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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말씀
제목 : 말씀으로 사는 교회
성경 : 신 8:1~10
찬송 : 546장
저자 : 이삼규목사
출처 : 20240101 낙양교회 영신 예배
신 8:1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신 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신 8: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 8: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신 8:5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신 8:6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신 8: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신 8:8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신 8:9 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신 8:10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
2024년 갑진년 새해를 맞이하였습니다. 2024년 새해에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늘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2024년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교회의 표어를 ‘말씀으로 사는 교회’로 정하였습니다.
신 8: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영상-성경으로 시작하는 한해/조혜련 어머니)
신명기 8장은 하나님만을 의뢰해야 한다는 선언문과도 같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미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서도 그 땅을 의지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의지해야만 살아갈 수 있음을 선포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이 순종하면 주님의 은혜와 축복과 번성케 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그동안 그들이 걸어온 광야 길은 번성이나 약속과는 차이가 많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살고 번성으로 가는 길을 하나님이 제시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말씀으로 사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하나님께서 지켜주신 과거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순종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합니다.
√신 8:1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여기에서 ‘지켜 행하라’는 말씀과 ‘얻으리라’는 말씀이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반드시 축복이 따른다는 약속입니다. 어떤 축복입니까? 잘 사는 것, 번성하는 것,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구약시대 가나안을 목적에 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이지만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현재형이나 미래형으로 바꾸어 보아야 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게 되면 우리의 문제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수월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축복을 말씀하시면서 기억할 것을 기억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확실한 축복이 보장 된 것이기에 우리는 더욱 잘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40년 동안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생이 무엇입니까? 인생은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들의 묘지에 가보면 “학생(學生)”이라는 글귀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죽어서도 학생이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확실한 미래를 내다 볼 때 그들은 과거를 기억하라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지난 세월동안 어려웠던 경험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도우셨는가를 생각한다면 앞에 다가올 여러 문제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청교도의 설교자인 ‘스티븐 차녹’(Stephen Charnock)은 17세기 후반에 맹렬한 박해를 받고 있던 자기 친구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전에 베푸신 선하심을 기억한다면, 하나님이 장차 우리를 돌보아 주실 것을 그처럼 쉽게 의심해서는 안 된다.”
모세는 광야 40년의 기나긴 세월을 회고하면서 그 시절이 어려운 시절이기는 하였지만 쓸모없이 낭비된 세월은 아니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불순종으로 인해 꼬박 한 세대 동안 약속받은 땅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슬프게 했을 때도 하나님은 그들은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반역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도망가면 하나님은 용서를 손에 들고 사랑으로 그들을 추적하셨습니다.
이제 그들은 광야 생활을 마치고 풍성하고 번창한 땅에 들어갈 것을 고대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메마른 광야에서도 그들에게 선하게 대하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번창할 때는 결코 배울 수 없는 교훈들을 배웠습니다. 황폐한 광야의 세월 동안, 하나님은 마치 자녀들의 유익을 위해 이따금씩 그들은 징계해야 하는 인자하신 아버지와도 같으셨습니다(5절).
하나님께서 그들을 광야 40년 동안 낮추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광야를 지나면서 굶기도 하고, 목마르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이스라엘을 낮추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신 일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하루 이틀도 아닌 40년 동안이나 이스라엘을 낮추시는 일을 하셨을 까요?
그들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떤 시험입니까? 그들의 마음이 어떠한지 알아보기 위한 시험입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변함없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따르는지를 시험해 보고 그것을 통해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를 알고자 하셨습니다.
시험받는 성도들을 보면 그들의 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어떤 성도는 아무리 고통스런 시험이 찾아와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기쁨으로 이겨내는 성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얼굴에 ‘나는 시험 받고 있습니다!’라고 간판을 붙이고 다닙니다. 그런 성도를 보면 늘 징징거립니다. 조금은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시험을 잘 이기는 성도를 보면 대견스럽고 감사한데 그렇지 못하고 얼굴에 내 천자를 그리고 마치 자기 혼자 모든 무거운 짐을 짊어진 양 징징대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시험을 통과할 때 대부분은 두 가지 모습을 보입니다. 하나는 “어떤 고난과 환난이 와도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겠습니다. 주의 뜻을 이루시옵소서!”라고 굳은 신앙을 보이는 모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내가 하나님께 잘못한 것이 없는데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내가 순종하지 않은 것이 무엇입니까?”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더 나아가 목회자를 원망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부류에 속한 자입니까?
결국 인생은 시험의 연속입니다. 고등학교 졸업하면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 시험을 봐야 하지요, 대학을 졸업하면 낙타바늘이라고 하는 취업의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 더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시험이 찾아오면 ‘이 시험에 합격해서 한 단계 더 올라가라는 뜻이구나.’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떤 시험이든지 잘 통과하고 나면 반드시 축복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통과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만나라고 하는 엄청난 기적의 음식을 경험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런 시험이 없었다면 없는 것 가운데서 있게 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을 것입니다. 언제나 풍족한 사람은 만나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굶주림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음식을 날라다 주는 까마귀를 체험하겠습니까? 이스라엘이 굶주리고 목말랐기 때문에 40년 동안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신 8: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낮추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들도 알지 못하며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먹여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려 하심입니다.
예수님께서 40일 금식하시고 주리신 후에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돌로 빵을 만들어 먹으라는 정욕의 시험이었습니다. 유대 광야에는 유대인들이 즐겨먹는 둥근 빵과 같은 돌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마치 맛있는 빵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돌로도 빵을 만드실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육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하여 사용하시지 않으시고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말씀으로 삽니다. 믿습니까? 2024년 우리 낙양교회도 ‘말씀으로 사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은 시련을 통해서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난을 당하고 주리고 목마른 것이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기적을 체험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이 경험한 기적은 만나와 메추라기 그리고 반석의 생수가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신 8:4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여러분 40년 동안 입어도 떨어지지 않는 의복이 있습니까? 아무리 값비싼 옷이라 할지라도 40년을 입는다면 아마도 누더기가 되고 말 것입니다. 저희 형님이 맹호부대로 월남에 다녀왔습니다. 그때 미군들이 입는 야전잠바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 야전잠바가 얼마나 좋은지 큰 형님이 입었고, 작은 형님이 군대생활하면서 입었으며 그리고 저까지 입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입을 때는 약간 떨어진 데가 생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40년 동안 의복이 헤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그토록 심한 행군을 하였는데도 발이 부르트지 않았다는 것도 기적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 기간은 사람에 따라서 다 다릅니다. 일 년이 될 수도 있고 10년이 될 수도 있으며, 어떤 사람은 평생 광야의 길을 걷게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징계라고 표현합니다. 징계는 사랑받는 아들에게만 임하는 것입니다. 사생자나 버림받는 자식은 절대로 징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징계하십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징계를 받는 우리는 6절을 통해서 세 가지를 꼭 기억해야 합니다.
√신 8:6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1)인생에서 어둡고 당혹스러운 경험을 하는 동안 우리는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지켜).
2)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행하며).
3)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경외).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미래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이스라엘의 미래는 지난 과거와 너무나도 대조적인 모습인 것을 발견합니다. ‘메마른 광야’(2절)는 미래에 들어갈 ‘아름다운 땅’(7절)과 명백한 대조를 이룹니다. 끊임없이 이동한 ‘40년’(2절)은 가나안에서 안정되게 정착한 세월들과 대조를 이룹니다. 그들의 ‘이동식 장막(텐트)’ 생활과 앞으로 들어갈 땅의 ‘아름다운 집’(12절)과는 대조를 이루며, 임시적인 생활 방식과 영구한 생활 방식과 대조를 이룹니다.
그뿐입니까? 광야에서의 ‘주림’(3절)은 먹는 ‘식물의 결핍함이 없는’(9절)것으로 바뀝니다. 얼마나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미래입니까? 그러나 여기에 엄청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이 만나게 될 위험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광야에서 시험을 통과하면서 낮아질 대로 낮아졌습니다(3절).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기뻐하실까요? 낮아진 사람 즉 겸손한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교만해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14,17절).
하나님의 백성들이 언제나 변화의 시대에 겪게 되는 두 가지 심각한 위험이 있습니다.
√1)하나님이 이전에 베푸신 자비들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기억 못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이전에 베푸신 자비를 쉽게 잊어버립니다. 지난 40년 동안 하나님은 그들을 구속하셨고(14절),보호하셨으며(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 뱀과 전갈이 있고)(15절), 먹여 살리셨습니다(만나와 생수/15, 16절). 심지어 역경의 순간들마저도 ‘마침내’(16절) 그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 사랑으로 계획된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마침내’라는 말이 굉장히 중요한 단어입니다. 이 마침내는 누가 써야 할 단어입니까? 우리가 써야 할 단어가 아닙니다. 하나님 편에서 쓰셔야할 단어입니다.
창세기에 나타난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여러분들은 잘 아십니다. 그가 처음부터 믿음으로 갈대아 우르를 떠났고 하란을 떠났습니까? 사실 아브라함은 떠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두려워서 아버지 데라 주도로 갈대아 우르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갈대아 땅을 벗어난다는 것은 그야말로 모험이었습니다. 그래서 갈대아 변방인 하란에 머물게 된 것입니다. 데라가 죽기까지 그곳에서 시간을 지체한 아브라함이 아버지 데라 죽고 난 후에 다시금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떠밀려서 가나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12장 5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 12:5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하나님께서 연단을 하시고 시련을 통과하심은 ‘마침내’ 복을 주려 하심입니다. 그러므로 광야 40년은 유익한 낮춤의 기간이며, 목적 있는 시험의 기간이요, 필수적인 배움의 기간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현재에 몰두할 때 이전에 주셨던 반복적인 경험들을 쉽게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2)하나님의 계속적인 은총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부어 주시는 은총도 무시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비옥한 땅에서 정착하고 번창하면서 잘 살게 되면 이전에 가졌던 하나님을 의뢰하는 마음이 재빨리 사라져 버릴 것을 하나님은 아셨습니다. 광야에서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늘만을 바라보고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려주실 때 단번에 여러 날 먹을 분량을 내려 주시지 않았습니다. 매일 매일 그날 필요한 양식만을 내려 주셨습니다. 단지 안식일 전날에만 이틀 분량의 만나를 내려주실 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는 살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가나안에 정착하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모래투성이의 사막과 광대하며 바람이 휘몰아치는 광야는 과거지사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매혹적인 지형(시내, 분천, 샘, 골짜기, 산지)과 풍성한 농작물(밀, 보리), 풍부한 과수(포도, 무화과, 석류, 올리브, 꿀), 그리고 유용한 자원(철, 동)을 지니고 있는 옥토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이들의 미래는 확실하고 보장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그들이 이러한 복을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식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잊어버린 채 복만 받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기억하기는커녕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11,14절). 축복이 오히려 하나님을 배반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세 가지를 하도록 하셨습니다.
1)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유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2)예배를 드리게 하셨습니다(네 하나님을 여호와를 찬송하라).
3)하나님을 인정하게 하셨습니다(여호와께서……. 네게 주셨음을 인하여).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10/14절).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습니다(11절). 건방지게도 오만하고 교만해졌습니다(14절).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보장됩니까?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고 구비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되지 않도록 삼갈찌어다.”라고 권고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현재를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이 언제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쉽습니까?
√신 8:12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신 8:13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신 8:14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사람은 배부르게 먹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살며 우양이 번성하고 은금이 증식되고 소유가 풍부하게 되면 교만하여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왜 교만한 마음이 생깁니까? 자기가 잘나서 잘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그렇구나, 내가 다른 사람보다 똑똑해서 그렇구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잘 사는 것이 여러분의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열심히 해서, 또는 똑똑해서 남보다 부럽지 않게 사신다고 생각하십니까?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멸망의 앞잡이입니다. 우리 삶 속에 어떤 축복이 오더라도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라는 사실을 깨닫고 즉시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래야 교만이라는 독약을 먹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풍요를 누리게 될 때 두 가지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1)교만(17-18절)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부자가 되면 자신의 능력으로 부자가 된 것으로 착각합니다.
신 8:17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신 8: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재물 얻을 능을 주십니다. 왜 그런 능력을 주실까요? 그것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부자가 되었다 할지라도 절대로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그저 감사해야 하고 하나님께 찬양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11조를 바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재물을 얻을 능력을 하나님께서 주셨기에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바치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아홉은 우리에게 주시고 하나만 상징적으로 바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바친다는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진솔하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교만하지 마십시오. 자기의 능력으로 되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셨기에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찾고 계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잠언에 나오는 아굴의 기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잠 30:7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잠 30:8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잠 30: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 이다
√2)우상숭배(19-20절)
하나님이 최고로 자비하신 수여자시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게 될 때 삶 속에 내려진 선물들과 복에 대해서 다른 수여자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자기들의 농사가 잘 되고 풍년이 드는 것은 농경의 신인 바알의 특별한 선물이라고 깊이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땅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김제나 평야 지대를 돌아다녀보면 종종 남근석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도 역시 하나의 우상입니다. 남신과 여신이 사랑을 할 때 풍년이 든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엄중하게 경고합니다.
신 8:19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정녕히 멸망할 것이라
신 8:20 여호와께서 너희의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니라.
가나안 사람들이 왜 멸망당하였습니까? 우상숭배 때문입니다. 영광을 받을 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신 5:9).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기억해야 하나님은 청종할 교사(1-3절)이시며, 순종해야 할 아버지(5-6절), 감사해야 할 수여자(10절), 기억해야 할 구원자(14-16절), 공경해야 할 주권자(19-20절)이십니다. 우리의 과거, 미래, 그리고 현재를 책임지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말씀으로 살아가시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