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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축복의 열쇠 원문보기 글쓴이: 보아너게
시편139편 제목 : 감찰(監察)하시는 하나님을 찬양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 하소서“
(시139;23-24)
개 요
본시139편의 저자(著者)는 다윗이며. 표제는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본시는 하나님의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심과 편재하심을 경험적 신앙고백이 특징(特徵)으로 이뤄진 개인적(個人的)인 하나님 찬양 시입니다. 많은 신학자들은 다윗의 많은 시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시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본 시는 영장으로 즉 지휘자(指揮者)를 따라서 부르는 다윗의 찬양(讚揚) 시입니다.
다윗은 그의 신앙이 성숙(成熟)해진 생애 말년에 하나님의 임재를 생생하게 체험하고 본 시편을 기록(記錄)한 것 같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전지하심과 전능하심과 편재하심 즉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심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다 아십니다. 죄가 있으면 정직하게 고백하고 용서받아 평안을 얻는 것이 생명을 얻는 중요한 일입니다. 내용으로는 전지하신 하나님 (1-6절) 편재하신 하나님 (7-12절)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13-18절) 죄인들을 형벌하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19-24절)로 되어 있습니다.
내용 분석
1. 시139;1-6 전지하신 하나님
2. 시139;7-12 편재하신 하나님
3. 시139;13-18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4. 시139;19-24 죄인들을 형벌하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시139편 해설
1. 시139;1-6 전지하신 하나님
1-6절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洞燭)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1) 1-6절 “감찰하시고 나를 아시는 하나님” (you have searched me and you know me) 시인은 하나님을 감찰(監察)하시는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감찰(監察)”(Search me)이란 본 시23절에 나오는 “살피사”와 동일한 용어로 탄광에서 채굴 작업을 할 때 정밀하게 검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생각과 감정(感情)까지 자세하게 조사하시고 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2) 하나님은 나의 앉고 일어섬까지 다시 말해서 세밀(細密)하게 나의 발놀림과 손놀림까지 모든 생활을 주시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멀리서도 통촉하시며”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超越)하여 나를 아시는 편재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혀의 말까지도 다 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흑암을 파하고 끝까지 궁구하여 음예와 유암 중의 광석을 구하되 사람 사는 곳에서 멀리 떠나 구멍을 깊이 뚫고 발이 땅에 닿지 않게 달려내리니 멀리 사람과 격절되고 흔들흔들 하느니라“ (욥28;3-4)
3)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눈을 피하여 도망(逃亡)하던 하갈은 감찰(監察)하시는 하나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하나님은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존재(存在)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超越)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피해서 도망(逃亡)갈 대가 없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 곁 곧 술 길 샘물 곁에서 그를 만나 가로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가로되 나는 나의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창16;7-9)
4) “혀의 말을 다 아신다” (a word is on my tongue you know it) 우리의 입술과 혀를 통해서 내 뱉어진 말은 사라져 버리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다 들으시고 기억(記憶)하시며 그 속에 숨겨진 감정(感情)이나 뜻까지도 다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벧전3;9-11)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골4;6)
5) “안수 하셨나이다” (you have laid your hand upon me) “안수”의 원뜻은 “손을 올려놓다” 입니다. 손을 얹고 축복하거나, 죄의 전가 또는 은사나 권위가 주어지도록 기도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또한 특별한 일을 위탁할 때도 안수가 시행됩니다.
6) 안수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구약성경에서는 안수가 “인간의 죄를 희생제물에게 전가할 때” “상속권을 부여하거나” “임직할 때” “불경건한 자를 징벌하기에 앞서” 시행되었습니다.
“회중의 장로들이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레4:15)
“이스라엘이 우수를 차자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좌수를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어긋맞겨 얹었더라” (창48:14)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하여 여호수아를 데려다가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에게 안수하여 위탁하되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더라“(민27:22-23)
“저주한 사람을 진 밖에 끌어내어 그 말을 들은 모든 자로 그 머리에 안수하게 하고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지니라” (레24:14)
7) 신약에서 안수한 경우로는 “복을 빌거나” “병 고침 곧 건강 회복을 바라거나”
“거룩한 직분을 수여하거나” “성령의 임재를 사모할 때” “성령의 은사를 전달하는 일과 관련하여” 시행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직원이 와서 절하고 가로되 내 딸이 방장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으소서 그러면 살겠나이다 하니” (마9:18)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행6:6)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행8:17)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 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딤후1:6)
8) 안수(按手)를 하지 않으면 즉 우리의 죄가 주님에게 옮겨지지 않으면 십자가(十字架)에서 이미 다 이루신 속죄는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됩니다. 안수는 먼저 유대교에서 시행되었고 그 후에 기독교도 받아 들였습니다.
9) 구약에서 안수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성별”(聖別)이고 신적 은혜를 전달할 때 “동일시”(同一視)하는 것인데 속죄제(贖罪祭)의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제물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연관 짓는 것입니다.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레1;4)
10) 신약에서도 안수는 “성직임명”이나 침례“와 같은 성례의식 때 시행되었습니다. 성직임명 때 안수는 구별하여 세워서 은혜(恩惠)를 전달한다는 의미이고 임명을 받은 이는 임명(任命) 자와 동일한 권위(權威)를 나뉘어 가지며 그를 대표한다는 의미에서 동일시함도 뚜렷하게 담겨져 있습니다. 안수는 때로는 성령(聖靈)의 은사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행13;2-3)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딤후1;5-7)
2. 시139;7-12 편재하신 하나님
7-12절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정녕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되리라 할지라도”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일반이니이다”
1) 7-12절 “모든 곳에 계신 하나님” (God everywhere) 시인은 하나님은 어느 곳에나 편재(遍在)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영원(永遠)하시며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편재하시며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하나님이십니다.
2) “편재하시는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은 어느 곳에나 계시며 편재란 시간과 공간의 모든 부분을 채우신다는 하나님의 독특(獨特)한 속성(屬性)을 말하며 이를 또한 무소부재(無所不在)라고도 합니다. 사람은 이러한 하나님을 피하여 숨을 곳도 없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롬10:6-7).
3) 하나님의 편재(遍在)하심은 모든 존재(存在)를 가능케 하며 어떤 특정(特定)지역의 통치만 아니라 온 우주 만물의 통치자(統治者)란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하나님을 떠나거나 피(避)할 생각을 하지 말고 죄가 있으면 정직하게 고백(告白)하고 사죄의 은총(恩寵)을 입어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4) 편재하신 하나님은 가까운 곳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먼 곳의 하나님도 되십니다. 온 천지간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부를 수 있고 또한 만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동자로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그러한 하나님을 모르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判斷)하여 어리석은 자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가까운데 하나님이요 먼데 하나님은 아니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에 내가 몽사(夢事)를 얻었다 함을 내가 들었노라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언제까지 이 마음을 품겠느냐 그들은 그 마음의 간교한 것을 예언하느니라” (렘23:23-26)
5) 하나님은 성령(聖靈)으로 다윗과 함께 계셨습니다. 다윗은 이 사실을 깨닫고 “내가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겠습니까?”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고” “바다 끝에 가서 거할 지라도 주님은 거기 계시고”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꼭 붙들어 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6) 흑암(黑暗)도 다윗을 숨겨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죄를 짓고 흑암가운데 숨지를 못했습니다. 흑암이 낮과 같이 그를 비추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두움 가운데서도 우리를 보십니다. 밤에 귀에 대고 한 말도 숨길 수가 없습니다. 언재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하시고 당신의 마음의 비밀(秘密)까지도 다 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은 죄를 짓고 자신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 죄에 대하여 회개하고 눈물로 참회했습니다. 그런 점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롬11;33-36)
“나의 영혼도 심히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나을 구원하소서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 음부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시6;3-6)
3. 시139;13-18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13-18절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기우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오히려 주와 함께 있나이다”
1) 13-18절 “신묘막측 하신 하나님” (wonderfully made; your works are wonderful) 다윗은 자신을 어머니 모태(母胎)에서 조직하시고 지으심이 놀랍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머니 태중에서 놀랍게도 우리의 오장육부(五臟六腑)를 다 지으시고 우리 인생에게 생명(生命)을 주신 창조주(創造主) 하나님이십니다.
2) 다윗은 이러한 하나님의 신비(神秘)를 깨닫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기이한 일을 내 영혼이 잘 안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의 지체(肢體) 중에 눈 하나만 보아도 하나님은 신비롭게 지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눈을 현미경(顯微鏡)같이 지으셨다면 우리는 살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세균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눈을 적당하게 지으셨습니다.
3)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보신 하나님” (your eyes saw my unformed body) 하나님의 창조(創造)의 능력을 인간이 어찌 다 알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은밀한 곳에서” “땅속 깊은 곳에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재료는 흙과 하나님의 생기(生氣)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창2;7-9)
4) “주의 책에 다 기록 되었다” (written in your book before one of them came to be) 인간의 출생은 하나님 뜻입니다. 다윗의 형체가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은 다 보셨고 그의 이름을 주의 책에 기록(記錄)하셨습니다.
5) 다윗은 물론 모든 인간은 은밀(隱密)한데서 지음을 받았습니다. 뱃속의 아이의 모습이나 성장(成長)과정이나 성격(性格)을 어떻게 들여다 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다 보셨다”고 했습니다. 이는 모든 사람은 그 형태(形態)가 이루기 전에 이미 완성(完成)된 모양이 결정(決定)되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한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께는 소중(所重)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6) ‘주의 책“ (remembrance was written in his presence)이란 무엇입니까? 또 무엇이 기록되어 있습니까? 우리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나의 ”형질“ ”정한 날“을 다 아시고 기록하셨다 즉 나를 기억(記憶)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의 모든 생각과 행동과 말까지도 다 들으시고 기록하신 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고 보면 운명론(運命論)이나 예정(豫定)론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함부로 판단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성경으로 돌아갑시다.
7) 하나님 앞에는 여러 책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책” (A scroll of remembrance)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한 자들이 나눈 모든 교제의 말이 기록된 책이 있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말3;16)
8) 인간의 “삶의 모든 행실을 기록한 책” (they had done as recorded in the books) 그동안에 살면서 선 악간에 행했던 모든 일들이 기록(紀錄)된 행실 록입니다.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죽음으로 끝이 아닙니다. 심판(審判)의 부활(復活)로 나와서 자기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지옥으로 갑니다. 사람은 죄짓지 말고 선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구원(救援)받는 다는 사실을 기억 하십시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계20;12-14)
9) “생명 책” (the book of life)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생명 얻는 회개로 죄사함을 받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그리스도인들은 그 이름이 이미 생명책(生命冊)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계20;1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5;24)
10) “보배로운 주님의 생각” (How precious to me are your thoughts) 하나님의 생각은 보배롭습니다. 보배롭다는 말은 심오하고 높은 가치가 있다는 말입니다.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생각도 많으시고 진실(眞實)하시고 성실(誠實)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은 그 수를 셀 수가 없습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 (딤전2;4-6)
4. 시139;19-24 죄인들을 형벌하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19-24절 “하나님이여 주께서 정녕히 악인을 죽이시리이다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들아 나를 떠날지어다” “저희가 주를 대하여 악하게 말하며 주의 원수들이 헛되이 주의 이름을 칭하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미워하는 자를 미워하지 아니하오며 주를 치러 일어나는 자를 한하지 아니하나이까” “내가 저희를 심히 미워하니 저희는 나의 원수니이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 하소서”
1) “주께서 악인을 죽이심” (only you would slay the wicked) 다윗은 앞에서 하나님의 감찰하심과 편재하심과 전지전능하심을 언급하다가 여기서는 하나님이 악인을 반드시 죽이실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악인은 반드시 제거되어야 할 대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全知全能)하셔서 의인의 생각과 행동만 아시는 것이 아니라 악인(惡人)의 삶도 모두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당신의 공의(公義)에 근거하여 악인들을 발본색원(拔本塞源)하셔서 심판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3) 시인의 소망은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 이들은 살인자들로 죽음이 문 앞에 이른 자들입니다. 살인은 근거 없이 남을 헐뜯고 비방하는 자들입니다. 시인은 이런 자들을 향하여 “나를 떠나라” 없어지라고 외칩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5;21-22)
4) “주를 대하여 악하게 말하는 자들" (They speak of you with evil intent) 시인은 악하고 가증(可憎)스러운 자들을 증오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주님에 대하여 악하게 말합니다. 헛되이 주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주님을 미워합니다. 시인은 이들을 미워할 뿐만 아니고 원수(怨讐)라고 했습니다.
5) 성도(聖徒)인 우리들도 주님의 원수는 나의 원수이며 주님의 대적(對敵)은 곧 나의 대적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성도는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우리의 사정을 아뢰면 주님이 도와주시고 우리는 그 하나님을 찬송(讚頌)할 수 있습니다.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가 물러가리니 하나님이 나를 도우심인 줄 아나이다
56:10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시56;9-10)
6) “나를 시험 하소서” (know my heart; test me) 시인은 하나님의 전지하심과 악인을 미워하시는 속성을 깨닫고 경건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자신을 살피시고 뜻을 아셔서 죄를 짓지 아니하고 바른 길로 갈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성도인 우리 영혼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과 훈련을 통해서 올바른 신앙(信仰)인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잘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살피고 경건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 (벧후3;17-18)
결 론
본 시편에서 시인은 하나님은 감찰(監察)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시고 무소부제하시는 하나님을 계시했습니다. 연약(軟弱)한 인간은 죄나 짓고 살면서 하나님을 떠나 어디론가 떠나가려하지만 그럴 수 없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創造)의 놀라운 신비(神秘)를 사람을 모태(母胎)에서 조직하시고 그 형질이 하나도 되기 전에 다 아시고 책에 기록하신 것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한 하나님 앞에 우리의 삶은 거짓이 없고 진실해야 하고 악을 미워하고 악인을 죽이는 성결(聖潔)한 삶이어야 함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 자신을 살피시고 시험하사 올바른 길로 가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바랐던 것처럼 성도인 우리도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충성(忠誠)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히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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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축복의 열쇠 원문보기 글쓴이: 보아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