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김혜진 베로니카,성균관대 학부대학 초빙교수)
“언니, 공연 잘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힘내세요!” 아침 일찍부터 휴대전화 톡방이 울렸습니다. 대학교 때부터 같은 본당과 청년성서모임에서 함께해 온 동생 율리안나가 응원 메시지와 함께 그날의 복음 말씀을 전해 왔습니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루카 6,38) 올해 초 부산 청소년자립지원관 청소년들을 위한 기부 공연을 준비하면서 모금 활동에 어려움을 겪던 저에게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라는 구절이 유독 눈길을 끌었고 자연스럽게 마음에 새겨졌습니다.
뜻이 통하는 지인들과 2008년부터 ‘아름다운 사람들의 따뜻한 만남’이란 이름으로 격년에 한 번씩 자선 공연을 해오다가 2016년 이후 개인 사정과 코로나19 사태로 8년을 쉬게 되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한번 멈추면 의지와 동력이 상실되기 마련이듯 저 또한 다시 공연을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바쁘다’, ‘힘들다’, ‘나이 들었다’는 등 여러 핑계로 제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지난 연말 그동안 공연을 함께 만들어 온 언니가 공연을 재개하자고 했고 그 제안을 받아들여 다시 공연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소규모 공연이다 보니 기획·홍보·출연진 섭외·기부금 모금활동까지 모든 부분에 관여해야 해서 몸과 마음이 힘들었고 무엇보다 공연일이 임박함에도 공연을 보러 오겠다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홍보를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나도 후원 계좌 잔액은 ‘0’이었고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극장 대관비를 납부하고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는 동생이 전화해서 “언니, 극장 대관비도 내야 하고 돈 쓸 곳이 많지 않아요? 제가 기부금 조금 보낼게요”라면서 100만 원이란 거금을 보내줬습니다. 기적은 이날 이후에 시작되었습니다. 후원 계좌에 공연 티켓비와 기부금 등이 물밀듯 들어와서 100여 석의 소규모 공연에는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후원금이 모였고 기쁜 마음으로 부산의 청소년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공연할 때마다 머릿속으로는 늘 ‘하느님의 일이니 하느님께서 알아서 하실 거야’라고 했지만, 실상은 내가 계획하고 진행하는 일이니 결국 내가 하는 일이라는 오만한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니까 공연을 준비하는 내내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이지요. 기부금 전달식에 즈음해 주교님께 공연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더니 단번에 “하느님께서 많이 애써 주셨구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자마자 공연을 준비했던 지난 석 달간의 여정이 한마디로 정의됨을 느꼈습니다. 기억한다고 하지만 인간적인 연약함으로 조금만 힘들어도 쉽게 잊게 되는 나의 하느님, 나의 아버지. 넘치도록 후하게 베풀어 주시는 그분이 계시기에 나는 무슨 일이든지 용기 내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5월은 성모 성월로 교회에서는 특별히 성모 마리아를 기념하는 달이기도 하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유독 공휴일과 행사가 많은 달입니다. 기념일 하루하루를 살펴보면 가장을 비롯해 자녀·부모님, 나아가 선생님을 생각하고 배려하려는 뜻이 보입니다.
공연 중 청소년자립지원관 선생님께서 낭독해 주신 편지 내용의 일부입니다. “얼마 전 명절에 몇몇 친구들에게 안부를 전할 때 명절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며 혼자 집에서 하염없이 자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선생님들 마음이 많이 아팠었어.” 이 봄을 맞아 성모님의 마음을 기리며 가족·지인 외에 우리 이웃들에게도 관심을 보이고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혜진(베로니카, 성균관대 학부대학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