GreyYouthChoir/Rbov/295?svc=cafeapp
첫댓글 샘,,,건강하시고 오래도록 청단에서 노래 부르세요 화이팅
멋진 글입니다.
두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선곡된 곡에~
아롬다운 실크 머플러~
그 하나하나에 세월이 담겨있었군요~두 분의 잔잔하고 깊은 굵직한 감동의 뿌리가 여기에 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